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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2화 (652/774)

외전 2화. 운명의 교차 (2)

창고로 가던 둘은 문득 느껴지는 기세에 고개를 돌렸다.

광마대주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흑마대주(黑魔隊主)?”

광마각의 열린 대문으로 들어오던 남자, 흑마대주 소공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어.”

“기별도 없이 어쩐 일로?”

“우리가 뭐 기별까지 넣어야 할 사이는 아니잖나? 적적해서 찾아왔지.”

광마대주가 피식 웃었다.

“할 일이 그렇게 없나?”

“알잖아? 요새 우리 널널한 거.”

흑마대는 신교육대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부대로, 실질적인 전투가 아닌 암살 특화 조직이었다.

본디 신교에 암살 조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비슷한 임무를 호법원이 대신할 수 있었고, 애초에 신(神)을 모시는 위대한 종교에 암살만 전문으로 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으니까.

그럼에도 이와 같은 부대가 생긴 것은 조백천 때문이었다.

“칠가(七家)도 조용하고, 근래 들어서는 뭐…….”

말을 잇던 소공이 입맛을 다셨다.

“여하간 소일거리 할 것도 없다네.”

“그 시간에 수련이라도 하지 그러나.”

“수련은 항상 하지.”

소공이 머리를 긁적였다.

“자네 안 바쁘면 술이나 한잔할까 싶어서 말이야. 많이 바쁜가?”

광마대주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부관이 냉큼 나섰다.

“바쁘십니다.”

소공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안 바쁜 것 같은데?”

부관은 이마에서 혈관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을 애써 다독였다.

“광마대는 작전과 관련한 기밀 사항을 정리하는 업무도 겸하고 있습니다. 문서 정리만 해도…….”

“그거야 부대마다 다 하는 거잖아.”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번에 특히…….”

“정 바쁘면 자네가 좀 도와주지 그래?”

순간 말문이 턱 막힌 부관을 손짓으로 제지한 광마대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이야 항상 날 도와주지. 애꿎은 내 부하 건드리지 말게.”

“크하핫!”

“술 한잔이야 어렵지 않지. 조금만 기다리게. 일 하나만 처리하고 나서 마시자고.”

소공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부관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그는 흑마대주 소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교육대 중 혈마대(血魔隊)의 존재를 지우고 새로이 탄생한 조직이 흑마대였다. 당연히 흑마대를 향한 교내 마인들의 여론은 좋지 않았다.

그건 부대장급도 마찬가지여서, 다른 부대장 모두가 소공을 꺼리거나 싫어했다.

미운털 박힌 조직의 천덕꾸러기 대주. 그런 소공을 유일하게 잘 대해 주는 사람이 광마대주였다.

부관은 상관의 인품을 존경했지만, 흑마대주만큼은 멀리하길 바랐다.

‘괜한 눈총을 받지 않으셔야 할 텐데.’

소공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자네 집무실에서 기다리면 될까?”

“그렇…….”

말을 하던 광마대주가 이내 묘한 눈으로 소공을 바라보았다.

소공이 눈을 끔뻑였다.

“왜?”

“자네도 한번 볼 텐가?”

“엉? 누구를?”

“본대 고참 대원 하나가 죽었네. 그 범인을 보러 가는 것이야.”

“아! 그 명한인가 했던 대원?”

“기억하는군.”

소공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턱을 쓰다듬었다.

“굳이 그래야겠나?”

“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형법당 부당주가 당주로 승진했어. 자네를 열렬히 질투하던 놈이잖아? 보고 싶다고 하면 보여 주겠어?”

광마대주가 부관을 바라보았다.

부관이 헛기침을 했다.

피식 웃은 광마대주가 턱으로 창고를 가리켰다.

“그래서 창고에 가둬 두었네.”

“오호라? 원리 원칙 딱딱 지키시는 광마대주께서 어쩐 일이래?”

“가끔은 엇나가고 싶을 때가 있잖나.”

그게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부관은 나서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상관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소공이 미소를 지었다.

“좋지, 좋아.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혼자서 법도 운운하면 그것도 피곤해. 애들 챙기는 입장이면 적당히 융통성도 부릴 줄 알아야지.”

“그런가?”

“이제 자네도 사람 같군.”

부관은 괜히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부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광마대주가 재차 권하며 몸을 돌렸다.

“같이 가서 보세.”

“한데 나한테 보여 줘도 되겠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금세 옆으로 따라붙는다.

광마대주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걸리는 게 있어. 자네도 봐 줬으면 하네.”

“거 좋지.”

뭐가 그리 좋은지 소공은 희희낙락이었다. 그마저도 부관의 눈에는 아니꼽기 그지없었다.

창고 입구는 대원 둘이 지키고 있었다.

부관이 말했다.

“문을 열게.”

“예.”

쿠구궁.

부대의 각종 물품을 구비한 곳이니 아무래도 클 수밖에 없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창고는 생각 이상으로 넓었다.

소공이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 부대 창고보다 훨씬 크구만.”

“그런가.”

창고 안으로 들어온 세 사람.

그들 눈에 중앙 기둥에 묶인 한 청년이 보였다.

“저놈인가?”

“그렇습니다.”

굵은 밧줄로 꽁꽁 묶인 청년은 꽤 마른 체격이었다.

기운이 하나도 없는지 축 늘어져 있다. 그 와중에도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을 노려보는데, 지친 얼굴에 떠오른 차가운 살기가 상당히 독했다.

광마대주가 청년에게 다가갔다.

청년의 눈이 광마대주에게 닿았다.

훅!

광마대주의 무공은 신교육대 부대장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존재감에서 한 조직의 좌장으로서의 위엄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 위엄을 느꼈을까.

청년의 얼굴이 조금씩 창백해졌다.

광마대주가 물었다.

“이름이 뭐냐.”

청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독기 가득한 눈으로 광마대주를 노려볼 뿐이었다.

부관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대답해라!”

그제야 청년의 입이 열렸다.

“유이상.”

조금은 쉰 목소리였다.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상태이니 정신이 혼미해야 정상이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목숨이 오락가락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를 갈며 눈에 힘을 준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광마대주가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

청년, 유이상의 눈이 일순 흔들렸다.

광마대주가 입을 열었다.

“나는 신교의 광마대주 도헌(陶獻)이다.”

“…….”

“네가 본대의 대원을 죽였다고 들었다.”

“…….”

“이제 갓 삼류를 벗어난 내공. 재능이 출중하다 한들 어찌해 볼 만한 상대가 아니지. 한데도 너는 내 대원을 죽였다.”

유이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한결같이 도끼눈을 뜬 채 도헌을 주시할 뿐이었다.

도헌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기습이든 뭐든, 이는 보통 일이 아니야.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명한을 죽인 과정 따위가 아니다.”

“…….”

“상대와의 격차를 명확히 느꼈음에도 너는 녀석을 죽이려 했다. 차라리 뒤가 없는 절망적 상황이었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

“넌 도망칠 수 있었어. 하지만 칼을 뽑았다.”

“…….”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것이다. 도망칠 수 있었는데도 칼을 뽑은 이유. 그 많은 대원 중에 하필 명한을 골라 죽인 이유가 궁금하다.”

유이상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저 더 독하고 살벌해진 눈으로 그를 노려볼 뿐.

부관, 황무석이 외쳤다.

“대답하거라!”

힐끔 황무석을 본 유이상이 다시 도헌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헌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도헌을 노려보던 유이상이 입을 열었다.

“너희도다.”

“무슨 말이지?”

“너희는 물론, 능력만 된다면 천마신교의 모든 마인을 다 쳐 죽이려 들었을 것이다.”

황무석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감히!”

“그만.”

손을 들어 황무석을 막은 도헌이 재차 물었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

“명한을 왜 죽였느냐.”

유이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놈이 내 동생을 죽였다.”

“……동생?”

“처남 될 사람을 죽이고 그 앞에서 동생을 능욕했다. 그리고 죽였다.”

“……!!”

“너희는 악마다.”

도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황한 황무석이 외쳤다.

“닥쳐라! 명한은 명예를 아는 자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참형을 피하려는 속셈이냐?!”

순간 목덜미가 따끔해지는 것을 느낀 황무석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소공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는 건 표정일 뿐, 그의 눈은 도헌 이상으로 살벌해져 있었다.

“상관이 말하고 있잖냐.”

“……!”

“버릇없이 끼어들지 마라.”

황무석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소공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방탕하기 그지없는 천덕꾸러기의 모습이 아니었다.

도헌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이냐?”

유이상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부릅뜬 눈에 눈물 대신 맺힌 한이 답을 대신했다.

스르륵.

도헌이 천천히 몸을 세웠다.

황무석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뒷모습만 봐도 제 상관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황무석.”

부관이라는 호칭도 없다. 다만 서늘하게 부르는 이름 석 자에, 그의 얼굴이 절로 딱딱하게 굳었다.

“예, 대주님.”

“대원 전부 연무장으로 집합시켜라.”

“……예.”

고개를 꾸벅 숙인 황무석이 창고를 나갔다.

도헌이 유이상에게 말했다.

“그것이 진실이라도 네 목숨을 보장할 수는 없다.”

유이상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악에 받친 조소.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어두운 감정이 모두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여차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 처절함에 휩쓸릴 만큼.

복잡한 눈길로 유이상을 바라보던 도헌이 손을 뻗어 그의 목덜미를 짚었다.

스르륵.

유이상이 정신을 잃었다.

도헌이 한숨을 쉬었다.

“참으로…….”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가만히 보던 소공이 툭 던지듯 말했다.

“황무석이는 몰랐을 거야.”

“……그래.”

“짐작하고 있었나?”

“…….”

“그랬겠지. 대원을 그리 아끼는 자네가 이유부터 묻길래 뭔가 있다고 생각했어.”

도헌이 탄식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 근래 들어 대원들 분위기가 묘했네. 간간이 안 좋은 소리도 들려왔어. 그래도 설마 했거늘…….”

소공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에나 그런 놈은 있기 마련이야. 자네 논리라면 수행자 중엔 나쁜 놈 하나 없어야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

“유감이야. 내 달리 할 말이 없군.”

도헌이 한숨을 쉬었다.

난장판이 된 신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인격자가 그였다. 속이 말이 아닐 것이다.

소공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래서 저놈은 어쩔 거야? 정말 죽일 거야?”

“…….”

“역시 아니겠지.”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놈은 본교의 마인을 죽였어.”

“하지만 자네는 죽이고 싶지 않지.”

“나는 광마대주일세.”

“내 눈에는 도헌처럼 보이는데?”

도헌은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그를 보던 소공이 이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데려갈까?”

“뭐?”

“자네가 날 부른 이유를 모르지 않아. 만약 이놈에게 사정이 없었다면, 어떤 수로 자네 대원을 죽였는지 그 수법을 밝혀 달라 부탁할 생각이었겠지.”

“…….”

“하지만 사정이 있었고 처리는 곤란해졌구만.”

도헌은 혼란스러운 듯했다.

“이 녀석을 데리고 가면, 흑마대원으로 키울 생각이란 말인가?”

“재능도 없이 대원으로 받아 줄 순 없어. 이놈이 그걸 원하지도 않을 거고.”

“…….”

“뭐가 됐든 기회는 주고 싶군. 내가 인맥이 좀 되잖아.”

“뒷말이 나올 수도 있네. 이놈 성질을 보면 위험할 수도 있어.”

“나한테 맡긴다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자네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이 사람아.”

“정 걸리면 자네도 내 부탁 하나 들어주든가.”

도헌의 눈이 깊어졌다.

“거래를 하자?”

“섭섭한 소리를 잘도 하네. 자네 부담 덜어 주려고 하는 말인데.”

“…….”

“크핫! 역시 자네는 놀리는 맛이 있어.”

소공이 기둥에 등을 기댔다.

“우리 쪽에서도 처리하기 곤란한 죄수 하나가 있거든. 죄수라기보다는 뭐…… 애물단지 비슷한 거지만.”

“……?”

“그 친구를 자네가 처리해 줘. 자네 말마따나 대원으로 받아 키우든 죽이든 알아서 해.”

“대체 누구길래……?”

“보름 전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생포해 온 녀석이야. 이름은 모르겠어.”

“보름 전이라면…… 이가상단(李家商團)?”

“맞아.”

“왜 형당으로 보내지 않고?”

“우리 임무 중 하나를 가로챈 놈이거든.”

“뭐?”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이가주 가슴에 칼을 박아 넣고 있었어.”

“……?!”

“형당으로 옮기면 어떻게 되겠어? 사건 경위 설명하랴, 추가로 조사하라는 곳 뒤지랴, 귀찮을 일 한가득일 거 아냐?”

도헌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공이 씨익 웃었다.

“어떻게 할래? 물물교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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