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화. 운명의 교차 (3)
다음 날 저녁.
꾸루룩!
이름 모를 새소리가 음산한 밤을 치장했다.
평소와 달리 집무실이 아닌 연무장 중앙에 서서, 도헌은 어제오늘을 돌아보았다.
‘과연 이것이 옳은가.’
도헌의 시선이 연무장 바닥, 말라붙은 핏자국에 고정되었다.
어제 소공에게 유이상을 딸려 보낸 후, 명한이 저질렀던 일이 사실이었는지를 추궁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몇몇 후배들이 고참인 명한의 범죄 행위를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명한은 일 조(一組) 조원이었고 그 때문에 일 조 전체에게 철퇴를 가했다. 그중 명한의 범죄를 눈감아 준 조원들에게는 따로 매질을 가했다.
그것은 광마대 내부 규율로 봐도, 신교 전투 부대 전체의 규율로 봐도 합당한 처사였다. 어찌 되었건 부대원들의 생사여탈은 부대장이 쥐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과연 녀석들을 형법당에 보내지 않은 게 옳은 일인가.’
부대 내에서의 일 차 처벌은 끝났다.
다음 차례는 형법당이다.
실제로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소속 대원이 큰 죄를 지었을 경우 형법당으로 이송시켜야만 한다. 부대 내 처벌과는 별개였다.
적어도 지금의 법은 그러했다. 하지만 도헌은 아직까지도 대원들을 형법당으로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보내지 않으면 이 사건이 잊힌다.’
적어도 도헌은 선배의 죄를 외면한 대원들을 광마대에 남겨 놓을 생각이 없었다.
교화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명한이 후배들에게 겁을 줬든 구워삶았든 어쨌든, 녀석들은 저질러선 안 될 죄를 저질러 버렸다.
사정이 있다 한들, 용서를 받을 수는 없는 죄였다.
‘하지만.’
용서받을 수 없는 죄.
그런 죄를 지을 경우 결과는 둘 중 하나다. 평생 뇌옥살이를 하거나 참형당하거나.
‘…….’
도헌은 한숨을 쉬었다.
‘전부 내 잘못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대원들에게 제대로 신경을 못 쓴 거야. 결국은 내 책임인 것이다.’
소공은 말했다. 애초에 그럴 놈이었던 거라고. 책임감을 느낄지언정 부대 관리가 잘못된 건 아니었을 거라고 말했다.
‘뭐가 되었든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도헌은 결심했다.
‘신교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들,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소하다고 넘겨 버리는 경범 하나하나가 모여 지금의 신교가 된 것이야. 나까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득 소공의 짓궂은 웃음이 떠올랐다.
도헌이 눈을 감았다.
‘다시 데려와야겠지.’
이대로 형법당에 가서 이 일을 알리면 소공에게까지 피해가 간다.
그렇다고 애매한 증언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유이상을 다시 데리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유이상이라…….’
도헌이 눈을 감았다.
‘미안하다. 광마대주로서 너에게 사과해야 함이 마땅하나, 또한 나는 신교의 마인이다. 모든 사실을 알리게 되면 너 또한 형법당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이 찝찝했다.
어지간히 복잡한 상황에서도 한 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없는 그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결정을 내렸는데도 마음에 거리낌이 생긴다.
도헌이 심호흡을 했다.
‘움직이자.’
그때였다.
“뭐 그렇게 생각이 많아?”
도헌은 내심 깜짝 놀랐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어느새 소공이 연무장 아래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도헌의 눈이 흔들렸다.
“언제?”
“진즉에 왔지. 기척을 냈는데도 못 알아채더구만.”
“그랬나.”
정말 생각이 많기는 많았던 모양이었다.
도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네에게는 미안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나?”
이럴 때의 소공을 보면, 정말 귀신처럼 날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을 것 같네.”
“……흐음.”
가만히 도헌을 올려다보던 소공이 연무장으로 올라섰다.
도헌은 말없이 소공을 바라보았다.
소공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
“지금의 신교는 잘못되었다네.”
“그건 뭐 모르는 놈 없지.”
“신교가 이 지경이 된 건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니야. 아는 사람이랍시고 죄를 경감하고 뇌물이 오갔지. 심지어 지금, 권력자들은 죄 없는 마인이라도 기분에 거슬리면 목을 베어 버리는 지경까지 왔네.”
“…….”
“조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니 법도와 체계가 무너지고, 권력을 쥔 자와 쥐지 못한 자의 양극화는 심해져만 가고 있어. 과거, 본교가 강자존의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물 흐르듯 돌아갔던 것은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분명한 자각과 절대적인 충성심 덕분이었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없다?”
“그렇다네.”
“그게 자네가 마음을 바꾼 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
“사소한 죄랍시고 법도를 무시한 사람들이 하나, 둘 쌓이고 쌓여 지금의 신교가 되었네.”
“아하?”
소공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러니 자네마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네.”
도헌이 허리를 폈다.
“나는 신교의 마인이야. 신교는 내게 부모이자 고향일세. 제아무리 못난 부모라 한들 외면하고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지.”
“…….”
“지금이라도 잘못을 반성하고 규범을 지켜야 할 것 같네.”
물끄러미 도헌을 보던 소공이 툭 던지듯 물었다.
“맞는 말도 하고, 틀린 말도 하는군.”
“……?”
“자네의 부모는 신교라고 했나?”
“그렇다네.”
“그래, 신교지. 이 신교가 자네의 부모지. 하지만 교의 우두머리가 자네 부모는 아니지. 부모인 척하는 보모일 뿐.”
“……?”
“심지어 보모 노릇도 안 하는 보모야. 오히려 자식들을 핍박하고 억압하는 망종이 아니던가?”
도헌의 눈이 또다시 흔들렸다.
“더하여, 신교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자네 말마따나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니야. 그러나 신교가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근본적인 원흉은 따로 있지.”
“……!”
“그게 바로 당대 교주다.”
“소공!”
도헌의 목소리는 근엄했다. 동시에 숨길 수 없는 당황이 깃들어 있었다.
“그 어인 망발인가! 교주님은……!”
“목소리 낮춰. 남이 들을라.”
도헌이 입술을 깨물었다.
소공이 미소를 지었다. 의미를 알기 힘든 미소였다.
“확실한 거 하나 알려 줄까?”
“……?”
“신교를 그리도 은애했다면 자네는 이미 죽었어야 했네.”
“……무슨 말인가?”
“정말 신교를 위했다면 당당히 교주전으로 가서 이따위 짓은 그만하라고 외쳤어야지. 당장 교내를 바로잡으라고 간언했어야지.”
“……!!”
“자네가 그런 일로 목숨 아낄 성격은 아니야. 하지만 자네의 시야는 몹시 좁군. 결국 자네도 자신이 감당할 만한 영역 안에서만 군자 노릇을 했을 뿐. 아니 그런가?”
통렬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반박하자면 할 말은 많았다. 하지만 도헌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소공의 말은 모든 논리와 이성을 무시하고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히고 있었다.
“남들 다 저지르는 위법이니 자네도 저지르라는 게 아니야.”
“…….”
“좌우 살피는 건 그만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고.”
“……하늘?”
물끄러미 도헌을 보던 소공이 이내 히죽 웃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내가 데려온 녀석이 자네보다 훨씬 나아. 목석같지만, 적어도 살아 있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했거든.”
“……?”
“대문 앞에 고이 모셔 놨네. 그 녀석과 대화하다 보면, 자네도 깨닫는 게 있겠지.”
소공이 몸을 돌렸다.
“마음을 고쳐먹었으면 내일이라도 건너와. 술 한잔 사지. 원칙대로 가겠다? 그래도 와. 친구 마지막 가는 길, 술 한 잔은 줘야지.”
그 말을 끝으로 소공은 귀신처럼 사라졌다.
도헌의 얼굴에 혼란이 깃들었다.
소공이 남긴 말이 가슴을 뱅뱅 도는 느낌이었다. 어제오늘의 자신이 아닌, 그보다 훨씬 더 먼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연무장에서 내려온 도헌이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 안쪽, 작은 나무 옆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저 녀석이군.’
그의 앞까지 걸어간 도헌이 걸음을 멈추었다.
“…….”
담벼락 그림자 때문일까, 아니면 달을 가리는 구름 때문일까.
절정의 내공을 갖고도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도헌은 소공의 말을 떠올렸다.
- 그 녀석과 대화하다 보면, 자네도 깨닫는 게 있겠지.
가만히 눈앞의 청년을 주시하던 도헌이 입을 열었다.
“자네인가?”
“…….”
“흑마대주가 데리고 온 골칫덩이가 자네냐고 물었네.”
청년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헌의 눈이 깊어졌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가상단의 가주를 죽였다고?”
이번에도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말도 없었다.
“왜지? 그자에게 원한이 있었나?”
청년은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도헌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왜 죽였느냐고 묻지 않나! 대답하게!”
“……죽기를 바랐으니까.”
청년의 목소리는 묵직했다.
무겁고 서늘했으며 어딘지 모르게 끈적끈적했다.
도헌의 얼굴이 굳었다.
“이가주가 죽기를 바랐다고?”
“그렇소.”
“그걸 자네가 어찌 알았지?”
“말했으니까.”
죽고 싶다고 말을 했다고?
“그래서 죽인 건가? 죽고 싶다고 하길래 죽였다는 것이야?”
“그렇소.”
“자네가 뭔데? 자네가 누구기에 이가주가 그런 말을 했지?”
“양자(養子)요.”
“……양자?!”
도헌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 자식이 부모를 죽였다고?!”
“그렇소.”
양자라고는 하나 부모 자식의 연을 맺었다면 이는 천륜을 어긴 일이었다.
도헌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양자라도 아들은 아들인데, 아비 된 자가 죽고 싶다 말했다고 직접 죽인 게 말이 되는가?!”
청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는 듯한 기색이었다. 은은하게 보이는 눈빛에 미약한 의구심이 깃들어 있었다.
도헌이 다시금 외쳤다.
“어찌 아들이 아비를 죽인단 말이야!”
“은인이니까.”
“뭐, 뭐라고?”
“아버지이자 은인이었소. 그래서 부탁을 들어주었소.”
“……?!”
“…….”
“아버지이자 은인이기 때문에…… 죽였다?”
“나 말고도 은혜 입은 자는 많았소. 그러나 누구도 나서지 않았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찌!!”
“…….”
“자네, 죄책감도 없나?”
“모르겠소.”
“모른다니?”
“죄책감이 뭔지 모르오, 나는.”
도헌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가 뭐라 입을 열려 할 때.
“그리고 내 죄책감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오.”
처음으로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말을 한다.
“당신께서 고통스러워하셨소. 내 능력으로는 고통을 벗어나게 할 방법이 없었소.”
“…….”
“진심으로 목숨을 끊고 싶어 하셨소. 나는 그분의 부탁을 들어드림으로 인해, 약간의 은혜를 갚았소.”
기괴하기 그지없는 논리다.
황당함에 멍하니 청년을 바라보던 도헌은, 순간 소공의 말을 떠올렸다.
- 그래, 신교지. 이 신교가 자네의 부모지. 하지만 교의 우두머리가 자네 부모는 아니지.
- 오히려 자식들을 핍박하고 억압하는 망종이 아니던가?
부모. 고향.
도헌의 머리에 벼락이 쳤다.
그렇다. 도헌에게 있어 부모는 교주가 아닌 신교 그 자체였다.
그리고 신교는 지금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폭정 속에 신음하고 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신교는 부모이되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고.
하늘.
하늘 또한 곧 부모요, 고향이다.
그렇기에 하늘은 신교이며, 하늘을 보라는 것은 신교 그 자체를 보라는 뜻이었다.
소공의 말은 그러했다.
어설프게 주변만 보지 말고, 신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라는 뜻이었다.
도헌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뚝. 뚝.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턱을 지나 땅으로 떨어졌다.
‘헛살았구나.’
도헌이 눈을 감았다.
‘올바르게 살았을 뿐, 마인답게 살지는 못했다.’
떨어지는 눈물이 바람을 맞아 앞섶을 적셨다.
통한의 눈물이다.
그 누구보다도 신교를 위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근본에는 보신(保身)이 있었을 뿐인 한 마인이 좌절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후우웅.
불어오는 바람은 묘하게 건조했다.
흩어진 구름이 움직이고, 달빛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매로 눈물을 훔친 도헌이 청년을 바라보았다.
구름에서 벗어난 달빛이 청년의 얼굴을 좌측부터 서서히, 마치 소개하듯 밝혔다.
그리고 환한 달빛 아래 청년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을 때.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청년이 답했다.
“성은 이(李), 이름은 천상(天像)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