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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4화 (654/774)

외전 4화. 운명의 교차 (4)

다음 날 밤.

“어이쿠, 도 대주 오셨는가?”

소공의 집무실은 꽤나 황량했다. 도헌의 집무실처럼 문서가 많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예술품으로 채우지도 않았다.

도헌이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탁자에는 뜨끈한 김이 나는 고기 요리와 술 몇 병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람이라도 심었나?”

“응? 무슨 말이야?”

“본대에 사람이라도 심었느냐 물었네. 어떻게 딱 알아서 술판까지 준비해 뒀나 싶어서.”

소공이 피식 웃었다.

“직접 찾아오겠다며? 술 한잔 산다고 했잖아.”

“이 시간에 찾아올 줄은 어떻게 알고?”

“그건 자네 스스로에게 물어야지. 언제나 업무 시간만큼은 칼 같이 지키는 양반이 별 시답잖은 소리를.”

도헌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소공이 손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앉게.”

“그러지.”

마주 앉은 두 사람.

소공이 도헌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하네.”

“음?”

“도전적으로 살아 보겠다는 의지가 두 눈에 철철 흘러넘쳐서 말이야.”

도헌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네는 정말 눈치가 빠르구먼.”

“내 눈치가 빠른 게 아니라 자네가 알기 쉬운 거야. 본교에서 자네만큼 솔직한 사람 찾아보기 힘들어.”

“내가 그렇게나 표정 관리를 못 했나.”

“잘하지. 안 친한 사람 한정으로.”

물끄러미 소공을 바라보던 도헌이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내가 자네를 편하게 생각하는 건가.”

“난 그렇다고 믿어.”

“순진하군.”

“어울리지 않게 떠보지 마.”

결국 도헌 역시 피식 웃고 말았다.

소공이 잔을 내밀었다.

“일단 한 잔 들이붓지.”

찡!

자기로 만든 잔이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시원하게 잔을 비운 둘의 얼굴은 그런대로 편안해 보였다.

소공이 고기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표정 관리고 뭐고 힘들긴 할 거야. 특히 자네처럼 강직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도헌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하나 물어도 되겠나.”

“열 개, 스무 개 물어도 돼. 아, 스물한 개는 안 돼.”

“…….”

“내 농담이 항상 먹히는 건 아니야.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구.”

가만히 소공을 보는 도헌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자네는 누군가?”

소공이 잔을 따르며 답했다.

“흑마대주 소공. 알면서 뭘 물어?”

“자네가 내게 한 말.”

“…….”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네. 자네에게는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 하지만…….”

“…….”

“섣불리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지.”

소공은 말없이 잔을 비웠다.

도헌은 소공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더 묻지도 않았다. 그저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후, 술이 참 독하군. 벌써 취기가 올라오네.”

의자에 편히 몸을 묻은 소공이 웃으며 도헌을 바라보았다.

“기다렸어.”

“무엇을?”

“자네가 무너지기를.”

“……무너지다니?”

“내가 한 말 기억하나? 자네의 시야는 몹시 좁다고. 자네는 자네가 감당할 만한 영역 안에서만 군자 노릇을 하는 사람이라고.”

“그래, 기억하네.”

“진심이었어.”

“아네.”

“진심이지만, 심한 말이기도 했네. 당대 신교에 자네처럼 지킬 것 다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런 사람을 너무 몰아붙인 말이라 계속 마음에 남았더랬지.”

도헌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대답을 바란 게 아닐세.”

“그런 자네가 유이상, 그 녀석을 형법당에 보내지 않았더군.”

“…….”

“자네 짓이 아니란 것쯤은 알아. 대원들이 그랬거나, 아니면 여우 같은 자네 부관이 선조치해 놓은 일이겠지.”

“…….”

“뭐가 되었든 자네는 그 조치를 수용했어. 이전의 자네였다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지.”

도헌의 눈이 깊어졌다.

소공이 눈을 감았다.

“자네 말고도 강직한 사람은 있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나와 친분을 나눈 사람 중에서는 자네가 제일이었어. 그래서 자네가 무너지길 바랐네.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스스로의 원칙에 회의를 느끼길 바랐네.”

“……!”

“스스로 깨닫지 못한 자에게 함께하자 말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 없지. 위험하기도 하고.”

도헌의 눈이 빛났다.

“함께하자…… 그럼 자네가 원하는 것이…….”

“내가 누구냐고 물었나?”

“…….”

“나는 그냥 나야. 다만, 지금의 흑마대주로 남기는 싫네.”

“무슨 말인가?”

소공이 눈을 떴다.

도헌은 내심 깜짝 놀랐다. 자신을 보는 소공의 눈빛은 평소와 달리 강력한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새 시대의 흑마대주가 되고 싶네.”

“……!”

“아니, 대주가 아니라 일개 대원이라도 상관없어. 아무 직책 없는 일꾼이 되어도 좋아.”

“소 대주.”

“지금의 교주가 다스리는 세상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네.”

“…….”

“나는 조백천은 물론 그에게 물든 모두가 사라져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

도헌의 눈가가 희미하게 떨렸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소공의 발언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했다. 누가 들으면 당장 반역죄로 끌려가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발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응?”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품게 되었느냔 말일세.”

소공이 빙그레 웃었다.

“꽤 됐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군.”

“거짓말이군.”

“……티 나나?”

“그래.”

“하하, 그런 생각을 언제, 왜 품었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잖나.”

“그도 그렇지.”

도헌이 자신의 잔을 채우려 술병을 들었다.

소공이 냅다 상체를 기울이더니 술병을 빼앗았다.

“내가 따라 주지.”

서서히 차오르는 술을 보며, 도헌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도헌의 잔을 채운 소공이 자신의 잔을 채웠다.

“때를 기다려야지.”

“무슨 때?”

“모르겠군. 하지만 때가 오면 누구라도 알 거야. 지금이 그 순간이라는 걸.”

“…….”

“그 한 번의 순간을 위해 참고 또 참아 낼 뿐이야.”

“자네 혼자는 아니겠지.”

소공이 웃으며 말했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이 혼자서 이 큰일을 하려 했겠나.”

“누구와 함께하고 있나?”

“그건 차차 알려 줌세.”

“왜? 나를 믿지 못해서?”

“자네를 믿지 못했다면 애초에 이런 자리도 없었겠지.”

“…….”

“그쪽에 아직 자네와 함께할 거라는 말도 하지 않았어.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지 않나. 그쪽과 접촉한 연후에 천천히, 신중하게 만남을 주선하겠네.”

지금의 신교가 잘못되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신교를 뒤엎자는 발상을 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당장 도헌만 해도 감히 그런 생각은 못 했으니까.

즉, 이 일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가면 신교 전체가 뒤집힐 것이다.

본디 반정(反正)이란 그런 것이다.

“여하간 고마워.”

“무엇이 말인가.”

소공이 잔을 들었다.

“자네 능력과는 별개로, 꼭 함께하고 싶었지.”

“왜지?”

“친구를 죽이고 싶지 않으니까.”

“…….”

“때가 오면 자네 성격에 우리와 대치하려 들지 않았겠나?”

“……그렇군.”

“자네 손에 내가 죽든, 내 손에 자네가 죽든 그런 비극은 마음에 들지 않아.”

도헌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모르겠네. 아직도 어지러워. 결심은 했지만…… 이 결심이라는 것도…….”

“알아.”

“…….”

“알지.”

가만히 소공을 보던 도헌이 피식 웃으며 잔을 들었다.

“선배님께 괜한 푸념만 늘어놨구먼.”

잔을 부딪친 소공이 껄껄껄 웃었다.

“앞으로 사석에서는 선배님이라고 꼬박꼬박 불러.”

“웃기지 말게나.”

두 사람이 홍소를 터뜨리며 잔을 비웠다.

뭐가 되었든, 도헌은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 내린 결심에 흔들림은 없지만, 마음 한구석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술자리를 갖기를 잘했다. 도헌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도헌이 잔을 들었다.

소공이 냉큼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녀석은 어떻게 했나?”

“누구? 아, 그 유이상이라는 녀석?”

“그래.”

소공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치료 중일세. 기력이 다 떨어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야.”

“순순히 치료를 받던가?”

“그러게? 차라리 죽이라고 발악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용케 치료는 군말 없이 받고 있어. 죽기 싫어서 참는 것 같지는 않고, 뭔가 모종의 결심을 한 모양이야.”

“……음.”

고개를 끄덕인 도헌이 천천히 소공의 잔을 채워 주었다.

소공이 툭 던지듯 물었다.

“그 녀석은 어때?”

“음?”

“이가상단의 골칫덩이.”

도헌의 눈빛이 바뀌었다.

“독특한 녀석이더군.”

“그렇지? 정말 묘한 놈이더라고. 그 악명 높은 천마신교에 잡혀 왔으면 누구라도 벌벌 떠는 게 정상인데, 두려워하긴커녕 신기해하는 기색마저 보이던데?”

“신기해하긴 하던가?”

소공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야. 참 무감한 놈이지?”

도헌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 말마따나 무뚝뚝한 게 아니라 무감하더군.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지가 않았네.”

“그랬겠지.”

“……응?”

도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겠지라니? 녀석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나?”

“그럴 리가 있나. 이가상단에서 처음 본 놈인데.”

“한데 어째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가.”

소공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중단전(中丹田)이 이상했어.”

“중단전?”

하단전(下丹田)이 강건하면 신체가 튼튼하고 상단전(上丹田)이 트이면 영력이 발달하여 귀신을 보거나 초감각을 얻기도 하며, 잘못 꼬일 경우 미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중단전은 무엇인가.

중단전은 오욕칠정의 근본이다. 중단전이 바로잡히면 오장육부가 보호되고 감정을 다스리는 데에 용이하다. 도가(道家)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꼭 중단전의 영향만 받질 않거든.”

“그렇지. 하단전에 문제가 생겨 상단전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상단전의 문제로 인해 중단전이 뭉개지기도 하는 법이지.”

“그래. 그래서 삼단전은 유기적이지. 한데…….”

소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놈의 중단전은 이상하리만치 텅 비어 있어.”

“비어 있다니?”

“내공을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은데도 하단전은 열려 있고, 놀랍게도 상단전까지 필요 이상으로 발달해 있지. 한데 중단전은 텅 비었어.”

“……?!”

도헌의 얼굴에 불신의 기색이 어렸다.

“그게 말이 되나?”

“그러니까 말이야. 어떻게 되어 먹은 몸뚱이인지 전혀 모르겠더라니까.”

“…….”

도헌이 잔을 매만졌다.

“중단전이 비었는데 상단전이 깨어 있다……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알고 있는데.”

무공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단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할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단전이 열려 있다고 보기도 하고, 후천적 노력으로 만들어야 열리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소공이 말하는 ‘중단전이 비었다’는 무학적 측면에서 보는 말이었다.

그러나 무학은 곧 생(生)과 닿아 있는 법. 중단전이 비었다는 뜻은 곧 인간으로서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이 부재(不在)하다는 뜻이었다.

“내기(內氣)로 확인한 건가?”

“당연하지.”

“믿을 수가 없구먼.”

소공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가 되었든 범상한 놈은 아니야. 자네가 알아서 잘 처리해 봐.”

“그렇…….”

순간 말을 멈춘 도헌이 소공을 바라보았다.

소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알아서 처리하라는 건, 제자로라도 키워 보라는 뜻인가?”

“우리 같은 부대장들에게 제자는 무슨. 그럴 시간도 없잖나.”

“…….”

“쓸모가 있을 것 같으면 한번 키워 보라는 거야. 귀찮으면 어디 내다 버려도 돼.”

“……흐음.”

“다만.”

소공이 턱을 쓰다듬었다.

상당히 진지한 얼굴이었다. 확실히 오늘 소공은 여러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냥 내치기에는 뭔가 아까운 녀석이야.”

“감정을 못 느끼는 괴물에게 아깝다니.”

“사람인데 감정을 못 느낄 리가 있나. 그저 느끼는 법을 모르는 거겠지. 중단전이 비어 있다고 했지, 없다고는 안 했어.”

“…….”

“심지어 녀석은 양부의 부탁을 들어줌으로써 은혜의 일부를 갚았다고 했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상식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적어도 녀석은 은원(恩怨)의 개념만큼은 똑바로 알고 있잖은가?”

“…….”

“죄책감도, 동정도 느끼지 못해. 그래도 원칙은 있어.”

소공이 미소를 지었다.

“잘 키워 보면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운 부하가 될지도 모르잖나?”

도헌이 피식 웃었다.

“그 나이에 무공도 배운 적 없는 녀석을 키우라고? 천재라도 지금 시작하면 늦어.”

“하단전과 상단전이 열려 있는 범재라면 또 다르겠지?”

“……흐음.”

“알아서 처리해. 하지만 내 생각에는 좀 아깝군. 그런 독특한 녀석, 어디서 또 보겠나?”

“그럼 자네가 키워 보지 왜?”

소공이 진저리를 쳤다.

“나는 말수 없는 놈 안 좋아해.”

“참 자네다운 이유로군. 됐으니까 술이나 마시세.”

“크핫! 그럴까?”

두 사람이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술잔을 비우며, 도헌은 생각했다.

‘키워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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