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 외전-5화 (655/774)

외전 5화. 운명의 교차 (5)

“후우.”

술자리는 새벽, 축시(丑時) 초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리 오래 마신 것도 아니건만, 묘하게 취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대주님을 뵙습니다.”

광마각(光魔閣)의 대문을 지키는 대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오늘따라 대원들에게서 유달리 절도가 느껴졌다. 부대가 한 번 뒤집힌 이후 대원들 사이에도 긴장감이 도는 것이다.

도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자는군.’

취기는 돌아도 감각은 크게 무뎌지지 않았다.

곳곳에서 대원들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근무를 서는 대원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잠이 들었다.

가만히 서서 부대 건물들을 둘러보던 도헌은 자신의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

재차 걸음을 멈춘 도헌은 문득 소공의 말을 떠올렸다.

‘독특한 녀석이라…….’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도헌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안에 있는가.”

“들어오시오.”

끼익.

문이 열리자 작은 침상에 앉은 청년이 보였다.

도헌이 물었다.

“아직 자지 않았군.”

청년은 답하지 않았다.

사람이 왔는데도 굳이 일어서지 않는다. 앉은 자세 그대로 도헌을 보는 그의 눈은 기이하리만치 깊었다.

도헌이 양손을 들어 보였다.

한 손에는 작은 보따리가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꽤 큼직한 술병이 있었다.

“술은 할 줄 아나?”

“그렇소.”

“한잔하지.”

드르륵.

탁자를 끌고 온 도헌이 그 위에 보따리와 술병을 놓았다.

보따리를 풀자 육포 몇 장과 각종 씹을 거리, 빈 잔 두 개가 나왔다.

청년의 잔에 술을 채우며, 도헌이 물었다.

“이천상이라고 했나?”

“그렇소.”

“양부께서 지어 주신 이름인가.”

“그렇소.”

“하늘의 형상이라…… 양부께서는 자네를 범상치 않은 사람으로 본 모양이야.”

청년, 이천상은 또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의 잔까지 채운 도헌이 잔을 들었다.

“들지.”

가만히 도헌을 보던 이천상이 잔을 들어 올렸다.

도헌은 시원하게 잔을 비웠다. 그러나 이천상은 마시지 않고 잔을 도로 놓았다.

도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술 마실 줄 안다면서?”

“마실 줄 안다고 했지, 지금 마신다고는 하지 않았소.”

이놈 봐라?

다른 걸 떠나 확실히 범용한 놈은 아니었다.

무림의 공포로 이름을 날린 천마신교로 끌려왔다. 당연히 겁을 집어먹어야 정상이었다.

한데도 이놈은 겁은커녕 신기해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신교 정예 전투 부대의 수장이 주는 술을 마다하기까지 하니, 정말 어지간히 무감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헌이 툭 던지듯 말했다.

“내가 아닌 다른 부대장이었다면 지금 그 행동만으로 험한 꼴을 보았을 걸세.”

“아니잖소.”

“음?”

“당신은 그런 부대장이 아니잖소.”

“……!”

왠지 모르게 가슴을 푹 찌르는 듯한 말이다.

내 앞에 있는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 의미 없는 발언이다. 이천상의 말은 그러한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도헌에게는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물끄러미 이천상을 보던 도헌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이가상단은 본교와 거래하면서도 저 멀리 북쪽, 정파 놈들과 접선하고 있었네.”

“…….”

“정확히 무슨 정보가 오갔는지는 모른다네. 소 대주라면 알 수도 있겠지만.”

“…….”

“다만, 행위 자체가 문제지. 흑마대가 출동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야.”

이천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재차 잔을 비운 도헌이 말을 이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본교는 자네에게 원수라고 할 수 있네. 양부를 자네 손으로 죽였지만, 자네가 아니었다면 흑마대가 죽였겠지. 이가상단 중역 대부분이 죽고 핵심 인물 몇몇이 잡혀 들어왔으니 사실상 자네 양부의 가문은 끝장난 것이나 마찬가지일세.”

“…….”

“화가 나지 않나?”

“나지 않소.”

“왜지? 자네에게 있어 우리는 은인의 집안을 풍비박산 낸 악마 그 자체일 텐데.”

이천상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양부를 죽인 내가 더 악마요.”

“……?!”

“당신들을 원망할 이유가 없소.”

도헌의 눈이 깊어졌다.

“죄책감 따위 없다더니 갑자기?”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죄책감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한데 스스로를 악마라니?”

이천상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마저도 지극히 희미해서 눈썰미가 없는 사람은 눈치도 못 챌 정도였다.

“내가 악마인 것과 죄책감을 모르는 게 무슨 상관관계가 있소?”

“……!”

“양부는 내가 죽였소. 그 사실에 변함은 없소.”

“……결과가 달리 나왔다면 우리를 원망했겠군?”

“만약이란 건 의미가 없소.”

도헌의 표정이 묘해졌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녀석이다.’

문득 궁금했다.

소공은 이 녀석의 어떤 부분이 흥미로웠을까? 단순히 무감각한 녀석이라서? 그도 아니면 하단전과 상단전이 열려 있어서?

‘그리고 나는.’

나는 왜 이 새벽에 이 녀석을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까.

이 녀석과의 대화로 내 혼란의 정체와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니면 단순히 신기한 놈이라서?

가만히 이천상을 보던 도헌이 잔을 내려놓았다.

“궁금한 게 있네.”

“…….”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무엇을 말이오?”

“이가상단의 주인을 살해한 자네를 흑마대주가 데려왔네. 발광을 한 건지 묵묵히 잡혀 왔는지는 모르겠어. 다만, 그 과정에 강제성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지.”

“…….”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

“억지로 잡혀 왔는데 너무 담담해서 그러네.”

“갈 곳이 없소.”

“음?”

이천상의 목소리는 이전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도헌은 그의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다고 생각했다.

“달리 갈 곳이 없소.”

“이가상단이 무너졌으니까?”

“양부께서 돌아가셨으니까.”

“……정말 희한한 녀석이군. 그럼 자네는, 자네가 돌아갈 곳을 잃을 걸 알면서도 양부를 죽인 겐가?”

“그렇소.”

잠시의 침묵이 돌았다.

도헌이 다시 물었다.

“돌아갈 곳이 없어서 이곳에 얌전히 있었던 건가?”

“궁리하고 있었소.”

“궁리? 어떤?”

“이곳에서 어떻게 나갈 수 있을지를.”

상식적이지 않은 발언들의 연속이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것도 재주였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서 이곳에서는 나가고 싶다?”

“있을 이유도 없잖소.”

“…….”

또 이렇게 들어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도헌은 인정하고야 말았다. 자신이 이 무감한 청년의 성격과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었음을.

“만약 나간다면 무엇을 하고 살 생각인가?”

“거기까지 생각해 보진 않았소.”

“그럼 지금 해 보게.”

여전히 무표정한 이천상의 얼굴.

그러나 도헌은 그의 얼굴에서 미묘한 피로감을 엿보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묘를 돌볼 거요.”

“묘? 양부의?”

“그렇소.”

“……내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할 줄 몰랐네만, 그래도 묻겠네. 자네가 죽였으면서 살해한 사람의 묘를 만들어 돌보겠다고?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은혜를 다 갚지 못했소.”

“…….”

“부모가 죽으면 응당 묘를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고 들었소.”

“그걸로 은혜를 갚겠다?”

“그걸로 갚아진다면.”

도헌이 눈을 감았다.

소공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 하지만 적어도 녀석은 은원(恩怨)의 개념만큼은 똑바로 알고 있잖은가?

- 죄책감도, 동정도 느끼지 못해. 그래도 원칙은 있어.

원칙.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녀석이지만, 적어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을 품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것을 줏대라고 하고, 원칙이라고 한다.

이천상은 평범한 사람이 갖고 태어나는 걸 상실했지만, 반대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분명한 지표를 갖고 있었다.

‘그랬군.’

도헌은 깨달았다.

‘이렇게 기괴한 녀석이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거늘, 나름의 방식이 있었던 거야.’

물끄러미 이천상의 얼굴을 살피던 도헌이 자신의 잔을 채웠다.

“피곤할 텐데 미안하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네.”

“…….”

“대체 이가상단의 주인이 자네에게 무슨 은혜를 베풀었나?”

“주먹밥.”

“주먹밥?”

“산에서 굶어 죽어 가고 있었소. 그분은 내게 물과 주먹밥을 주었소.”

“……그게 다인가?”

“전부요.”

그게 다이지만, 이천상에게 있어선 전부다.

“데리고 가진 않았나 보군.”

“내가 찾아갔소.”

“찾아갔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

“그렇소.”

분명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고작 주먹밥 한 덩이일 뿐이다.

이 난세에 죽어 가는 사람을 집에 데려와 치료까지 해 주는 호인은 드물다. 주먹밥이라도 준 게 어딘가.

그러나, 그때 받은 한 덩이 은혜를 이렇게까지 크게 생각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 것이다.

도헌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의(義)를 아는 사람이로군.”

“모르겠소.”

“느끼지 못한다면 알고만 있게. 사람들은 자네의 그러한 행동을 의롭다고 말한다네.”

말을 하면서, 비로소 도헌은 깨닫는다.

소공이 이 녀석을 흥미롭다고 생각한 이유, 그리고 자신이 이 녀석에게 자신의 거처까지 내준 이유를.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지만,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세상, 틀림을 개성이니 다름이니 하며 말 같지도 않은 행태를 부리는 이들이 천지에 널렸다.

당장 자신만 해도 틀린 길을 올바르다 생각하며 끝까지 이 방식을 고수하지 않았나.

이천상은 달랐다.

도통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주제에, 가장 사람다운 길을 걷고 있었다. 도리(道理)를 알고 은혜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세상이 손가락질할지언정 묵묵히 자신의 원칙을 지표 삼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모습이, 도헌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있을 이유를 만들어 주면 어찌할 텐가?”

“마지막 질문이라고 했었소.”

“질문이 아니라 자네의, 그리고 나의 인생을 위한 제안이라고 생각하게.”

도헌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자네가 신교에 있을 이유를 내가 만들어 주면, 그때는 본교에 남아 있을 텐가?”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이곳을 나가는 것이오.”

“아니, 자네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야.”

“……?”

“정확히 말하지. 자네가 당장 원하는 건 없을지라도,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히 있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소.”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겠지?”

“…….”

“다른 걸 굳이 틀에 꿰맞출 필요는 없어. 다만, 이 세상을 살아가려거든 자네 역시 ‘그들’의 사회를 배울 필요는 있네.”

“이곳이 그 배움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오?”

“배우다가 죽을지도 모르지. 아니, 죽을 위험이 더 커. 싸워야 할 테니까.”

도헌이 눈을 빛냈다.

“나는 자네가 마음이 들었어. 자네가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 하지만 그 이전에 자네가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되네.”

“…….”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서 말이야.”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도헌이 빙그레 웃었다.

“그것이 자네가 내게 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믿네.”

“내가 당신에게 무슨 은혜를 베풀었소?”

“너무나도 커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라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아직 미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겠지.”

“…….”

“자네는 양부에게 나름의 은혜를 갚았어. 이제 내게도 그 기회를 주게.”

도헌이 이천상의 잔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술잔을 내려보던 이천상이 잔을 들고 천천히 마셨다.

빈 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이천상이 말했다.

“일단 받아 보겠소.”

“좋아.”

도헌이 품에서 얇은 책자 두 권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글은 읽을 줄 아나?”

“그렇소.”

“그렇다면 이것부터 외우게.”

이천상이 책자를 내려다보았다.

마환공(魔煥功).

진마공(眞魔功).

“사회를, 세상을 깊고 빠르게 배우기 위해서는 투쟁만큼 좋은 게 없지.”

도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자정에 다시 오겠네. 그때까지 다 외우도록 하게.”

“이것으로 세상을 배울 수 있소?”

“세상을 배우기 위한 통로가 될 수 있네.”

“…….”

“자네에게 무(武)를 가르쳐 주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