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진흙 속에서의 개화(開花) (1)
반년 후.
“금일 훈련은 이것으로 종료한다.”
황무석의 말에 광마대원 모두가 연무장 바닥에 널브러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신교의 전투부대는 하나같이 군기가 철저하다. 그중 정점을 다투는 광마대원들이 이토록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황무석은 쓰러진 대원들을 탓하지 않았다. 점점 올라가는 훈련 강도, 특히 오늘 훈련은 부관인 자신조차 진이 빠질 정도였다.
“일 조장.”
“헉헉, 예!”
“애들 적당히 괜찮아지면 모두 숙소로 돌려보내라. 사흘 뒤까지 어떤 훈련도 없다.”
일 조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흘이나요?”
“대주님의 명이다.”
“그, 그렇군요.”
연습 때 흘리는 땀 한 방울이 실전에서 쏟을 피 한 바가지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게 광마대의 신조였다.
얼마나 극심한 훈련을 하건 다음 날 예외 없이 훈련에 임한다. 훈련의 농도는 떨어질지언정 어지간해선 쉬는 날이 없다.
하지만 근래 들어 광마대의 훈련 일정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질과 양은 올라갔으되, 극심한 훈련 이후에는 무조건 쉬도록 한다. 마공(魔功)의 강력한 회복력을 알고 있는데도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대원들 입장에서야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동시에 의아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물며 사흘이라니?
“오늘도 고생들 했다.”
조장들이 고개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조장들의 인사를 받은 황무석이 집무실로 향했다.
“대주님. 황 부관입니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창밖을 보는 도헌의 뒷모습이 보였다.
황무석이 고개를 숙였다.
“훈련이 종료되었습니다.”
“고생했네.”
도헌이 몸을 돌렸다.
순간 황무석의 눈이 흔들렸다.
‘달라지셨다.’
잔잔하게 가라앉은 기도. 너무나도 깊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눈빛.
본래 도헌은 마인답지 않게 성품이 온후했다. 그 성품은 살벌한 신교 생활을 하며 용맹하고 뒤끝이 없으며 법도를 중시하고 아랫사람을 잘 돌보는, 이상적인 상관의 형태로 변했다.
하지만 반년 동안 도헌의 기도는 또 달라졌다.
원래도 온후한 성품이 더 부드러워졌다. 그런데도 더더욱 함부로 할 수 없는 기개가 느껴졌다.
‘강해지셨어.’
무언가 목표를 정한 사람은 발전 속도가 빠르다.
아마 도헌에게도 그런 목표가 생긴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곁에서 그를 모신 황무석은 보고 듣지 않아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자네는 괜찮나?”
“물론입니다.”
“그래야지.”
반응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예전 같았으면 ‘쉬엄쉬엄하게.’ ‘자네 덕분에 오늘도 편하군.’ 등의 말이 나왔을 것이다.
다시 몸을 돌려 창밖을 보던 도헌이 말했다.
“벌써 신시(申時) 말이 되었군.”
“예.”
“씻고 다시 오게.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네.”
“예?”
황무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대장 회의에 저도 갑니까?”
오늘 저녁은 신교육대 수장들의 친목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말이 회의지 사실상 술자리에 가까웠다. 상부에서 반드시 하라고 정한 것은 아니지만,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육대주들만의 행사이기도 했다.
도헌이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부대장 회의는 없네.”
“예?! 회, 회의가 없다니요?”
“상부에서 금지령을 내렸어. 부대장들끼리 모여서 쓸데없는 작당 모의 하지 말고 그 시간에 애들 훈련이나 시키라더군.”
황무석의 얼굴에 생생한 분노가 떠올랐다.
“작당 모의라니요? 그것이 어찌 작당 모의가 될 수 있습니까?! 대체 상부는 제정신……!”
“황 부관.”
“…….”
“신중하게. 화가 난다고 아무 말이나 뱉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갈 수도 있어.”
황무석이 이를 악물었다.
“제가 실언을 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도헌이 피식 웃었다.
“나는 오히려 좋던걸. 분기별로 한 번씩 모이는 술자리에 나가는 것도 영 피곤한 일이었어. 이유랍시고 지껄인 말에 성질은 나지만, 결과적으로 나한테는 잘된 일이야.”
“대주님. 실례되는 말씀입니다만, 부대장 회의는 영광스러운 신교육대의 수장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마저 없애 버린다면, 본교의 어떤 마인이 육대를 동경하겠습니까.”
“동경이 그런 친목 때문에 나오나?”
“예?”
“그 자리,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야. 설령 마인들의 동경을 받지 못하면 또 어떤가? 우리가 그렇게나 특별한가?”
“대, 대주님!”
“우리는 그저 행동으로 보여 주면 돼. 결국은 그것이 진리인 게야.”
도헌이 고개를 저었다.
“상부의 높으신 분들의 행태가 싫다면 우리는 다르게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육대주들의 회의, 그 또한 단순 친목 행위라면 굳이 주기까지 정해서 모일 필요는 없어.”
황무석은 당혹스러웠다.
‘어찌…….’
광마대를 다스리는 뿌듯함, 광마대주로서의 자존심.
대주에게는 여전히 그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주는 더 이상 광마대만을 보고 있지 않았다. 주변 정세에 휩쓸리면서도 언제나 광마대의 온존을 꾀하던 대주가, 이제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광마대에게 좋은 일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황무석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주제넘은 발언을 했습니다.”
“아닐세. 사람의 생각은 전부 다른 법이야. 틀린 게 있으면 고치고, 다른 게 있으면 맞추면 그뿐이지. 안 그런가?”
“송구합니다.”
도헌이 미소를 지었다.
“됐으니 어서 씻고 오게. 식사는 볼일 보고 난 연후에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 * *
“여어.”
소공이 손을 들었다.
“우리 딱딱하신 도 대주도 오셨나?”
황무석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굳혔다.
도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 대주.”
“상부에서 곧 명령 하나 떨어진다며? 이래저래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텐데 용케 시간이 났나?”
도헌이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 할 일만 잘하면 시간은 어떻게든 낼 수 있는 법이지.”
황무석의 눈이 커졌다.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진다고?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항이었다.
“와하하! 역시 근엄, 진지한 도 대주는 나 같은 놈팡이와 차원이 달라.”
“칭찬 고맙군.”
소공이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몸을 꼬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반응하면 내가 상처받는데?”
“웃기지 말게.”
“킥킥.”
얼굴을 든 소공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장난기가 넘쳤다.
“여어, 황 부관도 오셨구만? 그간 잘 지냈어?”
황무석이 고개를 숙였다.
“흑마대주님을 뵙습니다.”
“못마땅한 목소리는 여전하네.”
황무석이 움찔했다.
도헌이 손을 휘저었다.
“남의 소중한 부하 괴롭히지 말라니까.”
“이게 왜 괴롭히는 거야?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소공은 연신 낄낄거렸다.
도헌이 물었다.
“언제 시작이라던가?”
“곧 시작한다더군.”
“그래…….”
도헌의 눈이 깊어졌다.
소공이 손을 흔들었다.
“집중해서 볼 녀석이 있는 모양이군. 나는 떨어져서 구경할 테니까 잘 관찰해 보게.”
그 말을 끝으로 소공이 자리를 떴다.
황무석이 조심스레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대주님.”
“말씀하시게.”
“여기는 어찌하여……?”
“왜? 못 올 데라도 왔는가?”
“그, 그건 아닙니다만.”
황무석이 저 아래 커다란 연무장을 내려다보았다.
말이 연무장이지 관리 안 된 흙밭에 가까웠다. 너비는 광마대 연무장보다 네다섯 배는 더 넓었고 주위에는 수많은 좌석이 즐비했다.
마치 투견(鬪犬) 시합장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은 투견 시합장이 맞았다. 진짜 개들끼리 싸우지 않을 뿐.
‘대주님께서 투마장(鬪魔場)에 오실 줄이야.’
외성에 있는 투마장은 당대 교주 조백천이 즉위한 지 삼 년 되던 해에 만들어진 곳으로, 일종의 도박판이자 유희의 장이었다. 저급한 마인이나 죄지은 마인을 데려다 싸움을 붙이고, 저마다 승자를 점치며 돈이나 귀중품을 거는 것이다.
신교의 규율은 지엄하기 그지없다. 세상 사람들은 신교를 마교라 부르며 하루라도 피를 보지 않으면 미쳐 버리는 마귀들이 득실거리는 집단이라며 꺼렸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호전적인 성향의 마인들을 관리해야 하기에 더더욱 법도와 규율은 엄격해야만 한다.
당연히 이런 도박판을, 그것도 마인들끼리 생사를 도외시하는 싸움터를 만드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규율로 인한 피로와 호전적인 본능에서 기인하는 어두운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은 이런 것 말고도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마장을 건립할 당시 많은 마인들이 반대와 우려를 표했다.
조백천은 그들을 몽땅 죽이고 기어이 투마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투마장은 신교에서 손에 꼽힐 만큼 유명한 축제 중 하나가 되었다.
‘피의 축제지.’
황무석이 도헌을 바라보았다.
도헌의 눈은 진지했다. 그래서 황무석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투마장을 싫어하시던 분인데.’
도헌의 성격상 투마장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상부의 명령에 그토록 충실한데도 투마장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혐오 섞인 발언을 참지 못할 정도였다.
가만히 도헌을 바라보던 황무석이 지나가듯 물었다.
“상부에서 본대에 명령을 내렸습니까?”
“그렇다네.”
도헌은 황무석에게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저 신중한 눈으로 투마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황무석의 눈이 깊어졌다.
“……그랬군요.”
본디 상부의 명령이나 주변 돌아가는 일은 자신에게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 명령과 정보를 전달해 주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한데 자신이 듣지 못한 것을 대주가 알고 있다.
이 의미는 명백했다. 부관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통제하고, 주변 정보를 스스로가 직접 듣겠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그런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리 해석하면 더 이상 부관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때부터다.’
황무석은 떠올렸다.
반년 전 일 조 명한에 관련한 이들을 모조리 베어 죽인 도헌의 모습을.
부대원들에게 엄격한 모습을 보인 적은 있어도 칼을 뽑아 든 적이 없던 도헌이었다. 그런 그가 진심을 담아 대원들을 베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대주님께서는 달라지셨어.’
미세하게,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어쩔 수 없는 건가.’
대원 관리를 못 한 조장에게 그 잘못이 있고, 조장 관리를 못 한 부관에게 그 잘못이 있다.
그리고 부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도헌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
황무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실제로 당시 일 조와 이 조를 끌고 간 것은 자신이었다. 잘못만 따지자면 현장 책임자인 자신 역시 벌을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벌을 받지 않았다. 이후, 왠지 모르게 도헌이 자신에게 벽을 세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운했다. 차라리 욕을 먹고 반병신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면 더 편했을 것을.
‘저는 본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던질 수 있습니다.’
황무석이 도헌을 바라보았다.
‘부디 그것만은 기억해 주시길.’
그때였다.
“왔군.”
나직한 말에 황무석이 투마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아아아아!!
관객들의 함성과 함께 자욱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투마, 싸움판에 들어선 마인들처럼 관객들 역시 마인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황무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지?’
그의 눈이 투마장 안, 양측으로 나뉜 이십여 명의 마인들을 훑었다.
‘일대일 싸움이 아니었던가?’
도헌이 입을 열었다.
“황 부관.”
“예, 대주님.”
도헌이 황무석에게 건넨 금낭은 상당히 묵직했다.
“을조(乙組)에게 이것을 걸게.”
“예?”
을조라면……?
황무석이 투마장 좌측, 을(乙)이라 적힌 회랑에서 나온 열 명의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사방에 마기가 들끓어서인지 그들 고유의 기세를 느끼긴 힘들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대로 우측 열 명의 마인들은 투지가 가득했다. 갑조(甲組)였다.
마찬가지로 기세는 모르겠지만, 표정만 봐도 승패를 알 수 있었다.
“을조에 거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금낭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숙인 그가 사라지자 도헌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그의 눈은 을조 뒤편, 한 명의 청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역시 살아남았군.”
이곳에 있는 마인 중 유일하게 표정이 없는 자.
한 자루 칼을 쥐고 있는 이천상이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