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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7화 (657/774)

외전 7화. 진흙 속에서의 개화(開花) (2)

와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

감각이 예민한 고수들조차 옆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할 정도로 투마장의 분위기는 화끈했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개전(開戰)의 시작이었다.

“죽여! 저 망할 놈들 싹 다 죽여 버려!”

“너희한테 열 냥을 걸었어! 지면 너희가 죽을 줄 알아!”

“씨발! 간만에 피 좀 보겠네!”

“으으, 미칠 것 같아!”

그야말로 광기의 소용돌이였다.

피와 폭력, 투쟁과 살인도 인간의 원초적 욕망일까.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농도가 배는 더 짙어졌다.

휘몰아치는 마기의 폭풍. 마치 진짜 지옥에 온 것 같다. 저급한 마기라도 엄청난 수가 모여 밀도를 높이니 절정고수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 열광적이기까지 한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투마장 갑조와 을조의 집단전이 시작되었다.

도헌의 눈이 이천상을 좇았다.

긴장과 두려움, 묘한 열망으로 들뜬 을조의 마인들과 달리 무심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기묘한 이질감을 발했다.

‘엄청나게 달라졌어. 반년이라는 시간을 오 년 이상의 시간처럼,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낸 거다.’

많이 변했지만, 동시에 이천상은 변함이 없었다.

저 표정, 저 눈빛.

서서히 서로에게 접근하는 갑조와 을조를 보며, 도헌은 이천상의 말을 떠올렸다.

- 얼마나 다른지 보고 오겠소.

도헌은 생각했다.

‘자네가 굳이 거기서부터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아직도 이해할 수는 없네. 그래도 예상한 대로 잘 버텨 주었으니 다행이야.’

사실 돌이켜 보면 그가 이천상을 위해 줄 이유는 없었다.

하단전과 상단전이 열려서? 중단전은 텅 비어 있는 특이함 때문에?

신교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있다. 찾아보면 이천상보다도 독특한 인간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눈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의 대화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모르지. 그리고 지금 그걸 알고 싶지도 않아.’

도헌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일단은 성취를 보겠네.’

마인에게 있어 성취란 생존까지도 포함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것.

‘강자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보게.’

그때, 갑조와 을조가 부딪쳤다.

퍼어어억!

갑조의 마인 하나가 을조의 마인 머리통을 도끼로 내려찍었다.

살벌한 파열음과 함께 마인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터져 나오는 핏물과 뇌수가 흙밭을 적시며 전투의 서막을 알렸다.

“우와아아아!!”

피가 터져 나오고 사람이 죽자 구경꾼들의 함성은 배로 커졌다.

최초로 상대를 죽인 갑조의 마인, 장오가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을조의 마인들을 둘러보았다.

흥분으로 불타오르던 을조 마인들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드리워졌다. 단 한 방에 사기가 꺾여 버린 것이다.

‘시시하군.’

시시하지만, 또한 좋다.

장오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간만에 살풀이 좀 하겠어.’

그는 지난 이 년 동안 각고의 전투를 치르며 기어이 갑조로 올라왔다.

개인전 이후, 집단전으로 들어가면 갑을병정(甲乙丙丁)의 정조(丁組)부터 시작한다. 정조들끼리의 생사결에서 살아남으면 병조로, 병조들과의 승부에서 승리하면 을조가 된다.

그리고 을조끼리의 승부에서 승리하면, 승리한 을조는 갑조와 싸우게 된다.

갑조는 승리하고 올라온 을조를 상대로 다섯 번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그 모든 승리를 쟁취하고 나면 막대한 상금과 함께 신교 외성 전투 부대로 들어가거나 교외에서 삶을 꾸릴 수 있다. 투마장의 교관으로 취직하는 이들도 있었다.

승부의 시간은 일각이다. 살아남은 조원의 숫자가 상대보다 적거나 그 전에 몰살당하면 승부가 종료된다.

패배한 갑조의 생존자들은 다시 정조로 돌아간다.

당연히 갑조의 실력은 다른 모든 을조, 병조, 정조의 무력을 압도했다. 살아남은 강자들만 모였으니 당연했다.

장오는 이번 갑조에서 세 번이나 승리를 쟁취한 조원이었다. 두 번만 더 이기면 모든 투마장 마인들이 꿈꾸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쩌어엉!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괴성을 지르며 쇄도한 을조 마인의 검을 막은 장오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퍼어억!

큼직한 주먹에 을조 마인의 얼굴이 박살 났다.

장오의 몸이 회전했다.

퍼억!

큼직한 도끼가 마인의 복부를 찍었다. 도끼가 척추까지 들어갔으니 살지 못할 것이다.

마인을 걷어찬 장오가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발악 좀 해 봐!”

“이 새끼!”

남은 을조 마인들이 장오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기회를 보던 갑조 마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채채채챙! 쩌정!

도검이 부딪치며 화려한 충돌음을 피워 냈다.

갑조 마인들의 얼굴에 잔혹한 빛이 어렸다.

적이 벌써 둘이나 죽었다.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운 것이다.

퍼억! 서걱!

주먹질에 피를 토하고 날카로운 도검에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짧게 내지른 단창에 복부가 뚫리고 마구잡이로 휘두른 팔꿈치에 코와 이빨이 부러져 나갔다.

말 그대로 막싸움이었다. 죽지 않아도 패배하면 강등되는 잔혹한 규율, 심지어 서로 죽자고 싸운 놈들과 함께 조를 이뤄야 할 때도 있다.

당연히 협력이니 전우애니 있을 리가 없다. 진형을 갖출 지식이나 지혜도 없고, 그저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만이 가득하다.

‘좋아.’

장오가 활짝 웃었다.

‘너무 좋아.’

이 년간의 투마장 생활로 그는 피 맛이라는 걸 알아 버렸다.

그가 갑조에 올라온 지가 벌써 세 번째였다. 투마장에서 벗어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아군을 돕지 않아 패배를 유도했다. 싸움과 살육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빠각!

장오의 발길질에 을조 마인이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고간이 박살 난 것이다.

장오가 냉정하게 도끼를 찍었다.

퍼억!

을조 마인 하나가 또다시 허무한 죽음을 맞았다.

투마장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싸움에 형식이라는 게 없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니 어떤 치사한 수법이라도 야유를 듣지 않는다. 돈을 벌어야 하는 구경꾼들은 오히려 비열할수록 환호했다.

장오가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이것들아! 좀 더 제대로 못……!”

순간 그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뭐지? 뭐가 이렇게 줄었지?’

정신없는 싸움터 속.

주변을 둘러보니 갑조 마인 중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을 포함해 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장오가 얼떨떨해할 때, 을조 마인 하나가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파악!

상당히 빨랐다. 지금껏 죽여 온 놈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속도였다.

장오가 사선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쩌어엉!

내리친 일격을 칼로 막은 을조 마인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장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고급 마공을 익히진 않았지만, 그는 천생신력의 소유자였다. 작정하고 휘두른 그의 도끼를 막아 낸 적은 많지 않았다.

‘이것 봐라?’

마인이 이를 악물고 발을 휘둘렀다.

퍼억!

장오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딱히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장오는 철포삼류의 외공(外功)을 익혔다. 어지간한 공격은 전부 튕겨 낼 만한 신체를 지닌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더러운 것과는 다른 문제다.

“개새끼가!”

콰득!

발목을 낚아채 도끼로 찍어 절단했다.

마인이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그 틈을 노린 장오가 큼직한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푹!

‘……?!’

장오가 멍하니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미 배를 찌른 칼은 뽑혀 나오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철도(鐵刀)였다.

‘뭐야?’

뭐지? 왜 배가 뚫렸지?

아니, 누가 뚫은 거지?

발목이 잘린 마인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죽음을 예감했기에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너도 죽을 거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장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갑조 마인 셋과 을조 마인 셋이 싸우고 있었다. 그새 아군 하나가 또 줄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장오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떤 새끼야! 누가 날……!”

서걱!

“크아아악!”

장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차갑고 섬뜩한 고통과 함께 시야가 캄캄해졌다. 칼에 눈이 베인 것이다.

후우우.

신경이 잔뜩 곤두선 가운데, 장오는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낮게 깔리는 호흡. 바닥을 쓰는 발소리가 선명했다.

“으아아아아!”

장오가 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헉!”

“뭐, 뭐야?!”

“미친 새끼야! 조심해!”

갑조 마인들의 목소리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장오가 사방으로 도끼를 휘두르니, 그 반경 안에 있는 아군들까지 위험해진 것이다.

“으아아! 으아아아! 어떤 새끼야! 당장 튀어나와!”

순식간에 광기가 폭발한 장오의 도끼에 마기가 실렸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그 위협적인 몸놀림에 갑조와 을조 모두가 뒤로 물러섰다. 적아 구분 없이 눈먼 공격을 퍼붓는, 이곳에서 가장 강한 장오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때였다.

퍽!

갑조 마인 하나의 목덜미에 칼이 박혔다.

베이진 않았다. 하지만 목 뼈가 끊어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놀란 갑조 마인 둘이 병기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르륵!

섬뜩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마인의 팔로 마인의 얼굴을 휘감았다.

푸화아악!

등 뒤에서 팔뚝으로 눈을 가린 채, 손에 들린 철도로 목을 베어 버렸다. 목이 베인 마인이 비틀거리다가 그 자리에 맥없이 쓰러졌다.

이제는 시체가 된 그의 뒤로 이천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피에 젖었음에도 표정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이제는 장오를 제외, 갑조 마인 하나만이 남았다. 반면 을조는 이천상을 포함 네 명이 남았다.

“너!”

남은 갑조 마인이 이천상을 보며 이를 갈았다.

이천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승부는 났다.”

“뭐, 뭐라고?”

스르륵.

을조 마인 셋이 살기 어린 눈으로 갑조 마인을 노려보았다.

갑조 마인이 침을 삼켰다. 을조보다 실력이 좋다지만, 이 모두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싸우면 죽을 것이다.”

그때였다.

“거기냐!!”

멀리 떨어져 도끼를 휘두르던 장오가 쿵쿵 달려들었다.

을조 마인들이 화들짝 놀라 흩어졌다.

갑조 마인의 눈빛이 바뀌었다.

파아악!

이천상을 향해 달려든 마인이 칼을 휘둘렀다.

순간 이천상의 몸이 마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먼저 움직인 것이다.

쿵!

몸통 박치기에 마인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리고 그가 물러난 곳에 장오가 있었다.

“이……!”

퍼어억!

도끼에 어깨를 맞은 마인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크윽!”

“거기였구나!”

“미, 미친놈아! 같은 편이다!”

“으아아아!”

퍽! 퍼억!

장오가 도끼를 마구 휘둘렀다.

마인이 순식간에 피떡이 되었다. 몸통 박치기에 당한 그 순간 이천상의 칼이 그의 복부를 찔렀다. 장오의 도끼에 반항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퍼억! 퍼억! 퍼억!

수도 없이 마인을 가격한 장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디냐! 또 어디에 있는 것이야!”

부우우웅!

장오가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을조 마인 셋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장오를 바라보던 이천상이 바닥에 칼을 꽂고는 팔짱을 꼈다.

잠시 후.

“을조 승!”

우레와 같은 함성과 무자비한 욕설이 부딪치며 투마장이 떠들썩해졌다.

투마장을 내려다보던 도헌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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