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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8화 (658/774)

외전 8화. 진흙 속에서의 개화(開花) (3)

승자인 을조가 회랑에 들어서자 수많은 돌멩이와 철 조각이 날아왔다.

“저 개새끼들!”

“내 돈 내놔, 이 시발 놈들아!”

“저 새끼 누구야! 저 칼 찬 새끼 누구냐고!”

“으아아아아!”

갑조의 승리는 예견된 거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갑조에 돈이 건 사람이 태반이었다.

눈이 돌아간 구경꾼들은 들어가는 을조 마인들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며 손에 잡히는 것들을 마구 던졌다.

살아남은 을조 마인들은 허겁지겁 회랑 안으로 들어갔다. 날아오는 돌에 맞아 머리통이 깨지면 다음 시합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천상의 보행은 변함이 없었다. 날아드는 온갖 잡동사니를 칼집으로 대충 때려 날리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구경꾼들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나도…….”

이천상이 걸음을 멈추었다.

“나도 데리고 가 줘.”

고개를 돌리니 장오에게 발목이 잘린 마인이 이천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무심하기 그지없는 이천상의 눈,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으로 가득한 마인의 눈.

이내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마인이 외쳤다.

“나도 살고 싶다고!”

퍽! 퍼벅!

마지막 을조 마인까지 들어가자 날아오는 돌멩이는 발목 잘린 마인에게로 향했다.

마인이라지만 투마장에 들어온 이들 대부분이 일류라 불리기 힘든 이들이었다.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마인이 이를 악물었다.

빠각!

돌멩이 하나가 그의 머리에 적중했다. 이마가 깨지고 피가 줄줄 흘렀다.

“빌어먹을……!”

그때, 그의 몸이 쑥 올라왔다.

마인이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를 부축한 이천상이 무심한 얼굴로 회랑을 응시했다.

마인은 당혹스러웠다. 살려 달라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

퍽! 퍼벅! 빠각!

이천상의 이마에서도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고통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인의 입이 저도 모르게 열렸다.

“고, 고맙다.”

이천상이 말했다.

“넌 죽을 것이다.”

도끼로 발목이 잘렸다. 혈을 짚어 지혈은 했지만, 그 실력도 어설프다. 그사이에 흘린 피의 양도 상당했다.

게다가 장오의 도끼는 관리도 잘 안되어 있었다. 투마들을 돌보는 의원들의 실력도 별로이니, 금세 병에 걸려 죽을 것이다.

마인의 눈이 흔들렸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이런 꼴로는 살 수 없다는 걸.

이를 악문 그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제길!’

이리 허무하게 죽으려고 살아온 인생이 아니었다.

차라리 싸움 도중 죽는다면 모를까, 쓰레기처럼 방치되어 오늘내일할 생각을 하니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왜 나만!’

그만 그렇게 죽는 게 아니었다. 지금껏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투마들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죽는 건 오롯이 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아아아아!

어느새 회랑 입구로 들어오니 떠나갈 듯한 함성과 욕설 소리가 잦아들었다.

마인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공포와 회한으로 얼룩진 마인의 얼굴에, 일순 독살스러운 빛이 어렸다.

푹!

이천상이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내려 옆구리를 내려다보니 짧은 비수가 박혀 있었다.

하지만 칼끝만 박혔을 뿐이었다. 힘을 제대로 싣지 못한 것이다.

이천상이 마인을 바라보았다.

마인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헉헉! 나, 나만 갈 수는 없어.”

이천상은 마인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눈 한 번을 깜빡이질 않았다. 그 눈이, 보는 사람이 불편한 걸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선명했다.

악독하게 일그러졌던 마인의 얼굴에도 점점 공포가 깃들었다.

잠시 후.

퍽! 주르르륵.

혈이 풀리며 잘린 발목에서 대량의 선혈이 흘러나왔다.

마인의 눈이 순식간에 흐릿해졌다.

툭!

이천상이 힘을 빼자 마인이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쓰러진 마인은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옆구리에 박힌 비수를 뽑아 아무렇게나 던진 이천상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죽은 마인을 돌아보지 않았다.

대기실로 들어온 이천상.

살아남은 을조 마인들이 이천상을 보았다.

“…….”

하지만 누구도 이천상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을조가 갑조와 싸워 승리하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생존자가 네 명이나 된다. 넷 모두 새로운 갑조로 편성되는 것이다.

자축을 벌여도 무방할 상황이지만, 그들은 냉큼 고개를 돌려 저희끼리 시시덕거렸다.

이천상은 익숙한 듯 벽에 기대어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전부 소모되었군.’

단전을 묵직하게 채웠던 진마공(眞魔功)의 마기가 한 톨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그럴 만도 했다. 상대의 인지에서 벗어나 고속으로 이동하는 수법은 생각보다 내공 소모가 심했다.

그런 짓을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대여섯 번을 했다. 내상을 입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후욱.

이천상의 호흡이 순식간에 깊어졌다.

필요하면 채운다. 승부가 어땠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에 관한 생각 따위는 무의미했다.

당장 내가 해야 할 것부터 한다. 다음은 말 그대로 다음이다.

이천상이 눈을 감았다.

스르륵.

곧장 운기에 집중한 그의 몸에서 은은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

시시덕거리던 마인들이 거짓말처럼 대화를 멈추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천상을 보는 그들의 얼굴이 차갑게 번들거렸다.

“저 새끼는 여전하군.”

마인 하나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저거 잘하면 졸업하는 거 아닌가?”

“그럴 리가 있냐? 지금껏 투마장에서 몸 성히 나간 인간이 열 명도 안 되는데.”

“어떻게든 계속 살아남잖아, 저놈.”

“우리는 안 그랬냐?”

“뭐가 됐든 껄끄러운 놈이야. 만에 하나라도 적으로 만나면 골치 아플 것 같아.”

마인들의 얼굴에 은근한 살기가 어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내버려 둬.”

마인 중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조원 죽이면 우리도 죽어. 알잖아.”

투마장 내에는 폭력과 억압이 일상이었다. 자연히 조원들끼리 치고받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폭력 사태가 많아도 죽이는 일은 없었다. 조원을 죽이면 가담한 이들 모두가 같이 죽기 때문이었다. 규율 자체가 그러했다.

투마장으로서는 당연한 조치였다. 괜한 일로 투마가 죽으면 쓸데없이 인원을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같은 편일 때 든든한 것도 사실이야.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안 돼.”

“끄으응.”

마인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깃들었다.

이런 곳에서 썩다 보면 시야가 제한되고 생각도 짧아지게 된다. 하루하루 피와 폭력에 젖다 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살아남았고 이제 갑조가 된다. 갑조에서도 다섯 번을 승리해야 투마장을 졸업할 수 있다.

믿음직한 아군은 꼭 필요하다. 혼자 힘으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때, 또 다른 마인 하나가 말했다.

“저놈 아까 못 봤어?”

“뭘?”

“정향 뒤에 숨었다가 정향이 죽자마자 갑조 놈들 기습했잖아.”

“…….”

“지금껏 저놈이 먼저 선두에 나선 거 본 적 있어? 난 없는데?”

“뭐…… 나도 그렇긴 한데.”

“우리를 방패 삼아서 적을 죽이는 놈이야. 같이 갑조가 돼도 껄끄럽다고.”

“흐음.”

“아닌 말로 저놈 아니어도 얼추 이길 수 있겠더만. 그 새끼들 실력 생각보다 별로였잖아? 아무리 그래도 기습 한 방에 한 놈씩 눕는 게 말이 돼?”

“그, 그건 그렇지.”

“저놈 하나 없다고 문제 될 거 없는 것 같아. 차라리 여기서 싹을 잘라 버리는 게 낫다니까.”

기습을 부정했던 마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죽이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니까, 이 머저리들아. 저놈 죽이면 교관들이 우리도 죽여.”

“알아서 뒈질 수도 있는 거잖아?”

“뭔 소리야, 그건 또?”

“저 새끼 옆구리 봐.”

마인들이 이천상의 옆구리를 바라보았다.

의복이 피에 젖었다. 깊진 않아도 옆구리에 칼을 맞은 것이다.

“칼……은 아니고, 비수인가?”

“그래.”

스르륵.

마인 하나가 품에서 비수를 꺼내 들었다. 투마들에게 공통으로 지급되는 물건이었다.

“싸움 중에 한 방 맞은 모양이야.”

마인들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투마장에서 지급되는 병장기들 대부분이 제대로 관리가 안 되었다. 게다가 환경 자체가 깨끗하지 않아서 어제까지만 웃고 떠들었던 놈이 당일 고열에 시달리다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게다가 이 새끼, 돌에 어지간히 맞았네. 대가리도 깨지고 여기저기 멍투성이구만.”

죽은 투마들의 시체는 대충 불에 태워 없애 버린다. 굳이 시신을 부검할 정도로 교관들은 철두철미하지 않다.

마인들의 얼굴에 깃든 살기가 점점 짙어졌다.

스르륵.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마인들.

이천상의 운공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갈수록 집중이 깊어지는 듯, 전신에서 어우러져 나오는 마기의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마인들이 이천상 앞으로 다가왔다.

그중 하나가 비수를 들며 희게 웃었다.

“껄끄러운 새끼. 잘 가라.”

그가 이천상의 옆구리를 향해 힘차게 비수를 휘둘렀다.

퍽!

* * *

“이렇게 뵙는 것은 처음인 듯합니다.”

투마장주(鬪魔場主) 이홍이 조심스레 찻잔을 내려놓았다.

차를 타 오는 건 아랫사람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직접 차를 타왔다. 그만큼 상대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벽라춘입니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향이 좋소.”

“허허, 다행입니다.”

도헌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았다.

이홍이 물었다.

“한데 공사가 다망하신 광마대주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는 어인 일로……?”

도헌은 전투 부대의 수장이고 이홍은 투마장 전체를 관리하는 주인이다. 관리 영역만 생각하면 이홍의 위치가 도헌보다 아래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도헌은 내성 소속이었고 이홍은 외성 소속이었다. 심지어 광마대는 신교의 전투 부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정예였다.

이홍이 저자세로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썩었다지만 천마신교는 천마신교다. 강자존의 세상에서 최고위 부대인 광마대는 외성의 어떤 조직도 굽어볼 만한 위세를 지닌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고 부관까지 대동하고 나타났다.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헌이 담담하게 말했다.

“보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어서 염치 불고하고 직접 찾아왔소이다.”

“허허, 그러셨습니까?”

이홍은 최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광마대주의 성격이 깐깐하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말씀하십시오. 인원이 넉넉하여 근무 중이더라도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은 교관이 아니오.”

“예?”

이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면 누구를……?”

“조금 전, 갑조를 이긴 을조의 조원 중 하나를 보고 싶소.”

“을조를요?”

이홍은 상당히 놀랐다.

삼 연승을 한 갑조를 뒤엎어 버린 을조, 말하자면 새로운 갑조의 탄생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은 투마에 불과하다. 그런 밑바닥 인생을 천하의 광마대주가 직접 보자고 하는 것이다.

이홍이 미소를 지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곧장 불러오도록 하지요.”

“고맙소.”

“아닙니다. 별일도 아닌 것을요. 해서, 그 조원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 조원은…….”

그때였다.

“장주님!”

이홍이 눈살을 찌푸렸다.

“큰 손님께서 오셨다. 어찌 그리 방정이냐?”

“큰일 났습니다! 투마들 사이에서 살인이 벌어졌습니다!”

“뭐라?!”

이홍이 벌떡 일어났다.

“대체 어떤 놈이 살인을 저지른 것이냐?!”

“삼 번(三番) 갑조를 이긴 칠 번(七番) 을조의 조원이 다른 조원 셋을 살해했습니다!”

도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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