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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9화 (659/774)

외전 9화. 진흙 속에서의 개화(開花) (4)

대기실로 달려간 이홍은 눈살을 찌푸렸다.

교관 네 명이 대기실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저 멀리 복도 끝에서는 투마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피 냄새가 몹시 진했다.

이홍이 버럭 소리쳤다.

“이 새끼들이!”

쩌렁쩌렁하게 퍼지는 이홍의 목소리에 교관과 투마들이 화들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교관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어디 구경이라도 났어? 저 새끼들 빨리 대기실에 처넣어!”

“죄, 죄송합니다!”

교관 둘이 투마들에게 달려가 으름장을 놓았다.

남은 교관 둘이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이홍이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놈들. 일을 이따위로밖에 못 하나? 내가 네놈들에게 월봉을 왜 줘야 하는 거냐?”

“죄송합니다!”

“시끄럽다! 통제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꼬락서니라니! 너희 모두 이번 달 월봉은 없는 줄 알아!”

평소보다 유난히 씩씩대는 모습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를 따라온 도헌과 황무석 때문이었다.

내성 정예 부대의 수장들 앞에서 깔끔한 모습을 보여 줘도 모자랄 판국에 오합지졸 같은 모습을 보였다.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켜!”

거칠게 교관들을 밀치고 대기실로 들어간 이홍.

“……?!”

순간 이홍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야 말았다.

‘뭐야?’

대기실은 온통 피바다였다.

바닥은 물론이요, 벽이며 천장이며 할 것 없이 사방이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학살이라도 벌어진 줄 알 정도였다.

그리고 대기실 중앙.

세 명의 투마들이 엎어져 있었고, 벽에 한 명의 투마가 숨을 연신 헐떡이고 있었다.

물론 죽은 놈이고 산 놈이고 모두 피범벅이었다.

이홍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거도 죽겠군.’

배에 칼을 다섯 방이나 맞았다. 오른쪽 어깨는 너덜거렸고 심지어 목까지 다쳤다. 용케 동맥은 피한 모양이지만, 그 전에 흘린 피가 너무 많았다.

거기에 조금씩 흘러나오는 내장 일부까지.

구석에 선 교관이 물었다.

“장주님. 어떻게…….”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은 이홍이 살아남은 투마 앞에 쪼그려 앉았다.

연신 숨을 헐떡이는 투마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었다. 곧 찾아올 죽음의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이홍이 무서워서인지, 그도 아니면 이름 모를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홍이 물었다.

“네놈이 저 셋을 죽였느냐?”

고개를 저을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투마는 대답 대신 거친 호흡만 쉴 새 없이 내뱉었다.

이홍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묻고 있잖느냐. 네놈이 저놈들을 죽인 거냐?”

“학! 학!”

“이 새끼가 묻는 말에…….”

순간 이홍의 눈이 번뜩였다.

헐떡이는 투마의 목.

옅게 베인 상처인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성대까지 파고들었다.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용하다.

“……쯧.”

한숨을 푹 쉰 이홍이 천천히 일어났다.

“볼 것도 없구만. 머저리 같은 새끼들, 그렇게 서로들 제끼지 말라고 엄포를 놨더니만 기어이 사고를 치는군.”

평소라면 투마들의 목숨이 아까웠겠지만, 지금은 분노가 앞섰다.

이홍이 외쳤다.

“뭣들 하고 있어! 뒈진 놈들 싹 데려다가 불살라 버려!”

“예!”

그때였다.

“장주.”

“아, 도 대주님.”

이홍이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면목이 없습니다. 애써 찾아와 주셨는데, 참으로 못 보여 드릴…….”

“그게 아니오.”

“예?”

도헌이 묘한 얼굴로 엎어진 투마 중 하나를 가리켰다.

“생존자가 있는 것 같소.”

“생존자요?”

순간, 엎어진 투마의 팔이 움찔했다.

이홍의 눈이 커졌다.

“헛! 죽지 않았던 건가?”

“상처가 꽤 깊어 보이는군. 다만 죽은 건 아니고 싸우다가 기절한 것 같소. 어디 머리라도 부딪친 것 같은데.”

“그, 그렇군요.”

도헌이 손수 투마를 뒤집었다.

순간 도헌의 눈가에 은근한 웃음기가 어렸다.

“장주.”

“예? 아, 예. 말씀하십시오.”

“이 친구요.”

이홍이 투마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투마들은 모두 갑조에 속해 있었고, 을조 이하의 투마들은 누가 누구인지 아예 몰랐다.

이홍이 교관에게 말했다.

“나가 있거라.”

“예.”

교관이 문을 닫고 나가자 이홍이 나직이 물었다.

“이 녀석이 대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녀석입니까?”

“예전에 한번 눈여겨봤던 친구요. 죽었으면 어쩌나 했는데, 운 좋게도 살아남았소이다. 투마장에서도, 대기실에서도 말이오.”

이홍은 단박에 그 말을 알아듣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랬구만?’

투마장에 속한 마인들은 하나같이 거칠고 잔혹한 밑바닥 인생들이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나름대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놈들도 분명 있었다.

이홍이야 알 바 아니었지만, 전투 부대 수장 중 몇몇은 가끔 투마장에 와서 쓸 만한 마인이 있으면 뒷돈을 주고 몰래 빼 가기도 했다.

이제 보니 광마대주도 그걸 부탁하려고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의외로군.’

지금껏 무수히 많은 전투 부대의 수장들이 찾아왔지만, 내성 소속 부대에서는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내성 전투 부대에는 철저히 선별된 인재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말하자면 고르고 고른 일류들만이 노릴 수 있는 곳이란 말이다.

하물며 육대에서도 강하기로 정평이 난 광마대가 아닌가. 도헌이 이곳에서 직접 인재를 뽑아 가리란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광마대주…… 도헌…….’

이홍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군.’

데려갈 투마가 누구인지는 관심도 없다. 사실 대원으로 쓸 것 같지도 않았다. 힘 좋은 일꾼으로 쓸 수도 있고, 잘 보여야 하는 귀부인 잠자리 상대로 보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도헌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신에게 직접 부탁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빚을 지우면 좋지.’

내성의 귀하신 분 중 하나라도 선이 이어져 있다면 훗날 출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은 여기서 죽은 걸로 하겠습니다.”

“감사하오.”

“아닙니다. 신교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 주시는 분께 이 정도도 못 하겠습니까. 하하하!”

도헌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사례금이라도 드려야 할 텐데.”

이홍이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저 편히 데려가십시오.”

“을조에게 걸었던 돈을 회수하지 않았소이다. 제 나름대로 넉넉히 넣었으니, 눈먼 돈이다 생각하고 장주께서 좋은 데에 써 주시오.”

이홍은 내심 감격했다.

광마대주 도헌이라 하면 꽤 엄정하기로 이름 높은 사람이었다. 한데 그런 그가 이런 식으로 성의까지 보여 주고 있었다.

일 처리하는 걸 보니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돈까지 챙겨 준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신경 써 준다는 뜻과 같았다.

“괜찮습니다만, 대주님께서 마음을 쓰셨으니 그 돈은 본교를 위해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그래 주길 바라오.”

“하하하.”

껄껄껄 웃는 이홍.

도헌이 고개를 돌려 투마를 내려다보았다.

투마, 이천상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도헌이 웃으며 말했다.

“황 부관. 이 친구 데리고 나가세.”

* * *

투마장은 크고 넓었다.

그 크기만큼이나 인기도 대단했지만, 내성의 간부들은 대놓고 찾아오지 않았다. 나름대로 체면을 차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투마장에는 여러 비밀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도헌이 향한 곳은 그곳이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소이다.”

이홍이 포권을 취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좋소.”

이홍이 들어가자 도헌이 황무석에게 말했다.

“녀석을 내려놓…….”

그때, 이천상이 눈을 뜨며 알아서 황무석의 몸에서 내려왔다.

황무석이 찝찝한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이 옷에 묻은 피를 털며 말했다.

“오랜만이오.”

순간 황무석의 눈이 벌게졌다. 천하기 그지없는 투마 놈이 하늘 같은 대주님 앞에서 이런 시건방을 떨다니.

“이놈이……!”

“그만.”

도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래, 오랜만일세.”

이천상은 말없이 옷을 찢어 팔뚝을 휘감았다. 상처를 입은 곳이었다.

도헌이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목을 잡았다.

“가만히 있게.”

묶은 천을 버린 도헌이 자신의 소맷자락을 길게 찢어 이천상의 팔뚝을 감아 주었다.

“마공력이 상당하군. 다소 더럽더라도 치료에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깨끗한 놈이 좋지.”

묵묵히 팔뚝을 보는 이천상.

도헌이 상처를 묶으며 물었다.

“역시 자네였지?”

“그렇소.”

“허허, 깜짝 놀랐네. 자네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사고 친 이상 빼 오기가 좀 어려울 거라고 봤거든.”

먼저 이천상을 공격한 것은 을조의 투마 셋이었다.

이천상은 그중 둘을 죽이고, 하나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혹시나 비밀이 새어 나갈까 싶어 성대까지 찢었다.

그리곤 제 몸에 상처를 내고 기절한 척한 것이다. 운 좋게 살아남았다면 치료를 받고 다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그렇게 치밀할 줄 몰랐어.”

“절정고수가 왔으면 걸렸을 거요.”

“오호, 이제 그 정도는 아는 건가?”

“당신이 바로 알아챘잖소.”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도헌을 보며 황무석은 내심 크게 놀랐다.

근래 들어 도헌이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예전보다 더 부드러워졌을지언정,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대체 이놈이 누구기에?’

황무석의 의식이 자연스레 이천상에게로 향했다.

도헌이 이천상의 팔을 툭툭 쳤다.

“다 됐네. 일단 이 정도로 하고 돌아가서 치료부터 받자고.”

조금씩 팔을 돌려 보던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투마장에는 되돌아갈 수 없겠군.”

도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배울 게 있던가?”

“없었소.”

“하면 아무 문제 없겠구먼.”

“…….”

“왜? 달리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나?”

“없소.”

“흐음.”

심유한 눈으로 이천상을 보던 도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저곳에서의 생활이 남다르긴 했던 모양일세. 처음 봤던 때와는 묘하게 달라.”

“세상을 배우기에는 투쟁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았소?”

“허, 그랬나?”

“그렇소.”

“그래서, 자네 스스로는 많이 변한 것 같던가?”

“변한 건 모르겠소.”

“충분히 배웠다면 그 자체로 변한 것이지. 얼굴도, 분위기도 그때 그대로지만 확실히 인상이 변했어. 그만큼 자네의 배움이 깊었다는 뜻이겠지.”

“…….”

“반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걸세. 돌아가서 며칠 쉬게나.”

이천상이 도헌을 바라보았다.

도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소.”

묻고 싶은 게 있다.

질문이야 그때도 했지만, 지금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은 아니었다.

‘확실히 변했어.’

도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궁금한가? 물어보게.”

“투마장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음?”

“…….”

“투마장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렇소.”

도헌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네만…… 뭘 어떻게 생각하고가 있겠는가. 절대 좋게 보지 않는다네. 솔직히 자네가 아니었다면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걸세.”

“그게 끝이오?”

“원하는 답변이 있었나?”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저곳은 없어져야 할 곳이오.”

도헌의 눈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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