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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0화 (660/774)

외전 10화. 진흙 속에서의 개화(開花) (5)

‘없어져야 할 곳이라고?’

진정 놀라운 말이었다.

신교의 누구라도 이런 말을 한다면, 그리고 듣는다면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이 이천상이라서 도헌은 더더욱 놀랐다. 사람이 바뀐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저곳은 썩어 있소.”

“자세히 말해 보게.”

“말 그대로요. 사람은 저런 곳에 소속되어선 안 되오. 저런 식으로 싸워서도 안 되오.”

“…….”

“그리고 원치 않는 죽음만 가득한 저런 도박판에 열광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오.”

도헌의 눈이 흔들렸다.

충격의 연속이다. 목석처럼 딱딱하기 그지없던 이천상의 인상이 순간순간 계속 바뀌고 있었다.

“안 된다고?”

“그렇소.”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말했잖소.”

“내 말은, 자네가 투마장이 썩었다고 본 것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는 걸세.”

이천상의 이마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허!’

놀라고 또 놀란다. 놀람이 가시기 전에 또 한 번의 놀라움이 찾아온다.

‘이 녀석이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던가?’

바위에 금 하나 그어진 정도라, 이게 정말 표정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었지만…….

도헌의 표정에 묘한 기색이 떠올랐다.

‘고뇌라?’

잠시 후,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갑시다.”

질문에 마땅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황무석의 눈빛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다가 온 놈인지 모르겠지만, 광마대주 앞에서 이렇게까지 목이 뻣뻣한 놈은 처음이었다.

도헌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많이 피곤할 텐데 쓸데없이 말이 많았네. 돌아가서 푹 쉬고 따로 얘기하세나.”

잠시 후, 두 사람이 마차에 올랐다.

마부석에 앉아 고삐를 쥔 황무석은, 치미는 분노와 그보다 더 강하게 치솟는 호기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체 저놈은 뭐지?’

광마각에 도착한 이천상은 도헌이 내준 별실로 들어가 곧장 휴식을 취했다.

의원을 붙여 주겠다고 했지만, 이천상은 거부했다.

도헌은 이천상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봐도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마기만 잘 제어하면 상처도 덧나지 않을 것이다.

별실과 씻을 곳을 지정해 주고 나온 뒤, 도헌은 곧장 집무실로 향했다.

“황 부관.”

“예, 대주님.”

“흑마대주에게 내가 보잔다고 전하게. 당장 자리에 없으면 나중에라도.”

“알겠습니다.”

“그래.”

의자에 등을 묻은 채 창밖을 보던 도헌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황무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공손한 자세 그대로였다.

“달리 할 말이라도 있는가?”

“대주님.”

“말씀하시게.”

“주제넘은 발언일 수 있지만, 몇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무슨 질문이 날아올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도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

“저 녀석은…….”

말을 하던 황무석이 황급히 헛기침을 했다.

“저자는 누구입니까?”

“투마.”

“……?”

“자네도 보지 않았나. 투마장 을조 소속으로 올라온 투마였네.”

황무석이 당황한 눈으로 도헌을 보았다.

도헌이 피식 웃었다.

“장난일세. 자네 자세가 너무 딱딱해서 나도 모르게 농이 나왔군.”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저 녀석은 내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낀 녀석일세. 그렇게 알아 두게.”

“……알겠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말이었다.

단순 흥미 때문에 투마장에서 빼 오려 한단 말인가? 그 올바르고 엄격했던 대주님께서?

잠시 생각에 잠긴 황무석을 보며 도헌이 툭 던지듯 말했다.

“그리고 내 은인일세.”

“예?”

“은인이라 하였네.”

“으, 은인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

“녀석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어. 저 녀석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고집과 아집에 사로잡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을 걸세.”

“아…….”

“깊게 생각할 것 없네. 은인이지만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만한 위인은 아니야. 본인도 그걸 바라지 않을 테고. 다만…….”

도헌이 턱을 쓰다듬었다.

“내 나름대로 함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기는 하네.”

황무석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도헌이 재차 물었다.

“또 질문이 있는가?”

“…….”

“없다면 이만…….”

“저는 안전합니다, 대주님.”

도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인가?”

황무석은 당황했다.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스스로도 이런 말을 생각 없이 질러 버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왕 나온 말이었다.

황무석은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대주님은 크신 분입니다. 저 같은 놈과는 그릇이 다른 분이지요.”

“하하, 이 사람아. 갑자기 얼굴에 금칠을 해 주는가.”

“이런저런 일로 크게 바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대주님을 보좌하는 사람입니다.”

“…….”

“저는 대주님 이외의 다른 사람을 모시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대주님과 광마대를 위해 살아갈 테니, 맡겨 주실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도헌의 차분한 시선이 황무석을 향했다.

황무석은 괜스레 등에서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이 발언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주군과 수하는 신뢰로 맺어져야 하는 법이다.

서운한 티를 낼 필요는 없지만, 수하로서 내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알려 주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이 위험하지 않다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항상 각인시켜 주는 것 또한 수하의 소임일 것이다.

만약, 반년 전의 일로 자신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면.

그래서 상부의 명령이 떨어질 거라는 정보마저 부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받고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든 그 신뢰를 회복해야만 했다.

“…….”

잠시의 침묵이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도헌이 입을 열었다.

“황 부관.”

“예, 대주님.”

“자네는 자네의 위치에서 충분히 잘해 주고 있네. 그간의 관계를 떠나, 나는 단 한 번도 자네의 능력을 의심한 적이 없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본대를 위하는 자네의 충성심과 자존심은 내 잘 알고 있네. 그리 말하지 않아도 말이야.”

“…….”

“이만 가 보게.”

황무석이 더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집무실을 나간 황무석의 걸음은 어쩐지 조금 가벼워 보였다.

도헌은 황무석이 서 있던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럴 만하지.’

도헌은 한 번 실수로 사람을 내칠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그 사람의 행동보다, 사람 자체를 보는 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조직의 수장이란 사람만 좋아서 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황무석은 명백한 과오를 범했다. 몰랐다고는 해도 결과적으로 대원들에게 신경을 덜 쓴 것이 되었다.

그 책임은 자신에게도 있었다.

때로는 당근을 줘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채찍질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적당히 거리를 벌려 두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수하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보여 주는 모습도 달라야 하는 것. 어쩌면 이전까지의 도헌은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수하를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스스로 자각한 그는, 광마대주로서 자신을 더 갈고 닦으려 했다.

더 엄해지고, 더 부드러워지고 나아가 더 철두철미해지려 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도헌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점점 어두워지는 세상. 중원 남부는 습도가 높은 편이지만, 십만대산의 저녁은 꽤 서늘한 날씨를 자랑했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신교의 개혁을 위해 자신의 생(生)을 불태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황무석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자신을 위해 주는 충성심 높은 부하임은 분명하되, 황무석의 눈은 신교가 아닌 광마대만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위해 일해 준다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래 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그래서 상부에서 내려오는 모든 정보를 자신이 직접 보고받는 것이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준비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개혁을 하려거든 정보들을 민감하게 받아 내고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말 황무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진즉 잘라 버렸을 터.

‘그러나 섭섭해할 만도 해.’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깊게 신경 쓰진 않을 것이다.

황무석은 그 자신의 말마따나 광마대를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걸로 되었다. 적어도 지금은.

후우우웅.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의 머리를 식혀 주었다.

그는 문득 자신의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뭉텅 잘려 팔뚝이 드러나 보이는 소매가 왠지 허전해 보였다.

도헌이 피식 웃었다.

“참 비싼 친구야.”

* * *

한 시진이 넘는 수욕으로 온몸을 깨끗하게 한 이천상은 그대로 침상에 누웠다.

‘편하군.’

침상이 몹시 푹신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눕기만 해도 그간의 피로가 몽땅 사라지는 듯했다.

가만히 누워 있던 그가 일어나 가부좌를 틀었다.

딱히 운공을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마차에서 충분한 마기를 모아 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치유력도 높아질 것이다.

운공을 할 때는 물론 생각에 잠길 때도 이 자세를 고수했다.

어느새 그도 무인이 된 것이다.

날숨을 길게 쉬어 몸의 긴장을 푼 뒤, 이천상은 지난 반년을 반추했다.

‘대단했다.’

하루도 편히 쉴 수가 없는 나날이었다. 그 자신이 원한 길이었지만, 어떨 때는 피로를 이길 수 없어서 기절한 적도 있었다.

그러한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자에게 투마장은 지옥 이상의 지옥이었다. 먹고 자는 생활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신도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천상은 그것을 관찰로 알았다.

‘확실히.’

반년간 치열하게 싸워 오며 더욱 확실하게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나는 남들과 달라.’

몸은 피곤해도 정신이 약해지지 않는다.

정신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아예 몸과 마음이 분리가 된 느낌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뭔가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냥 그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들은 달랐다.

피곤하면 짜증을 냈고 욕설을 뱉거나 성질이 난다고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이천상은 그러한 감정과 행위들을 철저하게 보고 배웠다.

나 자신은 그러지 않는다고 생짜를 부려 봤자 의미가 없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도 있었고, 새롭게 배우는 것도 있었다.

‘감정…… 욕망이라…….’

이천상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매만졌다.

‘나에게도 그런 게 있을 텐데.’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제대로 느껴 본 적은 없지만, 네발 달린 짐승에게도 감정은 있다고 했다. 자신에게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뭔지 모르겠어.’

문득 그는 양부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이 찌른 칼에 죽어 가면서도 웃음 짓던 그 얼굴을.

‘……!’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훅.

목덜미가 조금씩 뜨거워지고 귓불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깊고 고요했던 호흡이 미세하게 거칠어지는 것 같았다. 등과 어깨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우우웅.

단전에 도사리고 있던 마기가 천천히 가슴께로 올라왔다.

그리고 잠시 후.

스르륵.

중단전으로 올라온 마기가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이천상의 눈빛이 본래의 무심함을 되찾았다.

“……어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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