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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1화 (661/774)

외전 11화. 분란은 가슴에 있다 (1)

“오호?”

소공의 눈이 반짝였다.

“투마장은 없어져야 할 곳이라…… 녀석이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그래.”

도헌이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녀석과 대화를 나눈 적도 많지 않아. 기껏해야 닷새 정도일까. 하지만 나는 느꼈다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이 녀석의 심성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어.”

“그러게나 말일세. 많이 반성하고 있네.”

“하지만 뭐…….”

소공이 볼을 긁적거렸다.

“나도 좀 충격이군. 나는 닷새는커녕 이틀도 되지 않아. 그마저도 자네처럼 열성적인 관계를 만들려 하지도 않았어.”

“…….”

“나 역시 그놈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

도헌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뭐가 되었든 그곳에서 많은 걸 보고 배운 모양이야.”

“살아남은 것만도 어디야? 무공도 반년 전에 처음 배웠다며?”

“그것도 그렇지.”

“성격만 보면 복잡할 거 없이 정면으로 쳐들어가는 막무가내일 줄 알았건만, 덤빈 놈들 싹 죽인 연후에 죽은 척해서 범죄 사실을 묻어 버리기까지 했다…….”

소공이 키득거렸다.

“그놈 그거, 성격하고 다르게 우리 부대랑 맞는 것 같은데? 은신술이니 뭐니 하면서 몰래 들어가 목 따는 것보다 훨씬 암살자 같잖아.”

도헌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것도 의외의 일면이군.”

“그래서.”

소공 역시 자신의 잔을 따르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 정말로 키워 보려고?”

“글쎄.”

“거, 사람 참. 반년 동안 잘 숙성시켰으면 이제 슬슬 본 요리에 들어가 봐야지. 뭐 걸릴 게 있다고.”

시원하게 잔을 비운 도헌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내 마음에 걸릴 건 하나도 없네. 녀석이 문제지.”

“그놈? 왜? 광마대에 있기 싫대?”

“…….”

“……미친, 진짜로?”

“아직은 몰라. 하지만 본대에 들어오는 걸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도헌이 멋쩍은 듯 웃었다.

“그런 감정을 느끼기는 하는지 모르겠지만.”

“흐음.”

슬슬 술잔을 돌리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소공이 툭 내뱉었다.

“좀 답답한 구석은 있어도 감은 꽤 좋았지?”

“누구?”

“자네.”

“…….”

“그 녀석이 애써 숨기려 하는 것도 아닌 바에야, 자네 눈이 틀리진 않았을 것 같은데.”

“모르지. 일단 내일 한번 얘기해 볼 생각일세.”

“그것참, 요만한 무공 한 줌 익힌 녀석을 광마대원으로 훈련시켜 준다면 그것도 엄청난 운인데, 그걸 탐탁지 않아 한다고?”

“뭐, 그 얘기는 됐고.”

재차 자신의 잔을 채우며, 도헌이 물었다.

“그쪽은 어떤가?”

“우리 쪽? 우리 쪽 뭐?”

“유이상이라는 녀석 말이야.”

소공이 씨익 웃었다.

“천재던데?”

도헌이 의외라는 듯 소공을 바라보았다.

“천재?”

“천재도 보통 천재가 아니야. 마공이든 외가무공이든, 가르쳐 주기만 하면 쑥쑥 흡수해 내는데, 세상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더라니까.”

도헌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한 번씩 주책맞게 굴지만, 소공은 생각보다 공사 구분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특히나 그 역시 한 자루 칼에 목숨을 걸고 사는 위인인지라 무공에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실로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단순 암살 실력만큼은 당장 우리 애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을 정도야.”

“……!!”

도헌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그게 가능한가?”

“자네 부대에 잡히기 전부터 그쪽 관련 일을 해 온 모양이야. 하지만 얼마 안 되는 내공에 우리처럼 살벌하게 단련해 본 적도 없었지. 그런데도 사람 죽이는 실력 하나만큼은 일류더라고.”

“…….”

“반년 전, 자네 대원을 죽일 수 있었던 게 단순한 운은 아니었던 거야.”

도헌의 눈이 깊어졌다.

당시 그는 부대의 분위기 때문에, 피해자이자 피의자이기도 했던 유이상의 사정이 궁금했다. 그 이외의 것들은 생각도 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들으니, 확실히 이해되었다.

유이상이 명한을 죽일 수 있었던 이유는 운도, 분노도 아닌 순수한 실력 덕분이었다.

“대단하군.”

“어지간해야 쓸 만한 패를 얻었다고 여길 텐데, 지나치게 대단해서 이제는 좀 무서워. 내 밑에 있을 그릇 같지가 않거든.”

“나는 그게 더 의문일세. 본교에 대한 증오가 가득할 텐데 용케 자네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구먼?”

소공이 씨익 웃었다.

“사람 설득하는 기술 하나만큼은 십대마왕급이잖아, 내가.”

“하하하.”

두 사람이 잔을 들었다.

잔을 부딪치기 전, 소공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

“아직 햇병아리긴 해도 자네 역시 괜찮은 인재를 얻었으니 잘 키워 봐.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평범한 비수가 될 수도, 천하에 빛을 드리울 신병이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도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네.”

“제대로 보라는 얘기야. 자네 휘하 대원들이 충성심이 깊은 줄은 알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따르라 하면 따를 녀석들이 얼마나 되겠어?”

“…….”

“사람은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 없어. 그렇다면 가능성 있는 이들과 새로이 시작하는 관계도 좋지.”

소공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한두 해 안에 승부 볼 일은 아니잖나? 사람도, 부대도, 이 세상도.”

* * *

다음 날 밤.

거처에서 운공 중이던 이천상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스르륵.

이불을 걷고 바닥에 내려서자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나?”

“들어오시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도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계면쩍게 웃었다.

“일이 바빠서 찾아오는 게 늦었네. 미안하네.”

“괜찮소.”

“식사는 했나?”

“했소.”

그래봤자 구비된 육포와 곡물로 만들어서 찐 경단 정도지만, 이천상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실 투마장에 비하면 진수성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는 산에서 짐승을 잡아먹고 살았던 적도 있었다. 더 맛있는 음식은 있어도 못 먹을 음식은 없었다.

“괜찮으면 나랑 바람이나 쐬지.”

도헌은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이천상의 눈이 도헌의 허리춤에 닿았다. 그의 요대에 한 자루 장도(長刀)가 걸려 있었다.

그동안 도헌은 병장기를 가지고 돌아다니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봤을 때는 그러했다.

이천상이 말없이 그를 따랐다.

잠시 후.

“경치 좋지?”

사아아아아.

불어오는 산바람에 댓잎들이 흔들렸다.

바람은 선선했고 달빛은 고왔다. 주변에 가득 쌓인 대나무들이 자아내는 운치가 대단했다.

“본교에는 이런 대숲이 몇 군데 있다네. 이곳 내성에도 그렇고, 투마장이 있는 외성에도 있지.”

이천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대나무지만, 그들이 선 곳은 꽤 넓은 공터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꽤 깊게 팬 발자국도 보였다. 누군가의 수련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도헌일 확률은 몹시 높았다.

“자네가 어떤 산에서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본교의 경치는 천하제일이라네. 십만대산이라고 뭉뚱그려 불리고 있지만, 여기가 다르고 저기가 달라.”

“…….”

“그래서 나는 본교가 좋다네.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그 경치들이 마치 우리 마인들의 얼굴 같거든.”

유독 밝은 달빛 아래.

도헌의 얼굴에 생기와 그늘이 동시에 졌다. 적어도 이천상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네.”

“…….”

“투마장에서 반년간 활동하며 많은 것을 배웠겠지만, 나는 아직 자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보지 못했어.”

“……?”

“목적.”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목적, 혹은 목표. 꿈이라고 해도 좋겠군.”

“…….”

“자네는 무엇이 되고 싶나? 어떻게 살고 싶지?”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세상을 배우는 중이오.”

특유의 나른하고도 무심한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대숲과 잘 어울렸다.

도헌이 고개를 저었다.

“천자문은 떼지 않았나?”

“그것으로는 아직…….”

“일부에 불과하지. 그러나 투마장이라는, 인간의 악덕이 온통 집약된 진흙탕 속에서 배운 인간 군상의 감정들은 곧 천하 인간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지.”

도헌이 눈을 빛냈다.

“이해하고 있을 텐데?”

“…….”

“삶을 배운다, 세상을 배운다…… 반년 전의 자네에게는 필요한 일이었어. 목적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했지.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해.”

“…….”

“세상을 배우는 것은 기본이야. 이유인즉,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을지라도 세상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어.”

“…….”

“자네 스스로의 삶을 위해 명확한 지표를 세우게, 바로 이곳에서. 세상을 배우는 것은 곧 개인의 미래와 닿아 있다네.”

물끄러미 도헌을 바라보던 이천상이 말했다.

“거창한 꿈은 없소.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겠소.”

“지금은 그렇겠지.”

“굳이 목표를 삼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소.”

“인생이란…….”

“하지만 투마장은 없어져야 하오.”

“……?”

도헌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천상이 말을 이었다.

“같은 사람이라도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 바로 사람이라 했소. 지금의 내가 그렇소.”

“나 역시 그렇다네.”

“다만 틀린 것은 알고 있소.”

“틀림?”

“투마장은 틀렸소. 사람을 병들게 하는 곳이오.”

도헌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역시나.’

반년 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이천상은 틀리지 않았다.

죽어 가는 자신을 위해 주먹밥과 물을 건네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찾아갔다.

나아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은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상식을 벗어난 부탁이었지만, 마땅히 갚아야 할 은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심지어 천마신교를 나가 돌아가신 양부의 묘를 돌보겠다고도 했다.

슬픔이나 애정 같은, 명확한 감정이 동기가 되어 나오는 언행은 아니다. 하지만 감정이 동기가 되지 않았을 뿐, 그의 언행 모두가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감정과 마음은 하나이면서도 별개인 법.

이천상은 그 둘을 함께 생각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진심이었고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며,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에게는 명확한 기준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저 ‘기능’할 뿐인 심신이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명확한 지표가 있었다.

“투마장을 없애고 싶은가?”

“없어져야 할 곳이오.”

“자네 손으로 무너트리고 싶나?”

“그저 없어져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오.”

“원한다면 자네 손으로 하게. 우리는 할 수 없어. 적어도 당분간은 그러하네.”

“……?”

“다만, 그것을 원한다면 힘이 있어야겠지.”

이천상의 얼굴에 미묘한 의문이 어렸다.

도헌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놈은 감정이 없는 게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표정이라는 것이 나오지 않는가.

다만, 느끼는 법을 모를 뿐이었다.

탁!

이천상의 손에 장도가 잡혔다.

그에게 칼을 던진 도헌이 천천히 목을 돌렸다.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네. 그것이 명령이든, 기준에서의 이탈 때문이든 뭐든.”

“…….”

“자네 수준을 보고 싶네. 현재 자네가 품고 있는 무(武)의 모든 것을 보고 싶어.”

목을 푼 도헌의 기세가 일순간 바뀌었다.

훅!

경치 좋던 대숲의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어 가는 것 같았다.

도헌의 두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와라.”

순간적으로 달라진 말투.

도헌을 바라보던 이천상이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쥐었다.

스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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