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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3화 (663/774)

외전 13화. 분란은 가슴에 있다 (3)

“……?”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눈을 뜬 이천상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일어났나.”

고개를 돌리니 도헌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양손을 깍지 낀 채 상체를 수그리고 있는 모습이 꽤 심각해 보였다.

이천상의 눈이 도헌의 오른손에 닿았다.

검붉은 핏자국이 보이는, 천으로 돌돌 감긴 손.

“내가 졌군.”

도헌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고작 반년 익힌 무공으로는 내 상대가 못 돼.”

“그렇소?”

“그래, 그렇지.”

한숨을 쉰 도헌이 의자에 등을 묻었다.

“머리는 괜찮나?”

“괜찮소.”

“손은?”

손이라니?

이천상이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역시 도헌처럼 허연 천으로 손이 칭칭 묶여 있었다.

인지하자, 그제야 손바닥에서 은은한 통증이 올라왔다.

이천상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었다.

“언제……?”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군.”

도헌이 심각한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을 본 이천상은 생각했다. 기억을 잃기 전 뭔가 사건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사건을 일으킨 것은 분명 자신이라고.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툭 끊겼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저 정신없이 몰아붙이다가 어느 시점부터 의식이 끊어졌다.

“능력 이상으로 칼을 휘둘렀으니 손이 멀쩡할 리가 있겠는가. 손바닥이 온통 엉망이 됐어.”

“…….”

“그래서 대단하고, 그래서 위험하지.”

이천상의 눈이 빛났다.

“가지고 있는 힘 이상의 기량을 내는 것은 누구라도 쉽지 않아.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나오기도 힘든 재능이지. 그러나 부족한 힘을 목표에 맞춰 끌어올리는 건 또 다른 문제라네.”

“……?”

“몸이 버티지 못할 만큼의 힘을 냈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온몸의 근육이 죄다 파열되었을 걸세.”

그랬던가.

그러고 보니 손바닥만이 아니라 복부와 등, 허벅지 곳곳에서 미세한 통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의식이 사라진 연후에 벌어진 일. 이천상 자신도 몰랐던 능력이었다.

“나와 비무를 해서 다행이었네. 추후 자네가 감당키 힘든 적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네.”

“그렇군.”

“그래, 그렇다네.”

가만히 도헌을 바라보던 이천상이 눈을 감았다.

“당신에게 은혜를 받은 셈이로군.”

도헌이 피식 웃었다.

“그놈의 은혜, 참 여기저기서 잘도 받는구먼.”

“…….”

“은혜라고 할 것까지도 없네. 그냥 그렇다는 것뿐이니까. 사람의 앞날을 누가 알겠나.”

“그럼 이번 도움은 없는 걸로 하겠소.”

“사람 참. 일어나자마자 냉정하기도 하구먼.”

웃으며 말하던 도헌은 이내 표정을 굳혔다.

이천상이 투명한 눈으로 도헌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읽고 ‘해석’할 수 있었다.

워낙 경직되어 있어서 모르겠지만, 지금 도헌은 말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할 말이 있으시오?”

“투마장은 없어져야 한다.”

“……?”

“자네는 그렇게 말했지.”

“그렇소.”

“그리고 난 이렇게 말했지. 자네가 직접 없애라고.”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그랬소.”

“투마장은 교주님께서 직접 만드신 곳이야. 그런 곳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없앤다? 훌륭한 중죄야. 거의 십 할에 가까운 확률로 반역으로 몰릴 것이네.”

“이유는 있소.”

“있지. 하지만 교주님께서 받아들일 만한 이유는 아니겠지.”

“그럴 거라 생각하오.”

도헌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해하고 있나?”

“공감은 못 하지만.”

“하하.”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니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거라고. 상하 관계는 물론 첨예한 권력 다툼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천상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와 같은 일들을 마음 깊이 공감하여 이해하지는 못한다.

대신, 공감을 건너뛰고 바로 이해해 버린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천상은 독특하게 ‘가동’되고 있었다.

즉, 이천상이 세상을 배운다는 것은 아무것도 몰라서 배운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 속에 자신을 던져, 피부로 느끼고 공감하기를 원해서였다.

‘서글프구나.’

도헌의 눈에 얼핏 안쓰러운 기색이 어렸다.

‘지나치게 분명한 기준이 있어 도통 사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사는 놈이 사람 냄새를 찾으러 다닌다.’

이천상이 그를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왜 그러시오?”

“음? 아, 미안하네. 잠시 다른 생각이 들어서.”

도헌이 표정을 고쳤다.

“어찌 되었든, 실질적인 무력이 있다 한들 투마장을 없애는 것은 힘들어. 당장 없애 버린다 한들 교주님께서는 자네를 죽이고 새로운 투마장을 다시 세우시겠지.”

“…….”

“정말 자네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다면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야만 해.”

“근본.”

“그래, 근본. 사람들은 그런 것을 정치(政治)라고 하지.”

정치.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단어였지만, 이런 식으로 들으니 제법 생소하다.

“그러나 정치도 결국은 힘 싸움이야. 무공이든 세력이든 힘이 없으면 결과를 내기 어려운 법이지.”

“무공, 그리고 세력.”

“그렇다네.”

도헌이 한층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투마장을 없애고 싶은가?”

“말했듯, 없어져야 할 조직이오.”

“하지만 아무도 없애지 못해. 적어도 당장은 그렇지.”

“그렇군.”

“아무도 못 하는 것을 해 보고 싶은가?”

“해 보고 싶은 것은 없소.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오. 내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도헌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어렸다.

짧지만, 또한 길기도 했던 대화들.

그러나 양부를 죽인 패륜아로, 투마장 을조의 투마로 존재하는 이천상이 아닌, 인간 이천상을 바로 지금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와 함께하세.”

“함께 있잖소.”

“자네는 참 감동을 잘 깨는군. 그런 말이 아니라…….”

“당신은 나에게 은혜를 받았다고 했소.”

“음?”

“그리고 지금 그 은혜를 갚고 있소. 덕분에 나는 세상을 배우고 있소.”

“……?”

“우리는 시작부터 함께였소. 그 은혜가 끝나지 않는 한 영원할 거요.”

“……!”

“다 갚았다고 생각하면 그때 말하시오. 그전까지 나와 당신 사이의 관계는 끝나지 않소.”

도헌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양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이천상이 재차 말을 이었다.

“무슨 은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그다지 큰 건 아닌 것 같소. 적당히 갚았다고 생각하면 정산을 마쳐도 괜찮…….”

“그럴 수 없지.”

도헌이 벌떡 일어났다.

이천상을 내려다보는 도헌의 눈에 한층 온기가 더해졌다.

“죽어서도 갚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엄청난 은혜였어. 나는 언제나 채무자로 남을 걸세. 자네에게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사서 고생하겠다면 말리지 않겠소.”

“하하하!”

도헌의 우렁찬 웃음소리는 무척이나 호탕했다.

이천상의 얼굴에 또다시 의아함이 감돌았다. 대체 도헌이 왜 저리 웃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멀었나.’

사람을, 세상을 온전히 배우는 것은 아직 멀고 먼 길 같았다.

반면 도헌의 생각은 달랐다.

‘이 녀석이다.’

그동안 모호했던 이해의 조각들이 순간적으로 짜 맞춰지며 온전한 형상을 드러냈다.

‘나는 그저, 인형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이 녀석이 마음에 들었던 거다.’

왜 마음에 드는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실상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헌은 그저 이천상과 함께하고 싶었다. 부하로 부리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독특한 녀석과 함께 세상을 살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아가 왠지 모를 확신이 섰다.

‘살아남기만 한다면, 제대로 성장만 한다면.’

도헌의 눈에 강렬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 녀석은 본교의 큰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계획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인재가 필요한 법이다.

그 인재를 선발하는 눈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물리적인 강함을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재력이나 재능을 볼 수도 있었다.

도헌은 이천상에게서 법(法)을 보았다.

사람을 이해하려는 법. 그 자신이 하나의 법이 되어 주변을, 나아가 집단을 바꿀 수 있는 재능.

도헌이 입을 열었다.

“제대로 도와주겠네. 그동안은 조금 망설였지만,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겠네. 자네에게 쉬이 얻기 힘든 힘을 건네줄 걸세.”

“잘 받겠소.”

참으로 이천상다운 대답이었다.

“기다리게.”

별실에서 나간 도헌이 돌아온 것은 인시(寅時)가 다 되어서였다. 거의 한 시진 만이었다.

“받게.”

도헌이 건넨 두 권의 책자는 꽤나 두툼했다.

“이것은……?”

“금강야차마공(金剛夜叉魔功)이라는 걸세.”

이천상의 눈이 번쩍였다.

“금강야차?”

금강야차란 불교 사천왕(四天王) 중 수미산(須彌山)의 북쪽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달리 다문천왕(多聞天王)이라고도 불린다. 악귀인 야차와 나찰을 통솔하는 천왕이기도 하며, 사천왕 중 그 위상이 가장 높다.

놀랍게도 부처의 대적이라는 마라(魔羅)를 신봉하는 천마신교에, 금강야차의 이름을 딴 마공이 존재하는 것이다.

도헌이 미소를 지었다.

“팔대마공이라고 들어봤나?”

“투마들이 하는 얘기는 들어 보았소.”

신교팔대마공(神敎八大魔功).

천마신교가 자랑하는 여덟 가지 최고급 무공들을 뜻함이다.

정확히는 천마신교의 절예라는 백팔마도학(百八魔道學)의 정점으로, 어느 하나만 대성해도 일세를 풍미할 수 있다는 신공절학이었다.

“금강야차마공이 본교에 어찌 들어왔는지는 나도 모른다네. 다만, 이 무공의 토대가 불가의 무공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야.”

“이게 팔대마공이오?”

“아직은 아닐세.”

“……?”

“아마 정식으로 귀속이 되면 구대마공이 되겠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아. 어떤 괴짜가 이런 걸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도(魔道)의 총본산인 본교와 불가(佛家)는 양립할 수 없는 사이라네.”

“그건 알고 있소.”

“불가의 무공을 토대로 만든 마공이라니, 제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정통성 때문이라도 본교를 대표하는 무공으로 들이긴 힘들겠지.”

도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이 무공을 몰래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거든.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다 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신교육대의 수장들이 대단하다지만, 그래봤자 결국은 전투 부대의 수장일 뿐이었다. 내성의 주요 직책을 지닌 진짜 고수들에게 있어 그들은 날이 잘 든 칼에 불과한 것이다.

“팔대마공의 하나를 가져올 기회도 있었네. 하지만 그러지 않았네. 정식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몰래 익히다가 발각되면 그 자체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당신은 이 마공을 익혔소?”

“익히지 않았네. 내게 맞지 않거든.”

“그럼 왜 가지고 온 거요?”

“분명히 쓸 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네.”

도헌이 손으로 이천상을 가리켰다.

“지금 이렇게.”

“…….”

“나 역시 머리 깎은 중놈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네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네.”

“적을 알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법이오.”

“하하, 맞네.”

도헌의 눈이 깊어졌다.

“금강야차는 곧 다문천왕일세. 다문천왕은 그네들이 모시는 부처의 설법 듣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하네. 말하자면, 귀가 열린 천왕이라는 것이지.”

“…….”

“자네가 앞으로 크게 성장한 연후에도, 앞으로 익히게 될 금강야차의 마공처럼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자가 되었으면 하네.”

가만히 도헌을 바라보던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리고 남은 하나는 뭐요?”

“아, 그건…….”

도헌의 얼굴에 미심쩍은 빛이 감돌았다.

“좀 위험한 물건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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