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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5화 (665/774)

외전 15화. 분란은 가슴에 있다 (5)

광마각 대문에 도착한 도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아아아악!

황무석을 중심으로 그 뒤에 도열한 광마대원들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기세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흘러넘치는 마기에 살기까지 녹아들어 있다. 당장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였다.

그런 광마대 앞에 선 형법당 당원들의 얼굴은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광마대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익히 아는 탓이었다.

다만 형법당 일 조장 전오는 전혀 긴장하지 않는 듯 태연히 조소만 머금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들이냐.”

도헌의 묵직한 음성에 황무석과 광마대원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도헌이 싸늘한 목소리로 명했다.

“물러들 나라.”

자질구레한 말 따위는 없었다.

스르륵.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던 광마대의 살기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황무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대주님.”

“뭐 하는 짓인가.”

“예?”

“소환장을 들고 왔다고 들었네. 한데 어찌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냐는 말이야.”

황무석은 당황했다.

“대주님. 저희는 그저…….”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지 말게. 우리는 다 같은 마인이야.”

“……죄송합니다.”

황무석의 마음을 도헌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이 행위는 분명 과했다.

도헌이 전오에게 사과했다.

“근래 워낙 날 선 훈련을 받아서 그런 모양일세. 실례했다면 내 사과하지.”

전오가 비릿한 어조로 말했다.

“광마대의 힘이 육대 중 제일이라더니 과연 남다르긴 남다른 모양입니다. 어디 기죽어서 돌아다니기나 하겠습니까?”

황무석의 눈이 살짝 충혈되었다.

저리 대놓고 이죽거리다니. 조직이 다르다 한들 일개 조장이 보일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헌은 침착했다.

“애들에게는 따로 잘 말해 놓도록 하지. 해서, 어인 일인가?”

호가호위도 정도가 있는 법, 이렇게까지 나오면 전오로서도 더 뻗댈 수 없었다.

입맛을 다신 전오가 제법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으셨다시피, 상부에서 소환장이 내려왔습니다.”

도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법당이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이상하군. 다른 조직은 몰라도 형법당에 끌려갈 만한 일을 저지른 적은 없는데.”

“저희는 명령받은 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상부에서 아무 조사도 없이 소환장을 발부할 리는 없으니, 대주님께서는 응당 이에 따르셔야 할 것입니다.”

도헌의 눈이 깊어졌다.

두 사람을 보던 황무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내용을 말해 주시오.”

그러나 전오는 황무석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명백한 무시였다.

황무석의 볼이 살짝 떨려 왔다.

“내용을 말해 주시오! 당사자를 소환하는 경우 그 내용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 않소!”

도헌을 전적으로 믿기에 대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도 당당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전오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도 대주님과 얘기 중일세. 부관은 끼어들지 말도록.”

“뭐라?!”

황무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형법당의 위세가 아무리 대단해도 전오는 조장이었다. 조장 중 최고 선임인 일 조장이라도 정예 전투 부대의 부관에게 이리 하대를 하는 것은 지나치게 경우가 없는 일이었다.

‘이 자식이.’

평소라면 울컥하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마기를 내뿜었을 것이다. 모욕당한 와중에도 그가 기를 조절하는 것은 전부 도헌 때문이었다.

그때, 도헌이 입을 열었다.

“내 부관의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진 않네. 소환 당사자에게 아무런 내용도 알려 주지 않는 것은 규범 위반이야. 자네들이 더 잘 알 텐데.”

전오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차피 가게 되실 거, 괜히 시간 끌 필요 있겠습니까?”

“자네들은 시간이 아깝다고 필요한 절차도 다 던져 버리나? 그런 이들이 형법당에 우글거리고 있다면 누가 형법당의 처사를 믿겠는가?”

“믿고 안 믿고는 우리가 신경 쓸 바가 아닙니다만.”

“그래서 끝까지 절차를 무시하겠다?”

전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가소롭기 그지없다는 표정이었다. 형법당의 위세가 대단하다 한들, 감히 육대의 대주 앞에서 지을 만한 표정은 아니었다.

훅!

황무석의 몸에서 기어이 살기가 흘러나왔다. 끝까지 손을 쓰진 않았지만, 치미는 살심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

전오의 표정이 살짝 경직되었다.

점점 더 진해지는 황무석의 살기, 그를 제지하지 않는 도헌.

그러자 뒤에 도열한 광마대원들에게서도 조금씩 살기가 일기 시작했다.

공포와 광기, 살의는 전염성이 강한 법.

조금 전 그랬듯, 평소 성품이라면 당장 대원들을 물릴 도헌이 지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정말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모가지 꼿꼿한 자식.’

내심 욕설을 뱉은 전오가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외성 투마장에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광마대주께서 아무 허가도 없이 운용 중이던 투마를 빼돌리셨다고요.”

도헌의 눈이 가늘어졌다.

황무석은 살기를 유지하면서도 내심 깜짝 놀랐다.

‘어떻게?’

투마장의 장주는 그간 숱한 비리를 저질러 왔다. 돈을 받고 투마를 거래하는 것은 그의 뒤 구린 기록 중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당연히 그 사실은 형법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를 소환하지 않는 것은, 형법당에도 별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한데 이런 일로 소환장까지 발부되다니?

도헌이 물었다.

“투마장주가 그러던가?”

“신고가 들어왔고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으며, 과정에 부당한 점도 없다고 판단되어 상부에서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더 이상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도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부에서 그리 판단했다면 어쩔 수 없지.”

전오가 그것 보라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도헌이 황무석에게 말했다.

“형법당에 다녀오겠네. 대원들 훈련은 제때 시키도록 하게.”

“대, 대주님!”

“이만 물러나게. 별일 없을 것이네.”

다독이는 듯 차분한 어조에 황무석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였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투마장 얘기가 나온 순간, 그가 떠올린 사람은 이천상이었다.

황무석은 울컥 치솟는 화를 누르려 애썼다.

도헌의 행위를 떠나, 고작 투마 한 놈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한다는 사실 자체가 화가 났다. 대체 그깟 놈이 뭐길래 대주님께서 이 봉변을 당하셔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화가 난다고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황무석이 대원들을 수습하여 물러났다.

그들을 가만히 보던 도헌이 전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각 안에 나오겠네. 잠시 기다리도록 하게.”

전오가 눈살을 찌푸렸다.

“소환장을 확인한 즉시 가셔야 합니다. 혹시 모를 증거 인멸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걸 대주님께서도 아실 텐데요?”

“죄가 맞나?”

“예?”

“죄가 분명하다면 이 자리에서 분명한 죄라고 밝혔을 터. 형법당에서 얼마나 지낼지 모르니, 부대가 잘 굴러가도록 내 나름의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대주님의 사정입니다. 저희 형법당이 이해해 줘야 할 이유가…….”

“몇 조 조장이지?”

“예?”

“이 조장인가? 아니면 삼 조장?”

전오의 얼굴에 생생한 불쾌감이 떠올랐다.

형법당의 일 조장이라면 당주와 부당주, 그리고 몇몇 특수 위사들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계급이었다. 심지어 일 조장이 된 지도 꽤 오래되었거늘, 이 작자는 자신의 계급도 모른단 말인가.

“일 조장입니다.”

“이름은?”

“제 이름까지 궁금하신 것입니까?”

“이보게, 일 조장.”

“말씀하십시오.”

스륵.

순간 전오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도헌이 자신의 코앞까지 도달한 것이다.

도헌의 키와 덩치는 전오보다 컸다. 그런 그가 코앞에서 내려다보니, 자연히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

마기도, 살기도 없는 시퍼런 안광.

전오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저, 전오라 합니다.”

“그래, 전오.”

도헌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날이 좋네. 자네들도 과중한 업무에 제때 쉬지도 못할 터인데, 준비를 마치는 동안 바람이나 쐬고 있게.”

“…….”

“시간을 어기진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도헌이 뒷짐을 진 채 등을 돌렸다.

전오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졌다. 조원들이 보는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방금 하신 일련의 행동들, 전부 상부에 보고될 것입니다!”

도헌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흔들었다.

끓어오르는 치욕에 전오가 이를 악물었다.

거처로 들어온 도헌은 몇 가지 서류를 정리하고 준비한 훈련 목록을 확인했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고작 차 몇 모금 마실 시간도 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대강 준비를 마치고, 도헌은 황무석을 호출했다.

“혹 내가 늦게 돌아오면 여기 적힌 대로 훈련을 실시하게.”

황무석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대주님. 이건 분명 형법당주가 꼬투리를 잡으려 드는 수작입니다. 지금 가시면 위험합니다.”

“꼬투리라니?”

“예?”

도헌이 피식 웃었다.

“투마장에서 투마를 빼 온 것은 사실이 아닌가? 꼬투리 이전에 분명 죄는 죄지.”

“대, 대주님!”

“또한, 이 소환에 거부하면 더 큰 피를 보게 될 것이네. 나는 물론 자네들까지 전부.”

“…….”

“피할 수 없는 벼락이라면 당당하게 정면 승부를 택해야지.”

“대주님…….”

자리에서 일어난 도헌이 장포를 걸치며 말했다.

“당분간 부대를 부탁하겠네.”

집무실에서 나간 도헌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바로 이천상이 거주하는 별실이었다.

“일이 좀 복잡하게 되었네.”

도헌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제아무리 형법당주라도 고작 그 정도 죄목으로 육대의 대주를 옥에 가둘 수는 없네. 기껏해야 보름쯤 괴롭히다가 감봉 처리나 당하겠지.”

“…….”

“비급은 다 외웠나?”

“외우고 태웠소.”

“잘했네.”

도헌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 거하며 마공을 익히고 있게. 차라리 잘되었어.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으니 무공을 돌아보는 것도…….”

“확신하시오?”

“음?”

“확신하느냐 물었소.”

“무엇을 말인가.”

이천상의 어조는 언제나처럼 단조로웠다.

“형법당주가 당신을 옥에 가두지 못하리라는 것, 확신하느냐 말이오.”

도헌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럴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하지만 확신하느냐고 묻는다면, 명백히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잠시 침음하던 도헌이 입을 열었다.

“설령 옥에 갇히더라도 외부에서 날 빼내려 할 걸세. 그것만은 분명해. 길게 봐도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을 걸세.”

“그 한 달 동안 광마대의 분노는 쌓일 대로 쌓이겠군.”

“……?!”

도헌의 눈이 커졌다.

이천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짐작이 틀렸소? 그간 봐온 유대감을 보면 충분히 그럴 것 같은데. 상하 관계가 끈끈한 조직들은 대부분 그런 것 아니었소?”

“……아니, 자네 말이 맞네.”

“역시 그렇군.”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광마대에 들어가는 것은 포기하겠소.”

“이보게.”

“이전이었다면 모를까, 나까지 연관되었다면 굳이 광마대로 들어갈 필요가 없소.”

“나를 믿지 못하는가?”

“믿음은 모르겠지만, 당신에게 무리가 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소.”

“이 사람아!”

그때, 이천상의 눈이 빛났다.

무감하기 그지없기에 도리어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도헌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이한 안광이었다.

“내게 생각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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