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7화. 야차행(夜叉行) (2)
광마가 형법 아래로 들어간다.
참으로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물끄러미 도헌을 바라보던 공무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
“물론 사사로이 광마대를 쓸 수는 없을 것이오. 주변에 보는 눈들도 있고.”
“……?”
“그러나 내가 당주의 사람이 되면, 당주께서 나아가실 앞날에 든든한 도움이 되지 않겠소?”
공무외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기억과는 다른 분위기라 의아했는데, 설마 이런 전개로 흐를 줄이야.
“내 사람이 되겠다고 하셨는가?”
“그렇소.”
“자네가?”
“안 되는 것이오?”
멍하니 도헌을 보던 공무외가 이내 홍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하!”
조사실 전체가 떨릴 정도로 우렁찬 웃음이었다.
“오늘 아주 여러모로 놀라게 되는 날이로군. 근래 들어 이처럼 유쾌한 날이 또 있었나 싶으이.”
한참을 웃던 공무외가 웃음을 딱 멈추었다.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아까까지의 여유는 어디로 갔는지, 도헌을 보는 그의 얼굴은 지독하게 음험했다.
“장난 아니오.”
“자네 성격, 알 사람은 다 알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까지 할 정도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군. 그런 말장난에 속아 풀어 줄 만큼 난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네.”
“이전까진 그랬소.”
“뭐?”
“이전까지는 참 만만했더랬소. 그래서 당신이 싫었소. 실력도 없는 주제에 뭘 믿고 그리 오만방자한지 도통 알 수가 없었소.”
솔직한 평가인지는 모르겠지만, 공무외의 입을 닫게 만들기는 충분한 발언이었다.
도헌이 공무외를 바라보는 눈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더는 만만해지지 않게 되었잖소?”
“……호오?”
“일개 당원에서 육 년 만에 형법당의 수장이 되었소. 능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오.”
그건 사실이었다.
아무리 신교가 썩었다고는 해도 형법당 같은 중요한 조직의 수장 자리를 꿰차려면 최소한의 능력 증명은 해야만 했다.
온갖 뇌물과 비리라는 오물로 점철된 자리지만, 형법당주로서 기량이 아예 없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 자리에 앉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당주직을 차지한 연후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상하군.’
도헌을 바라보는 공무외의 눈에 숨길 수 없는 의아함이 떠올랐다.
‘정말 내 밑으로 들어오려 함인가?’
규범과 법도를 중시하는 성격.
천성이 온화하지만 공사 구분은 확실한 자. 외전 말단 조직원으로 들어와 압도적인 기량으로 숱한 공을 세워 불혹이 되기도 전에 육대의 대주가 된 기재.
도헌은 상부에 아무 인연도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다.
이 정도 능력자는 당금 신교에서도 절대 많지 않다. 실질적으로 내전, 외전의 모든 전투 부대를 통틀어 다섯을 넘지 않을 터였다. 그 정도로 대단한 자였다.
당연히 도헌을 보는 상부의 시선은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그 흐름을 좇지 못하는, 지나치게 완고한 태도가 문제였다.
지금에 와서 사람들은 도헌을 그저 한때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기재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물론 광마대주라는 직책 자체는 충분히 대단했지만.
‘그런 인간이 갑자기 이리 태도를 바꾸었다?’
공무외의 미간이 살짝 조여졌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리가 없다.
육대의 대주 중 셋이 자신과 사적 친분을 가졌다. 그들이 평가하는 광마대주는 예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나마 흑마대주 소공과 친하다고는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친분에 불과할 뿐이었다. 소공은 그릇이 작고 성격이 독특해서 광마대주 말고는 친구도 없었다.
다시 말해 눈 밖에 난 사람들끼리 교분을 나누는 정도였다.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하기에는 지닌바 세력이 너무 조촐했다.
“의심할 거라고 생각했소.”
“음?”
“당주 앞에서 언제나 고개 빳빳이 들고 다녔던 내가, 갑작스레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으시겠지.”
공무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심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대놓고 자신의 상태를 꿰뚫어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내게는 함께할 사람이 없소. 사적 친분이라고 해 봤자 소 대주 정도인데, 솔직히 무언가를 기대하기에는 지나치게 소갈머리가 없는 위인이외다.”
“……허어.”
공무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작자가 정말 내가 아는 그 도헌이 맞나?’
공사 구분 확실한 성격만큼이나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정평이 난 도헌이었다.
한데 아무리 상황이 나쁘다 한들 친구인 소공더러 소갈머리 없는 위인이라니.
도헌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이제 지쳤소.”
“지쳤다?”
“개인의 실력과 실적만으로 오르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았소.”
“그래서 줄을 잡아 보시겠다, 이건가?”
“당주께서는 평생 형법당주로 지내실 생각이오?”
“물론 그렇진 않네.”
“나도 마찬가지요. 상부에서 날 어떻게 보는지 모르지 않소. 쓸 만한 칼잡이가 쥔 칼에 피가 말라서는 아니 되는 법. 그분들께서는 나를 죽을 때까지 야전의 칼잡이로 두실 것이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전신마 조백천이 교주 위에 오른 이후 신교의 힘은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약해진 지금으로도 중원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 이상 약해지는 것은 교주도, 수뇌부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원치 않기만 할 뿐,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지금 신교가 천국과도 같을 것이다. 과거의 답답한 법도와 자긍심 따위는 족쇄에 불과했다. 손만 뻗으면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손에 넣을 수 있는데 정세에 신경이나 쓰겠는가.
해서 더더욱 도헌 같은 능력자가 필요한 것이다.
천국의 쾌락은 내 손에, 천국을 지켜 줄 무사들은 주변에.
일개 칼잡이를 같은 자리에서 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사람이오. 남들만큼의 권력욕은 없지만, 죽을 때까지 야전 부대의 수장으로 남고 싶은 생각은 없소.”
공무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올라가고 싶은 것인가?”
“본교의 모든 마인이 그러할 것이오.”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네. 꿈을 품는 거야 자유지만, 모두가 그걸 이루는 세상이라면 세상은 진즉 난장판이 되었을 걸세.”
이미 눈 뜨고 보기 힘든 난장판이다.
도헌은 저도 모르게 울컥 올라오는 말을 씹어 삼켰다.
“말했듯 내게는 정점으로 오르고 싶은 욕망까지는 없소. 그저 평생 대주로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을 뿐이오.”
“다들 시작은 그렇지. 하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다 보면 내전 단주직을 보게 되고, 원주직을 보게 되네.”
“당주께서 알아서 제어해 주시오.”
“제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내가 욕심을 부린다면 연줄을 동원해 계급을 강등시키거나 쫓아 버리면 되지 않소?”
“……!”
도헌이 눈을 감았다.
“그 정도 능력이 있음을 알기에, 당주와 함께하고 싶은 것이오. 그런 것 없이는 나를 대주 자리에서 끌어올리지 못할 테니까.”
공무외의 표정이 점점 묘해졌다.
‘이자, 진심인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도헌의 성격은 유명했고 실제로 겪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점점 도헌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평생을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서 있던 인간도 거대한 권력 앞에서는 끝내 잘 익은 벼가 되는 건가.’
공무외는 도헌이 싫었다.
그의 뻣뻣한 성격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눈빛이, 너희와 나는 다르다는 듯 보여 주는 일련의 행동들 모두가 싫었다.
심지어 그와 한차례 대립할 때면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다독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비웃음을 흘렸다. 감히 도헌에 비할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주둥이를 모조리 닫게 만든 것이 바로 자신이다.
그래서 이러한 방식을 신봉했고, 덕분에 형법당주 자리까지 올랐다.
한데 그 혐오하고 증오했던 광마대주가 자신의 밑으로 기어들어 온단다.
‘희한하군.’
도헌이 막상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자, 공무외는 알 수 없는 허망함을 느꼈다.
‘결국 사람은 다 똑같다.’
도헌은 이래서는 안 되었다. 자신의 권력 앞에서 철저히 당한 후, 비참한 말로를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도헌은 고개를 숙였고, 공무외는 그의 행동에 분노하면서도 그 이상의 기쁨과, 그 기쁨을 넘어서는 허무함을 느꼈다.
‘나는 이 정도 남자를 짓누르기 위해 그리도 이를 갈았던 것인가.’
공무외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나도 아직 멀었구먼.’
지금껏 형법당주직에 오르면서 수많은 마인의 삶을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결국 도헌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다만 남들보다 더 오래 버텼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하면 왜 그리 뻣뻣하게 굴었나?”
“무슨 말씀이시오?”
“얌전히 청귀승에 포박당하고, 수사관의 조사에 담담히 응했다면 자리가 훨씬 유연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도헌이 고개를 저었다.
“시간을 오래 끌고 싶지 않았을 뿐이오.”
“고작 그 이유였나? 정녕 나와 함께하고 싶었다면 이쪽 행사를 무시해선 안 되었어.”
“그랬다면 당신은 나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오. 지금과 똑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해도 끝까지 나를 의심했을 것이오.”
“호오.”
도헌이 눈을 떴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흐린 두 눈을 보며 공무외의 마음도 크게 흔들렸다.
“투마 무단 반출, 조장을 향한 모욕, 수사 협조 방해. 그 모든 죄를 지금 이 자리에서 없는 것으로 만드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소.”
“…….”
“그 정도도 못 하는 사람이라면, 있는 죄 없는 죄 다 추가해서 옥으로 보내시오.”
공무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것이 바로 도헌의 특별한 점이었다.
도헌의 천성은 부드러움이 아니다. 당당함이다.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겠다 하면서도 내 위에 설 사람의 능력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능력이 확실하다고 판단하면, 더 이상 뒤를 보지 않는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거슬렸던 그 당당함이, 지금에 와서는 크나큰 감명을 주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은가?”
“밖에서는 많이 봤소. 그러나 내게 실감을 주지는 못했소.”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로군.”
“당주께서도 동하신다면, 이 순간이 그 순간이외다.”
“하하하!”
공무외가 웃음을 터트렸다.
진심이 담뿍 담긴, 기쁨으로 충만한 웃음소리였다.
“물론 내게는 그럴 능력이 있네. 이곳은 나의 왕국이야. 누구도 내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지.”
“…….”
“다만, 그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나름의 성의가 필요하지 않겠나?”
도헌은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일어났다.
의자를 밀어젖히고 세 걸음 옆으로 걸어간 그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
공무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도 가치 있는 행동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도헌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함과 동시에 완전한 패배를 인정했다.
잠시 침묵이 어렸다.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공무외가 도헌 앞으로 가서 섰다.
“고개를 들게.”
고개를 든 도헌의 눈에 손을 뻗은 공무외의 모습이 보였다.
엄숙하면서도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 화려한 팔찌가 주렁주렁 매달린 손.
“다시 없을 성의, 잘 받았네.”
도헌이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공무외가 웃으며 그의 양어깨를 잡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었군. 이런 결과는 예상치 못했지만, 자네를 무너트리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이 되었다네.”
“……감사합니다.”
말투까지 바뀌었다.
공무외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천금을 손에 넣었을 때보다도, 아리따운 여인과 밤을 지새웠을 때보다도 훨씬 더 큰 쾌감이었다.
“하하하하!”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트리는 승자의 환희.
그 모습을 보는 도헌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잠시 후.
“이런, 오늘처럼 기쁜 날 조사실 같은 칙칙한 곳에 있으면 안 되지. 도 대주의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나?”
“영광입니다.”
“좋네, 좋아. 오늘은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 보도록 하세.”
“물론입니다.”
“그 전에.”
“……?”
“처리할 건 처리하고 가야겠지. 이왕이면 뒤가 깔끔한 게 좋으니까.”
“무슨 말씀이신지요?”
공무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투마장에서의 일, 그거 어떻게 된 건가?”
도헌의 눈에 기광이 스쳤다.
진짜 승부수를 띄울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