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8화. 야차행(夜叉行) (3)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이천상의 모습은 묘하게 엄숙했다.
우우웅.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오로지 이천상만이 들을 수 있는 마기의 떨림.
‘된다.’
하단전을 꽉 채우고 있는 마기가 연기처럼 일렁이며 조금씩 회전했다.
형태는 사막의 용권풍과 비슷했지만, 속도는 그보다 몇 배는 느렸다.
진기의 회전. 단전이 단련되지 않은 자에게 이러한 짓은 위험하다. 자칫 기가 튀기라도 하면 영글지 못한 단전이 찢어질 수도 있는 행위였다.
하지만 이천상은 거침이 없었다.
한번 하겠다면 한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극도의 집중력. 단전이 찢어지지 않도록, 기가 역류하여 내상을 유발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진기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우웅. 우우웅.
시간이 지날수록 회전 속도가 올라갔다. 그럴수록 하복부가 묵직해졌다.
회전은 움직임이고 움직임은 곧 힘이다. 마치 공기가 팽창하듯, 진기가 조금씩 그 밀도를 높여 나갔다.
밀도가 높아졌다 한들 그것은 한순간에 불과했다. 회전력이 풀리면 기의 밀도도 천천히 본래대로 돌아온다.
이천상이 바라는 것은 밀도 높은 진기가 주천(周天)을 할 동안 힘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강한 회전이 필요했다.
우우우웅!
반 시진이 지나자 회전 속도가 처음에 비해 두 배로 올라갔다.
뚝. 뚝.
이천상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볼을 타고 턱에 맺혔다. 턱에 맺힌 땀방울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발치로 떨어졌다.
회전력이 힘을 생성하고, 그 힘은 곧 열로 바뀐다. 별실 안의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조금 더.’
이 정도로는 모자라다.
그것은 직감이었다.
‘조금 더 빨리.’
우우우웅!
순간 단전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천상은 침착하게 그 통증을 바탕으로 상태를 분석했다.
‘버틸 수 있겠군.’
아픈 건 아픈 것이다. 그것이 금성철벽과 같은 정신을 흔들지는 못한다.
언제나 그랬다.
야생 맹수들의 앞발이 몸을 할퀼 때도, 투마장에서 칼을 맞을 때도 그는 냉정했다. 냉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슬아슬하지만 괜찮아.’
이천상은 회전력을 높였다.
우우우우웅!!
한순간 회오리치는 진기의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울컥!
솟구치는 힘의 발산에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토악질이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
이천상은 그마저도 억눌렀다. 여기서 자세를 풀거나 입을 열면 지금껏 해 왔던 일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간다.
심지어 내장 전체가 망가질 위험이 있었다. 죽는 것은 사양이었다.
‘더.’
우우우웅!! 우우우우웅!!
‘더.’
번쩍!
순간 이천상의 하복부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명백한 빛이지만 그 명도가 몹시 낮았다. 빛인데도 어둡다는 느낌이 드는, 마(魔)의 광채였다.
이천상이 눈을 떴다.
스르륵.
한 점으로 모인 마기가 순식간에 혈도를 따라 전신을 돌았다.
지금껏 익힌 진마공의 운공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기기묘묘한, 자칫 집중을 놓으면 시전자조차 길을 잃을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투둑!
이천상의 왼팔이 움찔거렸다.
투두둑!
어깨와 목을 지나 반대편 손을 휘감던 진기가 번개처럼 상체와 하체를 오가기 시작했다.
이천상의 몸이 연신 움찔했다. 어떨 때는 가슴이, 어떨 때는 등이, 어떨 때는 두 다리가 떨렸다.
마치 근육이 경련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그러나 그것은 근육이 아닌, 막힌 혈도를 뚫는 밀도 높은 마기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날카롭다.’
혈도를 뚫을 때마다 커다란 바늘이 여린 살갗을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한 통증이 몸 곳곳에서,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서너 번 치솟았다.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버티기 힘든 고통이었다.
주르륵.
이천상의 입술 밖으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치이익.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창밖으로 새어 나갔다. 그간 이천상의 체내에 박혀 있던 탁기가 기화된 것이다.
그리고.
번쩍! 번쩍!
주천의 속도가 빨라졌다.
한차례 주천이 성공하자, 점차 밀도를 낮추던 진기가 힘을 받아 더 밀도를 높였다. 한층 강화된 밀도의 진기는 이전보다 빠르게 주천을 마쳤고, 주천을 마친 기는 또다시 밀도를 높였다.
더 강하게, 더 깊게, 더 빠르게.
연이은 주천으로 힘을 불린 진기는 본래 갖고 있던 마기의 순도를 한참이나 넘어선 상태였다.
부르르르.
이천상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추위를 느껴서가 아니었다. 힘을 불린 마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몸이 더는 안 된다고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더 진행하다가는 근골이 찢어질 수도 있는 판국.
이천상은 생각했다.
‘세 바퀴는 더 돌릴 수 있다.’
통증은 느끼되, 위기를 느끼지는 않는다. 극한의 극한으로 쥐어짠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번쩍!
‘한 바퀴.’
번쩍!
‘두 바퀴.’
이천상이 눈을 감았다.
땀에 젖은 이마에 어느새 굵은 혈관이 툭툭 불거졌다.
‘……세 바퀴.’
쾅!
순간 거대한 쇠망치에 성벽이 부서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
이천상은 어느새 바닥에 엎어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기절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한순간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었다 해도 의지가 있다면 몸은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있었을 것이다. 거대해진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몸이 알아서 자세를 풀고 자연스럽게 힘을 빼 버린 것이다.
“…….”
땅을 짚고 일어서니 일순 몸이 몇 배나 가벼워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치이이익!
강한 열기와 함께 몸 곳곳에서 반투명한 연기가 솟았다.
“성공했군.”
나직이 중얼거리며, 이천상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외양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 보였다.
원래도 작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 한 치는 더 커진 것 같은 키.
햇볕에 검게 탄 피부가 조금은 하얗게 변했고, 몸 곳곳을 장식했던 칼자국과 짐승의 발톱 자국들이 희미해졌다.
다소 말랐던 몸 역시 약간은 더 두툼해진 것 같았다. 근육이 늘어났다기보다는 골격 자체가 커진 듯했다.
신체 전반이 조금씩 조정되었다. 막강한 마기를 담아내기 위해, 그 기가 자아내는 힘의 부담을 받아 낼 수 있도록 몸 자체가 성장한 것이다.
빈말로도 환골탈태라 할 수는 없지만,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좋은 방식이야. 앞으로도 써먹을 수 있겠어.’
본래부터 하단전이 열려 있었던 그는 누구보다 빨리 진마공을 연성할 수 있었다.
축기의 시간도 빨랐고, 단전이 안정적이라 기의 출입이 과격해도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진기를 회전하여 밀도를 높인다는 발상은 그의 수준에서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발상력만 따지자면 어지간한 절정고수의 노련함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고수도 이와 같은 방식을 떠올렸다 한들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체외가 아닌, 오장육부가 몰려 있는 곳에 기를 회전시키면 신체 활동의 근원인 내장이 파괴될 위험이 있다.
원초적 감정인 공포를 배제할 수 있는 그이기에 이와 같은 방식을 쓴 것이다.
위험했지만, 얻은 것은 그만큼 컸다.
우두둑!
천천히 몸을 움직이니 곳곳에서 뼈가 뒤틀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시원했다. 골격의 미세 조정 이후, 몸을 풀며 변화를 자각하는 그였다.
‘사람의 몸은 적응이 빠르군.’
이 이상 진기의 밀도가 높아졌다면 몸이 적응을 포기하고 무너져 버렸을 터. 그 한계를 정확하게 계산한 이천상은, 지금 수준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몸을 얻었다.
점진적인 수련으로는 불가능했을 신체의 발달. 급진적인 변화로 알아서 신체가 변형된 지금.
‘일어나라.’
화르르륵.
이전과는 명백하게 다른 마기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기처럼 부드러웠던 진마공의 마기와는 달리, 끌어내는 순간 불꽃처럼 타오르는 마기가 있다.
이전보다 훨씬 더 거세고, 훨씬 더 단단하다. 그러면서도 주인의 명령이 내려지면 진마공의 마기보다도 부드럽게 흩어질 유연함마저 갖추었다.
이천상이 손을 들었다.
후욱!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기.
그 무형의 마기가 손에 몰리자 별실의 온도가 더더욱 올라갔다. 마치 큰불이 일어난 듯한 열기였다.
이천상의 눈에는 보였다.
주인의 눈에만큼은 확실한 실체를 드러내는 황금빛 마기가.
수많은 야차와 나찰을 이끌던 천왕이 마(魔)에 홀려 악귀처럼 아우성치는 모습이, 그의 손바닥 안에 담겨 있었다.
금강야차마공(金剛夜叉魔功)의 발현이었다.
‘제대로 다루려면 시간이 필요해.’
단 한 순간에 몇 단계를 건너뛰어 버렸다. 무공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불가능하다며 손을 저을 위업이었다.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한참 손을 내려다보던 이천상은 문득 누군가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금강야차마공의 마기는 진마공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고차원적 진기다. 거기에 막 발달을 마친 육체가 오감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이전보다 더 기민하게,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몸.
훅.
이천상이 마기를 수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안에 있나.”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고 황무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법…….”
말을 하던 황무석은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방 안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열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너, 이곳에서 뭘 한 거냐?”
“무슨 일이오?”
대답 없는 반문이었다.
황무석의 표정이 살벌해졌다. 대주께서는 이놈을 애지중지하는 모양이지만, 그는 아니었다. 그에게 이천상은 대주에게 치욕을 준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나와라. 형법당에서 사람이 왔다.”
이천상의 눈이 번쩍였다.
‘성공했군.’
자신은 마공을, 도헌은 현실을.
이천상이 무뚝뚝하게 황무석을 지나쳐 걸었다.
자신의 곁을 지나칠 때, 황무석이 말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걸음을 멈춘 이천상이 황무석을 돌아보았다.
살기는 없었지만, 생생한 분노가 엿보이는 눈빛이었다.
왜 자신에게 화를 내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어지간한 일은 공감을 못 할지언정 이해라도 할 텐데, 지금 상황은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천상은 말없이 황무석을 바라보았다.
황무석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나!”
분노와 짜증이 섞인 일갈에도, 이천상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
완전히 일그러진 황무석의 얼굴이, 이내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뭐야.’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이천상.
빈말이 아니라 눈 하나 깜빡이지를 않는다. 너무나도 무감하여 투명하게까지 보이는 그 눈으로 빤히 바라보는데, 그게 묘하게 불쾌하고 불편했다.
황무석이 소리쳤다.
“뭘 보고 있어! 당장 나가!”
이천상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겠군.”
그 말을 끝으로 이천상이 몸을 돌려 나갔다.
그 탄탄한 등을 노려보던 황무석이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정말 재수 없는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