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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9화 (669/774)

외전 19화. 야차행(夜叉行) (4)

전오의 행동은 도헌 때와 너무나도 달랐다.

경직된 얼굴, 부드럽지 못한 걸음걸이만으로도 그가 잔뜩 긴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내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헌에게 모욕을 주었던 게 한나절 전이었다. 하지만 이천상을 데리고 갈 때는 최단 경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 같으신 당주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뭔 일이야?’

광마각 별실에 있는 투마를 데려오라.

그 명령을 받았을 때 전오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주가 도헌의 약점을 잡았다고 여겨서였다.

하지만 공무외의 뒤에서 나오는 도헌을 보고.

그런 도헌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공무외를 보고.

그리고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이는 도헌을 보고, 전오는 일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나아가 도헌이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봤을 때, 전오는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설마 손을 잡은 건가?’

그럴 리는 없다.

형법당의 위세는 내전에서도 손에 꼽힌다. 경우에 따라서는 삼원 조직의 수장들마저 애걸복걸하게 만드는 곳이 형법당이었다.

신교의 대표 조직은 이궁일부(二宮一部)와 삼원(三院), 사군육대(四軍六隊)와 십단(十團)이다. 그 안에 형법당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러한 조직에서 동떨어져야 할 만큼 중요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황에 따라 다르다지만, 일개 당주가 삼원의 원주급 인사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규격 외였다.

그런 형법당의 수장과 일개 전투 부대의 수장이 손을 잡아?

‘그럴 수가 없지. 수직 관계는 될 수 있어도 수평…….’

순간 전오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걸음마저도 멈춘 채였다.

‘……도헌이 당주님 밑으로 들어갔다?’

그때, 이천상이 불쑥 입을 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소?”

전오는 깜짝 놀랐다. 그 말이 마치, 광마대주가 형법당주 밑으로 들어가는 게 이상한 일이냐고 묻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아닐세.”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전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설마…… 아니겠지.’

공무외는 제 사람을 누구보다 아끼는 이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원칙이 존재한다.

쓸모가 있는 자.

어떤 식으로든 쓸모를 인정받은 자만이 그의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쓸모의 정도에 따라 가치를 재단하고, 그 가치가 높을수록 총애의 정도도 달라진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만약 정말로 도헌이 당주 밑으로 들어갔다면, 그의 가치가 자신보다 상위라면. 그래서 그에게 모욕을 준 자신을 쳐 내길 원한다면.

그렇게 되면, 당주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도헌은 당주님 밑으로 들어갈 성격이 아니야. 설령 그랬다 한들 형법당 조직원을 제거하자는 막말을 할 정도로 머리가 나쁜 사람도 아니지. 그래 봤자 손해 보는 것은 자신일 테니.’

정확한 판단이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왜 이리 불안한 것일까?

만약 정말로 도헌이 마음을 고쳐먹었다면 공무외가 그리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뛰어난 ‘종’이 아닌 좋은 ‘부하’가 될 테니까.

그리고 어쨌거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부탁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불길한 목소리가 들렸다.

“감정은 이성보다 우위에 거하는가…….”

작디작은 목소리였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하지만 전오는 화들짝 놀라 이천상을 돌아보았다.

걸음을 멈춘 이천상이 빤히 전오를 주시했다.

왜 돌아보냐며 묻지도 않는다. 그저 한 번의 깜빡임도 없는 투명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전오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

왠지 모를 오한에 진저리를 친 전오가 다시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내가 너무 과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거야. 설령 도헌이 당주님과 함께한다 한들, 내 자리를 위협할 만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애써 불안감을 다독이는 전오. 그런 전오의 등을 보는 이천상의 눈에 한 줄기 의아함이 어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천상은 금강야차마공의 법문을 해석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칠정(七情)이란 인간의 오관(五官)에서 비롯되었다.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지 못하면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慾)은 실체 없는 허상으로 남는다.’

금강야차마공은 마공이나, 그 유래는 불교의 신공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일까? 이천상은 법문을 해석하고 이치를 받아들이는 짧은 과정에서도 무수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중 욕(慾)은 다른 육정과 통하며 오욕(五慾)을 대표로 위(位)하나, 그 외에 수많은 욕망이 산재하며 그에 이르는 길은 팔만사천(八萬四千) 가지에 이르노니 귀히 쓰면 나를 지배하고, 천히 쓰면 일대를 망치며…….’

이천상의 투명한 눈빛 속에 형체 없는 송곳니가 드러났다.

‘다 버리면 세상을 빛으로 부수는 악불(惡佛)이 되어 만고의 저주를 받는다.’

욕망이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어하는 것이며, 완전하게 제어하는 단계에 이르면 더 큰 욕망을 품어 스스로를 이(理)에 던져 힘을 증대한다.

불가의 가르침을 악랄하게 재해석한, 오로지 힘을 얻기 위한 마공다운 이치였다.

이천상은 불가의 관점에서는 잘못된, 마공의 관점에서는 너무나도 훌륭하게 재해석된 금강야차마공의 법문을 하나하나 머리에 새겼다.

‘욕망.’

마(魔)는 곧 욕망이다.

욕망이 없이는 힘을 손에 넣을 수도, 무언가를 이룰 수도 없다.

인간이 욕망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면 세상을 빛으로 망치며,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 나가면 무아(無我)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이 거대한 욕망으로 마(魔)에 도달하면.

정녕 그 경지에 이르면, 천명(天命)에서 벗어나 삼세(三世)에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나에게는 욕망이 있는가.’

없다고 말하기 힘들고, 있다고도 말하기 힘들다.

확실한 것은 남들처럼 뚜렷한 오관을 갖고도 칠정(七情)이 분명하지 못하다는 것.

없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이질적이다.

잠시 깊게 감겼던 이천상의 눈꺼풀이 조금씩, 조금씩 올라와 이윽고 반개(半開)하였다.

그 모습이 마치 무아지경에 도달한 각자(覺者)의 명상 수행처럼 보였다.

‘욕망의 극은 이유 없는 결과에 도달함이다. 결과가 중하기에 이유는 홀대받으며 이유 없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나의 심신을 동(動)하게 하는 칠정의 극을 이루어야 한다…….’

형법당의 건물이 가까워질수록.

수미산 북방을 지키는 금강야차마저 물들인 올곧은 마(魔)에, 이천상은 더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 * *

“흐음, 그랬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자네도 대단하군. 하긴, 꼬리를 잡았을 때는 오히려 이게 맞나 싶었네. 자네는 언제나 뻣뻣하게 살 줄 알았거든.”

“그리 살았으니 예까지 도달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야지요.”

“허허허! 탁월한 통찰력이야. 이제 보니 자네 참 무서운 사람이 아닌가 말이야. 소위 처세를 아는구먼?”

“그전까지는 진심이었으니 처세라고 할 건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는 그래야겠지요.”

“당연하네. 자네가 자네다움을 잃으면 나도 슬플 게야.”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허허허.”

어느덧 공무외의 얼굴에는 호기심 대신 충만한 기쁨이 깃들어 있었다.

설마하니 고개 뻣뻣한 도헌과 조사실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눌 날이 올 줄 알았겠는가. 얼떨떨하면서도,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또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이 사람이라.

공무외는 점점 이 환경에, 도헌이라는 능력 좋은 수하를 휘하에 두게 된 현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당주님.”

조사실 밖에서 전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씀하신 투마를 데리고 왔습니다.”

“들이게.”

쿵.

날카롭고도 묵직한 소리와 함께 조사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으로 이천상과 전오가 들어왔다.

공무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오호?’

이천상을 보자마자, 그는 내심 깜짝 놀랐다.

‘이 녀석 봐라?’

어지간하면 인사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아량이라도 베풀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천상을 보는 순간 그의 몸을 감싼 마기부터 느꼈기 때문이다.

‘투마 출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투마장은 죄인을 포함, 마도무림에서도 막장 인생들이 활동하는 곳이다. 그런 만큼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애초에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견으로 써먹는 것이다. 죄인이어도 무공이 지나치게 강하면 투마로 보내지 않는다. 싸움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즉, 투마장 소속이라면 이제 갓 삼류를 벗어났다고 봐도 좋다. 아무리 뛰어나도 일류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놈은 어떤가?

‘마기의 질이 상당하다.’

수습되지 않은 마기가 은은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대체 어떤 마공을 익혔는지는 몰라도 꽤나 훌륭한 질이었다. 빈말로도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기질만큼은 능히 일류에 도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무외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투마장주는 바보가 아니지. 낭중지추를 도박판에 올려놓을 만큼 머리가 나쁘지 않아. 한데도 어찌 이리 날카로운가. 필시 도 대주, 자네를 만난 연후에 성장한 것이리라.”

공무외가 싱글벙글 웃으며 도헌을 보았을 때.

도헌 역시 이천상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너?’

우웅. 우우웅.

이천상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마기의 파동.

도헌이 저 마기의 정체를 모를 리가 없었다.

냄새로 치자면 묵직하고 맛으로 치자면 쓰고 텁텁하다. 대개의 마인들에게서 느껴지는 화려하고 사나운 기색 없이, 고요함 속에 웅혼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강력한 기질이 인상적이다.

두말할 것도 없었다. 저건 금강야차마공이 분명했다.

‘설마, 한나절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연성에 성공했단 말이더냐?’

그야말로 경악할 일이었다.

무공 비급은 읽고 해석한다고 곧장 몸에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쉬웠다면 무림의 사문(師門)이 그렇게 엄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이천상은 자신이 조사실에 불려 온 사이 금강야차마공을 완전히 제 것으로 삼았다.

하물며 이 정도 밀도라니?

‘대체 어떻게?!’

그때, 도헌은 자신을 보는 공무외의 시선을 인식했다.

짧게 헛기침한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놀랍군요.”

굳이 놀란 기색을 숨기려 들지는 않았다. 놀라야 마땅한 일이었으니까.

“음?”

“이 녀석에게 마공을 가르치긴 했습니다만, 이곳에 오기 전과 또 달라졌습니다. 성장이 무섭도록 빠르군요.”

“허허, 그런가?”

“예. 고작 어제까지만 해도 진마공을 익히고 있던 녀석입니다.”

공무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흔치 않은 인재 같아서 빼돌리려 했더니, 조사실에 잡혀 온 사이 가르친 걸 저 혼자 익힌 모양입니다.”

“……허어.”

공무외의 얼굴에 반신반의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비록 초일류는 아니지만, 그 역시 상당한 마공을 연성한 사람이었다. 무공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아는 것이다.

도헌은 빠르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인사드리거라. 이분은 형법당의 수장이신 공무외 당주님이시다.”

이천상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천상입니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행동도 뭔가 굳은 것처럼 어색했다.

하지만 공무외는 이천상의 무례함을 탓할 수가 없었다.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것이다.

도헌이 말했다.

“어떻습니까?”

“……?”

“저를 대신할 칼자루로 삼기에 나쁘지 않은 인재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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