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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20화 (670/774)

외전 20화. 야차행(夜叉行) (5)

대신할 칼자루.

물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공무외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네의 후임으로 키워 보자는 것인가?”

“정확히는, 당주님과 저 모두의 이익을 위해 힘을 실어 주자는 것이지요.”

도헌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읽을 수 없는 무심한 표정을 고수하는 그의 모습은 딱딱한 돌덩이를 깎아 만든 석상처럼 보였다.

“이 녀석에게는 재능이 있습니다. 하나, 세상에 무관심하여 권력욕이라는 것이 없지요. 다만 자신을 알아봐 준 사람을 위해 ‘본인’이라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만큼은 확실한 놈입니다.”

순간 이천상의 눈에 작은 광채가 어렸다.

‘권력욕.’

오욕은 색욕, 식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을 뜻한다.

권력을 향한 욕구는 곧 재물과 명예를 바란다는 뜻이다. 나아가 권력이란 실질적인 힘이라, 원초적인 색욕과 식욕을 충족시키기도 쉽다.

권력 하나만 제대로 쥐어도 욕 중 가장 상위에 있는 다섯 가지 중 네 가지를 손쉽게 풀어낼 수 있다.

사람들이 권력에 미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도헌이 웃으며 물었다.

“이 녀석을 제대로 키워, 저를 대신할 칼자루이자 우리만을 위하는 전가의 보도(寶刀)로 만들어 보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허어.”

공무외가 찬찬히 수염을 쓰다듬었다.

“자네가 반한 인재라…… 분명 어제까지 진마공을 연성하고 있었다면, 저 녀석의 재능은 대단한 것이야.”

“그렇습니다.”

“하나, 굳이 저 녀석일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대단한 재능이지만, 자네 휘하는 물론 내 휘하에도 쓸 만한 인재들은 아주 많다네.”

도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당주님. 제가 왜 이 녀석을 칼자루로 삼으려는지를 아십니까?”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닌가?”

“물론 그 이유도 있지요. 하나, 이 녀석은 제가 본 이들 중 가장 배신할 가능성이 적은 녀석입니다.”

공무외의 눈이 번쩍였다.

정작 당사자인 이천상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 능력 좋은 사람은 많습니다. 재능 넘치는 이들도 셀 수 없지요. 하나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 최악의 경우에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만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헌이 미소를 지었다.

“당주님께서 제 말에 혹한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제가 비록 많이 모자라지만, 한번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을 배신할 만큼 신의 없는 이가 아닙니다.”

맞는 말이었다.

도헌을 그렇게 싫어했으면서도, 자신과 함께함에 기뻐했던 이유가 바로 저런 성격 때문이었다.

능력 좋은 사람은 천지에 널렸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줌도 되지 않는다.

도헌의 그 말은, 너무나도 쉽게 공무외의 가슴에 꽂혀 들어갔다.

“자네 말이 맞네. 실로 맞는 말이야. 하나…….”

이천상을 보는 공무외의 얼굴에 미심쩍은 기색이 어렸다.

“고작 며칠 본 놈을 정말 믿을 수 있겠는가?”

“고작 며칠 본 것만으로도 키워도 되겠다고 확신을 주는 놈,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으음.”

도헌은 자기 눈을 못 믿겠냐는 둥, 안목이 그리 없냐는 둥의 자극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투마장에서 투마를 빼 온 것, 원칙대로라면 크지도 않지만 작은 죄라고 볼 수도 없지요.”

“……?”

“저 녀석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당주님께서 저를 잡으려 들지 않는다면 좋지만, 잡힌다면 무릎까지 꿇을 생각이었지요.”

“…….”

“저 녀석은 좋은 칼이 될 겁니다.”

도헌의 자신감은 진심이었다.

사람 보는 안목이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쪽 판에서 이골이 난 공무외였다.

의심은 생활이고 진심에는 언제나 한 푼의 거짓을 섞었다. 나름의 뒷배가 있었지만, 그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오른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봤을 때, 도헌은 진심이었다.

‘확신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공무외가 이천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 대주, 내 자네를 믿지 않아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아줬으면 하네.”

“물론입니다.”

“나는 자네의 가치를 알아. 그래서 자네를 믿네. 하나, 어디서 주워 왔는지 모를 칼이 보도가 될 것인지, 칼날받이 없는 칼이 되어 주인 손을 상케 하는 마물이 될 건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아니던가.”

“당연한 판단이십니다.”

“저 녀석, 어디 출신인가? 투마라면 좋은 집안 자식일 리도 없고……. 낯짝을 보아하니 뇌옥에서 굴러먹다가 차출된 놈도 아닌 것 같네만.”

신중하다.

도헌은 공무외가 저 정도로 신중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 역시 공무외를 협잡이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깐깐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천상은 달랐다.

- 내 출신을 묻거든 무조건 사실대로 말하시오. 흑마대주가 이가상단에서 날 데리고 왔다는 것을 숨기면 안 될 것이오.

- 설마 거기까지 가겠나?

- 나는 세상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건 알고 있소. 욕심 많은 사람일수록 신중하다는 것.

- ……!

- 형법당주 정도의 힘이라면 사람을 시켜 뒷사정을 알아내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오. 괜히 나 때문에 신뢰를 잃지 말고 무조건 솔직하게 나가야 할 거요.

- 그러다 자네가 다칠 수도 있네.

- 다치지 않을 거요.

- 확신하는가?

- 확신하오. 형법당주가 당신을 얻은 걸 기뻐하면 기뻐할수록 나는 안전하오.

- 으음.

- 이제 당신이 날 믿을 차례요.

도헌은 이천상에 대해 사실대로 말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두 사람 간의 깊은 신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투마장에 간 것도 이천상의 선택이 아닌, 자신이 직접 보낸 것이라고 둔갑시켰다.

아홉 개의 진실과 하나의 거짓을 섞어 완전해 보이는 ‘사실’로 탈바꿈하는 것.

공무외가 그렇게 잘 써먹던 수법을, 도헌은 본인도 모르는 새에 구사하고 있었다.

“허어?”

이천상에 얽힌 사연을 들은 공무외는 깜짝 놀랐다.

“제 양부를 죽였다고? 죽고 싶다 부탁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헌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것이 이 녀석이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주먹밥을 준 은혜를 갚기 위해 물어물어 이가상단까지 갔다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거늘…….”

“그렇기 때문에, 이 녀석은 믿을 수 있는 놈입니다.”

어쩐지 우기는 느낌도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니, 믿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비록 도헌이 직접 수하가 되겠다고 고개를 조아렸지만, 어쨌든 광마대주다. 그 직책이 지닌 영향력은 보통 대단한 게 아니었다.

멋진 수하를 얻기 위해선 수하의 기분을 다룰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속으로 계산을 마친 공무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빈틈으로 칼이 들어오지. 나는 언제나 신중할 수밖에 없었네.”

“예.”

“하나, 자네가 그 정도로 밀어줄 인재라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힘을 실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도헌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물론 공무외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른 기쁨이었지만.

공무외가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네. 자네 말대로 하겠네. 저 녀석 한번 잘 밀어줘 보겠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좋은 인재를 소개시켜 줬는데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그것이 아닙니다. 신중하신 분께서 더 따지지 않고 저를 믿어 주시는 것, 그것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공무외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알아줬다니 나도 고맙군. 내 자네를 귀히 쓸 것이네. 내가 올라가면 자네도 올라갈 것이니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공무외가 이천상의 어깨를 두들겼다.

“좋은 상관을 만났군. 앞으로 본교를 위해 큰일을 해 주게나.”

이천상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상대에게 신뢰를 준다는 것을, 이제 이천상은 잘 알고 있었다. 공무외가 연신 껄껄 웃었다.

“도 대주는 오늘 고생이 많았네. 이 녀석 데리고 먼저 주루로 가 있게나. 잔업 좀 처리하고 가겠네.”

“알겠습니다.”

“오늘 술독에 빠질 각오 단단히 하고.”

“물론입니다.”

그렇게 모종의 맹약이 성사되었다.

집무실에 들어온 공무외가 입을 열었다.

“얼마나 걸리겠나?”

허공에 던진 질문의 답은 놀랍게도 천장에서 들려왔다.

“한 시진이면 충분합니다.”

“조사해 오게.”

“명을 받듭니다.”

탁자에 앉아, 공무외는 천천히 깍지를 꼈다.

“도 대주. 내게 거짓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 아무리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버릇이 되면 훗날 독사가 되어 발목을 물거든.”

* * *

주루로 가는 길.

도헌이 물었다.

“금강야차마공을 연성했나?”

“그렇소.”

“……정말 대단하군.”

조사실 안에서도 입이 간질거리는 걸 겨우 참았다.

도헌이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익힌 건가? 연성 준비를 하는 데만도 꼬박 사흘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그렇게 되었소.”

이천상 입장에서도 뭐라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그저 그 방법이야말로 가장 빨리 금강야차를 몸에 붙일 수 있을 거라 판단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대화를 할 때도 아니었다.

“나를 어디로 보낼 것 같소?”

“음.”

도헌이 눈을 빛냈다.

“자네가 오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 근래 상부에서 조직 하나를 더 만든다고 하네.”

“전투 부대?”

“전투 부대지. 하지만 좀 독한 집단을 만들 생각인 것 같네. 게다가 둘로 나눈다더군. 외전에 하나, 내전에 하나.”

“신생 조직이라면 기존 부대의 반발이 크지 않겠소?”

“허허, 자네 그것도 아나?”

“그런 것 아니오?”

“맞네. 세상이 그렇지.”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새 주루에 당도해 있었다.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주루 주인은 두 사람을 최상층부의 화려한 방으로 안내했다.

도헌이 방석을 깔고 앉으며 말했다.

“야차령(夜次令)일세.”

“야차령?”

“그 부대의 이름이야. 내전에 속한 야차령은 야차호령(夜叉護令), 외전에 속한 야차령은 야차사령(夜叉死令)이라고 부를 거라더군.”

“…….”

“야차호령은 호법원이 하는 일과 비슷하네. 그래서 인원 차출도 대부분 호법원에서 할 거라고 들었네.”

“하는 일이 비슷하다면 굳이 기존 부대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만들 이유가 없지 않소?”

도헌이 쓰게 웃었다.

“그런 걸 신경 쓰는 분이 아닐세, 교주님은.”

“…….”

“반대로 외전의 야차사령은 외부 감찰(外部監察)에 가까운 일을 한다고 하네.”

“감찰?”

“사실 말이 감찰이지, 교외의 마도 문파들을 공격하는 타격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네.”

“……?”

“교주님께서는 신교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시네. 야차령은 그것을 위해 만드는 조직이야. 본교를 음해하거나……. 이가상단처럼 정파나 사파 측에 선을 대는 문파가 있다면 그 즉시 멸문시켜 버릴 작정이시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도헌이 쓰게 입맛을 다셨다.

“자네는 아마 외전, 야차사령으로 들어가게 될 걸세. 물론 그 전에 실력부터 키워야겠지만.”

“그렇군.”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듯, 도헌이 한결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그렇고, 당주가 우리를 믿어 주겠는가?”

“조사가 끝나면.”

“조사?”

“잔업이 있다고 했잖소. 아마 당신의 말이 맞는지 확인한 연후에 올 거요.”

“……그게 그거였다고?”

“그냥 유추할 뿐이오. 하지만 그자, 당신의 말을 믿지는 않는 것 같았소.”

“그걸 어찌 알았나?”

이천상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눈빛이 달랐소.”

“허어.”

“거짓이 아니니 확인이 끝나면 당신을 완전히 신뢰하게 될 것이오. 그리고…….”

이천상이 방문을 바라보았다.

“웃으면서 들어오겠지. 기쁘다면 말이오.”

한 시진 후.

“허어, 아직 술잔도 나누지 않았는가? 먼저 한 잔씩 하고 있지 그랬나?”

공무외가 호탕하게 웃으며 상석에 앉았다.

“오늘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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