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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21화 (671/774)

외전 21화. 합리와 공포 (1)

사흘 후, 소공의 집무실.

“호오.”

소공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서 공무외 밑으로 들어간 거야?”

“그렇다네.”

도헌이 단정히 답하며 차를 마셨다.

소공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의외군.”

“어쩔 수 없었네.”

“아니, 그거 말고.”

“……?”

“생각보다 훨씬 담담해 보여서 말이야. 자네 성격이라면 좌불안석까진 아니어도 불편해서 한숨이나 팍팍 쉬고 있어야 정상인데.”

도헌이 피식 웃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소공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좋은데?’

지난 반년 동안 도헌은 많이 달라졌다. 신교를 바꾸겠다고 결의한 그 순간부터 기존의 답답하고 딱딱했던 모습을 과감히 버리는 그를 보며 속으로 감탄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천성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평생을 줏대 하나로 살았는데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 한 번에 그간 쌓아 온 가치관이 바뀔 리는 없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전과 또 달라진 게 있다면…….

‘드디어 자네 스스로 진흙탕에 발을 담그려 하는군.’

물론 얘기를 들어 보면 이천상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천하의 도헌이 형법당주 밑으로 들어갈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계기가 어떻든 형법당주의 의심 없이 그 밑으로 들어간 것은 도헌의 능력이었다.

‘역시 내 눈이 맞았어.’

오히려 신뢰하는 누군가를 위해 움직였다는 게 너무나도 도헌다워서 좋았다.

차 한 모금으로 입을 씻은 소공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마음을 다잡았다니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참 든든하이.”

“자네답지 않게 왜 그래?”

“킁, 이제는 칭찬을 해 줘도 뭐라 그러네.”

도헌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하는 일 잘되고 있는가?”

“뭐 할 일이 있다고. 그냥 적당히 바보처럼 살고 있어.”

“그렇군.”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도헌을 보며 피식 웃은 소공이 무언가 생각난 듯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형법당주라…….”

“왜? 걸리는 거라도 있는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소공이 멋쩍은 듯 웃었다.

“형법당주 정도면 나도 그 밑에 들어가도 나쁘지 않나 싶어서 말이야.”

도헌이 눈을 빛냈다.

“함께해 준다면야 내 심적 부담도 덜 수 있겠지.”

“어떻게, 날 추천해 줄 수 있겠어?”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자네를 쓸모없는 쭉정이 정도로 취급해 버렸네.”

소공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실망이야.”

도헌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하네. 어떻게 넘기려다 보니 거기까지 가 버렸어.”

소공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뭐, 더 폭넓은 정보를 위해서는 다른 그늘에 들어가 보는 게 좋겠지.”

“우리가 부딪칠 수도 있지 않겠나?”

순간 소공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그때는 어쩔 수 없는 거지.”

물끄러미 소공을 바라보던 도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도 그렇지.”

두 사람은 신교를 뒤집어엎는 대업을 함께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화기애애하게 웃고 있지만, 자칫 실수라도 한번 저지르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즉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란 말이다.

같은 꿈, 같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터져도 제 위치에서 할 일을 해야 한다.

설령 친구가 죽는다 하더라도.

“뭐, 어지간해서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적어도 당장은 말이지. 운이 좋아서 개혁의 그날을 함께 볼 수 있다면, 그때는 함께 축배나 들자고.”

“왜 이래?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내일이 아니라 당장 반나절 뒤에라도 죽을 수 있어. 자네가 형법당주에게 이리 빨리 끌려갈 줄 누가 알았겠어?”

“그것도 그렇군.”

막상 이렇게 들으니 새삼 실감이 났다.

자신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그리고…… 죽음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꿉꿉한 얘기는 이쯤하고.”

소공이 특유의 유쾌한 표정을 되찾았다.

“그래서 이가 놈을 야차사령으로 넣겠다고?”

“그렇게 되었네.”

“외전에서 활동하는 게 더 나을 수 있지. 오히려 그 녀석 성격을 보면 내전에서는 사고나 치지 않을까 싶어.”

“그렇진 않을 걸세.”

“응?”

확신에 찬 도헌의 답에 소공의 눈이 동그래졌다.

“달리 목표가 없다면 모르지만, 분명한 목표가 정해지는 순간 그 녀석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움직일 거야.”

“호오, 녀석에게 그런 면이 있었나?”

“당장 투마장 건만 봐도, 투마로서 훌륭한 삶을 살지 않았던가.”

“그렇게 훌륭해서 막판에 사고 쳤나?”

“그건 불가항력으로 봐야지. 게다가 대응도 훌륭했어.”

소공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일에 불가항력이라는 것은 없어. 목표가 어떻고 능력이 어떻고 다 필요 없지. 녀석은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 어떤 조직에 있든 한 번은 대형 사고를 칠 거야.”

아니라고 부정하려다, 도헌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이천상은 공무외가 어떻게 나올지를 제대로 짚어 볼 줄 알았다.

쉽게 말해 그것은 인지력, 통찰력의 영역이다. 나름대로 세상을 배운 이천상에게 있어 사람은 감정의 노예처럼 비칠 것이다.

창을 쥔 자가 사람을 찌르는 데 능하고, 칼을 쥔 자가 휘둘러 베는 데에 능하다는 것을 알듯.

이천상은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보고 상대의 이후 움직임을 파악해 냈다.

그것은 실로 대단한 능력이지만, 동시에 이천상이 비범(非凡)하다는 뜻과 상통한다.

좋은 의미로도 범상치 않지만, 나쁜 의미로도 범상치 않다. 이천상이 남들처럼 순수하게 감정을 느낄 줄 알았다면 그와 같은 통찰력을 얻긴 힘들었을 것이다.

이천상이 지닌 특유의 이질감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을조의 투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소공 말마따나 언제고 사고가 터질 것이다.

“주의하겠네. 그 부분에 관해서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얘기를 나눈다고 대처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자네 사람이니 자네가 잘 다뤄 봐.”

“충고 고맙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도헌의 귓가에, 어느새 몸을 반쯤 일으킨 소공의 얼굴이 바짝 붙었다.

“조심해.”

“무엇을?”

“야차령으로 보내기 전, 자네는 자네 나름대로 그 녀석을 신경 써 주겠지. 당연해, 자네는 녀석에게 빚을 졌으니까. 하지만…….”

“……?”

“언제나 사고는 주변에서 터지는 법이야.”

* * *

파아앙!

주먹을 지르는 이천상의 자세는 무척이나 단단해 보였다.

하반신에 힘이 넘치니 내치는 주먹에도 제대로 된 힘이 실린다. 대개 좋은 하체가 좋은 허리를 만드는 것처럼, 이천상의 복부와 허리 역시 권법의 탄력을 싣기 좋았다.

제대로 들어간다면 일류의 고수라도 일격에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릴 만한 위력.

‘확실히 이전보다 좋다.’

이천상은 침착하게 자신의 발전을 인정했다.

금강야차마공을 연성함과 동시에 마기의 질이 몇 배나 올라갔다.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끌어 올린 마기 덕분에 신체의 내구력과 유연성도 올라갔다. 근육이 성장한 건 아니지만, 힘을 넉넉하게 받아 주는 신체 덕분에 일권(一拳)의 파괴력도 몇 배나 올라갔다.

‘하지만 이 주먹을 대놓고 맞아 주는 고수는 없겠지.’

이상적인 자세, 이상적인 시기, 이상적인 힘의 분배.

언제, 어떤 순간에도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으려면 압도적인 힘이 필요하다.

지금의 자신에게 그 정도 힘은 없었다. 그렇다면 일격필살의 위력이 나올 수 있도록 자세와 힘의 흐름,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할 텐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찰나의 순간에 그걸 다 고려할 수는 없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연마한다면 가능이야 하겠지. 하지만 그러려면 상대의 모든 반응을 즉시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자세를 몸에 완전히 붙인 채여야 한다.’

경지의 고하를 떠나, 그런 건 누구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익혀야 할 자세가 수만 가지는 될 테니까.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

찰나의 순간 최적의 자세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힘을 키울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닌 말로, 지금 당장 절정고수와 피할 수 없는 생사결을 벌인다고 해도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죽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힘을 얻기 위해 다급할 필요는 없다. 무언가를 급하게 이루려 하면 반드시 놓치는 게 생긴다.

그래서 세상은 어렵다.

당장 필요한 것이 정작 내 손에는 없다. 그를 얻기 위해서는 고된 노력과 운이 따라 주어야 한다. 그러고도 언제든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다.

세상은, 인생은 언제나 그랬다.

파아아악!

주먹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고뇌하던 이천상이 재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지금의 육체는 다르다. 기존의 몸이 버틸 수 없는 속도, 버틸 수 없는 압력을 받아 준다.

‘변화가 많을 필요는 없다. 아직 나는 약해. 일격필살까지는 무리더라도 세 합 안에 승부를 보지 않으면 뒤가 막막해진다.’

파앙! 파아앙!

짧은 파공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후우.”

단타로 허공을 매섭게 때리던 이천상의 쌍권(雙拳)이 자연스레 풀린 것은 시간이 꽤 지나서였다.

천천히 호흡을 고른 이천상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모르겠군.”

도헌은 말했다. 칼을 버리고 권장(拳掌)부터 익히라고.

이천상은 아직 그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를 대하는 광마대주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괜히 그런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더하여, 진기와 심법의 운용성이 뛰어난 그였지만 전반적인 무학에 관한 지식은 남들보다 훨씬 떨어졌다.

반면 도헌은 어릴 때부터 온갖 무공을 익혀 왔고 숱한 실전을 치르며 실력만으로 광마대주가 된 사람이었다.

‘믿어도 되는 사람이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껏 자신에게 조건 없이 잘해 주는 사람은 양부를 제외하고 도헌이 처음이었다.

자신에게서 무슨 은혜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렇게까지 맹목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후우우우웅.

대숲에 이는 바람은 서늘했다.

이천상은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 되겠군.’

이곳 대숲은 상당히 넓었지만, 곳곳에 대나무들이 박혀 있어서 전방위 수련을 할 때는 썩 좋은 곳이 아니었다.

도헌 수준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이천상에게는 불가했다.

이천상은 도헌의 말을 떠올렸다.

- 어지간해서는 여기서 수련하게. 혹시 답답하면 연무장에서 수련해도 되네. 부관에게 말해 놨지. 다만, 부대 훈련이 술시(戌時)에 끝나니까 해시(亥時)부터 사용하게. 당분간은 야간 훈련이 없으니 야차령으로 차출되기 전까지 쓰긴 충분할 거야.

어지간하면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분명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였다.

이천상은 거침없이 대숲을 나섰다.

대숲에서 광마각의 연무장까지는 걸어서 일각이 걸렸다.

일개 부대가 쓰는 영역이 이 정도다. 새삼 천마신교가 얼마나 거대한 조직인지 깨달았다.

그렇게 그가 광마각의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누구냐.”

어디선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땀에 젖은 사내 셋이 보였다. 제각기 손에 도검을 쥐고 있었는데, 한창 수련 중인지 날 선 기세가 일품이었다.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던 이천상이 연무장에 올라 어깨를 풀었다.

사내들, 광마대 사 조(四組) 조원들의 눈에 마기가 치솟았다.

“누구냐고 물었다.”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해시부터 훈련해도 좋다고 들었소.”

“……?”

“신경 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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