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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25화 (701/774)

외전 25화. 합리와 공포 (5)

도헌이 무심한 눈으로 황석태를 바라보았다.

“그놈이라 함은, 별실에서 지내고 있는 녀석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황무석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분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나마 대주 앞이라 애써 억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녀석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가.”

“대주님. 어젯밤 그 녀석이 사 조 조원들과…….”

“들었네.”

“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다고 했네.”

황무석의 얼굴에 충격이 일었다.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 녀석을 불러 주의시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 조장을 불러오게.”

“……예?”

도헌의 안광이 번뜩였다.

“사 조장을 불러오라는 말, 못 들었는가?”

황무석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잠시 후, 도헌의 집무실로 황무석과 동후가 들어왔다.

“…….”

집무실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도헌의 얼굴에서는 평소와 같은 인자함을 엿볼 수 없었다. 경직된 표정,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는데 그 분위기가 무척이나 서늘했다.

동후는 긴장했다.

다른 모든 광마대원들처럼, 그 역시 대주인 도헌을 존경하고 따랐다. 당대 광마대에 도헌에게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그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도 없었다.

신교에서도 가장 무서운 부대라는 육대의 대주인데도, 도헌은 그들을 장기의 말이 아닌 전우처럼 대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대원들의 충성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 명한의 사건을 제외하면 독하게 훈련은 시킬지언정 화를 낸 적이 없던 대주.

그런 대주의 눈빛과 분위기가 실로 심상치가 않았다.

“사 조장.”

“예!”

“간밤에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설명해 보게.”

평소보다 훨씬 더 싸늘한 목소리.

동후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부대 훈련이 끝난 후, 사 조원 방효와 지대건에게 추가 훈련을 시켰습니다.”

“왜 시켰지?”

무조건 솔직하게 나가야 한다. 물론 솔직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둘은 선배 축에 속하지만, 그 실력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수련했고, 두 사람의 열정을 확인한 제가 그 훈련에 동참했습니다.”

도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장과 두 사람이 간간이 추가 훈련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네.”

“…….”

“그래서 그다음은?”

주륵.

동후의 목덜미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분명 대주님께서는 지금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왜 화를 내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 녀석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주님이 투마 출신의 마인을 총애하고 있다는 소문은 모두가 들었으니까.

하지만 동후는 이내 그 생각을 부정했다.

사적으로 아끼는 사람이 있다 한들, 일의 잘잘못은 분명하게 따지는 분이 대주님이시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존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훈련 도중 별실의 투마가 대연무장에 나타났습니다. 이후 각자 수련을 하다가…….”

그때, 동후는 도헌의 눈빛이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잠시의 침묵 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정정합니다. 몇 마디 날 선 대화 후, 각자 맡은바 수련에 임했습니다.”

“그다음은?”

“휴식 시간에 투마의 무공 수련을 보았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휘하 조원 둘은 그 수련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자네들이 무슨 마음을 품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궁금하지 않네.”

“자세히 설명키 위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 언급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좋네, 계속하게.”

옆에서 대화를 듣던 황무석의 표정이 점점 복잡해졌다.

동후가 말을 이었다.

“한낱 투마의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놀랐고,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조원들의 안목에 화가 났습니다. 하여, 바람도 쐴 겸 두 사람에게 수련을 지시하고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다음.”

“방효의 비명을 들었습니다. 놀라서 찾아와 보니 지대건과 투마가 비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후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의 생각을 떠올리자 착잡해진 것이다.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듯했습니다만, 지대건은 투마에게 제대로 된 공격 한번 못 해 보고 무너졌습니다.”

“…….”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투마를 막고, 그대로 비무를 종료시켰습니다.”

도헌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군가의 시비로 벌어진 비무인가?”

“……그렇습니다.”

“누가 시비를 걸었나.”

동후가 눈을 떴다.

“방효와 지대건입니다.”

“지금 한 보고에 한 치의 거짓이 없다고 자부하나?”

“어떠한 가감도 없는 진실임을 맹세합니다.”

도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세한 설명, 잘 들었네. 이만 나가 보게.”

“…….”

“왜? 달리 할 말이 있는가?”

“……잘잘못을 떠나, 조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건 제 책임입니다. 그에 따른 징계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헌은 속으로 웃었다.

사 조장 동후는 비록 거칠고 때론 예민하지만, 근본적으로 솔직 담백한 사람이었다.

실력 이전에 어떤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동후뿐만이 아니라 조장들 모두가 그러했다.

“괜찮으니 나가 보게. 고생했네.”

“명을 받듭니다.”

동후가 나간 집무실에는 이제 둘이 남았다.

도헌은 무심한 얼굴로 황무석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버거웠던지, 황무석이 눈을 내리깔며 입술을 깨물었다.

“황 부관.”

“……예, 대주님.”

“왜 그렇게 화가 났지?”

“…….”

“묻지 않나. 왜 그리 화가 났느냐고.”

“저는…….”

“애써 사 조장을 다시 불러 당시의 상황을 보고하라는 이유는 알겠나?”

황무석은 괜스레 입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가만히 그를 보던 도헌이 의자에 등을 묻었다.

“내가 들은 것을 자네가 못 들었을 리는 없지. 나보다 더 세심했으면 했지, 대충 듣고 판단해서 이곳에 온 건 아닐 거야.”

“…….”

“자네가 들었던 내용, 그리고 이곳에서 들었던 보고를 취합해 보게.”

“…….”

“다 되었으면,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하게.”

황무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헌의 눈빛이 한층 서늘해졌다.

“조원들이 투마 출신의 마인에게 당해서 화가 난 건가?”

“……아닙니다.”

“둘을 상대로 암수라도 벌였을까 싶었나?”

“…….”

“그도 아니면, 단순히 그 녀석이 싫어서 화가 난 건가? 그래서 대주 집무실로 들어와, 자네 상관에게 그 녀석을 불러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 것인가?”

“대, 대주님!”

도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자네에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 아니면, 상부에서 나를 대주 자리에서 내쫓기라도 했던가? 그래서 이리 무례해졌나?”

황무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하니 대주님께서 저런 말까지 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은 황무석이 허리를 굽혔다.

“죽여 주십시오!”

도헌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황무석은 동후에게 어젯밤 사건에 대해 상세히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듣고, 이해하고, 분석하지는 않았다. 그저 광마대원이 한낱 투마에게 당한 것이 화가 났을 뿐이었다.

차라리 암수에 당했다면 비웃기라도 했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란다. 그리고 그 분노는 당한 대원이 아니라 오롯이 이천상을 향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왜 시작했는지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황무석은 이천상을 질투했다.

남녀 사이의 질투보다도 무서운 것이 상하 관계에서의 질투다. 특히나 광마대를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여기는 황무석에게 있어 대주인 도헌은 스승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간 열심히 모셨던 스승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천한 투마를 총애한다. 가장 가까운 제자로서 질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엎드린 황무석을 보던 도헌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게 섭섭한 게 있나?”

“……아닙니다.”

“이제는 거짓말까지.”

황무석이 마른침을 삼켰다.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그를 보며, 도헌은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함께한 사이다. 자세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가 왜 저리 감정적으로 구는지 모를 정도로 도헌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늘 훈련은 조장들에게 맡기고 거처에서 쉬게. 쉬면서 머리 좀 식혀.”

“……예.”

“저녁에 술이나 한잔하지.”

“…….”

“이만 물러가게.”

일어난 황무석이 고개를 꾸벅 숙이곤 집무실에서 나갔다.

혼자 남은 도헌의 얼굴에 비로소 혼란이 떠올랐다.

‘어렵구나.’

그간의 인연을 생각해 보면 황무석의 반응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황무석을 능력 있는 부관으로 보았다. 가끔 실수할 때도 있었고 필요 이상의 충성으로 곤란하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도헌에게는 소중한 부하였다.

‘참으로 어렵다. 결국은 처신을 제대로 못 한 내 잘못이거늘.’

황무석의 잘못은 분명했다. 이번 사건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차후 이와 유사한 일로 실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황무석에게 더 신경을 쓰지 못한 자신의 잘못도 없진 않았다.

문득 소공의 말이 떠올랐다.

- 우리 일에 불가항력이라는 것은 없어. 목표가 어떻고 능력이 어떻고 다 필요 없지. 녀석은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 어떤 조직에 있든 한 번은 대형 사고를 칠 거야.

대형 사고.

이번 일은 대형 사고라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작은 사건에 불과했다. 되레 억울하다면 이천상이 억울할 것이다.

다만 소공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도헌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도헌이 별실을 찾았을 때, 이천상은 그곳에 없었다.

‘어디 갔지?’

그때, 예민한 그의 감각이 대숲에서 들려오는 묘한 파공성을 감지했다.

‘또 수련인가.’

도헌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곳에서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필수였다.

생존을 위해서든, 재미를 붙였든 저리 열심히 수련하는 이천상이 대견했다.

‘꽤 격렬한 비무였다고 들었는데, 힘이 넘치는군.’

잠시 후.

퍼어어엉!

한 줄기 거센 폭음과 함께 굵직한 대나무 세 그루가 부러졌다.

어느새 대숲에 들어온 도헌은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이천상을 보았다.

펑! 퍼펑!

이천상의 움직임에는 끊김이 없었다.

그리 빠르진 않았지만, 마치 흐르는 물살에 멈춤이 없듯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

웃으며 그를 보던 도헌의 얼굴에 점점 놀라움이 어리더니, 이내 충격으로 물들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측방으로 이동하며 권각을 휘두르는 이천상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홀로 무공을 수련한답시고 허공에 주먹과 발을 휘두르는 게 전부였다. 한데 그의 움직임이 어찌 이렇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가.

어제 비무 때만 해도 어딘지 어설프고 춤사위처럼 보였던 이천상의 무공.

그 무공은 하룻밤 새에 놀라우리만치 세밀하게 정립되어 있었다.

정작 비무를 보지 못했던 도헌에게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애초에 그는 이천상이 어떤 종류의 훈련을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초식이 지닌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글로써 식(式)을 연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이 벌써 술(術)에 이르렀구나.’

도헌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녀석을 보았나.’

그때였다.

몽롱한 표정으로 멋들어진 춤사위를 펼치던 이천상의 손에서 얼핏 불그스름한 기운이 번뜩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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