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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26화 (702/774)

외전 26화. 불타오르다 (1)

“…….”

주변을 둘러보는 이천상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무색투명했다.

‘생각보다 훨씬 넓군.’

정확한 부대 인원은 나오지 않았지만, 최소가 삼백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넉넉잡아 오백 명은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직접 와 보니 칠백 명까지도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을 듯했다.

물론 한 명당 방 하나를 배당받지는 못한다. 적으면 셋, 많으면 열 명까지도 한방에서 지내야 한다고 들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배려였다. 당금 신교의 재정 상태로 이런 곳을 마련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내기에 불편함은 없을 듯했다.

짧은 감상을 마친 그가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멈추시오.”

입구 안, 주변에 퍼져 있던 마인 하나가 특유의 위압적인 기세를 온몸으로 뿜으며 다가왔다.

“이곳은 야차령의 외전 부대요. 허가받지 않은 마인은 출입할 수 없소.”

보아하니 미리 배정받은 수문위인 듯싶었다. 차후 함께할 동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정식 창설이 되기 전까지는 이곳을 지킬 터다.

이천상이 품에서 명패 하나와 서신을 꺼내 들었다.

그에게서 받은 명패를 확인한 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는 받았소. 이름 이천상, 형법당주의 추천으로 오셨다는데 맞소?”

“맞소.”

마인이 서신을 펼쳤다.

서신에는 간략한 내용과 함께 형법당주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차일각(夜叉一閣) 삼 층 일 호로 가시오.”

명패와 서신을 받은 이천상이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야차령 외전, 야차사령은 세 개의 거대한 건물로 이뤄져 있었다. 그중 유독 큰 중앙 건물은 부대의 요인들이 자리할 가능성이 컸다.

야차일각으로 가는 길, 이천상은 천천히 주변을 확인했다.

‘역시나 넓다.’

아직 부대 주변을 제대로 꾸미지 않아서인지 대부분이 자연의 형상 그대로를 보이고 있었다.

뒷산은 상당히 높았고 좌우로는 큰 언덕이 있었다. 언뜻 보아도 샛길이 많아서 진지(陣地)로는 부적합했지만, 신교 내라면 오히려 나쁘지 않은 듯싶었다.

일대를 꼼꼼히 눈에 담고, 이천상은 곧장 일각의 삼 층으로 올랐다.

건물이 워낙 높고 튼튼하게 지어져서 그런지, 으레 들릴 법한 다른 이들의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좋은 목재를 쓴 것이 분명했다.

이천상이 방을 둘러보았다.

‘셋.’

부대 영역만큼이나 그가 배치받은 방도 상당히 넓었다.

개인 공간은 아니었지만, 대여섯 명이 여유 있게 활동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멀찍이 떨어진 침상의 개수로 볼 때 총원은 세 명인 것 같았다.

이천상은 창가 자리에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 봤자 옷가지 몇 벌과 십여 자루의 비수, 튼튼한 신발 두 켤레가 전부였다. 전낭은 품에 있었고 권각을 쓰니 굳이 칼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침상에 앉은 이천상은 곧장 가부좌를 틀었다.

우우우웅.

순식간에 마기가 반응하며 온몸에 충만한 힘을 채워 주었다.

오래 수련한 것은 아니지만,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항상 무공을 수련했다. 게다가 금강야차마공은 대다수의 마공처럼 정(靜)보다 동(動)을 추구하는 마공이라, 초식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확실하게 몸에 붙었다.

‘괜찮군.’

당장 오늘 새벽까지 마기를 바닥까지 소모하며 수련했다. 한데 어느새 단전의 절반 이상이 마기로 차올랐다.

끊임없이 수련하고, 끊임없이 궁구한다.

마공이지만 불가의 무공이 기반이라 그런지, 사고(思考)가 깊어질수록 마기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잡념이 거의 없는 이천상에게 있어 최고의 마공이라 할 만했다.

‘굳이 운공이 필요치는 않겠어.’

눈을 뜨고 가부좌를 푼 이천상은 곧장 부대를 나갔다. 식사부터 할 요량이었다.

아직 부대 안에 식당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당분간은 밖으로 나가서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그가 야차사령부(夜叉死令部)에서 가장 가까운 주루, 호미루(昊眉樓)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쩐지 말이야.”

이천상이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도헌이 있었다.

“지금쯤 이곳에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네. 아침도 못 먹고 나갔으니.”

고개를 끄덕이려다, 이천상은 이내 말없이 포권을 취했다.

주변에 보는 눈이 꽤 많았다. 일개 마인이 광마대주 앞에서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면 필시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호미루 인근의 마인들은 도헌을 알아보지 못했다. 수수하게 입고 오기도 했고, 내전에 있는 높으신 분이 여기까지 찾아올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올라갈까?”

“예.”

도헌이 피식 웃었다. 평소와 달리 존대하는 이천상의 모습이 생소했던 것이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호미루 최상층에 올랐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일이 층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음식을 시킨 도헌이 툭 던지듯 물었다.

“어떤가?”

“무엇이 말입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네. 편하게 말해도 돼.”

“괜찮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습관을 고치긴 어렵다. 이천상은 훗날을 위해 말투부터 바꾸기로 했다.

도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좀 어색해도 듣기는 좋구만.”

“…….”

“거처는 마음에 드나?”

“충분합니다.”

“그렇겠지. 공무…… 아니, 형법당주님께서 크게 신경을 써 주신다 했으니.”

이런 쪽 일 처리만큼은 확실한 사람이었다. 분명 편안한 방을 배정받았을 것이다.

웃으며 이천상을 보던 도헌이 불현듯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네.”

“뭐가 말입니까.”

“미리 이곳으로 보낸 것 말이야.”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바란 것 아닙니까. 어차피 와야 할 곳이니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공대의 형식만 바뀌었지, 말투는 그대로다.

익숙한 일면을 확인하고 나니 적이 안심이었다.

“한 부대의 장으로서, 부대의 기강과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조치였네. 물론 자네는 이해하겠지만, 끝까지 자네를 책임진다고 한 사람이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해 버렸어. 내, 자네를 볼 면목이 없네.”

이천상은 도헌의 미안함을 이해했다. 그러나 역시, 공감할 수는 없었다.

“돌이켜 보니 자네 말이 맞았네. 어쩌면 나는 내 부대원들을 쉽게 생각했는지도 몰라. 그래서 자네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누가 옳았든, 별일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도헌이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이 지금 내 말을 들었다면 기분 나빠 했을 것이네.”

“……?”

“사람 말이라는 게 참 오묘하지. 이렇게 해석하면 좋지만, 저렇게 해석하면 기분이 상하기도 해. 같은 말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는 법이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감하긴 어렵겠지?”

“예.”

“그래,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네. 사람들과 얽혀 살다 보면 훗날에는 공감할 줄도 알게 될 거야.”

도헌의 목소리에는 미안함과 걱정이 실려 있었다.

이천상은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읽었다. 그리고 왜 그가 이러는지도 이해했다.

그때, 밥이 나왔다.

“시장하구만. 밥부터 먹자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밥그릇을 비웠다.

호미루의 음식은 상당한 맛을 자랑했다. 외전에 있는 주루 중 꽤 비싼 축에 속했지만, 다행히 내는 돈만큼의 맛은 보장했다.

다 먹은 이천상이 품에서 전낭을 꺼내 들었다.

“이건 내가 내겠네. 자네도 볼 겸, 한 끼 사 주려고 온 거야.”

손사래를 치는 도헌을 물끄러미 보던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낭을 갈무리했다.

“알겠습니다.”

“참, 여전히 딱딱하구만.”

이렇다 할 대꾸 없이 이천상이 일어났다.

도헌이 입맛을 다셨다.

“벌써 일어나려고?”

“부대 창설은 언제입니까?”

“글쎄, 정확하진 않지만, 얼추 보름은 걸린다고 들었네.”

“알겠습니다.”

“수련하러 가나?”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헌이 웃으며 물었다.

“무공 수련이 재미있나?”

별것 아닌 질문에 내내 침착하던 이천상이 처음으로 움찔했다. 순간적으로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반응에 도헌은 내심 놀랐다.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르지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 그것을 저지할 수도 없지.”

“예.”

“그래, 그거면 되었네. 바쁜 사람 잡아서 미안하이.”

이천상이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이제는 그런 말도 할 줄 아는군.”

웃음기 섞인 너스레를 뒤로하고 이천상이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끝까지 살가운 말은 없었다.

그 투박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도헌의 입가에 문득 옅은 미소가 어렸다.

내심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이천상의 열의가 기껍다. 훗날 사람을 배우고 공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도, 저 성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열의라.’

어느새 이천상은 일 층을 나서서 부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최상층부 창가에서 이천상을 내려다보는 도헌의 눈이 점점 깊어졌다.

그는 사흘 전, 대숲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헉!’

도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저건?!’

사아아아악!

한번 모습을 드러낸 붉은 기운은 삽시간에 이천상의 두 손을 장악했다.

붉은색이지만, 아직까지는 반투명했다. 하지만 이천상이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짙어졌다.

도헌이 이천상의 눈을 바라보았다.

몰입한 것인지, 무언가에 홀린 것인지 모호한 눈빛이었다. 다만, 절대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파아아아악!

도헌이 단숨에 이천상에게로 뛰어들었다.

“멈……!”

그때였다.

훅!

순식간에 자세를 바꾼 이천상이 도헌의 측면으로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다.

예상치 못한 움직임,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공격에도 반응하지 못한다면 광마대주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터억! 파박!

순식간에 팔목을 낚아챈 도헌이 다른 손으로 이천상의 반대편 어깨를 짚었다. 후속 공격을 차단하는 한 수였다.

훅!

이천상의 몸에서 강렬한 마기가 솟구쳤다. 한층 진해진 금강야차마공이었다.

“당신이었소?”

도헌이 흔들리는 눈으로 이천상을 보았다.

이천상의 눈과 얼굴은 어느새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적인 줄 알았소.”

특유의 무뚝뚝한 목소리 역시 그대로였다.

도헌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자네 적이 어디에 있다고 그러나.”

“그도 그렇군.”

“상당히 곤두선 모양이군. 이렇게 즉각 반응할 정도라면 말이야.”

“곤두섰다?”

“그게 아니라면 무공에 몰입을 한 것이겠지. 그마저도 아니라면…….”

도헌은 말을 끊고 이천상의 손목을 놓았다.

뚫어질 듯 이천상을 주시하는 도헌의 얼굴에 심각한 빛이 어렸다.

“혹시 방금 기억하나?”

“무엇을 말이오.”

“자네 손에…….”

“알고 있소.”

“……?!”

“혈강수였소.”

도헌의 얼굴이 굳었다.

“감당하기 전까지는 꺼내 들지 않기로 했잖나? 혈강수는 위험해! 지금 내 수준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마공이야. 자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구사하지 않았소.”

“뭐?”

“혈강수를 꺼낼 마음이 없었소. 그저 금강마권으로는 부족한 듯싶어 혈강수 비급에 적힌 권각의 형(形)을 분석하고 있었소.”

“……!”

“확실히 위험한 마공인 것 같소. 구결을 건드리기만 해도 주인의 의지 없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도헌이 침을 삼켰다.

“인지하고 있었군.”

“그렇소.”

“형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혈강수가 펼쳐졌다고?”

“펼쳐진 건지는 나도 모르오. 파 본 적이 없으니까. 다만, 금강마권이나 야차혈장은 아니었소.”

그때, 도헌은 처음 보았다. 이천상의 얼굴에 떠오른 미약한 난감함을.

“이 마공은 아예 잊어야 할 것 같소.”

그 사건 이후, 도헌은 이틀 동안 이천상의 몸을 점검했다.

믿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이천상의 말은 사실이었다. 특유의 과발달된 상단전에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도헌의 그 염려 어린 행동이 묘하게 부대 전체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이천상은 그 분위기를 민감하게 읽어 냈다. 그는 스스로 별실을 떠나겠다고 도헌에게 통보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다행히도 형법당주가 이천상을 미리 야차사령부에 배치해 주었던 것이다.

“혈강수라…….”

도헌이 눈을 감았다.

‘내가 지나치게 섣불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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