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7화. 불타오르다 (2)
사흘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천상은 내내 수련에 몰두했다. 식사는 새벽과 저녁, 두 번으로 끝냈고 수면은 정확히 두 시진을 유지했다. 그 외의 시간은 오로지 무공만 팠다.
힘이 다 빠졌을 때는 심법을, 기운이 돌아오면 형(形)을.
그의 인생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행동을 제외하면 무언가에 이렇게까지 집중해 본 적은 처음일 것이다. 물론 신교에서는 강해지는 것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지만.
그 결과, 그의 무공은 무섭도록 정교해지고 있었다.
희대의 천재라도 순식간에 내공을 불리거나, 알지도 못하는 전술이나 살법을 익힐 순 없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한계까지 파는 것. 한계에 도달하면 그다음 단계는 없는지 궁구하는 것.
이천상의 몸과 정신은 더 강한 무공,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를 착실하게 쌓아 가고 있었다.
슥!
허공을 치는 이천상의 주먹에 더 이상 강력한 힘은 실리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몸이 땀으로 푹 젖었다.
호흡이 거칠다 못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대량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폐장은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무릎을 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그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
산에서 생활할 때도 그랬지만, 특히 무공을 수련할 때 중요한 것은 호흡이었다. 그리고 호흡은 가장 바른 자세일 때 빠르게 돌아온다.
힘들어도 쓰러져서는 안 되는 이유였다. 힘이 없다고 드러누우면 시간도 낭비될뿐더러 나쁜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습관. 근래 들어 이천상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스으으으.
조금씩 돌아오는 호흡에 탄력이 붙을수록 내공도 빠르게 생성된다.
텅 비었던 단전에 내공이 차오르니 신체에 힘이 돌고 공기를 더 효율적으로 흡수한다. 많은 양의 공기를 빨아들이니 내공이 채워지는 속도도 더 빨라졌고, 그럴수록 호흡도 더 편해졌다.
마공은 역천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순리를 따른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자연에서 나고 자란 생물인 만큼,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 법칙이었다.
그렇게 적당히 내공을 채운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나오시오.”
이천상이 수련하는 곳은 야차일각 후문에서 이어지는 널찍한 공터였다. 그곳에는 오로지 그뿐이었다.
후우우웅.
불어오는 바람이 몹시 선선했다. 건물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 덕분에 달아오른 몸도 적당히 잘 식었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천상은 말없이 후문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대충 때려 맞힌 건가?”
이천상이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틀어 오른쪽을 보니, 야차삼각 건물 옆 커다란 나무에서 한 명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로 알았던 건 아니지?”
청년이 무안한 듯 볼을 긁적였다.
“제발 때려 맞힌 거였으면 좋겠는데. 기척 줄이려고 무진 애를 썼거든.”
이천상의 눈이 순식간에 청년을 훑었다.
육 척에 이르는 큰 키였지만, 덩치가 크진 않았다. 골격 자체가 호리호리했고 피부도 하얬다.
눈도 마인답지 않게 초롱초롱했고 팔다리도 길었다. 어떤 마공을 익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기도를 보면 음한(陰寒)의 마공을 익힌 듯했다.
허리춤에는 검갑부터 검병까지 흑색일색(黑色一色)인 소검이 매여 있었다.
키만 보면 너무 짧은 검을 다루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달리 보면 골격과 분위기와 잘 어울리기도 했다.
이천상의 눈이 청년의 오른발을 향했다.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실려 있다.’
오른손잡이라서가 아니라, 그 자세가 무공을 펼치기에 가장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또한 습관이었다.
이천상의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오른발을 축으로 한 걸음에 거리를 좁혀 발검(拔劍)을 내치는 청년의 무공.
‘일검필살. 암살자인가?’
이천상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암살자치고는 마기가 그리 은밀하지 않아.’
뭐가 되었든 강자임은 분명했다. 일전에 겨루었던 광마대원들과 비슷, 혹은 그 이상이었다.
“와, 신기한데?”
청년이 눈을 깜빡였다. 나이답지 않게 퍽 순진한 표정이었다.
“눈 안 따가워? 어떻게 한번 깜빡이지를 않네?”
청년에게서 시선을 떼고, 이천상은 다시 야차일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년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봐! 이봐요!”
재차 걸음을 멈춘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내게 볼일이 있소?”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무겁고 텁텁한 목소리에 진저리가 나는지 청년의 입에서 ‘으으.’ 소리가 절로 나왔다.
“혹시 야차사령부 소속?”
“그렇소.”
“오, 나도 그런데.”
“…….”
어쩌자는 거지?
이천상은 내심 의아했지만, 이내 기억해 냈다. 사회에서는 일면식이 없어도 인사를 나눠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반갑소.”
“……전혀 안 반가운 것 같은데?”
불퉁하게 입을 내민 청년이 이내 표정을 풀고 다가왔다.
이천상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상대가 너무 서슴없이 전권(戰圈)으로 들어오려 하기 때문이었다.
청년이 웃는 낯으로 포권을 취했다.
“나도 야차사령부 소속이야. 이름은 양건(楊建), 잘 부탁한다.”
“이천상이오.”
“오, 이름 좋은데?”
“그럼.”
이천상이 다시 발길을 돌렸다.
청년, 양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이렇게 사회성이 없을 수가! 라고 외치고 싶은 듯했다.
“잠깐만!”
이천상이 다시 양건을 돌아보았다. 무심한 얼굴에 미세한 피로가 엿보였다.
“또 무슨 일이오?”
양건이 넉살 좋게 말했다.
“새롭게 배정받은 부대에서 처음 만난 사이잖아. 적적할 텐데 같이 술이라도 한잔하지 않을래?”
“미안하오.”
상당히 단호한 어조였다.
그 말을 끝으로 이천상은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더 이상은 붙잡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양건이 머리를 긁적였다.
“더럽게 싸늘한 녀석이네. 퍽퍽하구먼, 퍽퍽해.”
괜스레 무안해져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다, 그는 문득 땀으로 흥건한 바닥을 바라보았다.
“흐음.”
그의 매끈한 미간에 주름이 두어 줄 잡혔다.
“권각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어.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저런 실력자가 어디에 있었지?”
하긴, 신교 자체가 워낙 넓었다. 조직 체계도 방대하니 숨은 실력자들도 많을 것이다.
야차령은 교주가 직접 창설을 지시한 부대이다. 임무의 특수성을 떠나 교주의 눈에 들 수 있으니 여기저기서 인맥을 동원해 아는 마인들을 집어넣으려 할 것이다.
필시 저 이천상이라는 녀석도 꽤 끗발이 좋은 조직에서 보낸 젊은 실력자일 것이다. 그랬으니 정식 창설도 되지 않은 부대에 미리 와서 지내고 있겠지.
양건이 히죽 웃었다.
“설레는데?”
* * *
수욕으로 깔끔하게 몸을 닦은 뒤, 이천상은 방에 틀어박혀 금강야차마공에 매달렸다.
‘기묘하군.’
이곳으로 오기 전, 도헌은 여러 가지의 마공서들을 보여 주었다.
꼭 익히라고 보여 준 게 아니라, 되도록 여러 마공을 보고 공부하라는 의미에서 준 것이었다.
이천상은 도헌이 구해다 준 열 개의 마공서들을 모두 읽었다. 그중 두세 개를 제외하면 그다지 수준이 높진 않았지만, ‘마공’이라는 체계를 익히기에는 충분했다.
‘기(氣)는 의지로 일어나고, 그러므로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마기(魔氣)는 욕망에 강한 자극을 받아 성장한다. 수준을 떠나 모든 마공의 기본이 그러할 것이다.’
수십, 수백 권의 마공서들을 보진 못했다. 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마공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욕망이라는 걸.
이천상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왜 이리 성장한 거지.’
반년 동안 투마장에서 살벌한 생사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죽지 않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진마공에 매달렸다.
무공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본인의 성취가 어느 정도인지를 모른다. 다만 하루가 지날수록 마기는 크기를 불렸고 힘은 강해졌으며, 보다 더 쉬운 싸움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익히고 있는 금강야차마공.
도헌의 말에 따르자면, 금강야차마공은 신교의 수뇌부 정도가 아니면 접하기 힘든 고급 무공이었다.
실제로 이천상이 본 그 어떤 마공도 금강야차마공에 비할 수는 없었다. 난해함, 방대함, 깊이 등등 확실히 수준이 높고, 그만큼 연성이 어려웠다.
한데 그 마공이 벌써 이렇게나 성장했다.
‘구결상으로 보면 사성(四成)의 경지다.’
불가 무공이 기반인지라 잡념이 없고 사고가 이어질수록 마기의 질이 조금씩 상승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공 자체의 성장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마공의 경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강한 욕망이 필요한데, 이천상의 욕망은 평범한 사람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열의도 욕망이라면, 나 역시 이 무공을 열성을 다해 익히고 있으니 그에 자극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천상 혼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강해지고자 잠도 쪼개 가며 마공에 매달리는 이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 모두의 성취가 이렇게 빠를 것인가?
‘모르겠군.’
마공을 접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 생사결에 익숙하다고 해도 내공이 강하지 않으면 단순한 싸움꾼에 불과하다.
‘일 년도 익히지 않은 무공으로, 나는 광마대원을 이겼다.’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성과였다. 광마대원들은 하나하나가 일류의 고수가 아닌가.
그들은 그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피를 토하는 훈련을 했다. 한둘이라면 몰라도, 그들 모두의 노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즉, 그들이 아니라 이천상이 이상한 것이다.
‘이대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비현실적인 성장.
남들보다 몇 걸음 빠른 성장은 재능으로 볼 수 있지만, 남들을 압도하는 성장에는 재능 외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빠른 성장이 뒷받침되는 이유를 자각하지 못한 채 수련을 이어 가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없다. 이천상은 그것을 깨달았다.
생각에 잠긴 지 한참. 그러다 그는 문득 해가 지고 있음을 인지했다.
스르륵.
가부좌를 풀고 건물에서 나온 그는 곧장 호미루로 향했다. 격한 수련을 버티기 위해서는 영양가 높은 식사가 필수일 것이다.
그렇게 호미루 근처에 도착했을 때.
“여어!”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저 멀리서 양건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봐! 밥 먹으러 온 거지! 같이 먹자!”
헐레벌떡 뛰어오는 자세가 그야말로 경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오.”
“오잉?”
양건의 눈이 커졌다.
“같이 먹어도 돼?”
“마음대로 하시오.”
“……오.”
의외였다. 이천상 성격이라면 무시하고 저 혼자 올라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참히 거절당할 각오와 더불어, 함께 식사할 이유를 열 개쯤 준비해 온 수고가 쓸모없어진 순간이었다.
“조, 좋아. 오늘 첫 친구가 생긴 기념으로 술은 내가 사지!”
“친구?”
“왜? 같은 부대원이 됐는데 그럼 친구지.”
이천상이 양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양건의 얼굴이 어색해졌다. 그 와중에도 입은 쉬지 않았다.
“근데 너 눈은 안 아파? 항상 그렇게 시퍼렇게 뜨고 다니면 엄청 따가울 것 같은데.”
“…….”
“아, 혹시 내공으로 보호하는 거야? 근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한참을 말없이 양건을 바라보던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양건은 멋쩍게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따르면서 생각했다.
‘뭐지? 친구 먹기 싫나? 그나저나 눈깔 진짜 희한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