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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29화 (705/774)

외전 29화. 불타오르다 (4)

일 층까지 내려온 두 사람은 꽤 희한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런 시발! 이 쌍년이 어디서…… 어어? 이 새끼들아! 이거 안 놔?!”

애꾸 마인 하나를 덩치 큰 마인들이 팔을 잡아 말리고 있었다.

언뜻 봐도 두 마인이 애꾸 마인의 부하들인 것 같았다. 쩔쩔매는 표정이나, 최대한 아프지 않게 잡아 말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한 명의 여인이 채소볶음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옆에서 그렇게 시끌벅적한데도 표정은 담담했다. 그러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요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놔! 놔, 이 개새끼들아!”

퍼억!

“컥!”

머리로 부하 하나의 콧대를 박아 버린 애꾸 마인의 외눈에서는 살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은 분노 때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술 탓이 조금 더 커 보였다. 필요 이상으로 우렁찬 목소리나 살짝 뭉개진 발음 등, 어느 모로 보나 훌륭한 주정뱅이 아닌가.

부하 마인 하나가 서둘러 팔을 놓았다.

“다, 당주님!”

당주라 불린 애꾸 마인은 부하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숨넘어갈 기세로 씩씩대던 그가 여인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너 이 씹어 먹을 년! 너 내가 누군 줄 알어?! 내가 이년아, 외전 풍곡단(豊穀團) 향화당주다!”

천마신교는 이궁일부, 삼원, 사군육대, 십단을 대표 조직으로 한다.

풍곡단은 단급(團級) 조직이지만 십단에 속해 있지는 않다. 특이한 일은 아니다. 신교에는 그런 조직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래도 풍곡단은 널리고 널린 조직 중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편이었다. 그 이름과 같이 외전의 각종 주루와 부대 식당에 쌀과 식재료를 공급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중원의 공포로 알려진 천마신교도 사람이 만든 조직이다. 그리고 사람이 살면서 먹고, 자고, 입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풍곡단의 중요도는 상당했다. 물론 내전까지 식재료를 공급하진 않았기에 내전 소속 마인들에게는 넙죽 엎드리는 신세였지만.

즉, 이곳 외전에서는 풍곡단 소속 당주인 애꾸 마인이 배에 힘주고 난동 부리는 것도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었다.

주변에 앉아 눈살을 찌푸리던 마인들도 향화당주라는 말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괜스레 엮여서 좋을 일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때, 코가 부러진 부하 마인이 서둘러 일어나 말했다.

“당주님!”

향화당주가 살기 가득한 외눈으로 부하를 노려보았다.

순간 부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상관이 술에 취하면 앞뒤 안 가린다는 거야 잘 알고 있었다. 괜히 말리다가 정말로 칼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칼을 맞더라도 말려야 했다.

“이만 나가셔야 합니다! 어서요!”

“이 새끼, 너 진짜 죽고 싶어? 저 쌍년이 내 욕한 거 안 들었냐?”

부하는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욕이고 뭐고, 처음 본 여인한테 밤일 잘하게 생겼다고 대놓고 이죽거리던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다.

물론 상대가 외전 소속이거나 일반인이었다면 굳이 말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누더기 같은 겉옷 안, 때가 탄 하얀 의복에 푸른 수실로 쓰인 두 글자.

환희(歡喜).

천마신교에 수많은 조직이 있다지만, 환희라는 두 글자를 쓰는 조직은 한 군데뿐이다.

‘환희원!!’

내전 환희원.

신교의 살림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환희원의 일개 조장조차 풍곡단주 나부랭이보다 까마득히 우위에 있다.

직급의 문제가 아닌 영향력의 문제였다. 조장이 아니라 조원만 해도 풍곡단 전체를 귀찮게 만들 힘이 있다. 외전의 단주직을 할 건지, 환희원 소속 일개 조원이 될 건지 묻는다면 환희원의 조원을 택할 마인들이 태반일 것이다.

부하가 최대한 목소리를 줄였다.

“환희원입니다!”

“뭐? 이 새끼야, 크게 말해!”

“환희원이요! 저 사람은 환희원 소속이란 말입니다!”

목소리는 줄였지만 다급함은 하늘을 뚫을 지경이었다.

순간 향화당주가 움찔했다.

평소 그렇게 술버릇이 안 좋다는 그였지만, 환희원이라는 세 글자에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었다.

향화당주가 인상을 구기며 슬쩍 여인을 바라보았다.

‘……!!’

과연 그러했다. 누더기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겉옷 안쪽, 환희라는 두 글자가 생생하게 박혀 있었다.

붉게 달아올랐던 향화당주의 얼굴이 조금씩 파랗게 질렸다. 자신이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때였다.

여인이 향화당주를 힐끔거리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향화당주는 저도 모르게 으르렁거렸다.

“저 개 같은……!”

말을 하고도 향화당주는 서둘러 입을 닫았다.

이성과 본능이 마구 부딪친다. 취기를 날릴 정도로 소름 돋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마신 술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일류의 고수라면 당장 마기로 주기를 불태우겠지만, 불행히도 그 정도의 능력이 없었다.

향화당주가 망설일 때였다.

“주인장.”

여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낭랑했다.

가만 보면 때가 묻고 머리카락도 떡이 져서 그렇지, 오관이 뚜렷한 미녀였다. 평소 이 여자, 저 여자 껄떡대는 걸로 유명한 향화당주답게, 술이 그리 취한 와중에도 용케 그녀의 미모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취객은 그만 쫓아내시죠? 손님들이 불편해하는데.”

“예? 아…….”

조마조마한 얼굴로 주방 앞에서 서성이던 호미루주가 은근슬쩍 취객을 바라보았다.

향화당주의 얼굴이 재차 일그러졌다.

츠츠츠.

그의 몸에서 은근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그 전까지는 시선을 피할 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일 층의 손님들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무림의 객잔들도 그렇지만, 특히 신교 외전의 주루들은 하루가 멀다고 싸움이 벌어진다. 본래 주루에서 마인끼리 싸우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모두에게 잊힌 지 오래였다.

하지만 기껏해야 서로 치고받다가 밖에서 해결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밖에서는 심하면 살인까지 일어날 정도였지만, 적어도 주루에 피해가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향화당주의 기세는 뭔가 달랐다. 살기를 드러낸 것이다.

콧대가 부러진 부하, 향화당 부당주가 서둘러 향화당주의 팔을 잡았다.

“당……!”

퍽!

부당주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주먹으로 명치를 얻어맞아 기절해 버린 것이다.

훅!

향화당주의 살기가 한층 짙어졌다.

부하라서 본능적으로 목이 아닌 복부를 쳤다. 하지만 누군가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순식간에 살심이 치솟았다.

감당키 어려운 취기, 달아오르기 시작한 마기, 눈이 돌아갈 정도의 분노가 자아내는 살기.

향화당주의 이성이 차츰 흐려졌다.

‘그래 봤자 계집이야.’

환희원 소속인 이상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아무 상관이 없다.

‘게다가 저년이 환희원 소속이라는 건 우리만 안다.’

확신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다.

‘괜찮아. 적당히 작살내서 끌고 간 다음 묻어 버리면 된다.’

향화당주의 귀에서 속삭이는 욕망은 그의 의지를 점점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었다.

“호오, 저것 보게?”

양건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진짜로 시작할 기세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지? 그냥 미친 건가?”

그때였다.

저벅저벅.

어느새 양건을 지나친 이천상이 일 층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양건의 눈이 커졌다.

“어? 이봐, 천상이!”

적막만 흐르던 일 층에 양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은 양건을 향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양건을 따라 이천상으로 향했다.

이천상이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지나가겠소.”

“응? 아! 그, 그러시오.”

심각한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언행이었다.

슬슬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던 여인도, 살기를 뚝뚝 흘리고 있던 향화당주도 이천상을 돌아보았다.

덜컹.

이천상이 주루 문을 열었다.

향화당주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너 이 새끼 움직이지 마!”

이천상이 향화당주를 돌아보았다.

푸스스.

이제 향화당주의 마기와 살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기의 질은 별 볼 일이 없었지만, 저렇게까지 불타오르는 이상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선을 넘어가 버렸다고 봐도 좋다.

“조순! 누구도 이곳에서 나가게 하지 마라!”

“다, 당주님!”

그때, 이천상이 여인을 바라보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난 여인의 시선이 이천상을 향한 것과 거의 동시였다.

‘…….’

여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향화당주가 마구 악을 질렀다.

“이 개 같은 연놈들! 눈빛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오늘 이 어르신이 단체로……!”

툭!

순간 향화당주는 시야가 확 낮아지는 걸 느꼈다.

‘어?’

당황해서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작고 하얀 주먹이 보였다.

퍼억!

신음도, 비명도 없었다.

코와 주변 광대는 물론 윗잇몸까지 부서져 움푹 들어간 채, 향화당주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안면이 함몰되어 올라온 압력 때문에 두 눈알도 반쯤 툭 튀어나왔다.

부르르르.

쓰러진 향화당주가 천장을 보며 허우적대다가 이내 힘을 잃었다. 눈꺼풀은 튀어나온 눈을 다 가리지도 못했다.

“……!”

충격적인 광경에 모두가 입을 뻐끔댔다.

이곳에는 마인도 있었고 마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도 많았다. 하는 일도, 성격도 달랐지만 거친 신교 생활에 이런저런 꼴을 다 봤다는 공통점은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사람 얼굴이 저렇게 망가진 것을 보진 못했다. 차라리 목이 날아간 게 더 깔끔하게 보일 정도였다.

“워…… 손속 매섭다.”

여인의 주먹질에 혀를 내두르다, 양건은 어느새 문을 열고 나가는 이천상을 발견하곤 다급히 외쳤다.

“엇! 같이 가!”

헐레벌떡 이천상을 쫓아 나가는 양건 덕분에 살벌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으아악!”

“뭐, 뭐야? 살인이야?!”

“몰라! 어? 아닌 것 같은데? 아직 움직이는데?”

“미친! 저게 움직이는 거냐? 움찔움찔대는 거지!”

“그게 그거잖아!”

순식간에 공황 상태가 된 일 층.

호미루주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주루 안에서 살인이 벌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봐요.”

“헉!”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여인이 바로 옆에 와 있었다. 호미루주는 저도 모르게 부동자세를 취했다.

“네, 넵!”

여인이 작은 전낭 하나를 건넸다.

“내가 먹은 음식과 소란 피운 값이에요. 받아 두세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받아 둬요. 괜한 수고를 끼쳤는데.”

“……정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만약 풍곡단에서 오면, 저 애꾸를 병신으로 만든 사람이 야차사령부에 있을 거라고 말해요.”

“예? 야, 야차…… 뭐요?”

“야차사령부. 그냥 야차령이라고 하면 됩니다.”

여인이 몸을 돌렸다.

“정 뭣하면 환희원 출신이라고 해도 좋고요.”

* * *

“야,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혼자 가냐. 의리 없이.”

이천상은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양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네 성격에 번잡스러운 거 오죽 싫어했겠냐. 사실 나도 좀 김새긴 했어. 재미난 사건이라도 생길 줄 알았는데 너무 싱겁더라.”

이천상이 걸음을 멈추었다.

양건이 주춤했다. 자신을 보는 이천상의 눈빛이 유독 파랗게 보였던 것이다.

“저게 재미있나?”

“……엉?”

“나는 재미없다.”

“어……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뭐, 불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라던데.”

“…….”

“커험! 혹시 기분 나쁘냐?”

“그게 뭔지 난 모른다.”

어쩐지 이천상의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진 것 같았다. 양건이 민망한 듯 작게 헛기침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곤두선 거야?”

그제야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바르지 못한 이들이다. 애꾸눈도, 여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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