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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30화 (706/774)

외전 30화. 불타오르다 (5)

다음 날 새벽.

방에서 운공을 끝낸 이천상은 식사를 위해 호미루에 들렀다.

호미루는 하루 열두 시진을 꼬박 운영했다. 다만 자정부터 점심 전까지는 주인장이 없었고, 요리도 몇 가지밖에 주문할 수 없었다.

“엇, 오셨습니까.”

점소이의 인사에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부터 점심까지 일하는 점소이였다. 그간 같은 시간에 왔던지라 매번 마주쳤기에 얼굴이 익숙했다.

물론 점소이는 평소처럼 웃는 낯으로 이천상을 대하지 못했다. 어지간한 고수들도 기피할 정도로 이천상의 표정은 지나치게 딱딱했다.

“저, 손님. 오늘은 이 층으로 올라가셔서 식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천상이 일 층을 둘러보았다.

일 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서진 탁자와 의자도 없었고, 평소 보던 그대로의 정리 상태였다.

점소이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 오늘 일 층을 둘러보실 분이 계셔서…….”

어젯밤 벌어진 사건 때문에 사람이 오는 모양이었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먹던 것으로 주시오.”

“아, 옙!”

이 층으로 올라온 이천상이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다진 고기가 들어간 뜨끈한 죽과 채소볶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수련에 집중하다 보면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 다만 속이 든든하면 미세하게나마 집중도가 좋았다.

그 때문에 이천상의 죽은 어지간한 장정 셋이서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고기도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서 이걸 정말 소화시킬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천상은 음식을 천천히 먹었다.

허기지게 보내는 날이 잦다 보면 음식을 급하게 먹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천천히, 꼭꼭 씹어먹으면 소화가 잘되고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천상은 그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먹었을까.

끽. 끽.

일정한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천상은 돌아보지 않아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미 일 층에서 점소이와 나누던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합석해도 될까?”

이천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 자리를 앉은 여인이 점소이에게 식사를 부탁했다. 음식은 이천상과 똑같은 것이었다.

여인이 말했다.

“야차사령부 소속이지?”

“그렇소.”

“나도 야차사령부로 전출됐어. 주연교(周蓮橋)라고 해.”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였다. 여인, 주연교의 표정이 묘해졌다.

“당신 이름은?”

“이천상이오.”

“이천상…… 이름이 좋네.”

이천상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주연교가 의자에 등을 묻으며 말했다.

“어차피 같은 소속이고 당장 직급이 나뉜 것도 아닌데, 당신도 말 편하게 해.”

“그러지.”

주연교는 양건이 느꼈던 걸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이상한 사람이다.’

신교에는 워낙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많다. 익히고 있는 마공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애초에 소국(小國)이라 불릴 정도로 사람이 많았으니 그만큼 성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사회성이 없는 건가.’

물론 사회성 없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이천상이라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이질감을.

물론 그 이질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물끄러미 이천상을 보던 주연교가 툭 던지듯 물었다.

“야차일각이지?”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연교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 옆방이야.”

“알아.”

“어떻게 알지?”

“기척을 느꼈다.”

주연교가 피식 웃었다.

“그걸 다 알고도 모른 척했던 거야?”

이천상이 의아한 눈으로 주연교를 바라보았다.

“아는 척을 해야 하나?”

“…….”

참 할 말 없게 만드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물론 그 어색함은 전적으로 주연교의 몫이었다. 이천상은 어색함이라는 것 자체를 몰랐다.

잠시 후, 주연교의 식사가 나왔다.

이천상과 똑같은 음식에, 똑같은 양이었다. 체구가 작은 여인이 먹을 것이라기에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많았다.

주연교는 전혀 문제없다는 듯 열심히 먹었다.

그녀가 먹는 속도는 확연히 빨랐다. 이천상이 죽을 다 비울 즈음, 그녀 역시 식사를 거의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천상이 허공의 줄을 당겼다.

잠시 후, 점소이가 올라왔다.

“항상 드시던 차를 내어 드릴까요?”

“그리해 주시오.”

“예!”

주연교가 손을 들었다.

“같은 걸로요.”

“아, 알겠습니다. 다 드셨으면 그릇은 치워 드리겠습니다.”

쟁반을 들고 왔던 점소이가 그릇을 가져갔다.

이천상은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 동이 터 오는 하늘은 꽤 운치가 있었다.

“어제 말이야.”

이천상이 주연교를 바라보았다.

주연교의 표정은 뭐라 설명하기 복잡할 정도로 묘했다.

“나한테 눈치를 줬지?”

“그렇다.”

잠시 망설이던 주연교가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사건을 크게 키울 생각은 없었어.”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네 말은 거짓이다.”

“뭐?”

“넌 상대를 농락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사건이 커졌다.”

주연교가 흠칫했다.

그 말을 끝으로 이천상은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연교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사건이 커졌다고?”

“그렇다.”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저쪽이었어. 피해자는 나야.”

“안다.”

“……?”

“하지만 너에게는 그를 압도할 힘이 있었다. 무력으로도, 직책으로도.”

“…….”

“그리고 당시 일 층에는 무공 한 줌 익히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주연교의 눈이 흔들렸다.

그때, 점소이가 차를 내왔다.

주연교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내 잘못이라고?”

이천상이 차를 마시며 말했다.

“어떤 일이든 먼저 가해를 한 쪽에 죄가 있다. 그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힘을 가진 사람으로서, 너의 처신이 올발랐다고 볼 수는 없다.”

“그건 좀 너무한 발언인데? 일반인을 신경 쓰지 못한 건 내 잘못이 맞지만…….”

“넌 그 작자의 모욕에 그리 분노하지 않았다.”

주연교가 차갑게 웃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내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네가 아는 게 중요하지.”

“……!”

“토끼의 모욕에 화를 내는 늑대는 없다. 그저 잡아먹으면 그뿐이야.”

“…….”

“넌 포식자로서 상대를 사냥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농락했을 뿐이다.”

“먼저 시비 건 놈이 잘못이지.”

“힘없는 민간인들이 없었다면 지금 너의 발언에 동의했을 것이다.”

주연교의 볼이 살짝 떨렸다.

이천상이 차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같은 결과라도 본인의 상태와 당시의 환경, 상황에 따라 바름과 잘못의 경계는 모호해진다고 배웠다.”

“…….”

“그래서 나는 네가 올바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왜? 놈을 죽인 것도 잘못이라고 하지?”

“외전에도 형법당과 같은 조직이 있는지 모르겠군. 그러나 죽을 짓을 한 놈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뭐?”

“어디서,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기묘한 인간이었다.

말투도 말투지만, 말의 내용이 더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가해, 피해로만 나누지 않고 힘을 지닌 자인지 아닌지, 상황은 어떠했는지, 정말 불가항력이었는지까지도 따진다.

참 복잡하면서도 그럴듯하고, 그럴듯하면서도 꿈과 같은 얘기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웃기지도 않는 소리 같지만, 또 상황을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가만히 이천상을 보던 주연교가 툭 던지듯 물었다.

“내전에 줄이 닿은 사람이 있지?”

“그렇다.”

너무 순순히 인정해서 주연교가 더 놀랐다.

“꽤 실력이 좋은 것 같은데, 신교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연줄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곳이야.”

“그렇더군.”

“부대가 창설되기도 전에 들어온 걸 보면 끗발 좋은 뒷배가 있는 모양이야. 부정한 권력 덕분에 이곳에 온 네가 올바름을 운운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가만히 주연교를 보던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군.”

뭐야, 이 녀석?

주연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타인의 삶을 모른다. 그들처럼 살아 본 적이 없으니, 내 말 또한 경험하지 못한 자의 알맹이 빠진 헛소리일 수 있다.”

“……묘하게 자기 성찰이 빠르네? 앞에서 다 때려 놓고 붕대 감아 주는 거야?”

“배우면 배울수록 원칙과 사상이 달라진다. 언젠가는 나도 너나 양건과 비슷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양건이 누구야?”

“야차삼각.”

“아? 어제 당신과 함께 있던?”

“그렇다.”

주연교가 턱을 괴고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당신, 진짜 이상한 거 알아?”

“안다.”

“진짜 이상해. 너무 이상해. 무슨 목각 인형도 아니고, 말투에 인간미가 하나도 없잖아.”

“안다.”

그 한결같은 반응에 주연교가 피식 웃었다.

이천상이 차를 마시며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에 뭐라도 있어?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이천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연교는 생각했다.

‘포식자라…….’

이천상의 말에 발끈하긴 했지만, 크게 화가 난다거나 억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선했다. 특히나 자신과 향화당주를 늑대와 토끼에 비유한 말은 유독 가슴을 뒤흔들었다.

‘세상을 철저히 강자와 약자로 구분하는 건가? 그럼 나는…….’

상대적이긴 하지만, 분명 강자라고 말해 준 것이다.

아마 상대가 누구라도 똑같은 말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대화는 처음 나눠 보지만, 이 고요하게 미친 인간의 태도는 남녀노소를 구분할 것 같지 않았다.

‘쓸데없이 원칙적이네.’

그러면서도 뒷배가 있음을 당당하게 인정한 게 압권이었다.

주연교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참 모순적인 사람이네.”

그때였다.

쾅!

일 층에서 굉음이 터졌다.

“주인장 어디 있어?”

침착하면서도 차갑고, 부드러우면서도 냉혹한 목소리였다.

문짝이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와 도통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다. 그래서 더 살벌했다.

“헉! 누, 누구십니까?”

짝!

“악!”

“주인장 데려와.”

주연교의 얼굴이 굳어졌다.

계단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마기.

상당한 농도의 마기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족히 스물은 넘는 듯했다.

‘조금 잡스럽지만 실력들이 상당해.’

그때, 이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연교는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 따라 일어났다.

이천상은 말없이 계단으로 내려갔다. 급하지도 느긋하지도 않은, 뒤에서 불벼락이 떨어져도 바뀌지 않을 걸음걸이였다.

주연교가 한숨을 쉬며 그의 뒤를 따랐다.

“루, 루주님께서는 지금 여기 안 계십니다!”

뺨이 퉁퉁 부어오른 점소이의 얼굴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풍곡단주 모국상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안 계시면? 그럼 끝나?”

“……예?”

“일각 줄 테니까 데리고 와라.”

“이, 일각이요?”

퍽!

“아아악!”

모국상의 발길질에 바닥을 구른 점소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점소이의 정강이는 푹 들어가 있었다. 뼈가 부러진 것이다.

“당장 데리고 와. 일각 안에 주인장이 안 나타나면, 오늘부로 이 주루는 사라질 거야.”

모국상의 눈이 음침해졌다.

“네놈과 주인장 목숨도 같이.”

“허억!”

“시간이 남아도나? 분명 일각이라고 했을 텐데?”

그때였다.

“당신이 말했던 올바르지 않은 상황인 것 같은데?”

“그렇군.”

한가로운 말투 속에 생생한 분노가 느껴진다.

모국상이 인상을 찡그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계단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한 쌍의 남녀가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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