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1화. 불타오르다 (6)
주연교의 눈에 불이 붙었다.
모국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벽 나절부터 밥 먹으러 오는 손님들도 있군.”
칼자국으로 도배가 된 그의 얼굴은 꿈에서라도 보기 두려울 정도로 살벌했다.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눈빛도 얼굴만큼이나 냉혹해서 그와 마주친 사람들 대부분은 눈을 피했다.
주연교는 그렇지 않았다. 생생한 분노로 타오르는 그녀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는 모국상의 눈빛을 들끓게 할 정도로 뜨거웠다.
모국상이 인상을 찡그렸다.
‘상당한데.’
분노한 주연교의 몸에서는 희미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마기의 질이 굉장했다. 데려온 수하들은 물론이요, 자신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할 정도의 기질이었다.
그때였다.
“단주님.”
덩치 큰 마인, 어젯밤 향화당주를 말렸던 조순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계집입니다.”
“뭐?”
모국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향화당주를 죽인 계집이 저년이라고?”
모두의 시선이 주연교에게로 향했다.
그 사이, 이천상은 점소이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점소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 잠깐!”
“참으시오.”
우둑!
“끄아아악!”
점소이가 비명을 질렀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온몸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그의 정강이를 만져 본 이천상이 주방을 바라보았다. 주방 문 안쪽에서 고개만 빼꼼 드러내고 있던 숙수의 눈이 흔들렸다.
“의방으로 데리고 가시오.”
“예? 아, 예!”
모국상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의방에 데리고 가.”
주방에서 나오던 숙수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스르륵.
풍곡단 소속 마인들이 일 층의 문 앞에 일렬로 늘어섰다. 누구도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벽을 세운 것이다.
드르륵.
의자를 끌고 와 앉은 모국상은 보란 듯이 다리를 꼬았다.
“네년이 주연교냐?”
당장이라도 손을 쓸 듯 내공을 끌어 올리던 주연교가 움찔했다.
“날 알아?”
“환희원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상대가 환희원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모국상의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당당했다.
모국상이 피식 웃었다.
“환희원 출신이면 뭐 하나? 끈 떨어진 신세인데. 밀리고 밀려서 외전으로 전출된 뿔 난 망아지가 아니던가?”
주연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모국상의 말대로였다. 그녀는 환희원 출신이지만, 연줄도 없고 성격도 모난 구석이 있어서 원내 마인들과 원활한 관계를 쌓지 못했다.
거기까지라면 상관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성정 자체가 환희원에 맞지 않았다. 정말 운이 좋게 환희원에 들어가긴 했으나, 그녀는 행정이나 이문보다 무공에 더 능한 사람이었다.
연줄도 없고 업무 능력도 그저 그렇다. 성격이 살가워서 윗사람 비위라도 맞출 줄 아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야차령이라고 했지만, 외전보다는 내전의 영향력이 훨씬 더 큰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외부 감찰이라는 임무 특성상 교에 붙어 있는 시간도 많지 않은 야차사령은, 어중간한 권력자들이나 눈을 붉히는 곳이지 진짜 힘이 강한 이들은 자기 사람을 내전으로 보냈다.
환희원은 내전에서도 손에 꼽히는 조직이었고, 교의 살림을 담당하는 이상 자금 흐름이 가장 원활한 곳이기도 했다. 당연히 자신들 사람은 내전인 야차호령으로 보냈다.
그 과정에서 계륵만도 못한 주연교를 외전 야차사령으로 보낸 것이다. 즉 말이 전출이지, 환희원에서 쫓겨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네년이 하룻밤이라도 편히 보낼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 것 같으냐? 난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야. 알아볼 건 다 알아보고 왔지.”
뒷조사를 했다면 부끄러워할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철두철미함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모국상의 얼굴에 살기가 어렸다.
“감히 너 따위가 내 동생을 죽여?”
이른 새벽부터 쳐들어온 이유 중 하나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향화당주 모건은 모국상의 동생이었다. 비록 사촌지간이지만, 그래도 제법 끔찍하게 아끼던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이 이름도 모르는 계집년에게 죽었다고 하니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환희원 출신이라는 데에 억울했지만, 혹시 몰라 조사하니 손을 대도 뒤탈이 전혀 없다고 한다.
동생의 복수를 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편히 뒈질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반쯤 죽여 놓은 후에 내가 후원하는 기루에다가 던져 주지. 사내놈들 아래서 몇 달 잘 구르다 오면 그때…….”
“주방 문은 튼튼하오?”
무심한 목소리가 살기 가득한 모국상의 말에 찬물을 끼얹었다.
주연교가 황당한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모국상의 얼굴은 뭐라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천상이 점소이를 안아 들어 숙수에게 건넸다.
“주방 문 닫으시오.”
“예, 예?!”
“보낸다고 나갈 것 같지 않소. 문 닫고 안에서 기다리시오.”
“저, 저는…….”
허둥지둥하던 숙수는 순간 이천상의 눈을 보고 목을 움츠렸다.
“아, 알겠습니다.”
서둘러 점소이를 받아 든 숙수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은 모국상 일행이었다. 괜히 이천상의 말을 듣다가 불똥이 튀면 자신들도 곤란해질 터였다.
그런데도 그는 이천상의 말대로 움직였다. 그의 눈을 본 순간,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드르륵.
주방 문이 닫히자,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모국상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넌 또 뭐…….”
훅!
움직임은 순간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순간, 이천상은 단숨에 모국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국상은 기겁했다.
저도 모르게 일어나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퍼억!
순식간에 자세를 낮춰 의자 다리를 부수니, 모국상의 자세가 휙 흐트러졌다.
콰득!
반대편 다리로 모국상의 갈비뼈를 부순 이천상이 그의 목을 움켜잡고 그대로 바닥에 꽂았다.
쾅!
“컥!”
모국상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이천상의 발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콰득! 콰득! 콰득!
양 무릎과 오른팔 팔꿈치를 번개처럼 부숴 버린 그가 모국상의 남은 왼팔을 밟은 채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
마인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건 주연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천상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도, 이렇게 과감하고 냉정하게 상대를 부술 줄도 몰랐다.
잠시의 침묵.
“크아아아악!!”
모국상의 고통 가득한 비명이 호미루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인들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이 개새끼가!”
“다, 당장 그 발 치우지 못해!”
“죽인다!”
각자가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그중 누구도 이천상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기습이라고는 하나 이천상의 몸놀림은 엄청나게 유연하고 빨랐다. 마치 상대와 미리 합을 맞춰 보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사지를 박살 내고 인질로 삼아 버렸다.
무시무시한 과감성이었다. 실력 이전에 행동력만으로도 쉽게 덤비기 힘들었다.
“주연교.”
“……어?”
멍하니 이천상의 등을 보던 주연교는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이천상이 발에 힘을 주었다.
“발은 빠른가.”
“나? 경공은 그냥…….”
“내전까지 다녀오는 데 얼마나 걸리지?”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주연교는 순순히 대답했다.
“전속력이라면…… 여기서 이각이 좀 넘을 것 같은데.”
“형법당에 내 이름을 대고 이곳 상황을 전해.”
“어?”
“움직여. 지금.”
형법당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순간 장난하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기색은 없었다. 애초에 장난을 칠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당장 움직여.”
“어? 어어.”
그때, 문 앞에 있던 마인 조순이 버럭 외쳤다.
“누구도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퍼어어억!
“컥!”
조순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날아오른 주연교가 무릎으로 그의 안면을 찍어 버린 것이다.
이천상의 눈이 빛났다.
‘빠르군.’
몸이 무척이나 날래다.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선보일 수 없는 속도요, 유연함이었다.
놀란 마인들이 주연교를 향해 칼을 휘둘렀지만, 이미 주연교는 부서진 문밖으로 나가 버린 뒤였다.
“자, 잡아!”
“멈춰.”
문밖을 향해 몸을 날리려던 마인들이 움찔했다.
이천상의 말은 그야말로 절대명령과도 같았다. 그 무심하고도 스산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아서 발이 멈췄다.
인간의 음성이라기에는 무리가 있는,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
“누구 하나라도 나가는 순간 단주의 목숨은 없다.”
이천상의 발이 모국상의 목을 지그시 밟았다.
“끄르르륵!”
모국상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피가 통하지 않는지, 얼굴도 검푸른색으로 변해 버렸다.
“머, 멈춰라!”
“개새끼야! 발 안 떼!”
“죽여 버린다!”
마인들은 마구 악을 질렀지만,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 같이 덤벼들면 어떻게든 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풍곡단주를 죽이면서까지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이천상의 목소리가, 그의 눈빛이, 그가 보여 준 단호한 손속이 그들에게 엄청난 인상을 주었다.
저놈이라면, 진짜로 단주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꼼짝 못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마인들을 둘러보던 이천상이 모국상을 내려다보았다.
스르륵.
“콜록! 콜록! 크윽!”
밭은기침을 내뱉던 모국상이 다시 신음을 흘렸다. 숨이 쉬어지자 부러진 팔다리와 갈비뼈에서 엄청난 통증이 올라왔던 것이다.
이천상이 그의 가슴에 발을 올렸다. 여차하면 그대로 짓밟아서 심장을 터트릴 기세였다.
모국상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너, 너 이 개새끼는 뭐야?!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목소리에 억울함이 철철 묻어 나왔다.
일대일로 붙어도 이기기 힘든 상대에게 기습을 당했다. 더하여 권력에 취해 무공을 등한시했으니,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문제는 뒷감당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외전에서 풍곡단이 지닌 위치는 상당했다. 하물며 풍곡단의 주인이라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권력자였다.
“씹어 먹어 주마! 토막을 쳐서 개 먹이로 줄 것이야!”
모국상이 마구 악을 질러 댔다.
그가 욕을 하든 말든 이천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묘한 운치가 있었다.
“슬슬 해가 뜨는군.”
* * *
반 시진 후.
“다들 물러나라!”
무시무시한 목소리와 함께 호미루로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마인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들이닥친 이들이 형법당 소속 마인들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이천상이 주연교에게 형법당 운운하는 걸 전부 듣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다급한 상황이어서 모두가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이 사신(死神)을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법당 조장, 전오가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이 말없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전오의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고작 외전에서 터진 일에 일 조장인 자신이 직접 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해도 안 뜬 새벽이 아닌가.
‘이런 시발!’
울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 울화는 오롯이 풍곡단을 향했다.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이 새끼들 싹 포박해서 형당 뇌옥에 처넣어 버려!”
그제야 이천상이 모국상의 가슴에서 발을 떼었다.
모국상의 얼굴에 절망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