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2화. 불타오르다 (7)
이른 아침이라 호미루 주변을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이송은 상당히 고요하고도 빠르게 이뤄졌다.
“이봐, 애송이.”
깨끗해진 일 층.
전오가 이천상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당주님께서 뒤를 봐주신다고 섣불리 우릴 불러서는 곤란해.”
“알겠소.”
“모르는 것 같은데? 고작 외전에서 터진 일로 형법당이 움직인 걸 알면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
“…….”
“처신 잘해라.”
“알겠소.”
“……제길.”
마음 같아서는 욕을 한 바가지는 더 퍼붓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주의는 이쯤 줘야 했다.
전오가 신경질적으로 호미루를 나섰다. 정말이지 광마대주를 호송할 때만 해도 자신이 이런 일에 나서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그였다.
호미루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이천상이 부서진 의자를 한옆으로 빼고 탁자를 정리했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주연교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봐.”
“말해라.”
“당신…… 형법당주님과 친분이 있었어?”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
주연교의 눈이 흔들렸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형법당은 내전에서도 그 영향력이 대단한 조직이었다.
당연히 그 수장인 공무외의 권력도 엄청났다. 적어도 외전에서 공무외에게 말 한 번이라도 걸 수 있는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형법당주와 연이 닿았으면서 야차사령부로 왔어? 왜?’
공무외 정도의 연줄이면 충분히 야차호령부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야차호령부는 교내 권력의 교각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니까.
주연교의 눈이 깊어졌다.
‘그래서 올바르지 않다느니, 피해자니 가해자니 하는 말을 한 건가?’
형법당 출신이라고 생각하니 그 말도 이해가 갔다. 형법당이 아무리 썩었다 해도,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형법 공부를 제법 많이 해야 한다고 들었다.
물끄러미 이천상을 보던 주연교가 밀려 나간 탁자와 의자를 끌어다 정리했다.
드르륵. 드르르륵.
탁자와 의자가 끌리는 소리에 묘한 박자감이 있었다.
주연교가 물었다.
“왜 그랬어?”
“뭐가.”
“당신 성격이라면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던 것 같은데.”
이천상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점소이가 다쳤다.”
이게 무슨 동문서답인가.
눈살을 찌푸리던 주연교는, 이내 점소이가 무공 한 줌 익히지 않은 범부라는 걸 깨달았다.
‘민간인이 다쳐서 나섰다는 건가?’
물론 마인이라도, 아니 마인이기에 더더욱 민간인을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 심지어 이곳은 신교 외전 안이었다. 목숨 걸고 장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누가 이곳에 와서 장사할 생각을 하겠는가.
‘형법당주를 등에 업고 있으니 자신은 있었겠지만…….’
그래도 뭔가 석연찮았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행동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이천상도 그랬고, 지금의 주연교도 그러했다.
주연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괜히 내 일을 떠넘겨 해결시킨 것 같네.”
“네 일이 아니다.”
“응?”
“모두의 일이다.”
주연교가 놀란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은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정리를 이어 갔다.
‘모두의 일이라고?’
뭔가 굉장히 낯간지러우면서도 묘하게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천상은 자신이 한 말에 한 치의 의심도 없는 것 같았다. 그 말에 다른 의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리가 끝나자 이천상이 주방 문을 열었다.
“허억!”
숙수가 놀라서 점소이를 끌어안았다.
“끝났소. 그를 의방으로 데리고 가시오.”
“예, 예!”
다행히 점소이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뼈는 대충 맞추었고, 이천상의 내공이 스며들어 상처 부위를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호미루를 나섰다.
주연교가 말했다.
“당신은 참 희한한 사람이야.”
“안다.”
“풍곡단주 팔다리는 왜 부쉈어? 당신 실력이라면 점혈로 마비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점혈법은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주연교가 입을 쩍 벌렸다.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어도 내공이 상당하잖아? 어느 혈도가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대충 알지 않아?”
“위급한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짓을 하는 것은 좋지 못해.”
너무 당연한 말이라 단박에 설득이 되었다.
주연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들 팔다리 부수는 건 어지간히 많이 해 봤나 보네.”
사실이었다. 투마장 생활을 할 때 뼈를 박살 낸 적의 숫자를 일일이 세기도 어려웠다.
물론 이천상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당신 성격이면 상대에게 말로 주의를 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난 말수가 많지 않아.”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주먹부터 휘두를 사람은 더더욱 아니잖아? 내 눈에는 그래 뵈는데?”
“말이 통할 때가 있고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후자라고 판단해서 서슴없이 달려든 거야?”
“시간도 촉박했어.”
“무슨 시간? 점소이?”
“시간이 더 지나면 형법당에서 사람이 온 게 여기저기 알려지게 된다.”
“지금도 알려질 텐데? 좀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남의 눈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아.”
“왜?”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도헌을 뜻함이었다.
주연교의 눈빛이 묘해졌다.
“어쨌든, 당신 입장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거네?”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잘나셨어, 정말.”
다시 말없이 걷던 두 사람.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주연교였다.
“당신과 나는 달라.”
“…….”
“당신이 왜 야차사령부로 왔는지 모르겠어. 그 정도 힘이 있다면 내전의 호령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
“하긴, 사람마다 사정이 있는 거겠지.”
“…….”
“아까 그놈 말 들었지? 환희원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는 것.”
“들었다.”
주연교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화가 났어. 환희원에도, 나 스스로에게도.”
“…….”
“쫓겨나서 오긴 왔는데, 마침 좋은 시빗거리가 생겼어. 당신 말마따나 그 머저리한테 진심으로 화가 나진 않았어. 화도 낼 만한 가치가 있는 놈한테나 내는 거지.”
“…….”
“그냥 분풀이할 상대가 필요했어. 나보다 약하고 비열한 놈이 처절하게 망가지는 꼴을 보고 싶었어. 그걸로 내 울분이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지.”
이천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주연교는 그가 말이 없기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일일이 대꾸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면, 조금은 비참해졌을 것이다.
주연교가 쓰게 웃었다.
“그와는 반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어. 환희원은 싫었지만, 그래도 신교에서 손에 꼽히는 조직에 속했다는 자부심은 있었거든.”
“…….”
“그래서 환희원 정복을 벗지 않았어. 성질 같아선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었는데, 또 그러지는 못하겠더라. 나한테는 자존심이자 애증의 증표 같은 거였거든.”
이천상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이었다.
주연교가 눈을 감았다.
“당신 말이 맞아. 그러면 안 됐어. 내가 늑대인지는 모르겠지만, 토끼만도 못한 놈 때문에 피해 볼 사람들을 생각했다면 무시하거나 밖으로 끌어냈어야 했지.”
“…….”
“맞네. 전부 당신 말대로네. 얄미울 정도로.”
다시 눈을 뜬 주연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당신이 모순적인 건 마찬가지야. 권력을 이용해서 잡을 생각을 하다니, 이게 올바른 거야? 설마 권력에 취한 놈은 권력으로 잡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뭐 이런 건 아니지?”
이천상이 손가락을 들었다.
“첫째.”
“응?”
“민간인이 없었다.”
“…….”
“둘째. 그대로 놔뒀다면 피해자인 네가 부당하게 다칠 위험이 있었다.”
“얼씨구.”
“마지막 셋째.”
“…….”
“같은 부대원이다.”
주연교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이천상이 말했다.
“난 사람들 간의 관계를 잘 몰라. 머리로는 알지만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다.”
“…….”
“양건이 말했다. 같은 부대원이라면 친구이고, 진정 친구라면 제 일처럼 나서야 한다고.”
“…….”
“취객의 헛소리에 가까운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부대원이든 친구든, 사적 교감 없이는 그저 남남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노력해 보려고 한다.”
“무엇을?”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을.”
“……!”
“난 언제나 수동적이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뭔지는 알지만 공감하진 못한다. 그래서 먼저 손을 뻗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이유가 없기 때문이야.”
“…….”
“다만 세상을 배우기 위해서는 사람을 배워야 하고, 사람을 배우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바뀔 필요가 있다.”
주연교의 얼굴에 아리따운 미소가 어렸다.
“그래서 그렇게 불타올랐던 거야?”
“불?”
“화려하게 불태우던데? 좌중을 압도하는 그 살기, 대단했어.”
이천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살기를 드러냈던가?”
“충분히.”
“그럼 나도 바뀌고 있는 거군.”
물론 거짓말이었다. 주연교는 이천상에게서 단 한 올의 살기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마인 모두가 겁을 집어먹었다. 파리를 잡듯 무심하게 자신들의 상관을 뭉개 버린 상대에게 두려움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주연교는 이천상이 변하는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점소이의 부러진 다리를 볼 때 꿈틀거리던 그 눈빛.
무색투명한 동공 속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참으로 인간적인 붉은 감정을 볼 수 있었다.
“이제부터 당신을 모순덩어리라고 부르겠어.”
“마음대로 해.”
“인정하는 거야? 스스로가 올바르지 않았다는 걸?”
“인정한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는데.”
“그런가.”
“남들 앞에서 올바르네, 올바르지 못하네 운운하면 역공당할 거야. 망신당할 수도 있다고.”
“신경 쓰지 않는다.”
“어련하시겠어.”
어느새 두 사람 앞에 야차사령부가 보였다.
“후회는 안 하지? 올바르지 않게 처신한 것.”
“안 한다.”
주연교가 웃으며 이천상을 앞질렀다.
“시간 나면 이따 저녁도 같이 먹자.”
“싫다.”
* * *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음.”
공무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보는 눈은 많이 없었다네. 은근히 퍼지기야 하겠지만, 또 금방 식을 일이니 괜찮겠지.”
도헌이 고개를 숙였다.
“괜히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어허, 자네가 고개 숙일 일은 아니야. 그리고 뭐,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 녀석도 악의를 갖고 한 일은 아니잖은가?”
공무외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게다가 마침 상부에 보고할 실적을 찾고 있었거든. 연줄이 있어도 분명한 성과를 내지 않으면 위태로운 자리가 바로 이 자리일세.”
“그렇습니까.”
“풍곡단주란 놈, 뒷돈을 어지간히 많이 챙겨 먹었더구만. 심지어 교외에 다른 사람 명의로 차린 기루가 일곱 채나 있더라고.”
“욕심이 너무 많은 자군요.”
“그러게나 말일세. 그렇게 돈을 쌓아 두더니 한 방에 지옥행이구먼. 쯧, 사람 인생이 파도와 같다고 하더니 조금 불쌍하기도 하네.”
“여하간 애를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헌이 재차 고개를 숙이자 공무외가 손사래를 쳤다.
“이 사람아, 우리가 남도 아닌데 자꾸 이럴 텐가? 앞으로도 자네와 자네 사람들 뒤는 톡톡히 봐줄 테니까 절대 부담 갖지 말게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허허, 감사는 무슨.”
공무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건수 하나 잡았으니 당분간 놀고먹어도 되겠어. 자네는 시간 되나?”
“물론입니다.”
“괜찮으면 술이나 한잔하세. 오늘은 자미루로 가 볼까 하는데, 어때? 괜찮지?”
“자미루의 술맛이 일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 술은 제가 사지요.”
“허허허! 자네도 이제 오고 가는 묘미를 아는구먼. 좋네! 내 오늘 자네 전낭을 홀쭉하게 만들어 주지.”
공무외가 껄껄 웃으며 앞서 나갔다.
웃으며 그의 등을 보던 도헌이 이내 한숨을 쉬었다.
‘이놈아, 초장부터 너무 살벌한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