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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34화 (710/774)

외전 34화. 은밀한 임무 (2)

복면인을 따르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다만 수풀이 너무 우거져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게 귀찮을 뿐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은 기척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파악할 정도의 고수들이었다. 시간을 지체하거나 뒤처지는 일은 없었다.

차 몇 모금 마실 시간이 지나자 작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왔구먼.”

꽤 큼직한 바위 위에 한 중년 사내가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크지 않은 체구지만, 덕분에 날렵해 보였다. 그러나 세 사람을 내려다보는 그 눈빛만큼은 체구와 달리 무척이나 장대하고, 그 이상으로 강인해 보였다.

훅!

순간 양건과 주연교의 표정이 변했다.

마공을 개방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사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기세가 그들을 옭아매고 있었다.

‘고수!’

고수다. 그것도 보통 고수가 아니었다.

지닌바 무공 역량이 절정에 달한 고수였다. 기세도 기세지만 편히 앉아 있는 자세에서도 빈틈이 일절 보이지 않았다.

‘부관급.’

사내를 올려다보는 이천상의 눈빛은 여전히 무심했다.

‘광마대 부관, 황무석과 비슷한 느낌이다.’

실제 누가 더 강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느껴지는 기세와 자세, 눈빛 등으로 볼 때 이자의 무력이 황무석에 비해 떨어지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그때였다.

“좋은 눈빛들이야. 하나같이 젊고 패기만만해.”

찬찬히 한 명 한 명 훑은 뒤 칭찬을 건넨 사내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독사의 미소였다.

“나는 젊음을 좋아하지.”

양건이 물었다.

“누구신지요?”

그답지 않게 공손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세를 떠나,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위엄은 일개 전투원이 보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사내가 품에서 작은 명패를 꺼내 양건에게 던졌다.

명패를 받은 양건은 순간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군사부……?!”

옆에 있던 주연교도 마찬가지로 깜짝 놀랐다.

‘군사부라니?!’

이궁일부와 삼원, 사군육대와 십단으로 이뤄진 천마신교 중 일부에 해당하는 조직으로, 신교 내전에서도 최정상급 권위를 지닌 조직이 군사부다.

자전신마 조백천이 교주위에 오른 이후 그 위상이 많이 떨어진 조직이기도 했다. 초기만 해도 신교의 개혁 정책을 내놓으며 군사부와 움직였던 조백천은 삼원 중 하나인 환희원보다 군사부를 더 아꼈고, 그 권한 역시 이전보다 증대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백천이 정국에 관심을 끈 이후 군사부의 존재감은 많이 감소했다. 증대시켰던 권한 또한 말소하여 이전처럼 어떤 조직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영향력도 희석되었다.

그렇다 해도, 군사부의 위명은 여전히 대단하다. 교주를 제외한 그 누구도 군사부를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교주 역시, 군사부에 관심을 껐을 뿐 그들이 신교에 꼭 필요한 조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 조직에서 사람이 온 것이다.

양건과 주연교가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군사부의 고인을 뵙습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하고 우렁찼다.

가만히 사내를 올려다보던 이천상 역시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사내의 눈에 순간적으로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일어들 나라.”

세 사람이 동시에 일어났다.

“나는 군사부 백뇌각(百腦閣) 소속이다.”

이름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양건과 주연교는 그가 백뇌각 소속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군사부의 명패도 명패였지만, 사내의 좌측 가슴팍에 보일 듯 말 듯 새겨진 회흑색 ‘백뇌’의 글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신교의 명패는 누구도 복제할 수 없다. 하물며 백뇌각의 정복을 입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긴말 않겠다. 야차사령부 창설 전, 너희 셋에게 맡길 임무가 있어 불렀다.”

“임무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세 사람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었다.

야차사령부는 아직 창설도 되지 않았다. 한데 임무라니?

사내가 품에서 돌돌 말린 임명장을 꺼내 들었다.

“나 역시 창설될 야차사령부의 부관 중 하나로 들어갈 것이다. 말하자면 너희의 상관이지.”

“아!”

“내 명령이 아니라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나는 전달자에 불과해.”

양건과 주연교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식 조직원도 아닌, 예비 조직원에 불과한 이들에게 창설 전에 임무를 준다? 그것도 검증된 여러 고수가 아닌 자신들에게?

‘이게 무슨 상황이지?’

둘의 혼란을 읽었는지,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표정들 지을 거 없다. 너희는 각 조직에서 보내온 인재들이야. 훗날 들어올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지. 그 실력들을 믿고 보내는 임무이니 부담 가질 것 없다.”

눈치 없는 이라면 은밀하고도 특별한 임무에 흥분부터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건은 물론 주연교 역시 신교 생활을 하며 어지간한 단맛과 쓴맛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사내가 바위 아래 부복한 복면인에게 말했다.

“그걸 전해 주거라.”

“예.”

일어난 복면인이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이천상에게 건넸다.

서신을 읽은 이천상이 주연교에게 건넸다.

“……!”

주연교의 눈이 흔들렸다.

“이건…….”

슬쩍 주연교의 어깨 너머로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양건의 얼굴 또한 딱딱하게 굳었다.

사내가 빠르게 말했다.

“실력은 없는 놈이지만 경공술이 경지에 달한 놈이다. 눈치도 빠르지. 너희는 오늘 내로 출교하여 그놈을 잡아야 한다.”

밑도 끝도 없는 임무였다. 양건이 입을 열었다.

“이 죄인을 잡는 임무가 전부입니까?”

“그렇다.”

“대체 어떤 죄를 지었길래…….”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냉담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양건은 포기하지 않았다.

“혹, 달리 지원…….”

그때, 주연교가 양건의 입을 막고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사내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조소 가득한 그 얼굴이, 정말이지 얄밉기 그지없었다.

“경공술이 대단한 놈이지만 상처를 꽤 심하게 입은 놈이다. 너희 정도 실력이라면 충분히 압송해 올 수 있을 거라 믿겠다.”

“……예.”

“기한은 창설일 정오 전까지다. 임무를 달성하면 너희는 곧장 조장이 되어 조원들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교주가 직접 만들라고 지시한 조직의 조장.

조원의 역할을 맡은 적은 있어도 조장의 직위를 가진 적은 없었던 두 사람이다. 심지어 이천상은 투마 출신이었다.

수상한 것만 제외하면 상당히 화끈한 승진 기회였다.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걸 직감한 양건과 주연교조차 순간적으로 눈을 빛낼 정도였다.

사내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외당(外堂)에 말해 두었으니 가면 곧장 출교 허가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운을 빌겠다.”

“예.”

고개를 숙이는 두 사람과 달리 이천상은 끝까지 사내의 등을 주시했다.

잠시 후, 사내와 복면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시바랄.”

시원한 욕설과 함께 양건이 서신을 흔들었다.

“이게 뭔 개소리야? 엉? 창설도 안 한 부대의 예비 조직원한테 임무를 줘? 이게 맞아?”

주연교가 말했다.

“화내지 마. 화낼 일 아니야.”

양건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주연교를 바라보았다.

“너 바보냐? 설마 이걸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누가 봐도 수상하잖아?!”

“누가 수상한 거 모른대? 화내 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거야.”

“빌어먹을.”

“하지만 정말 이상해. 군사부에서 직접 명령서를 가져오다니. 야차사령부의 부관으로 들어올 거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거 이상해. 진짜 이상하다고.”

양건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어이! 너도 뭐라고 한마디 해!”

이천상은 말없이 바위를 보았다.

답답하다는 듯 양건이 말을 이었다.

“설마 너, 아무런 수상함도 느끼지 못하는 거냐?”

“해야 한다.”

“뭐?”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심했다.

“뭐가 되었든 떨어진 명령은 수행해야 해. 그게 마인 아닌가?”

순간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합 다물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합죽이가 되었던 양건이 떠듬거리며 말했다.

“물론 그건 맞지만…… 별다른 설명도 없는 수상한 임무잖냐. 심지어 서신에 보니까 지원도 없어. 그놈이 당장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잡아 오냐고? 아니, 진짜 죄인이 맞기는 한지나 모르겠네.”

“죄인이 맞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렇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예상 도주로와 상태, 그리고 특이 사항은 적혀 있다. 막막하지만은 않아.”

“……허.”

“다만.”

주연교의 손에서 서신을 빼앗은 이천상이 다시 한번 내용을 훑었다.

“너희 말마따나 단순한 임무는 아니지.”

“내 말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이유를 알아야 한다. 임무는 달성해야 하지만, 이 임무가 단순히 어려운 임무인지, 아니면 그 외의 다른 의도를 품고 있는 임무인지부터 확인해 두는 게 좋겠지.”

“그걸 어떻게 알아? 설마 또 형법당 힘을 빌리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에 잠긴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쪽 도움은 받지 않는 게 좋겠군.”

“왜? 좀 부담되는 건가?”

“…….”

“그럼 어떻게 알아보게? 그 정도로 끗발 좋은 조직 아니면 알아내기 힘들 거 아냐? 하물며 본교 최고 정보력을 가졌다는 군사부에서 내려온 명령이야.”

“군사부, 정확히는 군사부의 누군가에게 어떠한 의도가 있어 이런 일을 벌였다고 가정해도, 그들의 정보력을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거다.”

“왜?”

“우리가 그들이 주시해야 할 정도로 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다시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천상이 서신을 말아 품에 넣으며 말했다.

“술시(戌時) 전까지 돌아오겠다. 출교 허가서를 미리 받아 놔.”

* * *

“오랜만이구만.”

외진 주루. 술 한 잔을 따라 놓은 이천상의 앞에, 도헌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그래, 오셨지. 그나저나 이렇게 다급하게 나를 찾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나?”

평소라면 느긋하게 얘기를 나누겠지만, 도헌은 이천상에게 뭔가 급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이천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대주님이나 형법당주님의 정적이 있습니까?”

“정적?”

“그렇습니다.”

도헌의 얼굴에 심각한 빛이 떠올랐다.

“갑자기 그건 왜?”

“대답해 주십시오.”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일인 모양이었다.

“나에게는 딱히 정적이랄 만한 인물은 없네. 물론 속으로 날 미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딱히 떠오르는 인물은 없어.”

“형법당주님은?”

“공 당주님은…… 정적이 많지. 상당히.”

아닐 리 없다.

“혹, 근래 들어 형법당주님 때문에 손해를 본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신교 내의 정치 싸움에 어떠한 변동 사항이 생겼다든지.”

“자네가 왜 그런 걸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그런 건 없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에 대해 잘 모른다네.”

“그렇군요.”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런가?”

이천상은 도헌에게 서신을 보여 주었다.

빠르게 내용을 확인한 도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네들에게 임무가 떨어졌다고?”

“그렇습니다.”

“아직 창설도 되지 않은 부대의 조직원에게?!”

“그래서 온 겁니다. 느닷없기도 하지만, 어쩐지 알맹이가 빠진 임무입니다. 너무 성의가 없기도 하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도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 시진만 기다리게. 알아보고 오지.”

“무리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말게.”

다시 홀로 남은 이천상이 천천히 술을 마셨다.

문득, 그는 이 쓰디쓴 술맛이 예전보다 익숙해졌음을 깨달았다.

반 시진 후.

“자네 생각이 맞았어.”

도헌의 얼굴은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이번 일은 형법당주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네.”

“정확히는 저 때문이 아닙니까?”

“…….”

“역시 그랬군요.”

이천상이 빈 병을 치우며 물었다.

“누구 짓인지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이 임무, 함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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