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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35화 (711/774)

외전 35화. 은밀한 임무 (3)

“허가서 잘 챙겼어?”

“걱정 마.”

평복을 벗고 완전히 무장한 두 사람의 모습은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체형이 드러날 정도로 잘 달라붙는 검은 무복을 입은 양건. 이전과 달리 소검을 등 뒤에 매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단단해 보였다.

주연교 역시 몸에 붙는 옷에 허벅지까지 오는 얇은 장포를 걸쳤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꽤 독특한 모양새였지만, 막상 마주치면 쉽게 지나칠 만한 묘한 의상이었다.

팔짱을 낀 양건이 입맛을 다셨다.

“이 자식은 왜 이리 늦지?”

“아직 술시가 안 됐어.”

“거의 다 됐잖아. 올 때가 됐는데.”

“너무 초조해하지 마. 그래서는 될 일도 안 돼.”

“초조해하는 거 아니야. 짜증이 나서 그러는 거지.”

“뭘 짜증까지?”

양건이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빌어먹을! 축하주를 마시지 못했어!”

주연교가 벙찐 눈으로 양건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임무 달성 후에 마시는 걸로 하지.”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의 눈에 소로를 따라 걸어오는 이천상이 보였다.

가볍게 타박하려던 양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왔…… 어라? 뭘 그렇게 싸 왔어?”

제법 큼직한 보따리를 지고 왔다. 그리 무겁지는 않아 보였지만 부피가 이천상의 상체만큼 컸다.

보따리를 바닥에 놓은 이천상이 물었다.

“출교 허가서는 받아 왔나?”

“당연하지.”

고개를 끄덕인 이천상이 쪼그려 앉아 보따리를 풀었다.

“이게 뭐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안을 확인한 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너……?!”

“네 쌍씩 가져왔다. 하나씩 챙겨 둬.”

“이거, 어디서 가져왔어? 설마 훔쳤어?”

“난 이 물건들이 어디에 구비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럼 어떻게 가져왔어? 이거, 내성 전투 부대원들이 쓰는 물건이잖아?”

진마대 예비단 출신인 양건은 이 물건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주연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환희원은 신교의 살림을 담당하는바, 전투 부대의 취급 물품들을 어지간하면 다 알고 있었다.

이천상이 물품 하나를 들었다.

사람의 안구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황색 구슬, 바로 연막탄이었다.

“개량되기 전의 물건이다. 현역 부대원들이 쓰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져.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에 유용할 거다.”

이천상이 양건을 올려다보았다.

“진마대 예비단 출신이니 써 봤을 거다.”

“……써 봤지.”

주연교를 돌아보는 이천상의 눈빛은 여전히 무감했다.

“쓰는 법은 아나?”

“뭔지만 알지 쓰는 법은 몰라.”

“나도 처음이다. 사용 방법은 들었지만, 실제로 얼마만큼의 위력을 내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천상이 황색, 적색, 흑색 구슬들과 시커먼 비갑을 들었다.

“나머지는 흉갑과 각반 등이다. 이 사출비갑(射出臂鉀)은 방어용으로도 사용 가능하다고 했다.”

“정식 명칭은 신표비갑(迅鏢臂鉀)이야. 엄청난 장력을 자랑하는 세인승(細引繩)이 달려 있어. 비갑에 묶인 세인승의 길이는 정확히 구 장 구 척으로 기습, 포박, 탈출 등에 쓰이지.”

“잘 아는군.”

“꽤 써 봤으니까.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양건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너, 이거 어디서 구했어?”

“시간이 없다. 세 쌍은 우리가 갖고, 하나씩 남은 걸로 시범부터 보여라.”

“이 자식아!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부터 말해! 이 물품들, 내성 전투 부대 수장들이 아니면 설령 삼원(三院)의 원주분들이라도 정식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유출할 수 없는 물건이야!”

주연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양건의 말에 동조했다.

“맞는 말이야.”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많이들 유출할 거다.”

“암암리에 그렇기야 하겠지! 문제는 그게 아니야! 허가받은 전투 부대원 이외의 이들이 이런 물건을 함부로 쓰다간 그 즉시 형법당……!”

순간 양건의 눈이 흔들렸다.

이천상이 말했다.

“안전한 물건이다. 교내 수뇌부들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돼.”

“……너?!”

“살아남는 게 먼저다. 흰소리 그만하고 시범부터 보여.”

“누구에게 받았어?”

“알 필요 없다.”

양건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좋아. 네 끗발이 상당하다는 건 잘 알겠어. 하지만 왜 이런 걸 얻어 왔지? 암만 임무가 수상해도 그렇지, 걸리면 작살나는 물건들을 굳이 가져올 필요가 있었어?”

“형법당 걱정은 할 필요 없다.”

“형법당이 문제가 아니야! 설령 형법당이 네 뒤를 봐주고 있다 한들, 형법당과 경쟁 관계에 있는 권력자들이 없다고 볼 수 없어! 그들이 이쪽을 파고들면 뭐가 됐든 끝장이라고!”

“살아남고 싶나?”

“……!”

“임무 때문에 죽든, 걸려서 죽든 죽는 건 매한가지야.”

“…….”

“눈앞에 있는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 현명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임무에서 빠져.”

“……빌어먹을.”

걸려도 지독하게 걸렸다는 듯, 양건이 고개를 푹 떨구며 투덜거렸다.

“어차피 너희가 쓸 거 아니야? 죽든 살든 한 무더기로 엮일 게 뻔한데 빠질 수가 있겠냐?”

“그럼 시간 낭비 그만하고 시범부터 보여라. 숙련자의 시범만큼 확실한 교본이 없다.”

양건이 한숨을 푹 쉬었다.

“예비단은 개량 전의 물건을 써. 그러니 이 물건들 모두 내가 다뤄 봤던 거지. 방법은 간단해.”

“그러니까 써 봐.”

“바보냐? 이 물건들 여기서 써 봤다가는 난리가 날 거다. 시범을 보여도 나가서 보여야 해.”

“좋아.”

이천상이 빠르게 자신 몫의 물건들을 갈무리했다.

“일단 나가지.”

* * *

신교의 외성 성문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크기를 자랑했다.

어지간한 공성추에는 흠집도 나지 않고, 화포에 가격당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성문은 특별히 제조된 강철 합금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일 년에 두 번만 관리해 주면 녹이 슬지 않고 산(酸)에도 강해서 부식될 염려가 없어 천년불패(千年不敗)를 상징하기도 했다.

“후우.”

주연교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정말 오랜만에 나와 보네. 공기부터 다른 기분이야.”

양건 역시 주연교와 마찬가지로 크게 심호흡했다. 그 역시 오랜만의 출교로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었다.

물론 이천상은 아니었다.

“저쪽 숲까지 이십 리는 될 거다. 시범은 거기서 보이도록 하지.”

“……분위기 잡을 줄 모르는 놈.”

셋은 빠르게 신법을 펼쳐 숲에 도달했다.

아름드리나무로 이뤄진 숲은 상당히 빽빽했다. 시기상 겨울이지만, 중원 남부의 나무들은 여전히 싱그러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시작하지.”

“그 전에.”

양건이 팔짱을 꼈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시간이 없다고 했을 텐데.”

“알아. 그저 확인해 두고 싶은 게 있을 뿐이야.”

“뭐지?”

“누구에게 이 물건들을 받았는지 묻지 않겠어. 하지만 이걸 가져온 이유는 있을 거야.”

“…….”

“너는 이번 임무의 이면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부터 듣자.”

이천상은 말없이 양건을 바라보았다.

이번만큼은 양건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이천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주연교가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우리 목숨이 달린 일이야. 당신 혼자 알아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알고 있다.”

“그럼 어서 말해 봐.”

“말할 생각이었다. 다만,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양건의 눈이 빛났다.

그가 본 이천상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고민이 없는 사람이었다. 공감 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날카로운 안목과 지혜가 있었다.

그런 이천상이 고민할 정도라면,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양건이 말했다.

“개인적으로 곤란할 일이 있는 거야?”

“내가 곤란한 일은 없다. 다만, 나 때문에 곤란해질 사람이 있다.”

양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람이 곤란에 빠지는 게 싫다는 말이로군. 그럼 결국 너에게도 곤란한 일이라는 거잖아.”

“그렇…….”

대답하던 이천상은 순간 말을 멈추었다.

‘싫다?’

그가 떠올린 사람은 바로 도헌이었다.

이천상은 생각했다.

‘그자가 곤란해져서는 안 된다.’

당연하다.

도헌은 자신에게 은혜를 받았다고 했지만, 이천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도헌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당장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헌에게 이것저것 정보를 얻어 내지 않았던가.

말하자면 도헌은 그에게 있어 은인이었다. 양부가 준 은혜와는 다른 의미, 다른 성질이지만 분명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은인이 곤란해지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 난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가?’

당연하다는 듯 뱉은 양건의 말은 이천상의 마음에 묘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 사람이 곤란에 빠지는 게 싫다는 것. 그 또한 감정이라면, 자신이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이유가, 싫다고 생각하는 그 ‘무언가’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이것은 감정인가? 아니면 주입된 정보, 배움에 따른 반사적인 언행의 결과인가?

“왜 그래?”

멍하니 허공을 보던 이천상이 양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양건이 투덜거렸다.

“사람 앞에다 두고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아니다.”

이천상이 두 사람을 한 번씩 보며 말했다.

“고민했지만, 마땅히 다르게 설명할 방법은 없다. 그저 너희 둘에게 입을 다물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양건이 콧방귀를 뀌었다.

“사나이 양건을 뭘로 보고. 나처럼 입 무거운 사람이 세상천지에 또 없어.”

호언장담하는 양건을 흘겨보던 주연교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한배를 탔어. 앞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사이인데 괜히 입 잘못 놀려서 관계를 파탄 낼 이유는 없지.”

두 사람의 제각기 다른 대답을 들은 이천상은, 언제 들어도 부담스러우면서 감동을 주는 한마디를 뱉었다.

“믿겠다.”

“……!”

“사건의 발단은 풍곡단주였다. 형법당으로 넘어간 그는 모진 고문 끝에 그간 저지른 비리를 전부 불었는데…… 듣고 있나?”

“어? 어어! 듣고 있어. 말해, 말해.”

“내성에 아무도 모르게 그의 돈을 받아먹던 사람이 있었다. 풍곡단주조차도 그 존재를 모르고 달마다 상납했다더군. 현명한 처사였지. 그 지위와 정체를 알지 못하는 풍곡단주는, 자신의 뒤를 봐주는 높으신 분이 있다는 것만 알 뿐, 그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몰랐다.”

“부담이 없는 거래다?”

“윗사람 입장에서는 유사시 모른다고 잡아떼면 그만이고, 풍곡단주 입장에선 심리적인 방패가 되어 줄 사람이 있어 좋았지.”

“풍곡단주는 진짜 멍청한 놈이었군.”

“그렇다. 문제는 풍곡단주에게 뇌물을 먹었던 사람이 형법당주의 정적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풍곡단주는 모르잖아? 자기 뒤를 봐준 사람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진실은 없다. 돈이 오고 가는 길을 조사하다 보면 마지막엔 그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어. 하물며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단체가 형법당이다.”

“그래서 알아냈나?”

“알아냈다고 한다.”

“잡혔어?”

“불가하다. 잡아들이기에는 그 직책이 만만치 않았다더군. 게다가 형법당주의 정적은 그 하나가 아니야. 한 방 먹일 순 있어도 엮어서 없애 버릴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상하네? 그래서 없는 임무까지 만들어 우리에게 이런 일을 시킨다고? 굳이?”

“오해하고 있다.”

“뭐?”

“형법당주 정도 되는 권력자가 야차호령이 아닌 야차사령에 나를 보냈다는 걸 주시한 거다. 내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고, 나를 키워 모종의 일을 행사하기 위함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다.”

양건과 주연교가 입을 떡 벌렸다.

“직접 칠 수도 없고 눈에 띄는 공격도 못 하니, 교외에서 나를 사로잡아 형법당주와 모종의 거래를 할 모양이다.”

“……!!”

“그게 이번 임무의 정체다.”

“이런 미친……!”

양건이 기가 막혀서 말했다.

“그러고도 가만히 있어, 형법당주는? 다 알고 있었는데도?”

“이런 일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약세를 보이는 거라 경거망동할 수 없다고 전해 들었다. 사로잡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놈이다, 그런 인상을 심어 줄 생각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넌……!”

“실제로 나와 형법당주는 별 사이가 아니다. 그 중간에 가교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이 중요하지. 형법당주에게도, 나에게도.”

이천상이 눈을 빛냈다.

“알아서 잡히지 않도록 해라. 형법당주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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