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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40화 (716/774)

외전 40화. 인연 (1)

시커먼 운무가 풍전의 몸을 집어삼켰다.

이천상과 주연교는 거리를 벌리고 피독주를 입에 물었다.

“으악! 으아악!”

운무 속에서 풍전의 비명이 들렸다.

독기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처음 폭발할 때 나타난 어두운 운무는 빠른 속도로 옅어졌다.

털썩.

흐릿해진 운무 속에서, 비로소 풍전이 무릎을 꿇었다.

쿵!

머리를 박고 쓰러진 풍전의 몸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땅에 박은 얼굴 주변으로 붉은 핏물이 동그랗게 번져 나왔다.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던 이천상이 피독주를 뱉었다.

“끝났군.”

“그러네.”

주연교가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했어.”

절정고수와의 맞대결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싸워 보니 더더욱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상대의 방심을 이용한 기습이 제대로 들어가서 다행이었다. 기습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양건과 함께 덤벼도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있을까? 우리를 노리는 사람이?”

“확신할 수 없다. 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

주연교가 미심쩍은 눈으로 풍전을 바라보았다.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중, 삼중으로 대비를 해 놓는 게 좋지 않겠어?”

“그렇겠지.”

“그럼 계속 조심해야겠네.”

이천상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부우욱!

품에서 깨끗한 천을 꺼낸 이천상이 자상을 입은 왼팔을 꽉 묶었다.

상당히 능숙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몸에 밴 행동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 주연교가 이천상의 손을 쳤다.

“기다려.”

“……?”

“짐승에게 당한 상처와 고수의 칼에 당한 상처는 달라. 오히려 이렇게 깔끔하게 베였으니 다행이지만, 문제는 혈도야.”

“혈도.”

천을 빠르게 끄른 주연교가 이천상의 팔 세 군데의 혈을 점했다.

“내공 실린 칼에 베이면 미세하게나마 혈도가 손상돼. 휴식을 잘 취하면 낫기야 하겠지만, 그 시간이 오래 걸려. 처음 치료할 때 남은 기운이 혈도를 더 손상시키지 않도록 대비를 해야 해.”

주르륵.

베인 상처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천상은 느낄 수 있었다. 베인 상처 안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기(氣).’

내공을 연마한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각이었다.

“정파 놈들이 익히는 정공(正功)이라면 또 모르지. 하지만 마공은 달라. 네가 상대보다 강하지 않은 이상, 상대의 마기가 끊임없이 너를 괴롭힐 거야.”

“먹이 사슬 관계?”

“맞아. 잘 아네.”

이천상이 익힌 금강야차마공은 신교 최고위 마공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무공이었다.

풍전의 마공보다 수준이 한참 높다는 것. 그렇다면 풍전의 마기에도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다.

‘하지만 질적 차이가 커.’

풍전이 이룬 경지는 이천상보다 높았다. 내공의 질적 차이가 명백하다.

더 뛰어난 마공을 익혔지만 마기의 질에서 차이가 나니, 지금의 금강야차마공으로도 풍전의 기를 잡아먹거나 해소하긴 어려울 것이다.

“됐다.”

능숙하게 잔존하는 마기를 뽑아낸 주연교가 상처를 꽉 묶었다.

“너무 꽉 묶으면 피부가 괴사할 수 있으니까 이 정도가 좋을 거야. 하긴,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래.”

이천상이 왼팔을 구부렸다 펴길 반복했다. 미세하지만 확실히 감각이 나아져 있었다.

주연교가 말했다.

“절정고수라면 손도 안 대고 탁기를 뽑아낼 수 있다고 들었어. 아직 우리 수준에서는 무리야. 뭐, 우리 수준에서도 내공술에 능한 녀석들은 곧잘 한다고 들었지만.”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 미숙함이 드러난다.

무공을 배운 시간을 생각하면 이천상의 성취는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강해지기 위해 맹목적인 수련을 반복한 탓에 무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면 공부를 좀 해야겠군.’

주연교가 양곡로 쪽을 바라보았다.

“양건 쪽은 어떻게 되었을까?”

“성공했을 것이다.”

“어떻게 알아?”

“그 피리 소리. 저쪽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아!”

무학에 대한 지식은 주연교가 몇 수 위였지만, 상황 판단 능력에서는 이천상이 위였다.

“하지만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

“뭐?!”

주연교는 깜짝 놀라 이천상을 보았다.

이천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성공했다고 했지, 멀쩡하다는 말은 안 했다.”

“……!!”

“아까 우리가 잡았던 놈들의 수준은 상당했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미세하게 더 높았지. 우리는 둘이서 기습했지만, 녀석은 혼자서 처리해야 했다.”

“그, 그럼?!”

“싸움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주연교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당장 가 봐야지!”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안 돼.”

“왜?! 우리 할 일은 다 끝났잖아?”

“끝나지 않았다. 저놈은 아직 죽지 않았어.”

실제로 그러했다. 풍전의 몸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미세하게나마 숨소리도 들렸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태였지만, 죽지는 않은 것이다.

이천상이 품에서 또 한 자루의 비수를 뽑아 들었다.

“확실하게 끝장내고 가도록 한다.”

그때였다.

“하여튼 싸늘한 새끼.”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건이었다.

주연교의 표정이 밝아졌다.

“너!”

“뭐야, 그 표정은? 설마 내가 당할 줄 알았어?”

“괜찮은 거야?”

“당연히 괜찮지, 인마. 내가 누구야? 나 진마대 예비단에서 수석으로 불리던 인간이야.”

말은 그랬지만, 양건의 얼굴은 전과 비교해 많이 피곤해 보였다.

안심한 주연교가 양건의 왼쪽 다리를 보곤 화들짝 놀랐다.

“수석이고 나발이고, 너 다리가 왜 그래?”

애써 멀쩡한 척하고 있지만, 보행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왼쪽 다리를 당한 것이다.

양건이 투덜거렸다.

“시벌 놈들, 마지막에 기어이 달려들어서 한 방 먹이더라. 기가 막힌 회피 기동으로다가 샤샥! 피해서 다행이었지 제대로 들어갔으면 절름발이 될 뻔했다니깐.”

“그건 제대로 피한 게 아니잖아.”

“말꼬리 잡지 마! 어쨌든 멀쩡히 살아왔잖아!”

“그건 그래.”

양건이 불퉁한 얼굴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새끼. 천하의 무심한 새끼. 나 죽었으면 확인도 안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지, 너?”

이천상이 풍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렇지 않다.”

“……커흠!”

“도주자와 함께 돌아가야 한다. 도주자는 너와 함께 있다.”

“아주 내가 죽었으면 좋겠지? 왜, 그 비수로 저 새끼 모가지 따 버리기 전에 내 배때기에 먼저 박지, 어?!”

양건이 얼굴까지 벌게져선 씨근덕거렸다. 이천상의 모진 말에 기분이 상한 듯했다.

주연교가 좋게 달랬다.

“서로 힘들었잖아. 예민해져서 그래.”

“저놈이 예민해져? 원숭이가 갈비 뜯는 거 봤냐?”

“그게 뭔 소리야?”

“말도 안 된다는 소리야!”

그때, 이천상이 말했다.

“원숭이도 배곯으면 가끔 육식을 한다.”

두 사람이 멍한 얼굴로 이천상을 보았다.

이천상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왜 그렇게 보지?”

“……아니야.”

손으로 눈가를 덮은 양건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주연교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천상이 물었다.

“그쪽 적들은 어떻게 했지?”

“사전에 말한 대로 싹 죽여서 묻었다. 꼼꼼히 묻고 오느라 좀 늦었어. 다리 아파 죽겠는데 땅까지 파느라 아주 그냥 죽을 맛이었다.”

“미리 파 놓지 그랬나.”

“……그런 방법이?!”

양건이 이내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쨌거나 네 덕분에 일이 아주 깔끔하게 처리됐네. 숫자도 적당했고.”

군사부의 가장 막강한 힘 중 하나가 바로 정보력이었다.

이천상이 노린 것이 그것이었다. 자신들을 잡으러 인원을 파견했다면, 분명 이쪽에서 보내는 정보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작전을 짠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정말 이쪽 정보를 읽고 움직였다면, 정보권 본부에서 벗어나 이곳까지 올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양곡로와 협곡이 보이는 지점, 적에게 유리한 지형에서 역으로 기습하는 것. 그것이 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문제는 적의 숫자와 수준이었다.

적의 수가 너무 많으면 그대로 보낸 채 은밀히 기동하여 적의 수장만 잡는다. 적의 수가 적당하면, 기습하여 해치운 뒤 합류한다.

일행은 그렇게 합의를 보았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새삼스레 하는 말인데, 너 정말 똑똑한 것 같아.”

“칭찬 고맙다.”

“……고마운 게 뭔진 알지?”

“안다.”

공감하지 못할 뿐.

“나와.”

양건이 이천상을 옆으로 밀며 풍전에게로 다가갔다.

“넌 운공이나 해. 내상도 심한 것 같은데.”

“찢어 놔라.”

“뭐?”

이천상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는 돌산이다. 땅도 너무 단단해. 파묻으려면 양곡로로 돌아가야 한다.”

“…….”

“해체해서 바위 밑이나 돌무더기 안에 숨겨야 한다.”

두 사람의 얼굴이 굳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양곡로로 되돌아가는 과정은 불필요하다. 거리가 멀어서 쓸데없이 체력이 소모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숨겼다 훗날 발각되면 골치가 아파진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 합리적 판단 아래 벌어질 일은 너무 잔혹했다.

양건이 질린 얼굴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내가 메고 돌아가서 묻고 오면 되지?”

“그럴 필요가 있나?”

“필요고 나발이고 그렇게 할 테니까 넌 운공이나 해.”

“정 그러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또 다른 적이 있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으니 빨리 돌아와야 한다.”

“하여튼 잔인한 새끼. 알겠습니다, 이 새끼야. 어휴, 저런 놈 축하한다고 술 마시겠다는 게…….”

그때였다.

파아아악!

이천상이 양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양건 뒤에 있는 풍전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어느새 귀신과 같은 몰골로 달려든 풍전이 망가진 오른팔을 양건의 머리통에 내리찍고 있었다.

세 사람의 몸이 벼락처럼 뒤엉켰다.

빠각! 퍼어억!

* * *

사흘 후.

“음?”

천마신교의 수문위 곡호의 눈이 빛났다. 저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오고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인인가.’

잠시 후, 곡호의 얼굴이 희한하게 변했다.

일행은 총 네 명이었다. 하지만 걷는 사람은 둘밖에 되지 않았다.

거지꼴이 된 여인은 머리에 두건을 묶은 누군가를 메고 있었고, 여인보다 더 꾀죄죄해 보이는 훤칠한 키의 청년은 그보다 덩치가 큰 청년을 업고 있었다.

‘뭐지, 저 조합은?’

스륵.

일행이 오 장 밖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곡호가 외쳤다.

“이곳은 마도무림의 총본산이자 파순을 섬기는 신지(神地)요! 그대들은 정체를 밝히시오!”

청년, 양건이 말했다.

“야차사령부 소속 양건, 주연교, 이천상이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

“상부에 보고해 주십쇼. 되도록 빨리요. 힘들어요.”

“기, 기다리시오!”

성문 옆, 작은 문으로 들어가는 곡호를 보며 주연교가 긴장 풀린 목소리로 말했다.

“왔다…….”

이천상이 말했다.

“수고했다.”

양건이 버럭 소리쳤다.

“수고했지, 그럼! 너 왜 이렇게 무겁냐?!”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게 보이는 태도로 적합하지 않다.”

“……네.”

양건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술 마시고 싶다, 시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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