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6화. 조장의 권위 (2)
뒷짐을 지고 창밖을 바라보는 양백호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단단해 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령주님. 조장들이…….”
“들이게.”
“예.”
문이 열리고, 네 명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백호가 몸을 돌렸다.
“……!”
아무런 기세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은연중 풍겨 나오는 존재감이라는 것이 있다.
양백호의 존재감은 차갑고 단단한 강철을 닮았다. 주먹으로 때리면 때린 주먹이 아플 것 같은,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고 무거워서 굴릴 수도 없는 양질의 강철이었다.
‘……?’
조장들을 둘러보던 양백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조장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경직되어 있었다. 사령부 수장의 앞인 건 물론, 그 수장이 교내에서도 잔혹하고 냉정하기로 이름 높은 혈마인 양백호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청년만큼은 달랐다.
‘묘한 녀석이군.’
자신의 존재감에 긴장하지 않는다.
지위가 아닌 이룬 성취 때문이라도, 하수가 고수 앞에서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몸과 진기의 문제였다.
한데도 이토록 냉정한, 아니 무심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다.
양백호가 입을 열었다.
“자네.”
“예.”
“소속이 어디지?”
“일각입니다.”
“일각이라.”
이각과 삼각에 각기 한 명의 조장이 나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두 명이나 튀어나왔다.
한 명은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여자였다.
양백호가 입을 열었다.
“일각의 남자 조장이라면 이천상?”
“예.”
일각 삼 층 일 호.
부대원들의 방은 삼 층부터다. 일 층에는 각주와 식사를 담당하게 될 하인들이 쓰고, 이 층은 훗날 영입하게 될 호위, 정보병들이 쓰기로 하였다.
일 층에 가장 가까운 삼 층, 거기에 첫 번째 방이라면 분명 상부 어딘가와 선이 닿은 놈일 확률이 높았다.
양백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실력이 상당한데.’
실력도 실력이지만, 체내에 잠자고 있는 마기가 상당히 수준 높았다.
저 정도 굴강한 마기는 경지가 높다고 나오지 않는다. 강력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고차원적인 마공을 연성해야 일굴 수 있는 마기인 것이다.
“그 옆은? 같은 일각인가?”
“네.”
“그럼 주연교로군.”
“아, 네!”
“그 옆 여자 조장은 설이전.”
“네!”
주연교와 설이전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그 짧은 사이, 령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신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마지막은…….”
양백호가 피식 웃었다.
“곡헌이로군.”
“예!”
대답하는 곡헌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
“진마대(眞魔隊) 조장이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왔나?”
그렇다.
곡헌은 신교육대의 하나인 진마대의 조장이었다. 막내급이긴 했지만, 육대의 조장급 실력이라면 야차사령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무력을 갖추었다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양백호와는 내전에서 몇 번 마주쳤던 사이였다. 계급 차가 워낙 커서 대화다운 대화는 없었지만, 전투 부대에 관심이 많았던 양백호는 곡헌의 소속과 직위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진마대 조장이라면 다른 곳으로 전출 가기가 어지간히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곡헌의 눈빛과 표정에 억울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걸 보일 자리가 아니기도 했지만, 언행을 보면 성정 자체가 규율에 목숨을 거는 군인처럼 보였다.
양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마대 조장 출신이라도 똑바로 생활하지 않으면 봐주지 않겠다.”
“예!”
“좋아.”
양백호가 양손으로 탁자를 짚었다.
“반 시진이 지나기도 전에 벌써 네 명의 조장이 튀어나왔어. 힘으로 쟁취했든, 주둥이로 쟁취했든, 인맥으로 쟁취했든 중요한 건 빨랐다는 거지.”
“…….”
“나는 빠른 사람을 선호하지는 않아. 그러나 때를 놓치는 사람은 싫어하지. 그런 면에 있어서 자네들은 나쁘지 않았어. 하루라도 빨리 조를 짜서 조원들과 화합을 이루는 게 우선이니까.”
사흘이라는 시간을 괜히 준 것이 아니었다.
너무 과격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빠르게 짜인 조일수록 정비가 여유로워진다. 이미 짜인 조원은 바꿀 수도 없으니 서로가 합심할 시간도 많아지는 것이다.
“거기까지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결과겠지. 나는 최초의 조장들 셋을 해당 조직의 선임 조장으로 발탁할 생각이었다.”
조장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은근히 기대했다.
단 한 명만 빼고.
“하지만 내 예상을 넘어섰군. 야차일각에서 두 명의 조장이 나왔어. 누가 먼저 조를 짰는지 물어봤지만, 거의 차이가 없었다고 들었다.”
주연교가 이천상을 힐끔거렸다.
이천상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한 채 양백호를 바라보았다.
“선임 조장이라고 해 봤자 대단한 권한은 없다. 정작 임무에 나설 때는 똑같은 조장이야. 다만 한시적인 상황에서, 예를 들어 각주가 없을 경우 각주 대리로 휘하 조장들을 이끌 수는 있겠지.”
그것이 끝이 아닐 것이다.
대단한 권한이 없다지만, 각주를 대신하여 조장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조장을 눈 아래로 할 수 있다.
조직 전체의 통솔권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말하자면 부각주 직위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조장들 모두 양백호의 말을 이해했다.
양백호가 이천상과 주연교를 바라보며 물었다.
“서로가 양보할 생각은 없겠지?”
그때, 놀랍게도 주연교가 대답했다.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이천상이 주연교를 바라보았다.
설이전과 곡헌 역시 놀라서 주연교를 보았다.
양백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보한다고?”
“그렇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저보다 이 친구가 선임 조장 역할에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흐음.”
양백호가 물었다.
“아는 사이인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주연교가 입을 열려 할 때였다.
“특별 임무를 함께 수행했습니다.”
이천상의 목소리를 들은 설이전과 곡헌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일견 나른하게까지 들리는 그 목소리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특별 임무라니?”
“장무병 부령주가 창설 전 저와 여기 주연교, 그리고 삼각의 양건에게 찾아와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때 함께했습니다.”
순간 양백호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눈빛이 바뀌니 집무실 안의 공기도 바뀌었다. 주연교와 설이전, 곡헌 모두 삽시간에 무거워진 공기에 잔뜩 긴장했다.
“특별 임무라고?”
“그렇습니다.”
“창설도 되지 않은 부대에게 특별 임무 따위가 어디에 있나?”
“당사자에게 여쭤보시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당돌하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후욱!
양백호의 몸에서 강렬한 마기가 번져 나왔다.
주연교와 설이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중 가장 강한 곡헌 역시 그 무시무시한 힘에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다시 묻겠다. 장무병이 맞는가.”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장무병에게 창설식 전에 특별 임무를 받은 게 확실한가?”
“저는 이미 대답을 드렸습니다.”
“어떤 임무였지?”
“대죄를 짓고 옥에 갇힌 죄인이 도주하였습니다. 그 도주자를 잡아 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형법당이나 내전 부대가 나서야지, 어찌 너희에게 그런 일을 시켰단 말이야?!”
“다시 말씀드리지만, 명령은 장무병 부령주가 내렸습니다.”
“……!”
양백호가 슬쩍 이를 갈았다.
이천상의 건방진 말투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분노는 오롯이 장무병을 향해 있었다.
“개판이군.”
쾅!
양백호가 탁자를 내리치자 이천상을 제외한 세 사람이 동시에 움찔했다.
“밖에 누구 있느냐! 가서 부령주를 불러와라!”
그때였다.
“려, 령주님!”
삼각 각주의 목소리였다.
“뭐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헛소리야? 당장 부령주나……!”
“내전 장로원에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순간 활활 타오르던 양백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변화가 너무나도 빨랐다. 들끓는 분노는 그대로였지만, 그 분노를 드러내는 방식이 달랐다.
이천상은 양백호의 그 변화를 똑똑히 보았다.
“장로원이라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알겠다.”
양백호가 네 명의 조장들에게 말했다.
“각자 거처로 돌아가 대기하라. 그리고 일각의 두 조장은 조원들에게 전달하라. 건물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내일 다 같이 처벌받게 될 것이다.”
“예.”
“이만 나가도록.”
* * *
거처로 돌아가는 길.
곡헌은 사령관에서 나오자마자 먼저 삼각으로 떠나 버렸고, 설이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각으로 갔다.
“우리도 돌아갈까?”
“그래야지.”
이천상과 주연교가 일각 건물로 발길을 옮겼다.
주연교가 물었다.
“왜 그랬어?”
“뭘.”
“령주님과의 대화 말이야.”
“문제라도 있었나?”
“당신 말투 딱딱한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 제쳐 두고, 왜 거기까지 말한 거야?”
“둘이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답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왜 내 말을 끊었냐는 거야.”
“선임 조장이 되었으니까.”
“응?”
“네가 깨지면 나도 깨진다. 하지만 내가 깨진다고 해서 너까지 깨지는 건 아니다.”
“…….”
“상부와 관련된 얘기는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게 좋아. 그게 내가 배운 사회다.”
주연교가 묘한 눈길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임무 이후로 사람이 조금 바뀐 것 같은데.”
“그럼 그런 모양이지.”
“나까지 깨지는 걸 막아 준 거야?”
“어떤 식으로든 너의 심신에 문제가 생기면 네가 다스리는 조원들 역시 널 믿고 따르지 못한다. 그것은 곧 전력에 공백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
“네가 약해지면 조원들이 약해지고, 너희 조가 약해지면 일각이 약해진다. 그걸 인지하도록 해라.”
“그럼 당신은?”
“나에겐 든든한 뒷배가 있다.”
주연교는 저도 모르게 풋 웃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것도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부령주님을 부각할 필요가 있었어?”
“그 이름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령주였다.”
“그렇긴 하지만…….”
“물론 내게도 의도는 있었다.”
의도.
주연교는 궁금했다. 이 목각 인형처럼 딱딱하기 그지없는 인간에게 무슨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
“부대가 살아남으려면 혼자서만 잘난 수장이 아닌, 뚜렷한 주관을 가진 수장이 필요하다. 짐승 세계에서도,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양백호 령주는 지닌바 무력은 물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다. 확고한 원리 원칙과 무엇이 우선인지를 판단하는 안목을 지녔다면, 그 사람은 놓쳐서는 안 돼.”
주연교는 기가 막혔다.
“너에게 있어 령주님은 놓쳐선 안 될 사람이라는 거야?”
“그렇다.”
아랫사람, 그것도 애송이에 불과한 주제에 윗사람을 놓치지 않겠다고 말한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과 함께 주연교가 입을 열었다.
“생존을 위한다면 차라리…….”
“생존만을 원한다면 장무병 부령주가 수장이 되는 게 좋겠지.”
“안타깝지만 그렇지. 그런데 왜?”
“생존과 함께 바르지 못한 일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양백호 령주가 수장으로 존재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
“생존만큼 중요한 것은 배움이다. 장무병 부령주에게 꼬리를 흔들면 편하겠지만, 그 이상 배울 수가 없어. 배움이 없으니 발전도 없고, 결과적으로 올바름을 찾아갈 수도 없다.”
부대 건물 앞에 도착한 이천상이 사령관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올바름을 좇아 발전하기 위해서는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
“이제부터 나도 정치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