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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47화 (679/774)

외전 47화. 조장의 권위 (3)

다음 날.

“…….”

해가 떠 있는 내내 내공을 봉쇄당한 채 마보(馬步)를 취한 일각의 야차 대다수가 탈진해 버렸다.

제대로 된 마보는 튼튼한 하체와 허릿심을 키우는 데 탁월한 효과를 지닌다.

물론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관절에 악영향을 끼치며, 한계 이상으로 지속하면 근육이 꼬이고 신경이 다치게 된다. 그러나 일각의 야차들은 오랜 시간 무공을 연마해 왔다. 내공이 봉쇄되었다고 해서, 이 정도 수련으로 몸이 망가질 일은 없다.

다만 죽을 만큼 힘이 들 뿐이다.

“허억! 허억!”

“으아아아…….”

“비, 빌어먹을. 내일 못 걷겠는데.”

백오십에 육박하는 야차들이 연무장을 떠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널브러져서 숨을 헐떡였다. 쓰러지지 않고 서서 호흡을 고르는 야차들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이천상과 주연교가 있었다.

“후우, 후우. 오늘 운공으로 풀어 주지 않으면 누구 말마따나 정말 걷지도 못하겠어.”

주연교가 목덜미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며 이천상을 힐끔거렸다.

이천상은 특유의 무뚝뚝한 얼굴로 천천히 무릎을 올렸다 펴길 반복했다.

주연교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어렸다.

“안 힘들어?”

“별로.”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된 몸뚱이야? 내공을 봉쇄한 채로 그걸 견딘다고?”

“짐승을 사냥할 때는 같은 자세로 이틀 동안 꼼짝하지 않고 버티기도 한다.”

“……마보 자세로 버티진 않을 거 아냐?”

“힘을 제대로 분산시킬 줄만 알면 어려울 거 없다.”

뭘 어떻게 힘을 분산시켜야 이게 어렵지 않은 걸까?

뭔가를 더 물어보려다, 주연교는 이내 입을 닫아 버렸다. 무슨 대답이 돌아와도 자신이 이해하진 못할 것 같았다.

“뭣들 하고 있나!”

단상 위의 사내, 일각주 영관이 외쳤다.

“고작 한나절 마보로 그 지경이 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 한심한 꼴 그만 보이고 숙소로 돌아가라!”

상당히 자극적인 언사였지만, 반응할 기력조차 없었다. 땅에 눌어붙어 있던 야차들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그때, 이천상이 손을 들었다.

영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이후로는 개인 시간입니까.”

영관의 얼굴에 가소롭다는 기색이 어렸다.

“왜? 술이라도 한잔 푸려고?”

“예.”

“웃기는 놈이군. 마음대로 해라. 대신 이틀 뒤 훈련에 한심한 꼴을 보이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알겠습니다.”

이천상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담담하고 단조로웠다.

야차들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이천상을 보았다. 이 말 같지도 않은 마보 훈련 뒤에 술이라니? 어지간한 주귀(酒鬼)라도 생각조차 못 할 일이다.

영관이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

주연교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 그러다 탈 나.”

이천상은 아무 말 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그의 눈에 한 사람이 보였다.

철퍼덕 앉은 채, 짜증 가득한 얼굴로 허벅지를 꾹꾹 누르는 청년.

어제 일각 건물에서 대놓고 살인 사건을 벌였던 연치상이었다.

‘…….’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상당하군.’

체력을 극단적으로 깎아 먹은 훈련이었다. 본래 실력을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상황. 거기다 봉쇄된 내공이 풀린 시점이라 더더욱 그 기세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양건과 동급. 내공량만 보면 한참 위.’

놀랍게도 연치상의 내공은 진마대 예비단 수석인 양건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 많은 내공을 제대로 다루는 것 같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이곳에 모인 무수히 많은 젊은 마인 중에서도 압도적인 내공량을 보유했다는 것.

거기에 신교 십대마왕 중 잔혹함으로 손에 꼽힌다는 자소대마의 독문마공까지 익혔다.

스륵.

무덤덤한 얼굴로 대충 다리를 털고 있던 허필이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이천상이 그 앞에 있었다.

“왜?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외출이다. 조장에게 볼일이 있는 조원이 있다면 기다리라고 전해라.”

“그걸 내가 왜 해?”

“같은 방이니까.”

“…….”

“그리고 넌 내 부하다. 조원을 자처했으니 조원답게 행동해.”

허필이 가소롭다는 듯 이천상을 보았다.

“웃기지 마라. 조장에 관심이 없었을 뿐, 실력으로…….”

“받아라.”

툭.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니 저도 모르게 받게 된다. 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허필이 인상을 썼다.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조원들이 술을 원하면 그걸로 사 줘라.”

“…….”

어이가 없다는 듯 허필이 전낭과 이천상을 번갈아 보았다. 어느새 이천상은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한참이나 그의 뒷모습을 보던 허필이 품에 전낭을 넣었다.

“이상한 놈이군.”

* * *

“오래 기다렸나?”

도헌이 웃으며 다가왔다.

이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앉지.”

자리에 앉은 도헌이 피식 웃었다.

“뭘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옷도 안 갈아입고 왔나?”

“예?”

“땀으로 푹 젖었군.”

“그렇군요.”

며칠 지나지도 않았지만, 이천상의 이 딱딱하고도 무심한 말투를 들을 때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실에, 맛난 음식에 술에…… 오늘 제대로 대접할 생각인가?”

식탁 위에 올린 음식은 꽤나 호화스러웠다. 워낙 검소해서 이런 음식을 잘 찾지도 않지만, 대주 월봉을 받는 도헌도 마음을 먹어야 살 수 있을 정도로 호화찬란한 술상이었다.

“괜한 의심을 지우고자 함입니다.”

“의심이라니?”

“일개 마인이 광마대주와 둘이 만난다는 소문이 돌면 쓸데없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이가 있을 테니까요.”

“그런 걱정은 말게. 교내 주루 주인들은 하나같이 입이 무거워. 살벌한 교내에서 장사할 수 있는 것도 활짝 여는 귀와 다르게 입에는 걸쇠를 채웠기 때문이야.”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세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평범한 마인들과는 달랐다.

“그나저나.”

도헌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었다.

“자네, 사령단을 제대로 소화하지 않았나?”

“삼 할을 소화하고 나머지는 봉인해 두었습니다.”

“……봉인?”

“혹시라도 형법당주를 볼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형법당주 정도의 실력이면 체화되지 않은 마기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 녹이지 않았다고?”

“그렇습니다.”

이천상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될 게 뭐냐는 투였다.

도헌은 기가 차는 것을 느꼈다.

“그걸 조절할 수 있단 말인가?”

사령단 정도로 약력이 거센 영약은, 이천상 수준에서는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다.

당연하다. 천마신단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령단 역시 강호에 떨어지면 작은 피바람이 날 정도로 귀한 영약. 절정고수의 기공술이 아니면 약력을 제어하기가 불가능하다. 심법에 대한 이해력 때문이기도 했고, 일단 약력을 제어할 만큼의 내공량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육대주급이 아니라면 어지간한 절정고수라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아?”

“기(氣)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제 의지 덕분입니다. 의지로 기를 조절할 수 있는 거라면 다소 시간이 걸릴 뿐, 봉인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멍하니 이천상을 보던 도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네는 지금 자네가 얼마나 무서운 말을 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 할 것이네.”

말인즉, 이천상의 집중력과 의지가 신교육대의 수장급으로 강하다는 뜻이다.

‘범상치 않은 인재인 줄은 알았지만.’

더는 이 녀석의 재주에 놀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앞으로도 놀랄 일이 수두룩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혹, 상단전 때문인가.’

이천상만큼 상단전이 발달했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그의 상태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았으니까.

‘……하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무 문제 없이 자신만의 길을 잘 개척해 가고 있다.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면 모를까, 딱히 그럴 일도 아니었다.

“만날 때마다 자네는 나를 놀라게 해 주는군.”

“이런 걸로 놀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그 기운, 하루라도 빨리 녹이는 게 좋을 걸세. 마기는 고이면서 깊어진다지만, 마기화하지 않은 영약의 기운은 그 자체로 막대한 힘을 지니고 있어. 오래 지속될수록 속에 안 좋을 걸세.”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도헌이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래, 무슨 일로 날 불렀나?”

“양백호에 대해 잘 아십니까?”

도헌이 흠칫했다.

“이번에 야차사령부의 수장으로 간 양백호 말인가?”

“그렇습니다.”

“왜? 그 사람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그저 성격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아주 자세히요.”

“자세히라…….”

굳이 먼저 보자고 찾아와서 양백호에 관해 물어볼 줄은 몰랐다.

도헌이 가만히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양백호…… 혈마인 양백호라…….”

탁자를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도헌이 다시 입을 연 것은 반 각이 지난 후였다.

“자네도 양백호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을 걸세.”

“예.”

“나 역시 그 사람과는 사적으로 친분이 없네. 오다가다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정도의 답변을 원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습니다.”

“음.”

도헌이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네. 더 해 줄 말이 없겠네. 소문으로 들은 것이 전부고, 더 알아보기도 힘들어. 차라리 더 유명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렇군요.”

예상한 바였다.

듣기로, 혈마인 양백호는 아부와 아첨을 모르는 전형적인 전사형 마인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이천상이 보기에도 권력에 취한 여느 마인과는 달라 보였다. 물론 잠깐의 만남에 불과했기에 확신까진 아니었다.

이천상이 알고 싶은 것은 양백호가 지닌 한계였다.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인지, 정도 이상의 외압에는 끝내 굴복할 사람인지.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다.’

만약 목숨도 돌보지 않는 원칙주의자라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다른 걸 알아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어떤 것?”

“자소대마.”

“……!!”

도헌의 얼굴이 확 굳었다.

“십대마왕의 일인, 자소대마 장로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

“어렵겠습니까.”

“……어렵지.”

도헌이 한숨을 쉬었다.

“어렵지만, 양백호만큼 막막하진 않겠지.”

“다행이군요.”

“한데 자소대마 장로는 왜?”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굳이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이천상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말만큼은 반드시 해야 했다.

“이것만 기억해 두게.”

“…….”

“언제, 어떤 순간이든 장로원과는 얽혀선 안 되네.”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외전의 일개 마인입니다.”

장로원과는 얽히고 싶어도 얽힐 수가 없다는 뜻.

도헌이 고소를 지었다.

“알겠네. 이 비싼 술상은 내버려 두고 또 월담이나 하고 와야겠군.”

“그렇습니다.”

“또? 더 물어볼 건 없나?”

“있습니다.”

“많기도 하군.”

“이게 마지막입니다.”

“말해 보게.”

“연치상.”

“……음?”

“자소대마의 사생아, 연치상에 대해서도 알아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도헌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연치상이라면…… 설마 귀수(鬼手) 연치상 말인가?”

“알고 계십니까?”

“알지. 너무나도 잘 알지.”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잘 찾아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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