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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49화 (681/774)

외전 49화. 조장의 권위 (5)

“……!”

칠 호 앞에 마인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주연교와 허필도 있었다.

“당신!”

주연교가 저도 모르게 이천상의 어깨를 잡았다.

순간 주연교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천상의 상체가 살짝 기울어지자 무게 중심이 흐트러진 것이다.

너무나도 쉽게 그녀를 떨친 이천상의 시선은 계속 연치상을 향해 있었다.

감정은 담기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끙차.”

천천히 무릎을 짚고 일어난 연치상이 보란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물었다.

“나한테 볼일 있냐?”

“세 번.”

“뭐?”

“일어나는 사이 널 죽일 수 있었던 기회를 말함이다.”

연치상이 피식 웃었다.

“날 죽이고 싶은가?”

“시비가 걸리지 않았다.”

“뭔 소리야, 그건?”

“시비가 걸리지 않은 상대를 죽일 수는 없다.”

“난 도대체 네가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연치상이 두 마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저 머저리가 뭐라는지 너희는 알아들었냐?”

마인들이 고개를 저었다.

연치상이 이천상을 돌아보았다.

“너 뭐야?”

“일 조장이다.”

“일 조장?”

연치상이 등무관을 내려다보았다.

“우리 조장 병신 만든 게 일 조장 나리셨구만?”

“그렇다.”

“말 그만 돌리고 할 말 있으면 하지? 좋은 일로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좋은 일로 왔다.”

“음?”

“너한테는 아니지만, 나한테는 좋은 일이겠지.”

연치상이 사납게 웃었다.

“왜? 내 손에 그쪽 조원 하나 작살난 것 때문에 왔냐? 화가 나서?”

“친분 따위 없는 조원 하나 망가졌다고 화를 내야 하나?”

꽤나 냉담한 발언이었다.

문밖에 모여 있던 마인들의 얼굴이 묘해졌다.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렸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흥미진진한 얼굴을 했고, 또 누군가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연치상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당연히 그러진 않겠지. 그럼 왜 왔어?”

“화는 나지 않지만, 복수는 해 줘야겠다 싶어서 왔다.”

“화도 안 났는데 복수를 해 줘?”

“조장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푸핫!”

연치상이 폭소를 터트렸다.

“조장의 책임? 크하하하! 뭐 이런 순진한 녀석이 다 있냐? 너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

“세상 재미있구만. 바깥 공기 마시고 돌아온 사이에 본교가 아주 흥미로워졌어. 아니면 외전이라 그런가? 하긴, 내전은 생각보다 너무 딱딱했지.”

우두둑!

주먹 쥔 손을 위협적으로 이리저리 돌리던 연치상이 이빨이 다 드러나도록 웃었다.

“조장의 책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그런 일로 목숨을 걸다니, 멍청한 건 조원이나 조장이나…….”

“시녀는 왜 건드렸지?”

“뭐?”

“검마 장로의 아끼는 시녀를 간살하고 죽을 뻔했다고 들었다. 아비의 후광 덕에 겨우 살아났다고?”

“……!!”

연치상의 표정이 돌변했다.

이천상이 단조로운 음색으로 말했다.

“사나운 들개도 범과 늑대가 판을 치는 곳에 가면 알아서 눈치를 본다. 개만도 못한 머리로 그 난리를 치고도 바뀐 게 없는 걸 보면 오래 살긴 글렀다.”

“너……!”

“그렇게 죽고 싶으면 민폐 그만 끼치고 빨리빨리 죽어라.”

“이 미친놈이!”

쉬익! 퍼어엉!

이천상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강력한 발경, 폭발적인 힘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친 권풍을 받아친 것만으로도 손목이 아릴 정도였다.

하지만 놀란 건 연치상도 마찬가지였다.

격해진 감정에 위력 조절도 못 했다. 섬세하진 않아도 그 속도와 힘만큼은 강력했다. 한데도 상대에게 별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다.

사아아아악!

연치상의 몸에서 무서운 살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천상이 소매를 털며 말했다.

“시비는 잘 걸린 것 같군.”

“그 혓바닥과 재수 없는 눈알부터 뽑아 주마.”

그때였다.

“비켜라! 모두 비켜!”

강력한 마기가 실린 목소리가 복도를 뒤흔들었다.

문밖에 모인 마인들이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멈춰라!”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일각주 영관이었다.

상관이 등장했는데도 이천상과 연치상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무심하고 살기등등한 두 쌍의 눈빛은 끝까지 서로를 향해 있었다.

영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뭣들 하고 있는 거냐!”

그제야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연치상은 여전히 살기를 잠재우지 않았다.

연치상을 보던 영관이 이천상에게로 눈을 돌렸다.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라.”

“시비가 걸려서 무력으로 해결을 보려던 차였습니다.”

황당하리만치 솔직한 발언이었다. 영관은 물론 연치상조차 순간 살기를 누르고 눈살을 찌푸렸다.

“시비가 걸렸다고?”

“그렇습니다.”

“조장이란 놈이 일개 조원과 시비가 걸렸다고 싸운단 말이냐?! 도대체 뭐 하자는…… 응?”

흥분해서 연치상 옆에서 꿈틀거리는 등무관의 존재를 이제야 본 영관의 눈이 흔들렸다.

“비켜!”

연치상을 옆으로 밀친 영관이 등무관의 상태를 살폈다.

등무관의 상태는 제법 심각했다. 턱뼈가 부러지고 이빨 몇 개가 날아갔다. 두 팔목도 부러졌고 손에 잡힌 발목 역시 금이 가 있었다.

회복이야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턱과 이빨이었다. 보통 독하게 당한 게 아니라서, 운이 나쁘면 평생 죽만 먹고 살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훅!

영관의 몸에서 매서운 기파가 일렁였다.

“누가 이런 거냐?”

영관이 연치상을 노려보았다.

“너냐?”

연치상이 피식 웃으며 턱으로 이천상을 가리켰다.

한참 상관인 사람 앞에서 보일 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영관은 대놓고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연치상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관이 이천상을 노려보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무겁게 깔린 목소리에 강렬한 분노가 이글거렸다.

이천상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시비가 걸려서 싸웠습니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장난 아닙니다.”

“이 새끼가 정말!”

“시비가 걸려서 병신이 된 제 조원이 의방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팔이 날아간 것도 문제가 안 되었는데, 저는 문제가 됩니까?”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살기를 피웠던 영관이 주춤거렸다.

“그건 무슨 헛소리야?”

“저놈과 제 조원이 시비가 걸려 싸웠습니다. 놈은 멀쩡하지만, 제 휘하 조원은 팔 하나가 날아갔습니다.”

“……?!”

“하루밖에 안 지났다지만, 조용히 묻힐 일도 아니었습니다. 삼 조장에게 물어보니 시비가 붙어 싸웠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

“그래서 그놈과도 싸웠습니다. 한데 이제 보니 그런 시시껄렁한 이유로 죽자고 싸우면 안 되는 거였나 봅니다.”

영관의 얼굴이 확 굳었다.

“아니면.”

이천상이 연치상을 가리켰다.

“저놈에게 특권이라도 있는 겁니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버럭 소리친 영관이 애써 호흡을 골랐다.

“연치상.”

“예.”

“일 조장 말이 사실인가?”

연치상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반만 사실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놈이 먼저 공격했습니다. 살수를 가했지요. 정당방위였습니다.”

영관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통하지도 않을 거짓말이었다. 당장 각 잡고 조사에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는 증언이 줄줄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로 연치상에게 벌을 줄 수는 없었다. 당장 령주인 양백호도 연치상을 살려 줄 수밖에 없었다. 외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관이지만, 일개 조원에게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연치상이 잡고 있는 줄은 내전에서도 가장 강력한 장로원까지 닿아 있었다.

“너희 둘.”

연치상과 같은 방을 쓰는 마인들이 자세를 바로 했다.

“삼 조장을 의방으로 데리고 가라.”

“예!”

“그리고 너.”

영관이 이천상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조장씩이나 되는 놈이 이 난리를 쳐 놔?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조장이라서 그랬습니다.”

“뭐?”

“조원의 잘못은 조장의 잘못입니다. 조원이 잘한 일은 조장의 뒷바라지 덕분입니다. 그리고 조원이 피해를 입었을 때는 조장이 책임지고 나섭니다. 조원이 죽었다면, 조장으로서 복수라도 해 줘야 합니다.”

“……!”

“상관의 권위는 책임에서 나옵니다. 아직 이렇다 할 규율과 법도가 없는 이 조직에서, 저는 제 나름대로 책임을 지려 하였습니다.”

“…….”

“문제가 된다면 처벌받겠습니다.”

감정 없이, 고저 없이 흘러나오는 이천상의 말은 마치 고서(古書)에 쓰인 글자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와 나열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딱딱했고, 그래서 누구도 그의 말을 끊어 내지 못했다. 감정이 없기에 홀린 듯 듣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는 것이다.

“…….”

잠시의 침묵이 일었다.

부서진 문밖에서 이천상의 말을 들은 마인들의 표정은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충격을 받은 듯했고, 누군가는 복잡해 보였다. 또 누군가는 냉담해 보였고 누군가는 흥분한 듯했다.

영관조차 순간 할 말을 잃어 당황했다.

그때, 연치상이 말했다.

“개소리를 줄줄 하고 있네.”

침묵을 깬 그의 목소리는 사이하고 거칠었다.

“각주님. 저 새끼 저거 그냥 놔두실 겁니까? 기물 파손에 시비에, 보통 미친놈이 아닙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같은 조장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기까지 했어요.”

“…….”

“사령부 차원에서 작살을 내 놓고 쫓아 버려야…….”

“입 닥쳐라.”

영관의 거친 말에 연치상의 눈이 깊어졌다. 마치 네까짓 게 내게 그따위 말을 해도 되겠냐는 듯, 게슴츠레한 눈에 흉흉한 기색이 가득했다.

영관은 흥분을 다스렸다. 그 역시 마음 같아서는 이천상에게만 벌을 내리고 싶었다. 뒤를 생각하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하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들끼리만 있었다면 모르되,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마인들은 이곳의 상황을 전부 보고 들었다. 만약 이천상에게만 따로 벌을 내리면 일각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렇다고 연치상에게만 벌을 줄 수는 없는 노릇. 장로원이 아니라 당장 부령주에게 작살날 수도 있었다.

‘빌어먹을.’

강자존의 마도무림 역시 때로는 여론을 신경 써야 한다. 이천상은 그 힘을 등에 업고 있었다.

영관이 씹어뱉듯 말했다.

“오늘 일은 없는 것으로 묻어 두겠다.”

연치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각주님?!”

“문짝은 네놈들이 알아서 고쳐 놔!”

문밖으로 걸어 나가며 영관이 외쳤다.

“뭘 그렇게 빤히들 보고 있어? 구경 났냐? 당장 거처로 들어가!”

신경질적인 고함에 마인들이 어기적거리며 흩어졌다.

영관이 멀어지자, 연치상이 말했다.

“운 좋네. 저 멍청한 각주 놈 아니었으면 개작살이 났을 텐데. 그렇지?”

이천상이 검지로 제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조심해라.”

“지랄하네. 너 이제 나한테 찍혔어.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보…….”

“조만간 여기가 깨진다.”

머리통을 깨 버리겠다는 이천상식 경고였다.

연치상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정말이지 이놈은, 몇 마디 안 되는 말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재주가 있었다.

이천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주연교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천상을 보았다.

“괜찮아?”

“다친 곳 없다.”

“조마조마했네. 왜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선 거야? 당신답지 않게.”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응?”

이천상이 저 멀리 계단까지 간 영관의 등을 보며 말했다.

“썩은 살점은 알아서 도려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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