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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50화 (682/774)

외전 50화. 조장의 권위 (6)

거처로 돌아온 이천상은 말없이 침상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소통의 여지를 차단해 버리는 그 무심한 뒷모습에, 뭐라 말을 붙이려던 허필도 짧게 혀를 차곤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우우웅.

이천상의 몸에서 황금빛 은은한 마기가 새어 나왔다.

마기의 양은 지극히 적었지만, 그 밀도만큼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를 주시하는 허필의 눈이 경악으로 흔들렸다.

잠시 후.

스르륵.

눈을 뜨고 자세를 푼 이천상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벌써 해가 지는군.’

금강야차마공은 분명 대단한 마공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역량이 따르지 않으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건 어떤 무공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이천상은 짧은 시간 놀라울 만큼 성장했지만, 남들에 비해 무공을 연성한 시간이 적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제아무리 천재라도 세월을 이기긴 힘든 법. 어지간한 달인이 아닌 이상, 처음 쥔 칼을 자기 몸에 맞게 숙달하는 시간은 필요한 법이었다.

그 부분이 바로 이천상의 약점이었다. 마공이 몸에 안착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활용 능력이나 마기의 회복 능력에서 손해를 보는 것.

빠르게 익숙해지고 있지만, 약점은 약점이다. 지금 이천상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끝났나.”

이천상이 고개를 돌렸다.

침상에 앉은 허필이 딱딱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래.”

“속도 좋군. 친분도 없는 사람 앞에서 운공이라니.”

이천상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재차 입을 열려던 허필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뭐야, 저 몸은.’

상체 근육 전반이 골고루 발달했다. 누가 봐도 보기 좋은 몸이었다.

하지만 허필의 시선을 끈 것은 이천상의 등에 새겨진, 깊고 진한 상처의 흔적이었다.

‘뭐가 저렇게……?’

대부분 나았지만, 마치 크고 작은 갈고리 수십 개에 난도질이라도 당한 듯했다.

특히나 사선으로 가로지른 큼직한 세 줄기 상처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거대한 호랑이의 앞발에 당한 것 같은 상처였다.

앞판은 깨끗하지만, 등은 상처투성이다. 묘한 몸이었다.

홀린 듯 상처를 응시하던 허필이 입을 열었다.

“왜 그랬지?”

이천상이 허필을 돌아보았다.

역시나 무심한 시선이었다.

“삼 조장 말이야. 왜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놨지?”

“밖에서 다 듣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물론 다 듣고 있었다.

“그래, 이유는 들었다.”

“그런데 뭘 묻나?”

“미친 짓이었다.”

“그런가.”

“연치상 그놈을 자극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네 실력이 상당하다는 건 알겠지만, 그놈은 위험해. 하물며 그놈 뒤에는 자소대마라는…….”

“호미루로 가라.”

“……뭐?”

갈아입은 상의 위에 장삼까지 걸치며, 이천상이 말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그놈이 이곳을 급습할 가능성이 있다.”

“……?!”

“호미루로 가서 술을 마시든, 뒷산에 올라서 수련하든 알아서 시간을 보내도록 해라.”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기습이라니?”

도리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천상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이틀 뒤부터 정식 훈련이다. 부대 정비는 내일까지야.”

“그래서?”

“훈련 전까지 놈이 기다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뭐?”

“일각주 영관은 나에게 벌을 주려 했다. 보는 눈이 많아 차마 그러지 못했을 뿐이야. 만약 내가 일부러 소란을 벌이지 않았다면, 이 일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필의 눈이 흔들렸다.

일부러 소란을 벌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상황은 그 누구도 아닌, 이천상이 유도한 결과라고 봐야 했다.

“일이 이렇게 벌어질 거라는 걸 알았다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확신할 수 없는 일에 목을 내놨다는 건가?”

“내 뒤를 봐주는 사람 때문이라도 날 죽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날 죽이기 전에 그 이름을 불렀을 테니까.”

“……!”

서슴없이 뒷배가 있다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순간에 대놓고 그 말을 하진 못할 것이다. 멋쩍기도 할 테고, 자신이 이룬 성과가 퇴색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걸 보면 아비의 후광을 믿고 이 난리를 치는 연치상이 얼마나 엇나간 놈인지도 알 수 있었다.

“연치상은 각주를 무시하고 있다. 령주도 자신을 죽이지 못했는데 각주라고 무서울까.”

“……그렇군.”

“분명 나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널 죽인다 해도 그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

“그렇다.”

“하지만 왜 해 질 때를 노린다는 거지? 언뜻 봐도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 놈이었다. 어둠을 노려서 기습할 거라고는…….”

“자존심이 강했다면 끝장을 보자고 통보했겠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

“게다가, 그놈은 한 번 나를 기습했다. 그리고 그 공격은 통하지 않았어. 날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만만찮은 상대라고는 생각할 것이다.”

“…….”

“어둠을 틈타 기습해 올 확률이 높다.”

놀라운 녀석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유도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놀라움은 똑똑함보다 배포에 있었다. 일개 조직원이 상관을 이용한다는 생각은 아무나 못 한다. 멍청해서가 아니라, 그럴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연치상의 행동을 분석한 말은 배포만 좋다고 나올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놈, 똑똑하군.’

그 짧은 사건 안에서의 흐름과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그다음 일을 대비하는 것.

지식이 많다고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건 지혜였다. 날카로운 안목을 겸비한 지장(智將)의 지혜.

“주변 신경 안 쓰는 놈이니, 같은 방을 쓰는 나까지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로군.”

“피해 정도가 아니겠지. 그놈 성격이라면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

“그게 뜻대로 된다면 말이지.”

조소를 머금은 허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왜 오늘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일까지 부대 정비야. 내일을 노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놈 성격에 말인가?”

“……!”

“오늘을 넘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 인내심으로는.”

“…….”

“만약 기습이 실패하면 소란이 벌어질 것이다. 날 이긴다 해도 그놈 역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을 터. 상처 입은 몸으로 훈련에 들어가긴 싫을 테니, 오늘이 적기일 수밖에 없…….”

“……?”

“아니군. 그놈이라면 거기까지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놈은 오늘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왠지 바보가 된 기분이군.

이천상의 말을 듣다 보면, 너무 당연한 분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쉽게 유추가 되질 않았다. 유추했다 한들, 확신을 가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내심 혀를 내두르면서도, 허필은 삐딱하게 말했다.

“사고뭉치 조장 때문에 조원도 고생이구만.”

“멍청한 조원 때문에 내 고생도 늘었다.”

“뭐?”

“설마 그놈이 그 방 인원들만 닦달할 거라고 생각하나?”

“……?!”

“방 인원들을 데리고 놀다가 재미없어지면 옆방을 기웃거릴 것이고, 거기서도 재미를 다 보면 또 옆방을 노릴 것이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 너에게도 마수를 끼치겠지.”

이천상의 눈에 은근한 의구심이 일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했나?”

허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하지만 할 말은 있었다.

“벌어지지 않은 일을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군.”

“벌어질 가능성이 큰 일을 애써 무시하는 것은 무슨 감정에 기인한 행동인가? 자존심 때문인가?”

“……너.”

“조금 더 넓게 보고 세밀하게 분석해라. 조원의 뒷바라지를 해 줄 생각은 있지만, 멍청한 조원 때문에 여기저기 끌려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다.”

“웃기지 마라. 아무리 뒷배가 든든해도 그렇게까지 사고를 쳐 대면 놈은 절대 무사할 수 없어. 그 정도도 모를 만큼…….”

“그 정도는 알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하는 감정적인 놈이라는 걸, 어제오늘 잘 봐 왔을 것이다.”

“……!!”

“현상에 집중해라. 신교 역시 야생의 삶과 똑같다. 머리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목이 달아난다.”

“…….”

“시간이 지나면 그놈에게 빌붙어 부하 노릇 하는 놈들도 많아질 것이다. 시간이 문제일 뿐, 이곳 건물 인원 전체가 그놈에게 놀아날 것이다.”

허필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이천상이 허필을 지나치며 말했다.

“감당할 수 있다면, 계속 이 방에 머물러도 상관없겠지.”

그 말을 끝으로 이천상은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허필이 씹어뱉듯 말했다.

“정체가 뭐야, 저놈?”

이 말만 도대체 몇 번째인지 알 수 없었다.

* * *

건물에서 나온 이천상은 곧장 주변을 살폈다.

‘많군.’

건물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마인의 숫자였다. 이각 주변에도 몇 명 잡혔고, 삼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술 한잔 걸치러 가는 마인이 꽤 많았다. 놀랍게도 훈련하는 마인 역시 있었는데, 사방이 탁 트인 곳이라 그런지 소극적으로 병기를 휘두를 뿐이었다.

음영 진 건물 뒤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이천상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근한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 보통의 사람이 봤다면 참으로 곱다고 감탄했을 법한 하늘이지만, 이천상에게는 어떠한 감흥도 없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군.’

이천상은 문득 허필을 떠올렸다.

‘실력이 좋아.’

드러내지 않았을 뿐, 눈빛이나 걸음걸이만 봐도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 이상일지도 모른다.’

허필 역시 숨기는 것이 많았다.

이천상은 허필의 내공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지 읽을 수 없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대놓고 숨기진 않았다지만, 연치상의 방대한 내공량도 한눈에 꿰뚫어 본 그가 허필의 내공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막강한 힘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특수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허필의 무력이 뛰어나다는 것.

‘하지만 무력만 뛰어나서는 안 돼.’

무력이 뛰어난 건 강점이지만, 그 무력을 믿고 생각 없이 날뛰는 것은 위험하다.

호랑이는 산중대왕으로 군림한다. 그리고 그 호랑이를 잡는 것이 늑대 한 마리 맨손으로 때려잡기 힘든 나약한 인간이었다.

인간의 지능을 지닌 호랑이가 있다면, 그 호랑이가 얼마나 위협적일까.

이천상이 바라는 조원은, 그리고 그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야수였다.

‘자존심이 강해 보였다. 앞으로 다루려면…….’

순간 이천상은 움찔했다.

조원을 생각하며 앞으로의 앞날을 계산하는 것.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왠지 이전의 자신과는 달라졌음을 깨닫는 그였다.

후우우우웅!

서늘한 바람이 건물에 맞아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이천상의 목덜미를 훔치고 지나갔다.

어느새 하늘은 완전한 어둠을 되찾은 뒤였다.

‘때가 됐군.’

이천상이 움직였다.

“…….”

창밖을 바라보던 양백호의 눈이 깊어졌다.

“문밖에 누구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당돌하지만 왠지 의도를 읽기 힘든 딱딱한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인상적이면서도 묘하게 멀리하고 싶은 목소리.

양백호가 몸을 돌렸다.

“들어와라.”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청년이 있었다.

다부진 체구, 무심한 표정.

양백호의 눈이 번뜩였다.

“일각의 일 조장이로군. 이름이…….”

“이천상입니다.”

“…….”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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