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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51화 (683/774)

외전 51화. 단단한 줄 (1)

“양백호라…….”

공무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골치 아픈 녀석이긴 하지. 능력은 확실한데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녀석이야. 고개 몇 번만 확실히 숙였다면 지금쯤 나 정도 위치에 올랐어도 크게 이상할 게 없어.”

양백호를 향한 공무외의 평가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성격일세. 뭐, 성격인지 자존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실력 좋은 칼잡이, 그게 딱 녀석의 한계지.”

“역시 그렇군요.”

“실력만 좋으면 뭐 하나? 날아오르질 못하는데. 그런 걸 보면 자네는 정말 대단한 걸세. 자신의 모든 걸 던져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을 제대로 들여다본 거니까.”

도헌은 내심 고소를 지었다.

이 더러운 판에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속이 끓어오른다. 모욕이나 진배없는 저 말을 칭찬으로 여길 수 있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그 한계를 지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당신은 평생 모를 거다.’

공무외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듣기는 했네. 양백호가 야차사령의 대장으로 갈 거라는 것 말이야. 원체 계륵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밉보인 줄은 몰랐는데.”

“예?”

“음?”

“밉보이다니요?”

공무외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사령주는 호령주에 비하면 그야말로 한직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직급만 같을 뿐, 영향력은 하늘과 땅 차이일 걸세.”

“물론 그건 그렇습니다만…….”

“양백호의 무력은 육대주급을 넘어 상위 마장(魔將)급이야. 보통 높은 무공을 지녔음에도 권력에 관심이 없거나 별 쓸모가 없다면 마장으로 가는 게 보통일세.”

칠십이마장(七十二魔將)은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마인들로, 대개 칠십여 명을 유지한다.

당연히 순위도 있고, 순위가 높을수록 무공 역시 강하다. 다만 그들에게 조직 차원으로 지원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하나로 묶인 조직이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신장부(神將部)라는 조직을 따로 만들어 관리하는 게 어떠냐는 말도 있었지만, 상부에서 기각했다. 지나치게 돈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직도 없고 지원도 못 받는, 가진 거라고는 쌓은 실력뿐인 자들. 그것이 바로 칠십이마장이었다.

만에 하나 전쟁이 터지면, 신교의 정예 부대보다도 선봉에 설 이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대를 해 주는 게 맞지만, 결과적으로 칠십이마장은 권한은 하나도 없는 명예직이나 다를 바 없었다.

“칠십이마장 중 쓸 만한 자들은 조직장들이 골라서 데려오기도 하지. 말하자면 품평회 앞에 놓인 물건들이야. 양백호는 그 물건만도 못한 처지가 된 것일세.”

“그렇군요.”

“모르고 있었는가?”

“마장에 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음,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하군.”

“얼핏 듣기로는 주변에 관심도 없고, 그렇다고 통제도 되지 않는 이들을 모아 둔 조직이라고 들었습니다만.”

“통제가 안 되는 놈들을 모아 두었다면 진즉 조직화하여 통제하려 들었겠지.”

“그것도 그렇군요.”

공무외가 턱을 쓰다듬었다. 일이 바빴는지, 아니면 어디서 술이나 왕창 마셨는지 꽤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야차사령에는 권력 중추에 밀린 이들이 내전에 줄이라도 대자고 보낸 놈들이 수두룩하다네. 물론 우리처럼 일부러 보낸 녀석들도 있겠지만, 그건 극소수에 불과하지.”

“…….”

“하지만 중추에서 밀려났다 하더라도 그 조직들이 힘을 합치면 절대 만만치 않아. 거기에 양백호를 보냈다는 건 말라 죽으라는 것 아니겠나.”

“으음.”

“뭐, 양백호 성격에 진짜 그럴지는 모르겠네. 원체 성격이 꼿꼿해서 말이야. 거기에 실력도 좋으니 만에 하나라도 반항하는 놈이 있다면 단칼에 죽어 나갈 것일세.”

공무외가 피식 웃었다.

“투마장 못지않은 아수라장이 되겠구먼. 뭐, 그건 또 그것대로 나쁘지는 않겠지만.”

도헌의 눈이 빛났다.

‘모르고 있나?’

어째 말하는 투가, 그곳에 자소대마의 사생아도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가?’

뭐가 되었든, 이 부분은 말을 해 두는 게 좋을 것이다.

“어제 이천상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다던가?”

“그곳에 자소대마 장로님의 사생아도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순간 공무외의 눈이 반짝였다.

“자세히 말해 보게.”

* * *

양백호의 눈이 깊어졌다.

‘이천상이라.’

일각 삼 층 일 호.

일각은 삼 층부터 조원들이 지내는 곳이고, 그중 일 호라면 일각에서도 몇 없는 삼 인실이었다.

말하자면 조원들이 그나마 가장 들어가고 싶은 방이라고 할 것이다. 많은 인원이 득실거리는 걸 좋아하는 마인은 없을 테니까.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지만, 소속 마인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휘하 마인을 이곳으로 보낸 이 역시, 주변에서 쉽게 보지 말라는 의도로 미리 방을 선점했을 가능성이 있다. 자리가 곧 위치를 만드는 법이니까.

즉, 창설식 전에 일 호에 배정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천상의 뒷배는 상당한 것이다.

안목이든, 실질적인 능력이든.

양백호가 딱딱하게 말했다.

“볼일이 있으면 상관에게 보고해 따로 자리를 만드는 게 좋았을 것이다.”

“그런 규율을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양백호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상식 아닌가?”

“부대 정비 날입니다. 조장이 아닌 조원이라도, 직접 찾아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천상 입장에서 양백호는 바로 위가 아닌,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거니는 상관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직접 찾아온다는 발상 자체가 쉽지 않다. 신교 특유의 살벌한 조직 문화에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물끄러미 이천상을 보던 양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무슨 일로 날 찾아왔나?”

이천상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무덤덤했다.

“일각의 기강을 무너트리고 언젠가 사령부 전체를 말아먹을 망종 하나를 잡아 볼 생각입니다. 허락하신다면 직접 잡아 보겠습니다.”

“……?!”

엄청난 얘기를 너무 무덤덤하게 해서, 양백호는 순간 이놈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자네 말은…….”

양백호가 눈을 깊이 감았다 떴다.

“지금 사사로이 사령부 소속 마인 하나를 작살내겠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화악!

양백호의 몸에서 위엄 가득한 마기가 풍겨 나왔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지.”

“…….”

“자네 말마따나, 사령부의 규율이나 법도에 대해 야차들에게 가르치지 못했어. 그러니 한 번은 봐주겠다.”

“…….”

“다시 한번 이와 같은 헛소리를 할 경우 그에 걸맞은 형벌에 처하겠다. 이만 돌아가라.”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나가라. 더 듣고 싶지 않다.”

“오전에 일각에서 또 사고가 터졌습니다.”

양백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사고라니?”

이천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각주가 보고를 올렸다면, 령주님께서 이 사안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제가 삼 조장 등무관을 박살 냈습니다. 이유인즉, 삼 조 소속 연치상이 제 조원의 팔을 날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뭐?”

“그에 따른 책임을 묻기 위해 삼 조장을 찾아갔지만, 모르쇠로 일관하였습니다. 단순 시비 문제라 했음에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저 역시 삼 조장에게 시비를 걸어 박살 냈습니다.”

“……?!”

“이 부분에 대한 보고,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훅!!

위엄으로 가득한 마기가 어느새 살기로 물들었다.

끔찍한 마기가 서린 두 눈이 은은한 혈광(血光)으로 물들었다. 보는 이의 심장을 직접 움켜쥐어 터트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안광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이!”

당장이라도 주변을 날려 버릴 듯, 양백호의 마기는 무섭게 불어나고 있었다.

“이것들이 도대체 조직 알기를 뭘로 아는 것이야!!”

불같은 분노를 표출하는 양백호에게, 믿을 수 없게도 이천상은 기름을 부어 버렸다.

“외압에 굴복하는 조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라?!”

“연치상이 살아 있는 이유가 곧, 일각주가 령주님께 보고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

기름은 아무리 차가워도 불을 끌 수 없다.

하지만 그 기름에 물이 섞여 있다면, 그 불도 진짜 불이 아닌 불과 같은 형상을 한 공허한 외침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기름도 불을 끌 수 있다. 진짜 불이 아니고, 진짜 기름이 아니니까.

으드득!

부서질 듯 이를 가는 양백호.

분노한 형상은 그대로지만, 두 눈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을 포착한 순간.

바로 그 순간 이천상은 확신했다. 양백호의 한계가 어디인지.

아니, 정확히는 양백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규율과 법도라는 것이, 통하는 사람에게만 씌우는 선택적인 덕목 같은 겁니까.”

“……나가라.”

“령주님이 생각하는 규율과 법도 안에, 일개 조원이나 조장의 말은 무시해도 된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습니까?”

“…….”

“저는 지금 야차사령부의 조장으로서 합당한 의문을, 야차사령부의 수장에게 표하고 있습니다.”

양백호가 충혈된 눈으로 이천상을 노려보았다.

이천상은 그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피할 이유가 없었다.

“이 부대의 수장이 자소대마 장로님이었습니까.”

콰득!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탁자를 뛰어넘은 양백호가 이천상의 목을 잡곤 그대로 벽에 처박았다.

‘강력하군.’

이천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양백호의 아귀힘은 대단했다. 목에 아무리 힘을 주고 내공을 쏟아부어도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천상의 사고는 냉정하기만 했다.

‘이 속도, 마기의 질이 높다고 다 구현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경신술의 차원이 달라.’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그러했다.

초절정고수 혈마인 양백호. 이 작자와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었다. 사냥꾼의 인내도, 기술도, 기습도 다 통하지 않을 것이다.

늑대보다도 체력이 좋고, 호랑이보다 열 배는 더 크며, 고양이처럼 민첩한 괴수를 상대하는 기분.

‘저 영역에 올라가면, 전혀 다른 것이 보이겠군.’

양백호가 으르렁거렸다.

“어디서 감히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느냐!”

목을 조르고 있었지만, 부러지진 않았다. 애초에 죽일 작정이었다면 한 방에 부러트렸을 것이다.

그래서 이천상 역시 불편하기만 할 뿐, 말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사실이 아니라 망발이었습니까.”

“이놈!”

“지금 제 목을 조른 이 손으로 연치상의 목을 졸라 죽이면 될 겁니다.”

“……!”

“령주님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명령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연치상은 보이지 않는 왕이 되었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본인이 죽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

양백호가 이를 악물었다.

이천상의 목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타오르는 분노를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분노만이 아니었다. 자괴감이자 서글픔이기도 했다.

“사죄하십시오.”

“……뭐라?”

“야차들에게 사죄하란 말입니다.”

사죄라니?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인가?

“령주님이 지은 진짜 죄는 정예라고 모아 둔 이 부대를 아무 상관 없는 권력자의 사조직으로 만든 것입니다.”

“…….”

“각자 이곳에 온 이유가 있을 겁니다. 대다수가 개인의 선택을 배제당한 채 입대했겠지만, 장로 한 사람에게 휘둘리는 사조직의 일원이 되기 위함은 아니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령주님은 오백 야차들의 존재 의미를 하룻밤 만에 뭉개 버렸습니다.”

“…….”

“사과하십시오. 지금 이 자리에서, 저에게부터.”

이천상의 목을 조르던 양백호의 손이 서서히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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