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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59화 (691/774)

외전 59화. 죽음의 전령 (3)

“뭐라고?”

주연교는 아연실색했다.

개인 훈련 시간, 연무장에는 많은 마인이 나와 있었다.

말 그대로 누구의 제어도 받지 않는 훈련인지라, 누구는 비지땀을 흘리며 수련에 임했고 누구는 부족한 휴식을 보충했다.

물론 분위기가 워낙 엄격해서 노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훈련 시간인 만큼 부대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였다.

이천상은 건물 뒤편 공터에서 스스로의 무공을 돌아보고 있었다. 창설식 전에 수련했던 그곳이었다.

“정식 부관이라고?”

“그렇다.”

대답하면서도 이천상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이전과는 달리 주먹을 신중하게 뻗었다. 보법 한 번 펼치려 하면 셋을 세야 할 정도로 느렸고, 주먹에 따라 움직이는 상체 역시 답답할 정도로 느릿했다.

“헤에.”

주연교의 얼굴에 새삼스럽다는 기색이 어렸다.

“그럼 이제 각주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좌우지간 승진이 엄청나게 빠르잖아, 당신?”

“후욱!”

그렇게 느린 움직임인데도 이천상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오히려 격렬하게 움직일 때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굳이 거부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당연히 그렇지. 오히려 등 떠밀고 시켜 준다는데 감사합니다, 하고 집어 먹어야지.”

그때, 저 멀리서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격차가 너무 벌어지는 거 아닌가?”

주연교가 빙긋 웃었다.

“요새 얼굴 보기 힘드…… 응?”

미소 짓던 주연교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양건이 퉁명스레 물었다.

“왜 그래? 오랜만에 보니까 새삼 매력적이냐?”

“너 얼굴이 왜 그래?”

양건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볼을 쓰다듬었다.

볼이 아니라 얼굴 전체가 문제였다. 피멍이 들거나 눈이 퉁퉁 붓는 등의 상처는 없었지만, 여기저기에 자잘한 상처가 많았다. 퍽 험한 몰골이었다.

“젠장, 잘생긴 얼굴이 너무 망가졌어.”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니다. 억! 제길.”

쌍소리를 지껄이던 양건이 침을 뱉었다. 색을 보니 거의 피였다.

“아직 덜 아물었네.”

주연교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누구야?”

“관심 끄셔, 잘나가는 일각 나리들.”

“몰매라도 맞았어?”

“몰매는 무슨.”

대충 말을 흘린 양건이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을 되찾곤 이천상에게 다가갔다.

“얘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부관 나리. 일각을 맡으신다고요?”

“그렇다.”

“허이구, 야차 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부관이야? 순식간에 거물이 됐네. 휘하에 둔 부하들만 백오십 명이 넘어 버리잖아?”

“야차사령부의 부관 자리가 거물로 불릴 정도였나?”

“됐다, 됐어. 이 자식은 며칠 안 봐도 여전하네.”

훅!

강하게 마기를 발산하는 것으로 수련을 끝마친 이천상이 무뚝뚝한 얼굴로 물었다.

“누구한테 당했나?”

“관심 끄셔.”

“그럼 왜 왔나?”

“어엉?”

“그 얼굴을 보고도 그냥 넘길 사람은 많지 않아.”

“그중 하나가 너잖아? 새삼스레 왜 이래?”

“나는 그렇겠지만, 주연교는 아니지.”

“그거야…….”

“관심받는 게 싫으면 상처부터 치료하고 와. 그게 아니면 왜 그 지경이 되었는지 설명을 해라.”

양건이 인상을 찡그렸다.

“왜 이래? 재미없게? 언제부터 남 신경 써 줬다고.”

“…….”

“인마, 우리가 만난 지 일 년이 됐어, 십 년이 됐어? 너무 속속들이 알려 하면 부담스러워.”

물끄러미 양건을 보던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양건이 피식 웃으며 이천상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여하간 축하한다. 염병, 누구는 조장은커녕 일개 조원이구만, 격차가 두 단계나 벌어졌네.”

이천상은 말없이 어깨를 빙빙 돌렸다. 마기가 빠르게 일어나 지친 체력을 수복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제법 무리가 갔는지 뚝뚝 소리가 났다.

양건이 그 자리에 털썩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 참 더럽게 맑구만. 아! 그나저나 새 부관들 언제 올지는 들었냐?”

“모레 온다더군.”

“모레라…… 그렇구만.”

그때까지 주연교의 얼굴은 굳은 채였다. 양건의 꼴이 자꾸 신경 쓰이는 것이다.

양건이 한숨 쉬며 말했다.

“그렇게 봐도 네 마음은 안 받아 줘. 포기해.”

“진짜 말 안 할 거야?”

“말하면? 해결이라도 해 주게?”

“노력은 할 수 있지.”

양건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런 말 하지 마라. 타인의 문젯거리가 뭔 줄도 모르면서 괜한 희망 주는 거, 그거 잔인한 짓이야.”

“그러니까 말을 하면 되잖아.”

“학습 능력이 없구만.”

양건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왔다. 나도 진득하게 칼질이나 해 봐야겠어. 요새 너무 놀아서 몸이 굳은 느낌이야.”

이천상이 툭 던지듯 물었다.

“가나?”

“나도 술 한잔 마시고 싶긴 한데, 지금은 수련 시간이잖아? 밤에 시간 나면 한잔하자고. 하긴, 술이고 자시고 잠이나 자고 싶다만.”

몸을 돌린 양건이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또 보자고.”

그때였다.

훅!

매서운 속도로 움직인 이천상이 순식간에 양건의 후방을 점했다.

파라락!

양건이 벼락처럼 소검을 뽑아 휘둘렀다.

퉁! 팍!

양건의 눈이 흔들렸다.

사선으로 내리친 그의 검은 이천상의 왼손에 막혔다. 정확히는 검을 쥔 그의 손목을 이천상의 손이 잡아챘다.

동시에 이천상의 오른 주먹이 양건의 겨드랑이 밑에 닿았다.

제대로 힘을 줬으면 그 순간 어깨가 빠지고 갈비뼈 두 개는 부러졌을 것이다. 단 일격에 상대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세를 푼 이천상이 양건의 손목을 놓았다.

“여전히 검을 휘두르는 팔 안쪽이 비어 있다.”

“…….”

“예전부터 말해 주고 싶었지.”

손을 가볍게 턴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딱딱한 얼굴로 이천상의 등을 보던 양건이 조금 날 선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뭔 짓이야? 잘못하면 벨 뻔했잖아?”

“너 정도 실력자가 완급 조절도 안 될 만큼 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다는 뜻인가?”

“……!”

“그래서야 나뭇가지 하나도 못 베겠는데.”

제자리로 돌아온 이천상이 가부좌를 틀었다.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던 양건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예전부터라니? 진즉 말해 주지 그랬어?”

“안 지 일 년이 됐나, 십 년이 됐나?”

“…….”

“얼굴 봤으면 가라.”

쓴웃음을 지은 양건이 몸을 돌렸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느새 건물 뒤로 사라졌다.

주연교가 이천상에게 물었다.

“짐작이 가? 저 녀석 왜 저러고 있는지?”

“모른다.”

“무슨 일일까? 저 녀석, 어지간한 실력자에게 당할 만큼 어설프지 않잖아.”

“어설프지 않은 정도가 아니지.”

절정고수 수준은 아니지만, 가벼운 분위기 속에 감춰 둔 양건의 검력(劍力)은 꽤 대단한 것이었다. 암습에 특화되었는지라 본인보다 몇 수 위의 강자도 노릴 수 있을 만큼 예리한 무공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당장 일각 조원들만 봐도 양건과 비벼 볼 만한 실력자는 열을 넘지 않아. 저쪽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그럼 대체……?!”

순간 주연교의 눈이 흔들렸다.

“설마 저쪽 선임 조장 때문일까?”

삼각의 선임 조장은 곡헌으로, 처음 양백호에게 불려 갔던 자리에 왔던 고수였다.

곡헌은 진마대 조장 출신이었다. 그리고 양건 역시 진마대 예비단 출신이었다.

접점은 있지만, 관계만 보면 양건의 위치가 곡헌보다 한참 아래였다. 기존의 직함도 그랬고 무공 역시 그러할 것이다. 곡헌은 사령부 야차 중 수위를 다투는 무력의 소유자였다. 천마신교 정예 부대의 조장 출신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양건의 실력이라면 조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그런데도 조원으로 머무는 게 이상하잖아.”

“본각에는 양건 이상의 강자들도 있다. 당장 일 조에도 하나 있지. 하지만 그는 임시 조장으로 임명하기 전까지 조원으로 남고 싶어 했다.”

“…….”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이상하다고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고 저 녀석 말도 맞아.”

“응?”

“안 지도 얼마 안 된 사이다. 걱정해 주는 것은 자유지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걸 캐내는 것도 옳다고 볼 수 없다.”

주연교가 눈을 매섭게 치켜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

“이건 경우가 다르잖아. 딱 봐도 대련이나 개인 수련으로 입은 부상이 아니야.”

“본인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실례라고?”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

물끄러미 이천상을 보던 주연교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사람 생각은 자유다.”

“당신이 항상 말했던, 올바르지 않은 일일 수 있어.”

이천상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우우우웅.

순식간에 집중한 그의 몸에서 은은한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수련을 하는 건지, 하루가 다르게 마기가 깊어지고 있었다. 본인의 힘을 온전하게 개방하진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마기의 농도만 봐도 며칠 전보다 훨씬 더 굴강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주연교는 이천상의 놀라운 성장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성장보다 양건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한참 이천상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주연교가 사라지고 얼마 후.

훅!

순식간에 마기를 빨아들인 이천상이 눈을 떴다.

새까맣던 그의 눈이 은은한 안광을 발했다.

* * *

이틀 후.

“인사해라.”

양백호가 덩치 큰 사내를 가리켰다.

“율적산(律寂山)이다. 이각의 부관으로 임명될 거야. 권각(拳脚)에 능하고 집단전보다 소수의 조를 운영하여 침투, 와해시키는 전술안이 일품이지.”

이천상이 포권을 취했다. 율적산 역시 포권으로 화답했다.

양백호가 그 옆의 빼빼 마른 사내를 가리켰다. 덩치가 큰데도 인상은 서글서글했던 율적산과 달리, 이 사내의 얼굴은 상당히 냉정해 보였다.

“귀창(鬼槍)일세. 이름은 버렸어. 삼각의 부관으로 그 별호처럼 창술의 달인이지. 율적산과 달리 집단전에 능해. 물론 개인의 실력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이천상이 귀창에게 포권했다. 귀창은 고개를 한 번 까딱 숙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양백호가 이천상을 가리켰다.

“일각 부관 이천상이라네. 실력은 자네들 둘보다 떨어지지만, 학습이 빠르고 두뇌가 지극히 뛰어나다네. 물론 지닌바 실력 역시 무섭게 성장 중이니,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으면 하네.”

“예.”

성격과 분위기는 달라 보이지만, 율적산과 귀창의 얼굴에 이천상을 경시하는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천상을 좋게 본 게 아니라 양백호의 인선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 무인인바, 그런 그들에게 양백호는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적어도 신교 내에서는 그랬다.

“오늘은 쉬는 날이지만, 야차들 대부분이 부대 내에 머물며 휴식 중이라네. 돌아가면서 인사라도 하겠나?”

“그것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

율적산이 씨익 웃으며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마인 아닙니까? 부하들과 친분을 나누는 것만큼이나 능력을 보여 주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이천상의 눈이 반짝였다.

양백호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이천상을 보았다.

“괜찮겠나?”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율적산이 우렁차게 웃었다.

“하하하!”

당돌하다면 당돌한 그 발언이 무척 유쾌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양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연무장으로 가 있게. 야차들에게는 내가 전하겠네. 상관들 무공을 구경할 기회인데, 바보가 아니면 다들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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