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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60화 (692/774)

외전 60화. 죽음의 전령 (4)

양백호의 예상은 적중했다.

새 부관들이 비무를 벌인다는 소문을 내자, 이각도 채 되지 않아서 야차들 대부분이 연무장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제 연락을 돌렸는지, 부대 밖으로 나가 식사하던 야차들까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오백 야차들이 연무장 아래에 모여들자 그 넓은 연무장 인근이 순식간에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연무장 가운데에 선 양백호가 한 손을 들었다.

“시작 전 한마디 하겠다.”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멎었다.

“이건 단순한 여흥이기 전에, 너희를 다스릴 상관들의 능력을 확인할 기회이다. 아직 서로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 너희의 목숨줄을 짊어진 상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야차들의 얼굴에 묘한 기대감과 흥분이 일었다.

성격은 달라도 다 같은 마인이다. 개중에는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싸움 구경을 싫어하는 마인은 한 명도 없었다.

기대감 가득한 그들의 얼굴을 보며, 양백호도 결국 새어 나오는 미소를 막지 못했다.

“더 이상 말은 필요치 않을 것 같군. 자, 일각과 이각의 부관은 앞으로.”

연무장 끝에 서 있던 이천상과 율적산이 양백호 앞까지 걸어왔다.

“어디까지나 친선 경기인 만큼 되도록 살수는 자제하게. 다만 본인들의 능력을 확실히 보여 주지 못하면 잔뜩 기대하고 있는 수하들에게 눈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 싸우란 말이었다.

그때, 율적산이 말했다.

“일대일입니까?”

“음? 하면?”

“누구 하나 힘 빠진 상태로 돌아가면서 싸우긴 좀 그러니까…….”

율적산이 연무장 밑에 팔짱을 끼고 선 귀창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대일대일. 삼파전으로 가는 건 어떻습니까?”

꽤 신선한 발상이었다.

양백호가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흐음.”

양백호가 귀창을 쳐다보았다.

귀창이 무표정한 얼굴로 연무장에 올랐다. 그의 손에는 여섯 자 길이의 목봉(木棒)이 들려 있었다.

양백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삼파전이군. 뭐, 잘들 싸워 보게.”

“우아아아아!!”

흥미진진한 비무에 야차들의 함성이 커졌다.

양백호가 연무장 끝으로 물러났다.

“알아서들 시작하게.”

자연스럽게 삼각(三角)의 형태를 유지한 세 사람.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도 없다. 점점 커지는 야차들의 함성 속에서, 세 사람이 서로를 주시했다.

율적산이 씨익 웃으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자, 그럼.”

율적산의 시선이 귀창을 향했다.

“일단 자네부터 보내 버리고, 저 녀석 힘 좀 봐야겠네.”

“마음대로.”

“가네.”

파아아악!

순간 율적산이 이천상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대놓고 귀창을 먼저 보내겠다 말했지만, 정작 그가 노린 것은 이천상이었다.

비겁하다면 비겁한 수법이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삼파전, 셋이서 서로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든 합심해서 한 명부터 보내 버리든, 그것은 각자의 자유인 것이다.

‘어디.’

무섭게 확대되는 이천상의 얼굴.

‘능력 좀 볼까!’

부우웅!

율적산의 거대한 주먹이 순식간에 이천상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주먹을 휘두르는데 큼직한 몽둥이 휘두르는 소리가 난다. 전력은 아니었지만, 막아도 그 충격이 대단할 것 같았다.

그때, 이천상이 움직였다.

훅! 파앙!

율적산이 눈을 크게 떴다.

‘피해?!’

주먹을 피한 것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사선으로 몸을 돌려 주먹을 피하고, 곧장 귀창에게 달려드는 이천상의 행동이 놀라웠다. 설마하니 자신을 피해 귀창을 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귀창 역시 마찬가지였다. 표정은 여전했지만,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쾌속하게 움직인 이천상의 주먹이 귀창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때, 귀창의 목봉이 살짝 흔들렸다.

터어어엉!

이천상의 몸이 주르륵 옆으로 밀려 나갔다.

주먹을 회수하고 곧장 왼팔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귀창의 목봉에 맞은 팔뚝이 찌르르 울렸다.

‘역시.’

강하다.

양손으로 쥔 목봉이 흐릿해진다 싶은 순간, 좌측 얼굴 옆 공기가 밀려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공기의 흐름과 뾰족하게 날 선 투기(鬪氣)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읽은 덕에 방어가 가능했다. 그걸 읽지 못했다면 이번 한 방으로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파아악!

쭉 밀린 이천상이 곧장 바닥을 박차 귀창에게 달려들었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일격을 맞았지만, 이천상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귀창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자세를 더 낮추고 목봉을 휘두르려던 그때.

“으라차차!”

상상도 못 했던 순간이었다. 어느새 율적산이 날아와 귀창의 어깨를 향해 거권(巨拳)을 날리고 있었다.

귀창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파바바바박!

이천상의 팔다리를 후려친 목봉이 화살처럼 쏘아져 율적산의 주먹과 충돌했다.

쾅!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귀창이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달려든 율적산은 그 자리에서 주춤거릴 뿐이었다.

번쩍!

어느새 자세를 정비한 이천상이 벼락처럼 날아와 율적산의 오금을 후려쳤다.

‘엇?’

율적산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놈 보게?!’

오른 다리가 절반 이상 접혀 버렸다.

바위처럼 막강한 마공이 전신을 갑옷처럼 둘러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꺾였다는 건 이천상의 각법이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다는 뜻이었다.

‘벌써 회복했다고?!’

각법의 위력도 놀랍지만, 귀창의 목봉에 직격당한 몸을 안정시킨 시간도 놀랍다.

실전이든 비무든, 귀창은 상대를 봐주지 않는다. 모두가 보는 자리이니 살수는 구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강 후려친 일격도 아닐 것이다.

퍼어억!

송곳처럼 날카로운 평권(平拳)이 율적산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율적산의 눈이 흔들렸다.

오금을 걷어차고 옆구리에 일권을 먹인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공격이지만, 그 위치에서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후속타였다. 특히 박자가 좋았다. 반 박자 빠르게 치고 들어온 일격은 호흡을 잡기도 전에 들어와서 강한 충격을 남겼다.

퍼어억!

흉악한 팔꿈치 일격에 이천상의 몸이 붕 떠서 날아갔다. 양팔을 교차해 막았지만, 그 충격이 전신을 뒤흔들 정도였다. 거인이 온 힘을 다해 날린 통나무에 맞은 것만 같았다.

힘에서는 상대가 안 된다. 육체 이전에 마기의 질에서 뒤지고 있다.

율적산은 물론 귀창 역시 뛰어난 기량을 지닌 절정고수였다. 지금의 이천상이 정면승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들인 것이다.

‘괜찮아.’

힘으로 꺾지 못하면 기술로 꺾는다. 기술로 꺾지 못하면 속여서 꺾는다.

속여서도 꺾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짐승이 될 수밖에.

우우우웅!

금강야차마공이 완전하게 개방되며 전신에 남은 충격을 일거에 날렸다.

그가 두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것, 바로 연성한 마공의 수준이었다.

거기에 반쪽이지만 사령단까지 취한 그의 내공량은 오히려 두 사람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다.

파아악!

이천상이 회복되는 그때, 귀창이 움직였다.

율적산의 기습이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이천상을 날려 버리고 자세를 다시 잡는 그 순간을 노리고 달려드는데, 어느새 목봉이 꿈틀거리며 그의 이마를 향하고 있었다.

파삭!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단숨에 상체를 수그려 피했지만 날카로운 봉첨에 등 쪽 의복이 걸려 찢어졌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율적산이 땅을 굴렀다.

팔꿈치 공격에 맞은 이천상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그의 상체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그 일격이 어찌나 막강했는지, 율적산조차 충격을 분산하지 못하고 땅을 굴러야 했다. 실제로 온 힘을 다한 일격을 정확하게 빈틈을 노려 쑤셔 박았으니, 몇 단계 높은 고수라도 충격을 아니 받을 수가 없다.

문제는 귀창이었다.

전력을 다한 일격은 반드시 틈을 보이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귀창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끝이다.”

귀창의 목봉이 순간 휘었다.

벼락처럼 빠르지만, 유연함도 대단했다. 딱딱한 목봉이 뱀처럼 휘며 이천상의 가슴을 노렸다.

그때, 이천상의 왼 주먹에서 황금빛 마기가 원형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귀창의 눈이 커졌다.

쾅!

또 한 번 울려 퍼지는 폭음.

율적산의 몸을 날려 버린 일격에서 난 폭음과 비슷한 크기였지만, 소리의 질이 달랐다.

푸스스!

한 걸음 뒤로 물러난 귀창의 눈이 목봉의 끝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목봉 첨단부 끝이 살짝 갈라져 있었다.

‘……!’

강력한 마기로 보호받던 목봉. 비록 조금이지만, 목봉이 갈라졌다는 건 이천상의 공격력이 귀창의 마공력을 뚫을 정도로 강렬했다는 뜻이었다.

귀창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주르륵.

이천상의 입에서 실낱같은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귀창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이중발경(二重發勁)?!’

율적산을 날리는 순간 이미 후속타를 상정하고 주먹으로 경력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귀창이 공격한 그때, 기다렸다는 듯 마주쳐서 충격을 상쇄하였다.

귀창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중발경, 하라고 한다면 자신도 못 할 것은 없다. 율적산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 초절정고수 정도의 깨달음이라면 모를까, 자칫 잘못하다가는 두 갈래로 나뉜 마기가 엉켜서 경력을 발산하기도 전에 혈도가 찢어지거나, 심할 경우 단전까지 기가 역류한다.

발경을 만든 기가 단전까지 역류하면 단전이 파괴될 것이고, 경력을 어떻게든 해소한다 해도 온몸의 기가 뒤집혀 주화입마(走火入魔)까지 들 수 있다.

목숨이 오가는 실전은 아니더라도 순간순간이 긴박한 이런 비무에서 이중발경을 쓰다니?!

귀창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뭘 그렇게 넋 놓고 있어!”

터어엉!

탄력 있는 보법으로 거리를 좁힌 율적산이 귀창에게 달려들었다.

일격을 맞았지만, 그걸로 전투 불능이 되진 않는다. 율적산의 몸은 연성한 무공 특성상 귀창보다도 내구도가 높았다.

당황한 귀창이 목봉을 휘둘렀다.

퍼퍼퍼퍼펑!

피를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슬슬 흥이 나기 시작한 것일까.

율적산의 권법에 강력한 발경이 실리고 있었다. 살수를 펼치는 건 아니지만 본신의 힘을 전부 다 끄집어내는 것이다.

막강한 연타를 어찌어찌 막아 낸 귀창의 눈에도 결심의 빛이 어렸다.

‘그렇다면.’

퍼어어억!

빗자루를 휘두르듯 허공을 쓸어 간 목봉이 율적산의 주먹을 튕겨 냈다.

‘나 역시 제대로!’

그때였다.

어느새 흔들리는 율적산에게 접근한 이천상이 두 다리로 그의 오른 다리를 휘감았다. 마치 전도(剪刀: 가위)처럼 율적산의 하단을 잡아 봉쇄한 것이다.

순간 이천상의 눈과 귀창의 눈이 마주쳤다.

귀창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고, 율적산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떠올랐다.

“자, 잠깐!”

“어딜!”

번쩍!

목봉이 벼락같은 기세로 율적산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퍼어어엉!

“컥!”

허공으로 날아간 율적산.

타격 순간 다리를 뺀 이천상이 귀창에게 달려들었다.

목봉을 회수한 귀창이 소리쳤다.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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