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1화. 죽음의 전령 (5)
“……!!”
삼파전.
누가 누굴 노릴지 모르는, 과격하기 그지없는 비무였다. 섣불리 한 사람을 공격하려 할 수가 없다. 남은 한 사람이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의 움직임에 머뭇거림은 보이지 않았다.
“가, 강하다.”
어느 야차의 감탄 어린 혼잣말은 이곳에 모인 모든 야차의 심정을 대변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각자의 판단력이 발군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적이 되고, 또 어느 순간에는 합심하여 한 명을 몰아친다.
일대일 비무보다 훨씬 더 예측하기 어려운 승부사들의 겨룸이다. 게다가 구사하는 무공들의 특색도 분명하니 그야말로 보는 재미가 대단했다.
“엄청나다…….”
이각의 선임 조장, 설이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미리 짠 것도 아닌데 어떻게?”
옆에 선 삼각의 선임 조장 곡헌이 답했다.
“미리 짠 게 아니라서 싸움이 가능한 거다.”
“네?”
같은 선임 조장이지만 설이전은 감히 곡헌에게 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위는 같아도 출신과 무력의 차이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곡헌이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삼파전이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거지.”
“누가 말인가요?”
“누구겠나? 일 조장이지.”
설이전의 눈빛이 묘해졌다.
곡헌은 일각의 각주인 이천상을 아직도 일 조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대단한 거 아닌가요? 자신보다 실력 좋은 이들 안에서도 버티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판을 조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설이전 역시 곡헌보다 하수라지만, 무력은 이각에서 수위를 다툰다. 한 수 차이가 크다고 해도 지닌 안목은 누구 못지않게 출중하다는 말이었다.
곡헌이 고개를 저었다.
“일대일 상황이었으면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끝났을 것이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나니까.”
“…….”
“그나마 눈치가 빠르고 머리를 쓸 줄 아니까 버티는 거지.”
눈치가 빠르고 똑똑하다는 건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곡헌의 어조가 묘했다. 딱히 티는 내지 않지만, 이천상을 높게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게 없었다. 진마대 조장 출신인 자신은 선임 조장인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하수가 각주가 되었다. 기분이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설이전이 웃으며 연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설프게 강한 것보다야 똑똑한 게 낫죠.”
“물론 그렇지.”
그렇다고 대답은 했지만, 역시나 이천상에 대한 호의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설프네.’
설이전이 다시 비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퍼어어억!
살벌한 타격음과 함께 이천상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귀창의 눈이 흔들렸다.
‘막았다?!’
일섬(一閃)으로 내지른 봉격에 진각까지 섞어서 발경을 구사했다.
창이 아닌 목봉이라지만, 바위도 쪼갤 만큼의 힘을 담았다. 한데도 허공에 떠오른 이천상의 눈빛은 여전히 무심했다.
‘손!’
이천상의 손바닥은 피범벅이었다. 회전하는 목봉에 실린 경력을 다 상쇄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 정도로 끝난 게 더 대단했다. 진심으로 쓰러트릴 작정을 하고 내지른 일격이었기 때문이다.
“자, 끝내자!”
이천상 덕분에 귀창에게 크게 한 방 먹은 율적산이 자세를 낮추었다. 이천상이 떨어지는 지점에서 마지막 일격을 가할 심산이었다.
그때였다.
터어엉!
하강하는 이천상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빨라졌다.
율적산의 눈이 흔들렸다. 딱 떨어지는 지점, 그 순간을 노리고 권격을 준비 중이었는데, 어느새 이천상의 몸이 타점(打點)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준비한 일격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율적산이 급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엉!
귀창의 공격에 육박하는 파괴력이었다. 관통력으로는 귀창이, 충격으로는 율적산의 주먹이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 막강한 권풍(拳風)이 이천상의 소매를 잔뜩 뜯어 놓고 날아갔다. 정작 이천상의 몸에 격중하진 않은 것이다.
파바박!
율적산은 또 한 번 놀랐다.
내친 주먹을 회수하고 동작 전환을 가하려는데, 이천상의 몸이 이미 우측방으로 돌아서 있었던 것이다.
‘뭐야?!’
자신보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그런데도 놓쳤다.
율적산의 반사 신경이 느린 게 아니었다. 엇박자를 두고 들어간 이천상의 보법이 율적산의 반사신경을 헝클어트렸다.
‘옆구리!’
아무리 그래도 율적산은 이천상보다 강했다. 자세, 위치만 봐도 어딜 노릴지 알 수 있었다.
율적산의 마기가 벼락처럼 움직이며 옆구리를 방비했다.
그때였다.
쿠웅!
“억!”
율적산의 몸이 비틀거리며 옆으로 밀려 나갔다.
‘밀어?!’
옆구리를 노린 게 아니라, 몸 전체를 날려 와서 밀쳐 버렸다.
‘이런 젠장!’
예상치 못한 일격에 당황할 새가 없었다. 이미 비슷한 술수에 한 번 당해 보지 않았던가.
율적산이 재빠르게 몸을 돌려 주먹을 휘둘렀다. 귀창의 공격에 대비하려는 속셈이었다.
파아아앙!
율적산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의 큼직한 주먹에 맞은 목봉이 땅으로 튕겨 나가며 귀창의 균형을 미세하게 무너트렸다.
율적산의 눈이 번쩍였다.
파아악!
순간적인 돌진력 하나만큼은 귀창보다도 빠른 그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가 연달아 팔권(八拳)을 휘둘렀다.
파파파파파팡!
쏟아지는 주먹이 공기를 터트리며 귀창에게 날아갔다. 재빨리 자세를 잡아 목봉으로 막았지만, 창졸간의 방어로는 그 강맹한 위력을 다 상쇄할 수가 없었다.
귀창이 답답한 신음을 내며 물러날 때.
‘온다.’
율적산은 등 뒤에서 접근하는 이천상의 존재를 느꼈다.
‘그대로 박살을 내 주마!’
터엉!
앞발로 강하게 힘을 끌어낸 율적산이 엄청난 탄력으로 상반신을 돌려 팔꿈치를 날렸다.
투우웅!
율적산의 눈이 흔들렸다.
이천상은 율적산의 공격이 들어가기도 전에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뭐야?!’
경이적인 판단력이었다.
힘에서도, 속도에서도, 내공의 질에서도 분명하게 밀리는 놈인데, 내지른 공격을 맞추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
그뿐 아니라 놈의 공격을 막는 것도 힘들었다. 특별히 어떤 술수를 쓰는 것이 아닌데도 공방에서 틈을 보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파악!
대담하기 그지없는 발놀림이었다.
율적산의 어깨를 밟고 쏘아진 이천상이 물러나는 귀창을 향해 금강마권(金剛魔拳)을 펼쳤다.
율적산의 힘을 해소하지 못한 귀창은, 뒤이어 날아온 이천상의 공격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퍼엉!
귀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응에는 실패했지만, 기본 실력 차가 있다. 내력의 방패만으로 대부분의 충격을 해소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이천상의 권력(拳力)은 방패를 뚫고 들어와 내부까지 뒤흔들었다.
“쿨럭!”
기어이 귀창의 입에서도 핏물이 흘러나왔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동시에 이천상이 빠르게 몸을 회전하며 또다시 금강마권을 구사했다. 율적산의 공격이 이어질 것이라 예측해서였다.
정답이었다. 율적산은 이천상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천상의 주먹은 율적산의 갈비뼈를, 율적산의 주먹은 이천상의 빗장뼈를 노렸다.
그때였다.
“그만!”
훅!
이천상의 머리카락이 뒤로 확 밀려 나갔다.
툭.
율적산의 옆구리에 이천상의 주먹이 닿았다.
힘은 풀었지만 율적산과 달리 이천상의 주먹은 상대의 몸에 닿았다. 힘의 갈무리에 있어서는 아직 율적산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후욱.”
율적산과 달리 이천상은 숨을 골라야 했다. 폭발적인 움직임 때문에 호흡이 흔들린 탓이었다.
“비무는 거기까지 하도록 한다.”
양백호의 말에 세 부관이 자세를 풀었다.
“우아아아아!!”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였다. 연무장 주변에 모인 야차들 모두가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끊이지 않는 뜨거운 함성 속에서 율적산이 물었다.
“이천상이라고 했나?”
“그렇소.”
이천상의 말투가 바뀌었다.
상대를 만만히 봐서가 아니었다. 이 정도 역량을 보여 주었으니, 부관으로서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였다.
율적산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체가 뭔가? 내 생전에 이런 싸움은 처음이었네.”
“그렇소?”
“정말 인상적이었어. 까딱 잘못했다간 망신을 당할 뻔했구먼.”
그때, 귀창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할 뻔한 게 아니라 이미 당했지.”
“자네는 괜찮나?”
“안 괜찮아.”
귀창이 배를 쓰다듬었다. 흔들린 내장을 마기로 제어하여 내상이 심화되는 것을 막았지만, 입은 충격을 없애 버릴 수는 없었다.
“놀라운 무공이었다. 솔직히, 근근이 버티기에만 급급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부족하오.”
“당연히 부족하지. 그 부족한 실력으로 우리를 고전하게 했으니 대단한 거다.”
율적산이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그 싸움법은 뭔가? 이상하게 자꾸 박자를 놓치게 되었는데 말이야.”
“싸움법이랄 건 없소. 그냥 맞지 않기 위해, 공격이 들어갈 수 있도록 머리를 굴렸을 뿐이오.”
“다음 동작을 훤히 예측하고 있었어. 머리를 굴린다고 다 가능한 일이 아니야. 그 정도면 거의 예지력(豫知力)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더군.”
“예지력도 뭣도 아니오. 그냥 잔머리에 불과하오.”
이천상 입장에서는 진심이었지만, 두 사람은 그의 그러한 태도를 겸손과 선배에 대한 인정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율적산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참 마음에 드는 후배인걸? 그렇지 않나?”
귀창이 고개를 돌렸다.
“발목 잡을 일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귀창식의 호평이었다.
그렇게, 새로 임명된 세 부관의 비무는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 * *
그날 저녁.
양백호의 주도 아래, 네 사람은 술자리를 가졌다.
장소는 사령관사였다. 괜히 밖으로 나가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불편하게 마시는 것보다는 조촐하게 한잔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율적산 빼고.
“오늘 고생들 했네.”
세 사람에게 잔을 따라 준 양백호가 웃으며 말했다.
“적산과 귀창, 두 사람 모두 실력이 조금 녹슬었더구먼. 아무래도 실전의 부재 때문인가?”
율적산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습니까?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싸우자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수련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경지는 상승했더군. 하지만 더 예리한 칼을 가지고 있다 하여 싸움에서 이기는 건 아니야. 앞으로 고생 좀 하겠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귀창이 물었다.
“내일은 휴일이고, 모레부터 훈련에 들어갑니까?”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자네들을 불렀네.”
양백호가 집무실 탁자에서 문서 한 장을 가져왔다.
“돌아가면서 읽어 보게.”
세 사람이 문서를 읽었다.
귀창의 눈이 번뜩였다.
“벌써 임무입니까?”
양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야차들은 하나가 되지 못했네. 그러나 이곳에 오기 전에도 밥값은 하는 녀석들이었어. 어려운 상대라면 모를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을 듯하네.”
그때였다.
“복건성 연성(連城)…….”
세 사람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가?”
“이 임무 대상, 복건성에 있는 구화산 인근에 있지 않습니까?”
양백호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나?”
“양부와 거래했던 상단 중 하나입니다.”
“……뭐?”
이천상의 눈이 빛났다.
“나름의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