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3화. 죽음의 전령 (7)
투웅!
“쿨럭!”
빈틈을 쑤시고 들어오는 장(掌)에 기혈이 뒤흔들렸다.
절대 가볍지는 않다. 하지만 충격이 강하냐고 한다면, 딱히 그렇다고도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양건은 피 섞인 기침을 토해 내고 있었다.
“누누이 말했다. 팔을 더 조이라고.”
양건이 입을 닦고 일어났다.
내기가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이번 일격 하나만 놓고 보자면 별 대단한 게 없었지만, 문제는 축적된 내상이었다.
내공을 연마한 고수들은 내상에 대한 대처가 빠르다. 기를 잘 다룰수록 의원의 치료를 받는 것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자가 치유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명확하다. 일정 수준의 내상이라면 모르되, 축적되어 고여 버린 내상은 극한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가 아니라면 무조건 의료적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지금 양건이 그러했다. 매일 마공으로 내상을 치료하고 복구하려 했지만, 채 낫지 못하고 누적된 내상 탓에 하루하루 피로까지 쌓여 갔다.
“다시.”
스르륵.
낮아진 자세, 상대를 노려보는 양건의 눈빛이 매섭다.
양건과 마주한 곡헌의 눈이 서늘해졌다.
“이번에도 다섯 합을 넘기지 못하면 재미없어.”
파아악!
달려드는 양건의 신형이 순간 두 개로 분리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놀라운 보법이었다. 길쭉하고 탄력 좋은 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속도감, 내공이 강하다고 이런 움직임이 나오진 않는다.
파바박!
두 사람의 팔뚝이 부딪치며 살벌한 소리를 냈다.
오기인지, 이제야 작정한 건지 양건의 팔에 가득 담긴 힘은 이제껏 본 적 없는 굴강함으로 가득했다.
곡헌의 눈이 흔들렸다.
제 팔을 쳐 내고 오히려 지근거리까지 들어오는 양건의 눈빛이 환상처럼 머리를 헤집었다.
빠각!
무자비한 타격음과 함께 양건이 일 장 거리를 굴렀다.
“우웨엑!”
심상치 않은 토혈이었다. 낫지 않은 내상, 뚫린 혈도까지 침범한 탁기가 모이니 피가 검었다.
색의 구분이 힘든 밤중인데도 양건이 토해 낸 핏물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어떻게든 잡고 있던 내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나빠진 것이다.
곡헌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누가 첫 일격에 힘을 다 쏟아부으라 했나! 부족하기 짝이 없는 실력으로 이따위 모험을 해?!”
그다지 설득력 있는 말은 아니었다.
각법을 쓰지 않고 양팔로만 받아 주겠다 했다. 그리고 그것은 부족한 양건의 접근전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점진적인 훈련이라고 하였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법을 동원했으니 칭찬해도 모자람이 없을 터, 그런데도 곡헌은 도리어 양건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곡헌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너희도 잘 기억해 둬라! 본인보다 강한 자 앞에서 첫 일격에 전력을 쏟으면 반격당해 죽을 위험이 팔 할 이상이다! 저 멍청한 놈처럼 막무가내식으로 달려들어선 안 된다는 뜻이야! 알겠나?”
“예, 예!”
조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곡헌이 양건을 바라보았다.
“일어…… 뭐야? 그걸로 끝이냐?”
양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엉킨 기(氣)가 내장 곳곳을 파고들었다. 심화되는 내상을 어떻게든 막으려 드는 지금, 사소한 움직임마저도 치유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곡헌이라고 양건의 상태를 모를 리가 없었다. 불안정하게 새어 나오는 마기가 들쭉날쭉했다.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다.
헛기침을 두어 번 뱉은 곡헌이 양건에게 다가갔다.
“모자란 놈 같으니라고. 등을 돌려라. 내기를 안정시켜 주마.”
그때였다.
“그럴 필요 없다.”
순간 곡헌이 움찔했다. 내기를 다스리던 양건도 깜짝 놀랐다.
스르륵.
양건의 등 뒤에서 나타난 이천상의 모습은 그야말로 허깨비가 따로 없었다.
곡헌의 눈이 흔들렸다.
‘뭐야?’
언제 접근한 거지?
비무 중이었고 워낙 격양된 상태였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천상의 접근을 몰랐다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천상이 양건을 내려다보았다.
양건이 떨리는 눈으로 이천상을 올려다보았다.
“너……?”
“징계받고 싶나?”
“……?!”
“상관이다. 예를 표하라.”
양건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감정이 어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삼각 일 조 양건이 일각주님을 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천상이 곡헌을 바라보았다.
곡헌이 재차 헛기침하며 고개를 숙였다.
“일각주님을 뵙습니다.”
“일각주님을 뵙습니다!”
차례로 인사하는 조원들.
이천상이 양건의 등에 손을 대었다.
양건이 움찔했다.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두 눈에 놀라움과 완강한 거부감이 번갈아 담겼다.
이천상은 양건의 의지를 거부했다.
우우우우웅!
말릴 새가 없었다. 순식간에 명문혈로 진입한 이천상의 마기가 양건의 몸 곳곳을 파고들었다.
‘이런!’
수준 높은 마공을 구사하는 자라면 모를까, 이천상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오히려 다른 마공의 기운에 내상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컸다.
‘이 자식아! 날 죽일 셈…… 어?’
우우웅.
오장육부를 파고드는 탁기의 기세가 무섭게 사그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어하기 힘들었던 내공이 거짓말처럼 고개를 숙이고 단전으로 들어갔다.
‘뭐, 뭐지?’
이천상의 굴강한 마기는, 놀랍게도 양건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순도 높은 기질을 자랑했다.
혈도 하나를 지나가면 그 주변의 상처를 모조리 바로잡는다. 마기 자체가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아무 저항감 없는 치료가 되는 것이다.
‘역시 되는군.’
이천상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허필에게 점혈법을 배우며 타인의 내부를 망가트리는 법도, 도움을 주는 법도 배웠다. 아직 기초적인 수법에 불과하지만 입은 내상을 다독이는 정도는 가능했다.
스르륵.
손을 뗀 이천상이 말했다.
“이 이상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양건이 착잡한 눈으로 이천상을 올려다보았다.
이천상은 더 이상 양건을 보지 않았다.
“삼각 일 조장.”
“말씀하십시오.”
“설명이 필요하다.”
곡헌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조장님께서 제 수련을 봐주고 계셨습니다.”
침착한 어조였으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어느 정도 바로잡혔지만, 아직 내상이 주는 고통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양건은 고통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별일 아닙니다. 말 그대로 수련입니다.”
왜일까?
어두운 밤, 시린 달빛과 별빛을 등진 이천상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 유독 형형해 보였다.
곡헌이 담담하게 말했다.
“종합 훈련이 끝난 뒤의 개인 훈련은 규율 위반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말의 속도가 꽤 빨랐다. 여유롭다고 보기 어려운 말투였다.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양건.”
“예.”
“너에게 한 질문이 아니다.”
“예?”
“주제넘게 나서지 말아라.”
양건의 얼굴이 확 굳었다.
이천상이 곡헌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상황을 설명하라 했지, 본부의 규율에 대해 말하라 하진 않았다.”
“…….”
“설명을 바란다.”
곡헌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이천상은 상관이었다.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답은 해야 했다.
“조원 양건의 무공이 저희 조와 유독 다릅니다. 저희 모두가 근접전 위주의 무공을 구사하는 데 비해, 저 녀석은 그러지 못합니다.”
이천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곡헌의 표정이 풀렸다.
“진법 훈련을 할 때마다 자꾸만 튀고 있었지요. 지금까지는 잘 따라가고 있지만, 다른 조에 비해 움직임이 늦습니다. 바로 저 녀석의 무공 특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저 녀석 하나 때문에 모두의 무공을 바꿀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저 녀석 하나가 바뀌면 저희 조도 뒤처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야밤에 수련했나.”
“그렇습니다. 문제라도 됩니까?”
여전히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말투는 그렇지 못했다. 곡헌의 말투는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이천상은 말없이 곡헌을 바라보았다.
당당한 표정으로 이천상을 보던 곡헌.
‘……?’
언제부터였을까?
한 번 깜빡이지도 않는 이천상의 눈은 점점 더 시퍼런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마주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걸 넘어, 자꾸만 위축되게 하는 그 눈빛에 곡헌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었다.
후우웅.
바람이 불었다.
침묵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천상의 분위기는 평범한 사람과 달랐다.
강자라서 다른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 본연의 기세가 다르다. 무감정한 퍼런 안광은 시시각각 곡헌을 압박하고, 미세한 흔들림조차 없는 자세는 마치 혼자만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주르륵.
곡헌의 이마에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존심 때문에 시선을 돌리지 않았지만, 자꾸만 고개가 수그러지는 걸 느낀다.
‘뭔 놈의 눈깔이 저렇게…….’
우우웅.
답답한 심정으로 이천상을 올려다보던 양건의 얼굴이 점점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뭐지?’
우웅. 우우웅.
이천상의 어깨 위로 황금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기(魔氣)였다. 하지만 그 마기는 이전의 이천상이 풍기던 마기와 달랐다.
‘밀도가 올라갔나?’
그 정도가 아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황금빛 마기의 밀도가 올라간 것도 모자라, 마기의 질 자체가 점점 상승하고 있었다.
양건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럴 수가!’
마기의 질이 상승한다는 것은 곧 무공의 경지가 상승한다는 뜻과 같다.
놀라운 것은, 어느 한순간의 깨달음이나 신공의 성취가 없이 시시각각 마기의 질이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다. 마공을 처음 접한 마인이라면 모르되, 일정 경지를 이룬 마인은 정종의 무공을 익힌 정파 무림인들과 다르지 않은 발전 궤도를 그린다.
설령 점진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한들, 이리 빠르게 마기의 질이 상승하는 경우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건이 곡헌과 조원들을 바라보았다.
‘……!!’
양건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모르고 있음을.
이천상의 기묘한 분위기와 인간 같지 않은 눈빛에 압도당한 그들은, 현재 이천상의 마기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넌 도대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잘 들어라.”
어느새 이천상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마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우둑!
한옆의 나뭇가지를 부러트린 이천상이 바닥에 몇 가지 도형을 그렸다.
“이것이 일각의 군랑진(群狼陣), 여기가 이각의 대호진(大虎陣), 여기가 삼각의 혈응진(血鷹陣)이다.”
“……?”
“세 개의 진이 모여 삼수대진(三獸大陣)을 형성한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변수가 많다. 우리가 현재 연마하고 있는 것은 평야 지대를 상정한 것일 뿐, 산악 지형과 시가지전(市街地戰)에선 세 개의 각이 군랑, 대호, 혈응 모두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
“물론 그것은 나중 문제지만, 지금 당장만 봐도 혈응진이 제대로 발동되고 있지 않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것은 어느 한 조의 문제가 아니라 삼각 전체의 문제다. 이유를 아나?”
“……?”
“근접으로 접근하지 말고 거리를 둔 채 기습적인 공격과 회피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혈응진의 진짜 역할이 그것이다. 돌격이 아닌 중장거리에서의 보조 후 기습적인 일격으로 상대 진형의 중앙부까지 돌파하는 것. 그것이 혈응진의 요체다.”
“……!”
“삼각의 각주로 창술의 달인인 귀창 부관이 배정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네 말마따나 접근전에 용이했다면 율적산 부관이 삼각으로 배정되었겠지.”
곡헌이 입술을 깨물었다.
“또한, 그 둘의 장기가 어떠하든 결국 모두가 군랑, 대호, 혈응을 배워야 하기에 미래를 생각하면 큰 의미는 없다. 그러나 네 말대로 현재를 위해선 양건을 고치는 게 아니라 너희 전체가 양건처럼 바뀌어야 한다.”
이천상이 나뭇가지를 아무렇게나 던졌다.
“질문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