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 외전-64화 (696/774)

외전 64화. 죽음의 전령 (8)

이천상의 설명은 간결하고도 깔끔했다.

자세한 내용 대부분을 넘어가면서도, 실제 진법을 연마한 무사들이라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내용만 전달한다.

이것은 큰 변화였다. 타인을 머리로만 이해했지,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이천상은 타인의 몰지각함 앞에 당황한 적이 많았다.

지금의 그는 달랐다. 자신이 이해한 것을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보 전달의 난이도를 조정할 줄 알았다.

“질문이 없다는 건 내 말을 알아들었다고 이해해도 괜찮다는 뜻인가?”

곡헌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면 멍청이가 되는 것이요, 이해했다고 말하면 그들 모두가 양건처럼 바뀌어야 한다.

전자를 택하든 후자를 택하든, 그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천상의 존재 자체를 좋지 않게 본 그였다. 출신도 불분명한 놈이 자신과 같은 조장이 된 것도 떨떠름한데, 단 며칠 만에 일각의 각주가 되어 버렸다. 신교 최고의 무력 부대, 육대 출신 조장인 그에게는 충분히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었다.

“대답이 없군.”

“…….”

“다시 한번 설명해 주지.”

곡헌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이해했습니다.”

“그런가.”

“이해는 했습니다만, 각주님의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무슨 뜻인지 설명해라.”

곡헌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각주님의 설명은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웠습니다만, 정말 혈응진의 목적이 그러하다는 걸 누가 알겠습니까?”

이천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는 건가?”

“그게 아닙니다. 각주님 말마따나 혈응진이 그러한 진법이었다면, 지금까지 왜 교정이 되지 않은 겁니까? 설마 저희 각주님이 당신보다 모자라서 교정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실 겁니까?”

“그렇다.”

“……예?”

“그의 무공은 나를 넘어섰지만, 진법에 대한 지식만큼은 나보다 모자라다.”

곡헌의 입이 딱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조원들도, 양건 역시도 놀란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삼각주 귀창 역시 현재의 혈응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연히 령주님도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진형을 유지하는 것은 너를 비롯한 많은 조원이 진법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따르기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

“삼수대진은 보기 드문 유진(柔陣)이다. 수장들만이 아닌 조원 하나하나가 모두 진법에 능통해야 한다. 다행히도 삼수대진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에, 차후 훈련 일정은 각자가 이해하기 쉬운 세밀한 수련과 이론 강의로 짜여 있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다른 조원은 몰라도 조장인 넌, 이 혈응진을 잘 이해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 야밤에 조원 하나를 독하게 뜯어고치려 할 필요가 없었다.”

곡헌의 얼굴이 붉어졌다.

상대는 지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모욕을 주고 있었다.

“지금 저를…….”

“너는 조장 실격이다.”

“……뭐라 하셨습니까?”

“조원을 가르치고 싶었다 하더라도 조원의 상태를 보고 완급 조절을 해야 했다. 너에게 어떤 위대한 목적이 있었다고 한들 조원에게 중상을 입혔다. 조원 하나가 이 상태인데 차후 훈련에 발전된 모습을 보일 수 있겠나?”

“…….”

“진정 이러한 방향이 너희 조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곡헌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설마 각주님은 내가 단순히 조원을 괴롭히고 싶어서 이 야밤에 이 짓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조장직을 반납해라.”

“뭐, 뭐라고요?!”

“진정 이 행위가 올바르다고 생각했다면 조장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목적이 아니었다면 단순한 폭행 사태에 불과한 것이니 이 또한 조장으로서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

푸스스스.

곡헌의 발치에서 은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도 모르게 발산되는 마기였다. 분노와 살의로 들끓는 마음이 마공을 자극했고, 자극된 마공이 살벌한 마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양건이 놀라서 외쳤다.

“조장님!”

“이해할 수가 없군요.”

곡헌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각주님의 말씀이 다 옳다 하더라도 이건 지나친 참견이 아닙니까?”

“참견.”

“그렇습니다. 본각의 각주님이라면 모를까, 다른 소속의 각주님이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란 겁니다.”

“진정 그렇게 생각하나?”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조장직은 물론 다른 어떤 단체의 일원도 될 수 없다.”

“……?!”

“조원이기 전에, 상관이기 전에 전우다. 전우 하나의 목숨은 내 목숨 하나와 다르지 않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우우웅!

이천상의 눈빛이 다시 퍼렇게 변했다.

분노로 불타오르던 곡헌의 얼굴이 재차 경직되었다. 이천상의 눈빛이 바뀌자 순간적으로 온몸이 긴장 상태로 돌입한 것이다.

“진마대 조장 출신이라고 들었다.”

“……?”

“거기서도 조원을 이따위로 다루었나?”

화르르!

순간 곡헌의 몸에서 불같은 살기가 타올랐다.

조금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렬한 살의였다. 진마대 조장급 무력은 실로 절정고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순식간에 야산을 뒤덮을 정도로 굉장한 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양건이 외쳤다.

“조장님!”

“닥쳐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야산을 뒤흔들었다.

곡헌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감히 진마대를 욕보인단 말이오?”

“너 하나의 잘못을 겨냥한 것이 진마대를 욕보인 게 되는 것인가?”

“그 진마대의 조장이 나였다! 진마대는 본래 그러하다!”

“여긴 야차사령부다.”

“……!”

“진마대 분위기가 그러하다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라.”

이천상이 양건에게 말했다.

“의방으로 가라. 하루아침에 나을 만한 내상이 아니다.”

곡헌이 외쳤다.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그놈은 내 조원이야!”

“너는 진마대의 조장이다. 그리고 양건은 삼각의 조원이다.”

이천상의 푸른 눈빛이 점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넌 야차가 아니다.”

“이 개자식이!”

욕설이 튀어나올 정도로 화가 났지만, 곡헌은 이천상에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최후의 선이었다. 이놈 저놈 욕까지는 할 수 있어도 먼저 손을 쓸 수는 없다.

말하자면 본능이었다. 상관과 마찰을 빚으면 강등, 혹은 퇴출로 마무리가 되지만 손까지 섞으면 사태가 극단적으로 변한다.

물론, 상황은 이미 넘치게 심각했다. 오로지 곡헌만이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리라.

손을 쓰고 싶지만, 건드릴 수는 없는 상대.

곡헌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투마장 출신이라더니 자격지심이라도 있는 건가? 천하디천한 곳에서 운 좋게 나와 각주까지 되더니 세상이 우습게 보이더냐?!”

사아아악!

분노 가득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그 마기는 이천상이 아닌 양건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아직 내상이 바로잡히지 않은 몸인데도 발산하는 마기가 상당히 강렬했다.

“말조심하십시오, 조장님.”

곡헌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양건을 바라보았다.

양건이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이분은 일각의 각주이자 사령부의 부관으로, 우리 모두의 상관입니다. 지금 그 발언만으로도 중죄입니다!”

“너, 이 병아리만도 못한 놈이 누구에게 감히!”

그때, 이천상이 손을 들었다.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손에 마기가 어려 있었다. 과열된 공기를 차갑게 식힐 정도로 농도 짙은 마기였다.

“그만.”

“…….”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

이천상이 곡헌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너의 언행, 그리고 이 사태는 곧바로 령주님께 보고될 것이다.”

“……!!”

제아무리 분노로 머리가 뜨거워졌다지만, 령주라는 단어 앞에서까지 그 기세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분노한 표정은 그대로이되, 곡헌의 눈빛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뭐가 어찌 되었든 막 나간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양건, 의방으로 가라. 상관으로서의 명령이다.”

그때, 곡헌이 말했다.

“권력이 좋긴 좋군. 그래도 천한 투마 출신이라 일러바치는 것밖에 못 하겠나?”

“…….”

“우습구나. 너 같은 놈이 어찌 각주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령주님께 뇌물이라도 바쳤느냐?”

그때였다.

“깨달음이라는 뇌물을 바쳤지.”

뜨겁게 불타올랐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저벅저벅.

바스러지는 나뭇잎 소리가 무척이나 살벌하게 들렸다.

좌측 숲에서 양백호와 율적산, 그리고 귀창이 나타났다.

곡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선두에 서서 걸어오는 양백호의 얼굴은 차디찬 위엄으로 가득했다. 야차들을 가르칠 때의 열정적인 표정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율적산의 얼굴은 떨떠름했고 귀창의 표정은 심란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천상이 고개를 숙였다.

“령주님을 뵙습니다.”

양건과 조원들이 무릎을 꿇었다.

“령주님을 뵙습니다!”

양백호는 그만 일어나라는, 그다운 말 한마디도 뱉지 않았다.

“일각주.”

“예.”

“중간부터 듣기는 했네. 너무 시끄러워서 못 들을 수가 없더군.”

“…….”

“대충 무슨 내용인지 짐작은 가네만, 다시 한번 설명하게.”

“알겠습니다.”

곡헌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령주님!”

훅! 퍼어억!

“컥!”

창대로 복부를 맞은 곡헌이 답답한 신음과 함께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를 쓰러트린 것은 귀창이었다. 급소를 친 데다 막강한 발경까지 담은 일격이다. 곡헌은 감히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이천상은 그간의 상황에 대해 짧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굳이 과장할 필요도 없는 내용이었거니와, 애초에 과장할 성격도 못 되었다.

이천상의 설명을 들은 양백호가 조원들과 양건에게 물었다.

“일각주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너희가 증언할 수 있겠느냐?”

기실 증언까지도 필요치 않았다. 중간부터 들은 것만으로도 이천상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휘하 조원을 처리하는 데 공정함은 필수였다. 그렇지 않고선 억울한 희생자가 생길 수도 있다.

조원들은 겁에 질려 자신들이 본 것들을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령주까지 나타난 판이다. 거짓말을 했다간 그들 역시 처벌받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양백호가 한숨을 쉬었다.

“일각주.”

“예.”

“손을 쓰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네.”

곡헌은 적당히라는 걸 몰랐다. 각주로서 손을 써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천상이 손을 썼다면 삼각주인 귀창의 면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신경 쓸 필욘 없지만, 신경 써서 나쁜 것도 없다.

이천상이 무심한 눈으로 곡헌을 내려다보았다.

“힘 낭비입니다. 별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양백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삼각주는 삼각의 선임 조장을 묶어 창고에 두어라. 날이 밝으면 그 죄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명명백백 알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부들부들 떨면서도, 곡헌은 기어이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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