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5화. 죽음의 전령 (9)
양백호가 차가운 눈으로 곡헌을 내려다보았다.
“달리 할 말이 있더냐?”
지극히 냉랭한 음성이었다.
위엄 가득한 그 얼굴은 마주하는 이의 두려움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양백호의 엄한 얼굴 속에 드리워진 실망과 답답함을, 자책감과 서글픔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질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세상 어떤 조직이든 튀는 사람은 나오게 마련이다. 세상은 넓고도 넓어서, 평범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은 법이다.
대표적으로 이천상이 그러했다. 그는 신교, 아니 천하 전체를 뒤져 보아도 비슷한 부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괴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천상에 비하면 곡헌의 성격은 그다지 놀라운 것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이러한 행태는 신교에서도 적지 않은 마인들이 보여 주는 행동 양식에 가까웠다.
수뇌부부터 썩어 들어간 지금의 신교는 과거의 영광을 상실해 버리고야 말았다. 뇌물, 폐단, 악습은 당연했고 범죄를 저질러도 권력이 막강하거나 인맥이 좋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한 조직이 이렇게까지 멀쩡히 유지되고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쌓아 온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고, 진심으로 신교를 위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큰 것을 보다 보면 사소한 문제를 곧장 잊어버리기 마련이었다.
곡헌은 내무 생활이 가장 사납다는 진마대 조장 출신이었다.
그 나이에 조장 직위까지 올랐다는 건 지닌바 재능이 대단했다는 것이고, 그만큼 큰 노력을 기울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양백호가 곡헌을 기억했던 것도, 그에게 나름의 기대를 걸었던 부분도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곡헌은 뒤틀려 있었다. 아마 진마대의 많은 마인들도 비슷할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이었다. 상대를 박살 낼 수 있다면 상관에게도 칼을 뽑아 드는 것이 진마대원이다.
그래서 강했고, 그래서 고였다. 고였기 때문에 썩었고, 썩었기 때문에 미래가 밝지 못했다.
이천상은 곡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양백호는 이해했다.
곡헌의 이러한 모습은, 썩어 버린 신교의 일면이나 다름없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쉬어 버린 목소리를 짜내듯 말한다.
“하, 하지만 기회를 주십시오!”
귀창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죽일 놈! 어디서 그따위 말 같지도 않은 부탁을 하느냐!”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뭐라고?”
“저는 삼각의 조장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각주님만큼은 제 뒤를 받쳐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누구도 삼각을 무시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 말에 곡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진마대가 어떤 성격을 지닌 부대인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아아악!
귀창의 몸에서 한기가 뿜어졌다.
“령주님. 제게 이놈을 처단할 권리를 주십시오.”
무시무시한 살기에 곡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어떤 의미로는 참으로 강단 넘치는 성격이었다.
“저자 역시 저를 모욕하였습니다! 어찌 제게만 죄가 있다고 하십니까?”
“이놈!”
그때, 양백호가 손을 들었다.
귀창의 호흡이 격해졌다. 당장이라도 곡헌의 머리통을 날려 버릴 기세였다.
양백호가 곡헌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기회를 달라?”
“그, 그렇습니다.”
“너에게 무슨 기회를 달라는 것이냐?”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인내하였음을 참작해 주십시오. 진마대 소속이었다면 피를 봐도 처벌받지 않을 사안이었습니다!”
귀창과 율적산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심지어 그의 조원들 역시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곡헌을 바라보았다.
양백호의 얼굴에 점점 표정이 사라졌다.
“진마대 출신인 줄만 알았지, 아직도 진마대 소속인 줄은 몰랐구나.”
“그, 그런 말이 아닙니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끝내 참았던 분노를 터트린 양백호의 호통 소리는 야산을 넘어 사령부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났다.
곡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배포가 있다고 한들 상대는 혈마인 양백호였다. 진마대주조차 상대가 안 되는 강자의 분노 앞에 곡헌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곡헌은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스, 승부를 내고 싶습니다.”
“……뭐라?”
“새, 새 부대에 적응하지 못한 죄가 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인으로서 이대로 물러난다면 죽음보다도 더한 수치입니다!”
“네놈은 정녕, 네 죄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것이더냐?”
“압니다! 그러니 저자와 싸우게 해 주십시오!”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설령 안다고 한들, 달리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저자와 싸우겠습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하겠습니다! 다, 다만 제가 이기면, 사령부 퇴출 정도로 마무리해 주십시오!”
일부러 조용히 있었던 율적산도 분노하여 외쳤다.
“네놈이 감히 령주님께 거래를 하려 들어?!”
“나보다 약한 자를 모시는 마인의 심정을 아실 것 아닙니까!!”
악에 받쳐 내지른 말이지만, 순간 양백호와 율적산 그리고 귀창은 저도 모르게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곡헌과는 경우가 다르지만, 말만 놓고 보면 분명 이해 못 할 내용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말 그대로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곡헌은 이런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애초에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도 않았다.
이 상황을 자초한 것은 전부 본인 탓인데도 저런 말을 한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귀창이 냉정하게 말했다.
“짐승만도 못한 놈의 광담(狂談)입니다. 처벌하시지요.”
곡헌이 떨리는 눈으로 귀창을 올려다보았다.
귀창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령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진즉 백 조각을 내서 개 먹이로 주었을 것이다.”
그때였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놀라운 순간이었다.
이천상에게 의견을 구하는 양백호의 말에 귀창과 율적산이 깜짝 놀랐다.
“저 멍청하고 악랄하며, 경우도 없고 상식도 없는 놈의 부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
“별생각 없습니다.”
“별생각 없다?”
“그렇습니다.”
이런 순간에도 침착한 이천상의 무심함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애써 분노를 삭이는 게 아니라, 정말로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양백호가 담담하게 물었다.
“내가 저치의 부탁을 들어주면, 자네는 그에 응할 마음이 있는가?”
“저는 일각의 각주입니다.”
“음?”
“명령을 내려 주시면 행할 뿐입니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양백호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모두 물러나라. 자네들도.”
“령주님!”
“물러나라 하였네.”
순식간에 돌변하는 상황.
양백호의 말에 일 조의 조원들과 율적산, 귀창이 멀찍이 떨어졌다. 대체 령주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로.곡헌도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잘됐다는 듯 희희낙락하며 일어났다. 배가 뻐근했지만, 통증만 심할 뿐 내외상을 입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양백호가 고개를 저었다.
“감사할 것 없다. 처벌 권한을 일각주에게 주었을 뿐이니까.”
“……예?”
“이기지 못하면 일각주가 널 죽일 것이다.”
곡헌의 얼굴에 살기가 일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우우우우웅!
곡헌의 몸에서 강렬한 마기가 타올랐다.
양백호를 보던 이천상의 시선이 귀창에게 향했다.
귀창의 얼굴에 착잡함이 어렸다.
물끄러미 귀창을 보던 이천상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잠시 놀란 귀창은,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한 투마 놈이 어디로 눈을 돌리는 것이냐?”
이천상이 곡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곡헌이 사납게 웃었다. 쭉 찢어진 두 눈에 서린 살기가 점점 진해졌다.
“감히 나를 건드린 죄, 지옥에서 참회하…….”
화아아아악!!
순간 곡헌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양백호를 제외한 모두가 경악하여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화르르르륵!
황금빛 뜨거운 마기가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밟고 있던 낙엽들이 순식간에 불타올라 재가 되었다. 수십 수백 개의 불씨가 이천상의 몸을 호선으로 타고 오르더니, 이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명멸하는 금광(金光)은 마치 악귀를 밟고 선, 분노한 명왕(明王)의 후광과 같았다.
하지만 그 명왕은 모두가 아는 명왕과 달랐다.
야차(夜叉)와 나찰(羅刹)을 거느리는 금강야차, 부처의 설법을 듣길 좋아한다는 다문천의 귀에 속삭인 것은 악불(惡佛)의 교언이었다.
후광처럼 찬연히 빛나면서도 사납게 일렁이는 황금빛 불꽃은 무서운 마기로 꽉 차 있었다. 지금껏 이천상이 보여 준 적 없는, 이전의 그와는 수준이 다른 마기가 거기에 있었다.
양백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율적산과 귀창 또한 눈을 부릅뜨고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준비는 됐나?”
환상일까, 아니면 실재일까.
허연 입김 끝에 화르륵 불타오르는 금빛 연기가 마치 불을 토해 내는 것처럼 보인다.
“된 걸로 알겠다.”
투웅.
이천상이 가볍게 땅을 박찼다.
순간 곡헌은 거대한 화염의 해일이 다가오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그러나 살의만큼은 확실한.
마치 대자연의 재해를 보는 것과 같은 압도적인 기파.
“……으아아아아!!”
곡헌이 발악하듯 뛰어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이천상 역시 날아오는 주먹을 향해 똑같이 주먹을 휘둘렀다.
콰득!
결과는 참혹했다.
이천상의 일격에 맞은 곡헌의 주먹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뼈와 살점이 뭉개져 사방으로 튀어 나가고, 팔목과 팔꿈치가 부러져 기형적인 각도로 꺾였다.
곡헌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일격에 중상을 입은 것으로 모자라 상처로 침투한 마기가 순식간에 몸을 장악해 혈도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천상의 좌권이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였다.
곡헌은 느릿하게 다가오는 주먹을, 뻔히 보고도 피할 수가 없었다.
콰앙!
살벌한 굉음과 함께 곡헌의 몸이 날아갔다.
콰득! 우지끈!
나무 한 그루를 부러트린 곡헌이 하늘 높이 솟았다가 허무하게 처박혔다.
털썩!
땅에 떨어진 곡헌의 몸은, 아니 시신은 참혹했다.
척추까지 닿을 듯 움푹 들어간 가슴. 엄청난 권압(拳壓)에 갈비뼈가 살점을 뚫고 좌우로 튀어나와 까딱였다. 붉고 거대한 나비가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끔찍한 광경이었다. 현실에서 벌어진 일 같지 않았기에 기묘한 신비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스르르륵.
밤하늘마저 불태울 것 같던 황금빛 마기가 서서히 모습을 감추었다.
양백호를 제외한 모두가 참혹한 시신을 보며 침을 삼켰다. 즉사했음에도 고개를 까딱이는 곡헌의 모습은 기담, 아니 괴담의 한 장면 같았다.
“야차(夜叉)란 곧 귀신으로 추악하고 두려운 외형을 한 괴물이다.”
양백호의 담담한 목소리가 꿈결과도 같은 분위기를 삽시간에 현실로 되돌렸다.
“적에게 있어 우리는 죽음의 사령(使令)과 같다. 얼마든지 추악해질 수 있고, 얼마든지 공포스러워질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인간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을 만큼 잔혹해져야 하는 순간도 올 것이다.”
“…….”
“그러나 서로에게만큼은 누구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들에게 귀신이라고 손가락질받을지언정 서로를 인정하고 믿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가장 자유롭고도 부드러운 삼수대진을 가르친 것이다.”
양백호가 삼각 일 조원들을 바라보았다.
일 조원들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너희가 따르던 전(前) 조장은 귀신이 될 각오가 없었나 보다.”
“…….”
“너희는 각오가 되었느냐?”
“예, 예!”
조원들의 떠듬거리는 목소리는 공포로 질려 있었다.
양백호가 한숨을 쉬었다.
“이각주는 삼각 일 조원들과 함께 시신을 정리해 주게.”
“명을 받듭니다.”
“일각주와 삼각주는 나 좀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