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6화. 어두운 출정 (1)
세 사람이 사령관사로 들어왔다.
“앉게들.”
이천상과 귀창이 자리에 앉았다.
양백호는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느껴지나?”
“…….”
“야산에서의 일, 야차들이 동요하고 있네. 건물 밖으로 나온 녀석들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마 거의 모든 야차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겠지.”
양백호가 귀창을 보며 물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나?”
귀창이 눈을 감았다.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에 머리를 굴릴 힘도 없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자신이 담당하는 건물에서 말 같지도 않은 녀석이 튀어나왔다. 각주로 임명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관리하는 야차들도 이백 명이나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변명은 필요치 않았다.
“모른다고 끝날 일이 아닐세.”
“…….”
“어떤 일이 벌어져도 부대를 다독일 줄 알아야 해. 특히나 이 사태를 일으킨 죄인이 삼각에서 나왔으니, 더더욱 머리를 바쁘게 굴려야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말이었다.
깊게 심호흡한 귀창이 입을 열었다.
“놔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놔둔다?”
“그렇습니다.”
“이유는?”
“이 야밤에 일일이 찾아가 설명할 수도 없고, 쉬고 있는 녀석들을 다 불러내서 사건의 경위를 얘기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지?”
“모두가 한 몸이라지만, 야차들은 지쳤습니다. 이미 일이 마무리된 상황이니 내일 아침 모아서 얘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양백호가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일각주 생각은 어떤가?”
“삼각주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런가.”
“다만.”
“음?”
“사후 처리는 확실하게 해야 할 겁니다. 죽을 놈이 죽었을 뿐, 중요한 건 피해자에 대한 처우입니다.”
양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의견대로 처리하겠네.”
신교 내에서 딱딱한 원칙주의자로 소문이 난 양백호였지만, 실제로 그는 부하들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상관이었다.
존중해야 할 때는 하고, 끌고 갈 때는 간다. 권력에 미친 소인배들은 보지 못한, 양백호의 또 다른 능력이었다.
“삼각주.”
“예, 령주님.”
“자네의 상황을 이해하네. 누구라도 예측하기 힘들었을 사안이야. 그러나 삼각의 관리자로서 자네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하네.”
귀창이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삼각주 귀창의 월봉을 석 달 동안 반으로 삭감하겠네.”
마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돈을 벌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귀창의 능력을 생각하면 지금 받는 돈도 조금은 모자랄 수 있다. 거기에 석 달 동안 반으로 삭감한다고 하니 상당한 징계인 셈이다.
그러나 귀창의 생각은 달랐다.
“그것뿐입니까?”
조원도 아니고 조장 놈이 엄청난 사고를 쳤다. 월봉 삭감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걸로 끝나지 않네. 이번 임무가 끝난 후, 삼각 야차 전원을 이끌고 보름간 추가 수련을 잡겠네. 추가 수련 시간은 한 시진일세.”
귀창의 눈이 흔들렸다.
“령주님.”
“관리자인 자네가 받을 죄를 야차들이 함께 짊어진다고 생각하나?”
“…….”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네도 멀었네.”
귀창이 고개를 숙였다.
묵묵히 귀창을 보던 양백호가 말했다.
“삼각주는 이만 나가 보게.”
“예.”
인사를 올린 귀창이 말없이 집무실을 나갔다.
“후우.”
한숨을 쉰 양백호가 이천상의 맞은편에 앉았다.
“몸은 어떤가?”
“괜찮습니다.”
“괜찮겠지. 오히려 힘이 넘치겠지.”
양백호가 피식 웃었다.
“어떤가? 새로운 힘은?”
“예?”
이천상의 반응에 오히려 양백호가 놀랐다.
“모르고 있었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고 있었군. 자네답지 않게.”
“……?”
“지금 자네의 몸에서 들끓고 있는 그 강렬한 마기가, 이전과 같다고 생각하나?”
순간 움찔한 이천상이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
이천상은 꽤 놀랐다.
후우우웅.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오직 그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범람하는 물살처럼 강한 흐름을 만들어 내는 마기가 단전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 높은 질의, 더 많은 양의 마기였다. 게다가 단전 자체도 이전보다 삼 할은 더 커졌다.
‘언제?’
단전의 크기부터 단전 외벽의 두께, 그리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마기의 양적, 질적인 변화.
이 정도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었다. 둔한 사람도 즉시 알아챌 수 있을 만큼 크나큰 변화였다.
‘육 성의 마기가 아니다. 금강야차마공이 칠 성(七成)에 이르지 않고선 보일 수 없는…….’
그때였다.
번쩍!
이천상의 동공이 진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마기의 질이 상승했음을 깨닫고, 이 기질이 어느 단계에서부터 어울리는지를 인지한 순간.
바로 그 순간, 그의 금강야차마공이 무서운 기세로 칠 성에 도달했다.
화르르륵!
이천상의 몸 전체에서 퍼져 나간 금빛 마기가 집무실을 가득 메우다가 벼락처럼 사라져 버렸다.
“후우.”
가볍게 내쉬는 숨이 훨씬 더 경쾌했다.
들이쉬는 공기가 이전보다 배는 더 맑아진 것 같았다. 호흡만으로도 머리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양백호가 묘한 눈길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몸은 이미 도달했거늘, 의식이 그것을 쫓아가지 못했군.”
“…….”
“여하간 굉장한 마공이야. 그 마공, 교의 수뇌부들이 연성하는 마공과도 비벼 볼 수 있겠는걸.”
“그렇습니까.”
양백호는 그 무공을 어디에서 얻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화가 났나?”
“아닙니다.”
“지금 말고.”
“……?”
“그 조원, 자네와 친구가 아닌가.”
“맞습니다.”
“친구가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걸 보고 화가 났느냐 물었네.”
“그렇지 않…….”
대답하던 이천상은 순간 입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않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분명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화가 나는 게 어떤 건지, 분노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놈 아닌가.
한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야산에 올라 그들을 보고 양건의 내상을 가라앉히고.
그리고 곡헌과 대화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를 죽였을 때까지의 기억이 흐릿했다.
‘…….’
이천상은 당시의 상황을 하나하나 복기했다.
천천히, 한 땀 한 땀 떠올리자 장면들이 점차 선명해졌다.
‘……왜?’
하지만 이상했다.
복기한 기억 속에서의 자신은 이전의 자신과 조금 달랐다.
‘왜 굳이 그런 말을 했지.’
진법에 관한 얘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곡헌과의 기나긴 대화는 굳이 필요가 없었다.
곡헌의 죄는 분명했다. 길게 말할 것 없이, 그 즉시 제압하여 이송해 버리면 끝나는 문제였다.
한데도 왜 그리 많은 말을 입에 담았던 것인가?
다른 건 다 기억이 나는데, 그 이유만큼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특히 곡헌과의 싸움에서 뱉었던 말이 가장 이해가 되질 않았다.
- 준비가 됐나?
- 된 걸로 알겠다.
그 말을 왜 했지?
‘비무가 아니었는데.’
싸움이었다. 생사결이었다.
짐승이 적을 보고 으르렁대는 것은 상대를 위협하기 위함이다. 위협하는 이유는 물러나 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칫 중상을 입으면 생명이 위험해지므로 겁을 줘서 쫓아내 버리는 게 현명한 것이다.
작정하고 싸우려 드는 맹수는 이빨과 발톱부터 들이대는 법, 자신 역시도 그렇게 싸워 오지 않았나?
준비가 됐느냐고? 된 걸로 알겠다고?
그 발언들은 상대가 물러나 주기를 원해서 뱉은 말들이 아니었다. 굳이 할 말이 아니란 말이다.
멍하니 고민에 빠진 이천상을 보며 양백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일각주.”
“말씀하십시오.”
“오늘 고생이 많았네.”
퍼뜩 고민에서 벗어난 이천상이 양백호를 보았다.
양백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만 나가 보게. 가서 좀 쉬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양백호에게 인사를 한 이천상이 그대로 집무실을 나섰다.
“허어.”
의자에 등을 묻은 양백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놈 참, 별종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위험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고 있구나.’
양백호는 이천상의 급진적인 기질 상승의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욕망.’
신교 출신 마인들은 그 자신들이 익힌 마공에 대해 생각보다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군문과 정파 무림을 거쳐 신교까지 들어온 양백호는 무수히 많은 무공을 섭렵했고, 나아가 마공이 지닌 근본적인 특질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마(魔)는 곧 욕망이다.
잡티 하나 없는 순수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마(魔)는 성장한다.
물론 아무나 그런 것이 가능하진 않다. 승려들이 말하는 명상 따위를 무아지경에 도달할 정도로 할 수 있는 집중도가 필요하다.
다만 승려들은 마음을 비우기 위해 명상을 하고, 마인들은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욕망을 키우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양백호 역시 두 번의 경험이 있었다. 그 두 번의 경험 덕에 뒤늦게 마공을 익혔음에도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천상만큼 엄청난 변화를 겪은 적은 없었다.
‘익힌 마공의 경지는 한두 단계의 상승에 불과할지 몰라도 기질은 몇 단계 이상 상승했다.’
양백호는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얼마나 분노했기에.’
감정은 크고 욕망은 작다. 대신 감정은 풍부하나 쉽게 식어 버리지만 욕망은 밀도가 높아 식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백(百)의 순수한 감정을 순백의 욕망으로 치환하면 일(一)이 된다.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문제지만, 마(魔)가 성장할 정도의 욕망을 품기 위해선 백 명 분의 감정이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몇 단계나 상승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욕망을 품기 위해선 얼마나 깊은 분노가 필요한 것인가.
‘그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일까?’
감정은 욕망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하나의 욕망이 여러 감정으로 분산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나 복잡한 것이다. 양백호 역시 일리(一理)에 통달했을 뿐, 진리(眞理)에 도달한 건 아니기 때문에 이천상에 대해 분명히 알 수는 없었다.
“역시 감정이 없는 게 아니었어, 감정을 모르는 것이지. 다만…….”
양백호의 얼굴에 염려의 빛이 떠올랐다.
“너무 극단적이다. 마치 지금껏 억눌러 왔던 이십 년 분의 감정을 한순간에 토해 내기라도 한 양.”
만약, 만에 하나.
그 억누른 감정이 위험한 시기에 폭발하게 되면.
지금처럼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 그의 이성을 돌아오게 만드는 장치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만약 그런 순간이 오게 되면, 이천상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괴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정말 힘든 밤이로고.”
* * *
집무실에서 나간 이천상은 습관처럼 일각으로 향했다.
“나왔나.”
일각으로 가는 길목 중간에 귀창이 서 있었다.
이천상이 귀창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물끄러미 그를 보던 귀창이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네.”
“아니오.”
자연스레 대답하면서도 이천상은 생각했다. 아니라고? 뭐가?
“내가 아랫사람 관리를 못 하여 자네까지 피해를 봤네. 이 부분, 분명하게 사과하고 싶네.”
“괜찮소.”
“자넨 괜찮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 면목이 없는데,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네.”
“사과는 했잖소?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소.”
“…….”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를 모르겠소.”
이천상의 담백한 발언에 귀창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정말 답답한 밤이로군. 그렇지 않나?”
“그렇소?”
“따라오게.”
“……?”
“양건이 자네 친구라면서? 한번 봐야 안심이라도 할 것 아닌가.”
얼굴을 봐야만 안심을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천상은 순순히 대답했다.
“안내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