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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68화 (718/774)

외전 68화. 어두운 출정 (3)

스르륵.

깔끔한 정복으로 갈아입은 이천상은 썩 헌헌했다.

무심한 얼굴, 오관이 뚜렷하다. 골격 큰 몸에 걸친 부관 정복(副官正服)이 그가 자아내는 알 수 없는 위압감과 잘 어우러졌다.

“…….”

잠시 손을 내려다보던 이천상이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아직 모르겠군.’

그 일이 터진 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마기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당장 엊그제만 해도 훈련이 끝나자마자 날이 새도록 운공에 집중하며 구결을 분석했다. 그러나 구결 어디에도 폭발적인 내력 증강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운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 중 하나다. 마공 구결에 내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뜻이 있거나, 그게 아니면 마공과 상관없는 일이 내게 벌어졌거나.’

이천상은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금강야차마공의 구결과 법문을 완벽하게 해석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무공의 구결과 법문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더 성장하면 지금 이해하고 있는 내용의 몇몇 부분이 또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은 양백호의 발언 때문이었다.

- 친구가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걸 보고 화가 났느냐 물었네.

그 질문에, 이천상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관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양백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화는 곧 분노다. 만약 내가 정말로 분노했고, 내 마기가 분노로 인해 활성화가 되었다면…….’

곰곰이 생각하던 이천상이 눈을 감았다.

‘역시 모르겠군.’

화가 난다고 마기의 질과 양이 그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렇다면 이미 천마신교는 천하를 지배했을 것이다. 신교의 마인들은 하나같이 감정적이며, 넘치는 호승심을 굳이 제어하려 하지도 않으니까.

강력한 감정의 폭발이 마공 성장의 신호탄이라면, 당금 신교의 마인 대부분이 일대종사급의 무력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해석할 수 없는 일을 붙들고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

애초에 지금은 그런 걸 고민할 때도 아니었다.

‘다만 진실로 내가 분노하여 마공이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기억을 잃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다.’

개인에게도 문제지만, 야차사령부 부관으로서도 문제다.

평소라면 모를까, 실전 임무에서도 그와 같은 상태에 빠져선 안 될 것이다.

“부관님, 다들 모였습니다.”

문밖에서 선임 조장인 허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주님이 아닌 부관님이다. 평소와는 다른 호칭, 다른 목소리였다.

이천상은 곱게 펼친 여러 암기들을 장포 안쪽에 넣고, 시뻘건 견갑 하나를 좌측 어깨에 덧대어 꽉 묶었다.

곧이어 펑퍼짐한 소매를 붉고 질긴 천을 이용해 팔뚝에 비끄러맸다. 강인하게 단련된 길고 굵은 팔뚝이 유려한 호선을 그렸다.

드르륵.

그가 문을 열고 나가자 허필이 절도 있게 포권했다.

“부관님을 뵙습니다.”

동시에 백오십여 명의 야차들이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부관님을 뵙습니다!”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처처척!

그간의 훈련에 성과가 있었던 것일까.

이천상의 한마디에 야차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마치 한 몸이라도 된 양,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야차들도 좌측 어깨에 붉은 견갑을 차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등에는 이천상의 등에 적힌 야차(夜叉)라는 붉은 글자가 없었다.

붉은 견갑, 그리고 붉은 글자.

그것은 바로 부대의 색이었다.

일각은 붉은색, 이각은 하얀색을 쓰며 삼각은 푸른색을 쓴다.

이천상이 허필에게 손을 내밀었다.

허필이 즉시 일 조원에게 손짓했다.

펄럭!

허필에게 팔 척 길이의 깃대를 건네받은 이천상이 손목을 가볍게 털자, 축 늘어져 있던 깃발이 넓게 펼쳐졌다.

너비만 일 장에 가까운 시커먼 깃발에는 바깥으로 휜 송곳니를 대놓고 드러낸 귀신(鬼神) 형상이 붉은색 염료로 칠해져 있었다.

‘가볍군.’

미세한 탄성과 강철 이상의 강도를 지닌 이 깃대는 본래 장창(長槍)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었다.

당연히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두껍진 않지만 그리 얇지도 않은 널찍한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니 평범한 사람이면 중심 잡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천상은 가벼움을 느꼈다.

금강야차마공이 칠 성에 이르기 전에도 무겁진 않았지만, 제대로 다루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니다.

금강야차마공의 성취와 더불어 단전을 꽉 채운 마기가 이전보다 몇 배나 늘어난 상황이다. 질적인 향상도 대단해서 농도만 보면 팔 성에 이른 마공의 기운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막강해진 힘.

그리고 이 깃대를 자유자재로 휘둘러야만 하는 위치.

이천상이 붉은 야차 깃발, 적야차번(赤夜叉幡)을 땅에 내리찍었다.

쿵!

땅을 울리는 야차번의 무게감이 야차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작전 개요는 다들 숙지했나.”

“예!”

야차들의 우렁찬 대답.

약간의 긴장과 강한 흥분, 그리고 미묘한 걱정과 날카로운 기대감이 한데 어우러진 목소리였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구구절절 긴 말은 필요치 않다.

가자는 한마디와 함께 선두에 서서 깃발을 휘날리는 이천상의 뒷모습은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다.

허필이 손을 들었다.

“부관님의 뒤를 따르라!”

“존명!”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각 조장이 조원들을 이끌어 삼 열 종대를 맞춘 뒤 이천상을 따랐다.

급하진 않지만 느리지도 않은, 정교한 걸음으로 이천상의 뒤를 따르는 야차들.

‘칼 같구만.’

허필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야차사령부에 들어와 이들 모두와 함께 수련한 그였다. 호법원에서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진법이라서 그 역시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어느 정도 진법이 몸에 밴 야차들을 보니 양백호가 가르친 진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야차들 하나하나가 마치 짠 것처럼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걸음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억지로 오와 열을 맞추는 게 아니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렇게 되고 있었다.

훈련량도 훈련량이지만, 개개인 모두가 군랑진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숙달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제식 훈련을 받은 중앙군의 정예 부대 같다.’

제식 훈련은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훈련이다. 특히나 마인들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훈련일 것이다. 그런데도 얼마 안 된 훈련을 겪은 야차들의 움직임은 완벽했다.

‘그리고.’

허필이 이천상의 등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 터진 사건의 중심에는 삼각의 조원과 이천상이 있었다고 했다.

그 사건의 원인과 경과, 그리고 결과를 양백호는 가감 없이 전달하였다. 그리고 향후 이와 비슷한 일이 있다면 직책과 나이, 소속을 떠나 죽음에 준하는 형벌을 내리겠다고 공표하였다.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던지라 야차들도 강한 경각심을 가졌다. 하물며 해당 사건의 가해자가 일각주 이천상에게 즉결 처형을 당했다고 하니, 일각 소속 야차들은 절로 이천상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맹목적인 공포는 없었다.

이천상이 자아내는 독특한 분위기와 강력한 마기는 사람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투명하고 묵직하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굳이 입을 열지 않고, 규율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절대 야차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인간적이라고 보긴 힘들지만, 적어도 믿고 따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천마신교라는 이 작고도 큰 세상에서 이런 성품의 마인을 보기는 힘들었다.

짧은 시간에 놀랍도록 강해진 무력, 무심하고도 담백한 성격, 그리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볼 줄 아는 안목과 판단력.

그 모든 요소가 야차들로 하여금 이천상을 어려워하게 했고, 동시에 따를 수 있게 했다.

‘완전히 달라졌어.’

처음 이천상을 봤을 때,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을 뿐 흔해 빠진 마인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천상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분명한 성장으로 아챠사령부의 수뇌부가 되었다. 이상하고 공감 안 가는 인형 같았던 성격이, 상관이 되자 그렇게 믿음직할 수가 없었다.

허필은 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아니지. 달라졌다고 느꼈을 뿐, 저놈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사람을 잘못 본 건 자신이었다.

쫓겨나듯 사령부로 온 현실에 답답했다. 은연중 자신은 이곳에 온 야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내 처지를 두고 한탄하는 게 아니라 더 강해지기 위해 몸부림을 쳤어야 했다.

허필은 그러지 못했고, 이천상은 단 한시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단순히 여러 사건에 연루되어서가 아닌, 맹목적인 노력과 향상심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터.

‘사부님께서 지금의 나를 보시면 혀를 차시겠지.’

허필이 양손으로 제 뺨을 때렸다.

‘나도 사령부의 일원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자.’

파라라라락!

불어오는 바람에 붉은 야차가 화려하게 춤췄다.

이천상이 이끄는 일각이 사령부 정문 앞으로 진입했다. 그러자 좌우 양옆으로 백야차번(白夜叉幡)을 든 율적산과 이각, 청야차번(靑夜叉幡)을 들고 있는 귀창과 삼각도 모습을 드러냈다.

적색과 백색, 그리고 청색의 삼기군(三旗軍).

그 앞에, 양백호가 있었다.

“다들 준비는 되었는가.”

“존명!”

차가운 새벽 공기를 뒤흔드는 야차들의 짧고 굵은 목소리가 제법 믿음직스러웠다.

양백호는 거대한 군마(軍馬)에 올라 있었다. 등 뒤에는 큼직한 대검 한 자루를 매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다.

“부관들은 말에 오르라.”

이천상과 율적산, 귀창이 군마에 올랐다. 양백호가 탄 군마에 뒤지지 않는 경험 많은 명마들이었다.

양백호가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일각은 일군(一軍), 혹은 적기군(赤旗軍)으로 칭한다. 이각은 이군(二軍), 혹은 백기군(白旗軍)으로 칭하며 삼각은 삼군(三軍), 혹은 청기군(靑旗軍)으로 칭한다.”

“예!”

“우리의 임무는 단순하다. 복건 호마상단의 수뇌부들을 제압하고 본교로 이송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에게 공격을 가하거나 수뇌부들을 도주케 하는 이들이 있다면, 무조건 척살로 대응한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는다. 남녀의 구분도, 노소의 구분도 두지 않겠다는 뜻. 마도무림 총본산에서 파견한 군대를 막는다는 것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

양백호의 말뜻은 그러했고, 야차들 역시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존명!”

“좋아.”

스르릉!

실로 오랜만에 검갑을 빠져나온 대검의 검날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양백호가 정문으로 대검을 겨누었다.

“전군(全軍) 진군(進軍).”

쿠구구궁!

성문을 방불케 하는 사령부의 정문이 열리고.

삼색의 불길한 깃발을 휘날리는 오백의 야차들이 신교를 나섰다.

* * *

“빌어먹을!”

도헌답지 않은 거친 소리였다.

“그 말이 사실인가?”

“확신할 수는 없어. 하지만 군사부에서 빼 온 정보이니만큼,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거야.”

“지금 당장이라도 사령부에 연락을 보내야 하네!”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닐세.”

“하지만 그놈들이 남부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위협이 아닌가! 사령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교를 위해서라도……!”

“저쪽에서 알고 있다는 건 이미 나름의 대비를 했다거나 주시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어?”

“……!!”

“젠장, 어쩐지 찝찝하더라니.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했어, 나도. 기억만 제때 떠올렸다면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소공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림(少林)……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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