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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69화 (719/774)

외전 69화. 어두운 출정 (4)

야차사령부의 이동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출정과 귀환은 통상 빠를수록 좋지만, 양백호는 오히려 이동 속도를 조절했다. 전적으로 야차들의 상태 때문이었다.

상대가 일개 상단이라는 사실에 야차들의 의욕은 지나칠 정도로 과열되어 있었다. 손쉽게 상대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은 본래 가지고 있던 전투력을 크게 깎을 수 있는 오만이었다.

양백호는 굳이 야차들에게 마음을 바로잡으라는 둥, 흥분은 금물이라는 둥 조언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만 철저하게 행군 속도를 제어할 뿐이었다.

그의 속도 조절은 놀라웠다.

하루는 온몸의 관절이 삐걱댈 정도로 강행군을 했고, 하루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쉬엄쉬엄 갔다.

또 어떤 날은 평탄한 길을 골라 반 시진 간격으로 행군과 휴식을 반복했으며, 또 어떤 날은 휴식 없이 거친 산을 그대로 넘기도 했다.

산을 넘거나 좁은 길을 갈 때는 철저히 삼수대진(三獸大陣)을 중심 삼아 이동했고 얕은 강을 건널 때는 배를 구하지 않고 일부러 헤엄쳐 건너게 했다. 헤엄칠 때도 대형을 유지하는 건 기본이었다.

말하자면 이동 자체를 하나의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메운 것이다. 다만 임무가 코앞인지라, 먹을 것과 식수 등은 무조건 풍족하게 보급하였다.

수일 동안의 이동, 이동 간의 훈련. 놀랍게도, 처음 신교를 나왔던 야차들의 눈빛과 기도는 복건에 이르러 무척이나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여전하시군.”

율적산의 말에 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령주님은 군문과 중원 무림에서 온갖 시련을 겪고 입교하신 분이다. 머리 굳은 다른 마인들과는 차원이 달라.”

무공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수하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양백호가 신교에 들어와서 잘하지 못했던 것은 아부와 협잡이었다. 그래서 빛을 보지 못했을 뿐, 무인인 양백호에게서는 배울 점이 무척이나 많았다.

“어때?”

율적산의 질문에 이천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말이오?”

“신기하지 않나? 행군만으로 야차들의 전의(戰意)를 다스린 것 말이야.”

“글쎄.”

“으음?”

물론 이천상도 양백호의 실력에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짜 놀란 것은 양백호의 그러한 행군 속도 조절 이전에, 야차들의 들뜬 기분이었다.

그 느슨한 마음가짐에 놀랐고, 양백호의 행군 속도 조절에 그것이 다스려진다는 것도 놀랐다.

‘첫 임무라면 오히려 긴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여러 사람이 ‘최초’의 경험 앞에서 크게 긴장하곤 한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임무 경험이 있지만, 어쨌든 사령으로서는 처음 아닌가.

‘쉬운 상대이기 때문에 긴장을 풀었다, 그것도 말이 안 돼. 이건 애들 놀이가 아니야.’

아무리 작은 짐승이라도 사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철저한 준비와 첨예한 집중력을 기본으로 한다. 사냥할 짐승의 특징, 지형, 작전, 함정 등을 온종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 말은 안 되지만.

‘……실수라고 봐야겠지.’

지금껏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의 행동 양식과 성격 등을 분석해 냈다.

최초의 임무라면 긴장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 상대가 상단이라면 이 녀석들처럼 자신을 넘어 자만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이들 하나하나가 상당한 강자들이 아니었나.

아무래도 납득하긴 어렵지만, 종종 사람들은 이런 실수를 하기도 한다.

‘이건 내가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천상은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조금 더 세밀히 구분할 줄 알았다.

‘내가 그런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감정과는 상관없어.’

귀창이 말했다.

“어쨌든 야차들의 정신은 잘 다독여졌으니, 남은 건 우리로군.”

“으음.”

기다렸다는 듯, 선두에 있던 양백호가 손을 들었다.

“정지. 이각 동안 휴식에 취한다.”

이각이면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야차들은 즉시 제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흩어질 법도 한데 철저히 대형을 유지하는 모습이 꽤 자연스러웠다.

이천상은 양백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뀔 수 있게끔 유도한다.’

이런 것도 배워 두면 언젠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관들은 이리 오게.”

콱!

일군 중앙에 적야차번을 꽂아 넣은 이천상이 양백호에게 갔다. 율적산과 귀창도 마찬가지였다.

“자, 이제 복건일세.”

양백호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군사부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네. 근처 정보부에서 받은 연락으로 보아 호마상단은 아직 우리가 오는 걸 모르는 것 같네만.”

“그렇군요.”

양백호가 이천상을 보았다.

“일군주.”

“예.”

“전에 자네가 말했네. 호마상단은 위험하다고.”

“그렇습니다.”

“어지간한 문파를 상회하는 전력을 구비하고 있다 하였지?”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다만, 그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현재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으음.”

“당시 그 정보도 양부에게 들었던 것입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으니, 과거의 전력 역시 상세히는 알 수 없습니다.”

“자네 양부였던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호마상단은 아무도 모르게 힘을 키우고 있었다는 말이 되네.”

“그렇습니다.”

“중원 남부에서 본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야. 복건은 광동의 지척이니, 호마가 우리 몰래 힘을 모으고 있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닐세.”

천마신교의 정보력으로도 읽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주변 통제를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복건 전체에 신교를 넘어서는 강한 정보망을 쳐 두었을 공산이 컸다. 실질적인 무력을 떠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전에도 말씀드렸던 사항입니다만.”

율적산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만에 하나를 위해 상부에 추가 전력을 요청하시지요.”

“했네.”

“예?”

“했네.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지.”

“어, 어째서……?!”

“거기까지야 우리도 알 수 없네. 본교 부대들은 하나같이 바쁘지 않나. 우릴 도울 부대가 지금은 없는 모양이지.”

그럴 리가 없다.

유사시를 대비하여 조직의 전력 일부를 대기시켜 두는 것은 상식이다. 천마신교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귀창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텁텁한 냄새가 나는군요.”

“맞네.”

“이미 알고 계셨음에도 여기까지 오신 것은 나름의 방도를 생각해 두셔서입니까?”

양백호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믿는 것은 그간의 훈련 성과와 이 진법의 위력, 그리고 자네들일세.”

“……!”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나? 출정 안 한다고 버틸 수도 없잖은가? 지원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겠다고 하면, 그 자체로 명령 불복종일세. 중죄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상부, 정확히는 군사부가 우리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고 있는 것 같네.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를 지원할 생각이 없어. 그렇다 하여 손가락 빨고 기다릴 순 없으니, 어떻게든 이 임무는 우리가 처리해야만 하네.”

이천상은 양백호의 발언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그렇군.’

양백호가 한 말은 창설식 전, 특수 임무를 맡았을 때 자신이 양건과 주연교에게 했던 말이었다.

“일단 방법은 있네. 해결 방안까지는 아니지만.”

“그게 무엇입니까?”

“내가 움직이는 걸세.”

“……예?”

율적산과 귀창은 얼떨떨해했지만, 이천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백호가 웃으며 물었다.

“일군주는 이해하셨는가?”

“어떤 위협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대의 최고수가 첨병(尖兵)으로서 적지를 수색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율적산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 해도 최고 지휘자가 직접 움직이다니요? 만에 하나 령주님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우리 부대 전체가 무너집니다.”

호승심으로 똘똘 뭉친 마인에게 그와 같은 발언은 때로 실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율적산은 거침이 없었고, 양백호 역시 그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한 명 더 데리고 갈 생각이라네.”

“예?!”

“이군주 율적산, 자네일세.”

율적산이 입을 떡 벌렸다.

“저, 저 말입니까?”

“왜? 겁이 나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둔한 저를 굳이 데려가실 필요가…….”

반대는 했지만, 애초에 양백호가 그러겠다고 하면 명을 따라야 한다는 걸 율적산은 알고 있었다. 한 번 내린 결정을 어지간하면 번복하는 일이 없는 그가 끝내 첨병 역을 할 거라는 것도 받아들이고는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데리고 간다니?

“삼군주는 창술사라네. 창을 들지 않아도 강하지만, 임무가 탐색인 바에야 굳이 전력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함께할 이유는 없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일군주도 권법가(拳法家)가 아닙니까?”

“권법가라.”

양백호가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권법가 맞지. 지금은.”

“예?”

“사령부에서 나를 제외하고 진법에 가장 능통한 사람은 일군주라네. 혹시 모를 위협이 들이닥칠 때, 자네와 나는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지만 이 많은 야차는 어찌하겠나?”

“……!”

“물론 어떤 위협이든 우리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느냐지.”

양백호의 진지한 얼굴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는 굴강한 바위를 연상케 하였다.

“적의 군세가 대단하고 정보력이 뛰어나다면, 우리가 복건에 진입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네. 만약 놈들이 우리를 주시하는 걸 넘어 노리고 있다면, 기습전을 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그렇다면 더더욱 령주님께서 첨병 역할을 할 필요가…….”

“그런 상황에서 하나로 똘똘 뭉쳐 진격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양백호가 이천상과 귀창을 바라보았다.

“일군주는 진법에 능통하고 삼군주는 집단전 경험이 많은 고수야. 둘이라면 위기 시 야차들을 잘 이끌 수 있을 걸세.”

더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율적산은 결국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백호가 지도를 펼쳤다.

상부에서 받은 복건 지도였다. 세밀하고도 알아보기 쉽게 되어 있는, 아주 잘 만들어진 지도였다.

“호마상단의 본진은 이곳이네. 은밀히 이동해야 하니, 짧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닷새 정도가 걸릴 거야.”

양백호가 검지로 어느 산 하나를 짚었다.

“나와 이군주가 출발한 즉시 이곳으로 야차들을 이동시키게. 급할 필요는 없어. 도중에 일이 터지면 꼭 나와 이군주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사람을 보내 알리게.”

“알겠습니다.”

“무연향(無煙香)들은 다 챙겼겠지?”

“그렇습니다.”

“좋네.”

양백호와 율적산이 채비를 마쳤다. 이군의 백야차번은 선임 조장인 설이전에게 넘어갔다.

“그럼, 다시 연락하겠네.”

“예.”

훅!

양백호과 율적산이 출발했다. 굉장한 신법이었다.

은밀히 이동해야 하니 군마도 놓고 갔다. 첨병의 역할을 생각하면, 두 사람의 정신적 피로도 상당해질 것이다.

이천상이 귀창을 바라보았다.

귀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청야차번을 들었다.

“진군한다.”

쿠르릉.

어두운 복건의 하늘.

불어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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