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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72화 (722/774)

외전 72화. 부딪침 (2)

‘……?’

호검단(虎劍團)의 세 부대 중 하나 흑호대(黑虎隊)의 대주 만요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왜 출발하지 않지?’

언덕 너머 숲에서 야차일군(夜叉一軍)을 주시하는 만요의 눈이 칙칙하게 가라앉았다.

이미 놈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고받았다.

부대명은 모르지만 총 오백에 달하는 병력이며, 그것을 세 개의 군(軍)으로 나누어 움직인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쪽도 그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호검단은 비록 호마상단 휘하의 무력 조직이지만, 훗날을 위해 힘을 숨기고 있을 뿐 부대 자체가 하나의 문파나 다름없는 조직이었다. 당연히 누구의 도움 없이, 호검단 자체 전술과 작전으로 적들을 공략할 수 있었다.

‘첨병조가 연막을 터트렸다. 그렇다면 혈호대(血虎隊)가 유인을 시작했다는 뜻.’

실제로 적의 오백 병력 중 청색 깃발을 든 이백여 병력이 먼저 움직였다.

그 뒤를 백색 깃발을 든 백오십여 병력이 뒤따랐다. 세 개 부대 중 두 개 부대가 움직였으니, 이제 남은 부대까지 움직이면 행동에 들어갈 수 있다.

한데 움직일 듯했던 적색 깃발 부대가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십여 명을 전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설마 눈치를 챈 것인가?’

가만히 적색 깃발 부대를 관찰하던 만요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있나.’

작전을 행함에 있어 단 한 번도 초조해 본 적 없었다. 흑호대의 역할 자체가 기습에 특화가 된 부대라, 초조해하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만요는 그런 부대의 수장이었다. 당연히 그만한 능력이 되니까 흑호대의 대주가 될 수 있었다.

‘후방 부대가 남아 주변 정찰과 혹시 모를 후미에서의 기습을 대비하는 조직도 있는 법.’

만요의 눈이 깊어졌다.

‘보통 부대는 아니로군.’

무림인은 군인(軍人)과 다르다. 개개인의 능력 차를 생각하면, 거의 다른 종(種)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달리 말하면, 개인의 역량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부보다 지극히 뛰어나기 때문에 개성도 강했다. 그 개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군대처럼 똘똘 뭉치게 하면 오히려 사달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무림의 부대는, 뭉치게는 하되 부대원 개개인의 성격과 개성, 무공 수위에 맞게 스스로가 능동적인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게 ‘정석’이다.

그렇기에 무림인으로 구성된 부대 대부분은 산개(散開)하여 독립 전투를 벌이는 걸 기본으로 한다. 개인의 전권(戰圈)이 워낙 넓고 움직임이 빠르기 때문이다.

호검단은 달랐다.

부대마다 특성이 워낙 분명하기도 했고, 개인의 개성을 일부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전체’의 힘을 강화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저놈들도 비슷한가.’

후미에서의 기습을 매 순간 상정하고 움직이는 부대는 전 중원을 통틀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후미 기습이 들어오면 더 빠른 속도로 도주하거나 산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저 적색 깃발을 든 부대처럼 진형을 형성한 채 주변 경계를 하는 경우는 만요조차 딱 한 번밖에 본 적 없었다.

‘흥미롭군. 일반 군대의 특성을 지닌 무림인의 부대라…… 확실히 마교 놈들은 상리에서 벗어났어.’

마교.

마교를 떠올리자 만요의 얼굴에 묘한 흥미가 일었다.

‘저놈들이 마교의 마귀들이란 말이지.’

만요는 마인과 싸운 경험이 없었다. 호검단의 모든 무사가 그러할 것이다.

마교에 대한 악명은 어느 시대나 중원을 뒤흔든다. 그들에 대한 소문은 언제나 공포와 혐오로 점철되어 있었으며, 모두가 그들을 증오하면서도 지나치게 강대한 힘 때문에 쉬이 건드리질 못했다.

마치 이승에 살아 숨 쉬는 악마(惡魔)와 같다.

사람들은 마교를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두려워하였다. 마교도가 중원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전 무림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그만큼 천하가 마교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반면, 만요처럼 마교의 마인들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보고자 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

물론 개인마다 목적은 다를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마교가 주는 그 원초적인 공포에 매료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놈들의 목청은 얼마나 끔찍하고 기괴하려나.’

만요는 마교도를 사냥하고 싶었다.

위험천만한 맹수일수록 사냥 성공 시의 쾌감이 큰 법이었다.

만요는 어릴 적부터 마을 최고의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렸다. 어쩌다가 무공을 접해 지금은 호검단의 흑호대주가 되었지만, 적을 죽일 때 무사답게 싸워서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 적을 죽이는 것은 곧 사냥이었다.

자신을 숨기고 사냥감이 약해질 때를 기다린다. 이후 사냥감이 빈틈을 드러내는 순간 벼락처럼 달려들어 멱을 따 버린다.

‘자, 너희도 적당히 경계하고 친구들 뒤를 따라가라.’

히죽 웃으며 일군을 보던 만요는 문득 느껴지는 이질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천천히 움직이며 사방을 경계하는 마귀 놈들.

마치 여러 마리의 늑대가 돌아가며 사방을 주시하는 듯하다. 군집한 늑대 무리의 경계심은 실로 감탄이 나올 만큼 첨예하다.

‘뭔가…….’

열두 개의 조가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며 사방을 경계하고, 그 중앙에는 적색 깃발을 돌돌 만 깃대를 든 수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때로는 늑대들과 함께 보행을 맞춰 가며 여기저기 움직이다가 중앙으로 들어오고, 다시 또 다른 방위로 가서 늑대들과 합류하다가 중앙으로 돌아온다.

진법(陣法)이다. 철저하게 훈련된 진법을 쓸 줄 아는 부대였다.

문제는.

‘왜 지금?’

저러한 진법은 적을 상대할 때나 이동 시에 펼치는 게 정상이다. 이처럼 후미에 남아 혹시 모를 적습을 대비할 때 굳이 진법을 펼칠 필요가 없었다.

만요의 미간이 점점 조여졌다.

‘알 수가 없…… 응?’

순간 만요는 한 줄기 벼락이 등줄기를 쫙 타고 내려오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열두 개?’

조가 왜 열두 개지?

백오십 명의 부대. 한 개 조는 조장을 포함하여 열 명이다. 그렇다면 열다섯 개의 조여야만 한다.

그중 한 개 조는 전방으로 보냈으니, 열네 개의 조가 돌아가며 사방을 경계해야 한다.

‘남은 두 개 조는 어디로?!’

그때였다.

번쩍!

순간적인 긴장이 감각을 첨예하게 벼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극단적인 위기감에 저도 모르게 내공을 운용했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더 선명해진 만요의 안력(眼力)은, 진법 중앙의 사내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시뻘건 깃발을 동여맨 깃대를 보란 듯 어깨에 걸친, 상당한 장신의 사내.

그 사내의 두 눈에서 서늘한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헉!!’

만요의 어깨가 크게 움찔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일어나려 하는 본능을 어떻게든 억누르려 애썼다.

‘들켰다?!’

후우우우웅.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에 난 식은땀을 식혀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를 크게 부풀렸다.

화르르르륵!

절벽 아래에서부터 수십 개의 덩굴을 타고 올라온 불꽃이 삽시간에 숲에 닿았다.

만요가 외쳤다.

“전원 후퇴! 입구까지 후퇴해라!”

본능적인 대처였다.

만요의 외침에 숲 여기저기에 은신하여 야차일군을 내려다보던 흑호들이 재빨리 몸을 일으켜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퍼엉!

한 줄기 굉음과 함께 흐릿한 연기가 피어오르다가 사라졌다.

풀썩!

후방으로 몸을 날리던 흑호들 대여섯 명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몸을 부르르 떠는 그들의 얼굴은 어느새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만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독기(毒氣)!’

독탄(毒彈)이다. 그것도 보통 독탄이 아니었다.

흑호대는 부대 특성상 암살자와 비슷하여, 각종 암기술은 물론 독에도 상당한 면역이 있었다.

그런 흑호들이 반항 한번 못 해 보고 쓰러져서 거품을 물고 있다. 심지어 터진 독탄은 한 줄기 고요한 연기만 내곤 사라져 버렸다.

무색무취(無色無臭)의 맹독이 분명했다. 만요가 단전을 쥐어짜 있는 대로 내공을 끌어 올렸다.

“멈춰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막강한 내력이 깃들어 있었다. 절정고수가 아니고서야 선보일 수 없는 강한 내공력이었다.

사사삭!

무릎까지 올라오는 수풀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 백여 명의 흑호들.

하나같이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낮은 자세는 무척이나 역동적이었다.

만요가 퇴로를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열 명의 낯선 무인들이 횡렬로 서 있었다.

바로 마인이었다.

가만히 그들을 노려보던 만요가 물었다.

“마교도냐?”

중앙에 선 마인, 허필의 눈이 빛났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만요가 볼을 씰룩였다.

‘어렵군.’

너무나도 절묘하게 퇴로를 막고 있었다.

고작 열 명, 사이하기 그지없는 기운이지만 병력 차이가 극심했다. 힘으로 밀고 들어가면 손쉽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독이었다.

무색무취의 독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깔렸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것으로 모험을 걸 순 없을 테니, 퇴로 전체에 맹독을 깔아 두었을 것이다.

만요가 이죽거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과연 마귀 놈들답구나. 개만도 못한 새끼들, 치졸하게 독 따위를 써?”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만요 역시 암기술과 독술의 달인이었다. 필요하다면 적의 아내와 자식들까지 납치해 고문하는 부대가 흑호대였다.

스르릉.

허필이 등 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만요의 얼굴이 굳었다.

‘안 통하는군.’

화가 나서 검을 뽑았다면 심리전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전혀 분노한 기색이 없었다. 자신보다 약자인 건 분명한데, 눈빛에서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놈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아홉 마인들의 얼굴에서도 감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흑호들보다도 무감각한 놈들처럼 보였다.

‘어쩌지.’

화르르르륵!

등 뒤에서 불이 타올랐다.

화마(火魔)가 순식간에 숲을 불태우고 있었다. 마침 바람도 퇴로 쪽으로 불어오고 있는 터라, 벌써부터 등이 후끈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그냥 밀고 갈까.’

그러기에는 피해량이 추측이 안 된다.

얼추 십여 명, 많으면 열다섯의 전력 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전력 손실이 발생하면 임무는 물론 차후 흑호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대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요가 흑호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독은 불에 약하다. 불이 이곳 수풀까지 이어지면 좌우 비탈길로 내려가서 불과 함께…….]

그때였다.

후우욱! 퍼어어엉!

묵직한 바람에 무겁고 강렬한 발경이 실렸다.

예상보다 더 빠르게 몰아치는 화마 너머, 막강한 힘으로 중앙을 돌파하는 마귀들이 있었다.

깜짝 놀란 만요가 뒤를 돌아보았다.

‘……!!’

어느새 풀어 헤친 깃발, 무시무시한 귀신이 그려진 팔 척 길이의 깃대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황금빛 마안(魔眼)의 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수십의 마인들이 굶주린 늑대처럼 뒤따랐다.

강력한 내공과 무서운 공격력으로 불길을 헤치며 전진한다. 언제 여기까지 도달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옷에 불이 붙은 마인들도 있었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살기를 줄줄 흘리며 돌진하고 있었다.

만요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저 새끼들 막아!”

이천상이 만요를 향해 적야차번을 겨누었다.

“다 죽여라.”

파바바바박!

시커먼 호랑이와 굶주린 늑대 무리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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