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 외전-75화 (725/774)

외전 75화. 부딪침 (5)

“저기로군.”

“예.”

어느 높은 주루 꼭대기에 올라선 양백호와 율적산의 눈에 거대한 장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장원은 장원이다. 형태가 그러했다.

하지만 그 너비가 상상을 초월했다. 얼마나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 안에 이백 가구는 족히 들어갈 것 같았다.

한 지역 내에서 유달리 큰 명성을 자랑하는 조직들은 하나같이 넓은 부지를 자랑한다.

무력이든 자금력이든 명성이 높다는 건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 많은 사람을 품으려면 그만큼 큰 영역이 필요한 것이다.

그걸 감안해도 호마상단의 본장은 굉장한 너비를 자랑하고 있었다. 거대 연무장이 몇 개씩 있는 지역의 명문 문파를 보는 듯했다.

“시끌벅적하구먼.”

특히 대단한 점은, 이미 상단 주변으로 하나의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임에도 도시 사방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기상천외한 색의 화등을 곳곳에 켜 두었는데, 주루와 객잔은 물론 온갖 장사치들이 상품을 팔고 있었다.

주점과 객잔은 그렇다 쳐도, 포목점 등을 운영하는 장사꾼들까지 있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하루를 마감할 시간에도 장사한다는 건, 그만큼 유동 인구가 많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호마상단이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이 도시는, 오직 호마상단을 중심으로 번성한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이 도시의 주인이 호마상단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는 것이다.

사방은 시끄러웠고 오가는 사람은 아직도 많았다.

“안 좋은데요.”

율적산의 말에 양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일세.”

야차사령부의 임무는 호마상단의 주요 인물들을 체포, 이송해 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상부는 관여치 않을 것이다. 신교에 문제가 될 일이 아니라면 자잘한 것들은 무시해도 된다. 그것은 정치와 상관없는, 신교 특유의 자신만만한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를 공략하려면 말 그대로 도시 외곽부터 중심지까지 치고 들어가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민간인들까지 다칠 수 있다는 뜻이다.

율적산의 눈이 번뜩였다.

“축시쯤 되면 이곳도 잠잠해질 겁니다. 차라리 노린다면 그때가 좋겠습니다.”

“그게 가장 좋아 보이긴 하네만.”

이곳 분위기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호마상단의 영향력이 대단할 것만은 확실하다.

다시 말해, 저들 모두가 곧 상단의 눈이나 다름없을 확률이 지극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들키지 않고 진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도시 전체를 섬멸할 수도 없다.’

고래로 잔혹하다고 여겨지는 전투들이 있다.

그중 적을 섬멸하기 위해 그 마을, 혹은 도시 전체를 몰살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만 떼어 보면 누구나 눈살을 찌푸리며 잔혹하다고 하겠지만, 실제 전쟁이 벌어지면 얘기가 다르다.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부터 적지에 있는 민간인은 평범한 민간인이 아니게 된다. 그들 하나하나가 전부 적이 되는 것이다.

이유는 명확했다. 정보가 유출되어 아군의 움직임이 적에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지간하면 민간인을 건드리지 않고 적장만 잡고 끝내고 싶어도, 그게 불가능하다. 적장과 하나로 똘똘 뭉친 민간인들은 그 자체로 위협이었다.

이미 가동되는 지역 행정망을 무너트리지 않으면 민간인들의 눈을 막을 수가 없는바, 그 행정망을 무너트리기 가장 쉽고 빠른 것이 섬멸전이다.

냉정하게 한 지역을 싹 쓸어 버리는 전투 중 대다수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학살에 미친 살인마가 다 죽여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라고 못 할 이유는 없지만.’

양백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 역시 군문에 있으면서 작전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여 보았다.

아니, 애초에 전쟁에서 무고를 따지는 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싶은 전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진을 섬멸하기 위함이 아니다. 상단의 수뇌부들을 체포해서 이송하는 것이 임무야.’

끝장을 보는 전쟁이라면 이를 악물고 잔혹한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선택을 내릴 때가 아니었다. 양백호 자체도 살인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살인광이 아니었다.

민간인들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적만을 상대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것은 정파와 사파, 마도 모두가 공유하는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양백호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만약 이곳 전체를 싹쓸이한다고 해도 신교에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예, 그럴 겁니다.”

신교는 지금 병을 앓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퍼졌는지가 명확한, 그러나 병의 원인을 고치기 어려운 고약한 중병이었다.

그것은 정파와 사파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 하나를 밀어 버리면 마도 이외의 무림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상상할 수가 없다.

‘빌어먹을.’

양백호는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이 정도 정보는 줬어야지.’

호마상단의 위치와 주요 인물에 대한 목록과 정보는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공략하기 어려운 집단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저 임무를 툭 던져 줬을 뿐이었다.

이건 성공하라는 건지, 가서 죽으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율적산이 눈을 빛냈다.

“생각보다 전력이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호마상단과 도시 야경이 잘 보이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멀리 떨어진 거리가 아니다.

실제로 적의 전력을 보려면 안으로 침투해서 확인하는 게 확실하다. 그러나 그들 정도의 고수에게는 얼추 느껴지는 분위기만으로도 적의 전력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새벽에 조용히 야습하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야차들을 분산한 후 사방에서 집결하는 방식으로 전술을 짜면 생각보다 쉽게 도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아니, 민간인을 죽이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양백호는 무언가 껄끄러움을 느꼈다.

‘이상하다.’

율적산의 말대로 호마상단의 전력은 그리 강하지 않다. 특히 이런 종류의 전투에 잔뼈가 굵은 양백호는 율적산보다 훨씬 더 예민했다.

‘뭔가 속에 턱 걸리는 게 있어.’

왜일까?

이유를 알 수 없는 껄끄러움. 분명 적의 전력은 별게 아닌데 함부로 치고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아니, 치고 들어가는 걸 넘어서…….’

스르륵.

양백호는 저도 모르게 치솟으려는 마기를 잠재웠다.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마기가 꿈틀거리려 한다. 단순한 불안감 때문이 아닌 것이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것 자체도 그다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한동안 고심하던 그가 율적산에게 눈짓했다.

“일단 빠지도록 하지.”

“예.”

훅!

두 사람이 몸을 날렸다.

양백호야 말할 것도 없지만, 율적산의 신법도 상당히 빠르고 유연했다.

일류 권법가로서 갖춰야 할 소양이었다. 병기를 든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거리 조절이 필수인바, 맨손 백타를 장기로 둔 이들은 하나같이 경신술이 뛰어났다.

그렇게 두 사람이 도시에서 벗어나 왔던 길로 들어설 때였다.

스륵.

양백호가 멈추었다.

율적산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령주님?”

“이군주.”

“예.”

“개용분을 주게.”

율적산의 얼굴이 확 굳었다.

느닷없이 이 시점에 개용분을 달라는 양백호.

심상치 않은 사태를 감지한 율적산이 개용분을 건넴과 동시에 마공 개방을 준비했다.

양백호가 개용분을 취했다.

“……!”

없다. 무연향 특유의 서늘한 향이 맡아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 산길을 통과한 게 불과 반 시진 전이었다. 적게 잡아도 이틀은 유지되어야 할 무연향의 향이 싹 날아가 버린 것이다.

‘뭐지?’

두근!

양백호가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무연향의 잔향을 없애기 위해서는 특수한 약물이 필요하다. 그건 신교 내원의 약제실만 알고 있어.’

무슨 수를 써도 무연향을 없앨 수는 없다. 양백호의 상식에선 그러했다.

그렇다면?

“가자!”

“예!”

파아아악!

양백호가 재빠르게 산길을 타 넘었다. 율적산은 최선을 다해 그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파바박!

양백호가 마구 발을 구르며 속도를 늦췄다.

“령주님?!”

“적이다.”

우우우웅.

양백호의 몸에서 불그스름한 기운이 일렁였다.

그저 미세하게 마공을 개방한 것만으로도 흐르는 진기가 눈에 보인다. 그럼에도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진기의 조절 능력이 엄청난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율적산 역시 마공 개방을 준비했다.

“적이라면……?”

그때였다.

움찔!

율적산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두근두근!

갑작스레 증가하는 심박수. 몸이 점점 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어떠한 살기나 기파를 느끼지 않았음에도 마기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양백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라.”

그때, 저 멀리 수풀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렀다.

“대단하구려.”

치리링!

가벼운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청아하다.

어두운 산로를 울리는 석장(錫杖)의 고리 소리다. 회색빛 승복 위 가사를 걸친 중년의 승려와 이십 대로 보이는 무승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율적산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양백호가 긴장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소림(少林).”

“그렇소.”

석장을 든 중년 무승, 적미대사가 좌수반장을 올렸다.

“소림 계율원의 적미라 하오.”

계율원. 소림사에서도 가장 엄격하고 거친 이들이 모여 있다는 조직이다.

불제자로서 어겨서는 안 될 규율을 어긴 자들을 처벌하는 조직이 바로 계율원이었다.

그런 만큼 나한당(羅漢堂)과 함께 사마외도(邪魔外道)의 악인들을 단호히 처벌하는 데에 가장 열을 올리는 이들이기도 했다.

“계율원주를 대신하여 이곳에 왔소. 조만간 계율원주께서도 오실 게요.”

양백호의 안광이 붉게 달아올랐다.

“기가 막히는군. 하남의 땡중들이 무슨 일로 복건까지 내려왔나?”

“달리 이유가 있겠습니까? 소림의 무승들은 악을 가만 두고 보지 않습니다. 악이 있는 곳이라면 천하 어디라도 가서 징벌의 계도(戒刀)를 휘두르지요.”

물끄러미 적미대사를 보던 양백호가 등 뒤 대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왜 이곳에 소림의 땡중들이 있을까? 하는 의문은 접어 두어야 한다. 깜짝 놀랐지만, 놀라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소림은 무공은 신교의 마공과 상극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이놈들 때문이었군.’

왠지 모를 껄끄러움을 느꼈던 것.

그 이유가 바로 소림 때문이었다. 소림의 항마신공(降魔神功)은 천마신교의 역천마공(逆天魔功)과 강하게 반응한다.

서로를 철저하게 적으로 인식하는 기운. 율적산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마기를 품은 양백호의 본능이 이들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모르겠군. 하지만 네놈들이 앞에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겠지.”

“물론 그렇지요. 우리 소림승들은 마교의 악인들을 그냥 보내 줄 생각이 없습니다.”

“됐으니까 하나만 묻자.”

양백호가 눈을 빛냈다.

“너희냐? 향(香)을 없앤 것이?”

적미대사는 말없이 석장을 흔들었다.

치리링. 치리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은은한 황금빛 기운이 산길을 뒤덮었다.

“육도윤회(六道輪回)의 업문 앞으로 보내 드리겠소.”

양백호가 외쳤다.

“뚫고 간다!”

“예!”

파아악!

두 사람이 적미대사를 향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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