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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78화 (728/774)

외전 78화. 몰아치는 피바람 속에서 (3)

쩌어엉!

주먹과 주먹이 부딪쳤는데 날 선 병기 두 자루가 부딪친 것 같은 철성이 터졌다.

율적산은 시큰거리는 주먹을 고쳐 쥐며 인상을 썼다.

물론 상대는 율적산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대여섯 걸음을 물러나는데, 인내심으로 이름 높은 소림승답지 않게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였다.

천하제일 소림이라고 하지만 경지가 비등할 때의 이야기다. 율적산은 누가 뭐라 해도 경험 많은 절정고수고, 상대는 이십 대의 푸릇푸릇한 권법가일 뿐이었다.

‘문제는.’

휘이이익!

하늘 높이 난다.

실전에서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은 한 허공을 날아 상대를 걷어차는 짓거리는 못 한다.

하지만 이 망할 땡중 놈들은 그걸 하고 있었다. 어설퍼서가 아니라 자신이 있어서다.

대여섯 개의 발이 율적산에게 우박처럼 쏟아졌다.

파파파팡!

주먹과 팔뚝으로 소림승들의 각법을 막은 그가 빠르게 뒤로 몸을 날렸다. 힘에서 밀린 것이 아니라 충격을 상쇄하기 위함이었다.

‘너무 많아.’

쿵!

적당히 물러난 율적산이 외측에 있는 소림승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훅!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돌파하는 율적산의 이동 속도는 분명히 소림승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율적산의 장(掌)이 소림승 하나의 어깨를 잡아채려는 찰나였다.

피이이잉!

어디선가 날아온 한 줄기 돌멩이가 율적산의 바짓단을 뜯고 지나갔다. 피하지 않았다면 오금에 맞아 힘이 빠졌을 것이다.

‘뭐야, 이것들?’

파앙!

손바닥 끝에 마기를 모아 터트렸다. 소림승이 답답한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도대체 쉴 틈이 없었다. 한 놈부터 확실하게 잡으려는데 돌멩이가 날아왔고, 주춤하는 찰나 두 놈이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다.

파파팡!

북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주먹과 주먹의 교환이었다. 서로의 소매와 팔뚝을 스치고 지나간 주먹 끝에서 강력한 파동이 일었다.

율적산이 재빨리 몸을 회전하여 각법을 날렸다.

소림승이 아니라 나무를 향해서였다.

빠각! 우지끈!

중단이 부러진 나무가 그대로 소림승들을 덮쳤다.

사사삭!

사방으로 퍼지는 소림승들의 움직임이 실로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실전 경험은 많지 않지만 연성한 무학 자체가 워낙 뛰어났다. 평소 훈련 역시 독하게 하는지, 이런 순간에 대처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행이구만!’

후두두두둑!

나뭇가지를 마구 헤치고 들어간 율적산의 눈앞에 소림승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잡으려고 했던 그 소림승이었다.

젊은 무승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율적산의 주먹이 경쾌하게 움직였다.

퍼어억!

제대로 들어갔다.

복부에 일격을 맞은 소림승이 막힌 신음을 토해 내며 벌러덩 쓰러졌다.

쾌속한 공격을 위해 많은 힘을 담지 못했지만, 가격한 곳이 명치였다. 쓰러진 소림승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호흡이 턱턱 끊긴 것도 모자라 일격에 내상까지 입은 것이다.

하지만 율적산도 멀쩡하진 못했다.

터어어엉!

같은 곳으로 회피한 또 다른 소림승이 율적산에게 장(掌)을 날렸다.

어떻게든 몸을 틀어 상박을 조여 막았지만, 그 충격이 상당했다. 작정하고 내친 듯 강력한 내공이 서려 있었던 탓에 뼈마디가 부러진 듯 욱신거렸다.

‘빌어먹을.’

왼팔을 크게 돌려 건재함을 보여 주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통증이었다. 기능적으로는 별문제가 없었으나, 왼팔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반각은 족히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역시 소림이란 말이지.’

무공 수위를 논하자면 야차들보다 우위다. 각성하기 전 이천상과 비슷하거나 한 수 위 정도라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상극이었다. 율적산의 일격이 제대로 들어가면 저쪽도 무사하지 못하지만, 저들의 일격에 마공이 뒤흔들리는 건 율적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이 망할 놈들이 갑자기 여기 왜 나타나서는!’

쓰러진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율적산.

그의 기감이 양백호를 더듬었다.

‘령주님께서는 어떻지? 어서 이놈들 싹 날려 버리고 도와드려야 하는데.’

율적산이 쉽지 않은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제법 떨어진 장소에서 싸우는 양백호의 상황 역시 썩 좋지 못했다.

카아아앙!

양백호의 주먹과 적미의 석장이 부딪쳤다.

율적산 쪽과는 질적으로 다른 격돌이었다. 주먹과 석장이 교차했는데, 그 충격파로 주변 나무 표면이 퍽퍽 깎여 나갔다.

그조차도 전력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진짜 힘이 얼마나 되는지, 이 싸움을 어떻게 벌여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차분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것뿐이었다.

“어찌하여 검을 뽑지 않는 것이오?”

적미의 물음에도 양백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눈으로 적미와 그 뒤에 선 다섯 명의 소림승을 볼 뿐이었다.

실질적으로 두 사람의 싸움에 젊은 소림승 다섯이 끼어들 수는 없다. 오히려 끼어들면 적미에게 방해만 될 뿐이었다. 서로 실력 차이가 워낙 많이 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기에 서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 노림수가 있군.’

율적산은 무려 다섯이나 되는 소림승들을 상대하고 있다. 만약 저 소림승들까지 모두 율적산에게 붙었다면, 율적산은 손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물론 불리하면 곧장 자신에게 돌아왔겠지만.

“실력이 이 정도는 아닐 텐데, 여유가 굉장하시군.”

적미의 말은 묘하게 도발적이었다.

양백호는 적미를 보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시선은 다섯 소림승에게 고정된 채였다.

적미의 눈이 깊어졌다.

“악을 섬멸키 위해 이 먼 길을 왔으니, 빈승이라고 몸이나 풀고 있을 필요는 없겠지. 이제부터 전력으로 가겠소.”

쓸데없는 말을 잘도 주절거리는군.

실전에서 무의미하게 입을 놀릴 필요는 없다. 그만큼 여유가 있든지, 아니면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함일 확률이 높았다.

후우우우웅!!

적미의 몸에서 연한 녹빛 기운이 흘러나왔다.

금광(金光)의 진기가 아닌 연녹빛의 진기였다. 그 담백한 빛은 소림 무공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너무나 성스러워 보였다.

양백호의 눈이 반짝였다.

‘보리패엽신공(菩提貝葉神功).’

군문에서 나와 무림 생활을 했을 적, 소림의 누군가가 저 신공을 구사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치리리리링!

석장 끝에 달린 쇠고리들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가오.”

훅!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데 어느새 삼 장 거리를 좁혔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일장(一掌)을 내리치려던 적미는 순간 깜짝 놀랐다.

‘없다?’

양백호가 기척도 없이 사라졌다.

장을 회수한 적미가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

어느새 양백호가 두 주먹 가득 마기를 집결하여 다섯 소림승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양백호의 두 주먹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퍼퍼퍼퍼펑!!

연달아 울려 퍼지는 폭음에 소림승 다섯이 일제히 뒤로 밀려 나갔다.

양백호의 눈이 번뜩였다.

‘역시 그랬군.’

그와 소림승들의 무력 격차를 생각하면 한 방, 한 방에 내상을 입고 쓰러져야 했다. 아무도 죽지 않을지언정 피를 토하고 쓰러져 기식이 엄엄해야 했다.

한데도 저들은 멀쩡했다. 강력한 권법의 위력에 당황하여 밀려 나갔지만, 누구 하나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이다.

치링!

순간 등 뒤에서 익숙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번쩍!

후방 사선으로 몸을 날리는 그의 어깨 부근을 석장이 스치고 지나갔다.

치리리링!

또다시 몸을 돌려 양백호를 노려보는 적미.

곧이어 그의 눈이 흔들렸다.

스르릉.

상체를 살짝 왼쪽으로 기울이며 등 뒤의 대검을 뽑는 양백호의 모습은 묘하게 섬뜩했다.

번쩍!

나뭇잎을 뚫고 들어오는 약한 달빛이 대검의 검날에 닿았다. 그러자 사방으로 맑은 달빛이 퍼져 나갔다.

스륵.

양손으로 쥔 대검을 우측 어깨 뒤로 넘긴다. 마치 커다란 방망이로 무언가를 후려칠 듯한, 무척이나 역동적인 자세였다.

적미의 눈이 번뜩였다.

“과연 마인은 마인이오. 한참이나 하수를 공격하려 하다니, 내가 무서운 것인가.”

굳이 받아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양백호는 비릿하게 웃으며 이죽거렸다.

“싸움을 하러 온 건가, 비무를 하러 온 건가? 전쟁터 안에 들어왔으면 세 살배기 애들도 군인이야. 아장아장 비무 놀이나 하러 온 거라면 지금이라도 꺼져라. 상대할 가치도 없으니까.”

적미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홀로 상대했다면 모르되 뒤에는 사질들이 있었다. 하물며 증오스럽기 그지없는 마인에게 모욕까지 당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율원주께서 오시기 전에 완전히 무장 해제를 시켜 드리리다.”

파악!

적미가 돌진했다.

상대가 강한 건 알았지만, 자신보다 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상대는 마인이고 마는 불법 앞에 무릎을 꿇는 법이 아니던가.

상극의 힘을 믿고, 적미는 거침없이 돌진했다.

그리고 그런 적미의 행동에 양백호는 쾌재를 불렀다.

번쩍!

그 커다란 대검의 움직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적미가 거리를 반도 줄이기 전에 허공에 일검을 때려 넣는데, 마치 천하가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런!’

적미는 본능적으로 상체를 수그렸다. 일격의 폭발력으로는 마공을 당하기 어려운바, 저 붉고 거대한 검기(劍氣)는 마음먹고 받아 내려 해도 막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티잉!

석장 끝이 검기에 잘려 날아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걱! 콰르릉!

“으아아악!”

섬뜩한 비명에 적미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비명은 등 뒤의 사질들 쪽에서 나온 비명이었다. 이 검기를 피하지 못해 크게 다친 것 같았다.

‘이!’

하지만 적미는 등을 돌려 사질들의 상태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처럼 무서운 일검을 구사한 직후인데도 이미 양백호는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마공도 마공이지만 신체 전반의 단련 정도가 엄청났다.

양백호가 대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까아아앙!

서둘러 석장을 휘둘러 막았지만, 강하고도 교묘한 대검술에 기어이 남은 석장도 두 토막이 나 버렸다.

토막 난 석장을 버린 적미가 구결대로 내공을 운용했다. 소림칠십이절예, 용왕유권(龍王柔拳)을 펼치기 위함이었다.

그때, 대검의 검첨이 적미의 명치 앞에 도달했다.

기가 막힌 빠르기다. 일반 장검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대검을 휘두르는데도, 어지간한 쾌검수(快劍手)보다 훨씬 빠른 검술이었다.

적미가 이를 악물고 권력을 터트렸다.

콰앙!

폭음과 함께 적미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후속타가 날아올 것이다. 적미는 곧장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때였다.

“구경이나 하라고 세워 둔 게 아니었구만.”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가 적미의 귀를 파고들었다.

“나한진(羅漢陣)이라…… 하지만 과연 너희 뜻대로 되겠느냐?”

적미가 외쳤다.

“흩어져라!”

“늦었어.”

번쩍! 번쩍!

사선으로 교차하는 붉은 대검에 소림승 셋의 몸이 끔찍하게 찢겨 날아갔다. 앞선 검기로 두 다리가 잘려 끙끙대는 소림승의 몸으로 핏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양백호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뒤로 적미가 따라붙었지만, 그의 대검은 먹잇감을 물고 늘어지는 늑대처럼 지독했다. 기어이 살아남은 소림승 하나를 쫓아가 가슴팍에 검을 박아 넣었는데, 그야말로 악랄하기 그지없는 손속이었다.

퍼어엉!

장력으로 적미의 공격을 받아 낸 양백호가 씩 웃었다.

순간 적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은은한 달빛 아래, 피범벅이 된 얼굴로 미소 짓는 양백호의 모습은 부처의 깨달음을 방해했다던 마라(魔羅)의 악졸 그 자체였다.

“일대일, 고상한 싸움만 전전하셨나? 소림도 다됐구만.”

“이……!”

파아아악!

양백호가 신법을 펼쳤다.

놀랍게도 적미가 아니라 율적산의 싸움터를 향해서였다. 또 다른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의 탐욕이 그대로 묻어났다.

적미가 외쳤다.

“멈추거라,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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