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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79화 (729/774)

외전 79화. 몰아치는 피바람 속에서 (4)

협곡을 내달리는 이천상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역시 그랬군.’

절벽 사이사이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곳에 굵고 질긴 밧줄들이 수도 없이 연결되어 있다.

무척이나 많지만, 잘 살펴봐도 그게 밧줄인지 벽인지 모를 정도로 절벽과 색이 똑같았다. 모양 역시 우둘투둘한 절벽과 딱 맞아떨어져서 눈치 좋은 책사나 안력 좋은 고수라도 알아보기 힘들 것 같았다.

분명 함정이 있으리라고 확신하지 않았다면, 이천상 역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식의 문제였다.

이천상이 귀창을 보았다.

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함정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모르니 진군 속도를 올려야겠군.”

야차사령부가 한층 빠른 속도로 협곡을 돌파했다.

협곡은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적색탄 하나를 던져라.”

야차 하나가 협곡 절벽에 적색탄을 던졌다.

쾅! 쿠르르르릉!!

폭발은 한 번이었지만, 연쇄 충격은 절벽 전체로 퍼져 나갔다.

투두두두둑! 콰르르릉!

두꺼운 밧줄들이 끊어지며 엄청난 수의 바위들이 절벽을 타고 내려와 협곡을 메웠다.

바위 하나하나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사람을 죽이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저 많은 수의 바위를 절벽 위에 매달아 놓는 것만으로도 며칠은 걸렸을 것 같았다.

“그만큼 준비성이 철저하다는 뜻이겠지.”

귀창이 저 멀리 절벽 끄트머리에 선 설이전을 보았다.

스물도 채 남지 않은 혈호대는 저 멀리 도망을 치고 있었다. 맞서 싸우려 해도 태반이 독에 중독된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적의 전력이 너무 강했다.

쿵!

귀창이 땅에 야차번을 때리자 설이전을 위시한 이군 오십의 궁수들이 내려왔다.

“고생했네.”

“아닙니다.”

설이전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야차사령부의 첫 작전이었다. 임무가 끝난 건 아니었지만, 일차 전투에서 나름대로 큰 공을 세웠다. 그것이 그녀를 들뜨게 했다.

“다시 깃발을 들게.”

“예!”

“그리고…….”

귀창이 이천상을 보며 물었다.

“쉬다가 갈 텐가? 부대 정비를 한번 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한데.”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이대로 가도 될지 모르겠소.”

뜻밖의 대답이었다.

협곡을 돌파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천상의 명령 하달과 움직임은 무척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이미 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떠올린 것 같았다.

“무연향이 끊겼어. 령주님이 위험할 수 있네.”

“지금 생각해야 할 건 령주님이 아니라 무연향이 어떻게 끊어졌느냐요.”

“물론 그건 적들이…….”

“내가 알기로 무연향과 개용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본교 내에서도 약제실의 몇몇 인사뿐이라고 들었소.”

“……!”

귀창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네 말은 설마, 본교에 배신자가 있을 수 있다는 건가?”

이천상이 의아한 눈으로 귀창을 보았다.

“삼군주도 이미 생각했던 바가 아니오?”

“그럴 리가 없잖은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귀창의 얼굴에는 강한 혼란이 깃들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목소리에 자신이 없었다.

지금의 천마신교는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비리와 악덕이 집결된, 힘만 센 삼류 조직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적어도 귀창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수뇌부들 대다수가 타락해 버린 지금, 배신자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배신자가 아닌 교외자 중 누군가가 만들었을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순 없겠지.”

“내 말이 그 말이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배신자가 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소.”

정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천상의 말이 옳았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요. 이대로 진격하여 령주님을 찾을지, 아니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이곳에 대기해 있을지.”

“대기?!”

“정확히는, 적의 반응을 더 살펴보자는 것이오.”

귀창이 고개를 저었다.

“대장이 죽으면 부대의 힘도 반감돼. 반드시 령주님을 구해야만 하네.”

“그것도 모르겠소.”

“무엇이 말인가.”

“만약 교에 배신자가 있고 무연향 등의 정보를 유출했다면, 사령부의 대장이 누구인지도 알려 줬을 것이오.”

“……!”

“령주님의 힘을 알아도, 그에 상응하는 고수를 배치하는 것은 다른 문제겠지. 만일 초절정고수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을 배치했다면, 분명 지금 령주님과 이군주는 위험할 거요.”

귀창의 눈에 마기가 치솟았다.

“자네 말은, 이미 령주님께서 돌아가셨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

“알 수 없소.”

“령주님께서 놈들에게 당할 리가 없어.”

“령주님의 성격상 적진에서 굳이 싸우려 들지는 않을 것이오.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면 싹 쓸어버리겠지만, 아니라면 퇴각하여 우리와 합류한 후 정비하려 하셨을 것이오.”

“그렇지.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은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이오.”

귀창이 움찔했다.

이천상의 말이 맞았다. 일단 적의 특공조는 잡았다. 그것은 굳이 생각이라는 걸 할 필요가 없었다. 전략이 아닌 전술상 놈들부터 잡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 뒤는?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네.”

부대란 소모 조직이다.

내공을 연마한 무림인들은 더 적게 먹고 적게 마셔도 여느 범부와 달리 훨씬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버티는 것에 불과하다. 제힘을 내려면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는 건 무림인이나 범부나 똑같다.

이대로 계속 적을 주시하고만 있다간 개인 식량도 줄어들 것이다. 작전에 맞게 충분한 식량을 가져오기는 했다. 그러나 상황이 급박해진 지금, 이 임무가 언제 끝이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골똘히 생각하던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내가 끝까지 이곳에서 버티겠다고 하면 삼군주는 따로 삼군을 이끌고 떠날 것이오?”

귀창의 눈이 번뜩였다.

“의견이 갈린다고 우리만 떠날 수는 없는 문제라네. 만약 그래야만 한다면, 충분한 작전을 세우고 찢어지는 것이 맞겠지.”

이런 면에서 귀창은 확실히 나쁘지 않은 지휘관이었다.

이천상이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봅시다.”

두 사람, 그리고 설이전까지 와서 지도를 보았다.

“협곡을 통과하지 않고 우회하려면 이곳을 돌아가야 했소. 빠르면 이틀, 늦으면 사흘 정도는 걸렸을 것이오.”

“그랬겠지.”

“하지만 우리는 협곡을 통과했소. 그리고 저 앞에는 우리를 맞이할 적의 전력이 존재할 것이오. 아주 높은 확률로.”

귀창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전력을 나눕시다.”

“어떻게?”

“한 부대가 전진하여 적의 부대를 맞아 싸우도록 하고, 남은 두 부대는 협곡 위쪽으로 우회해서 가는 거요.”

“……!!”

“어느 쪽이든 힘들 거요. 적을 맞이하는 군대는 삼분지 일밖에 안 되는 전력으로 교전해야 하는 부담을 안을 것이고, 우회하는 부대는 체력적인 부담을 안겠지.”

이천상의 손가락이 지도 두 곳을 짚었다.

“우회 지점은 이곳, 그리고 이곳이오. 적이 이곳 산마루 앞에 있다면 반 시진이 걸릴 것이고 산마루 뒤에 대기하고 있다면 한 시진하고도 반은 더 걸릴 것이오.”

“음.”

“령주님을 구하고 싶어도 적 부대와 교전한 이후에 들어갈 수 있소. 만에 하나 적 부대가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을 일이지만, 놈들의 전술을 봤을 때 무조건 우리를 맞이할 부대가 배치되어 있을 것이오.”

“그렇다면?”

“나도, 삼군주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소. 그렇다면 일단 이놈들부터 붙잡고, 후방 부대는 곧장 연성으로 향하는 걸로 합시다.”

귀창과 설이전이 놀란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부대 하나가 적들과 교전하고, 우회한 부대는 연성으로 직행하란 말인가? 적들을 전후로 치는 게 아니라?!”

“그렇소.”

“그건…… 남은 부대에게 너무 가혹한 조건일세.”

“대신 적들에게 그 존재를 보여야만 하오.”

“……!”

“늑대 무리끼리의 영역 다툼을 본 적이 있소. 어지간하면 그럴 일이 없는데, 습성을 배우고 싶어 구경했지. 그중 따로 사냥 나간 늑대들이 후방에서 나타난 적이 있소.”

“…….”

“혼비백산하여 흩어지더군. 나는 사람이라고 해서 늑대와 다르진 않을 거라 믿소.”

“달라. 조직적으로 훈련된 사람은 짐승들과는 다르지. 하지만…….”

“…….”

“나쁘지 않군.”

흩어지진 않더라도 무조건 당황할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앞뒤로 공격한다 한들 총 전력은 똑같은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그건 전략 전술을 요만큼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부대란 대열을 유지해야 제 효율을 낼 수 있는 법. 소수부대가 후방 혹은 측방 기습으로 대열을 흐트러트리면 그것만으로도 적의 전력을 절반 이상 깎아 먹을 수 있다.

군대가 괜히 대열에 목숨을 거는 게 아니다. 무림인이라고 바보들이라서 진법을 배우는 게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남는 게 좋겠는가.”

“당연히 우리요.”

설이전의 얼굴에 걱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군주님. 소수라지만 이미 일군은 전력 일부를 잃었어요.”

“그래도 우리가 남아야 한다.”

이천상이 귀창을 보았다.

귀창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군의 군랑진은 전면전과 각개 전투에 능하네. 반면 삼군의 혈응진은 뾰족하게 돌파하여 적진을 흔들어 놓거나 기습 침투에 능하지.”

“바로 그것이오.”

설이전이 다시금 반박했다.

“이군의 대호진은 군랑진보다도 전면전에 능합니다. 부족하나마 제가 잘 이끌어서…….”

“대호진은 ‘모든’ 형태의 전면전에 능하다. 그래서 궁수들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지.”

“네?”

“화살은 눈에 보일 때보다 보이지 않을 때 제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야. 적의 전력을 봐서 우회 부대 중 한 부대가 남아야 한다면 이군이 남아서 지원 사격과 후방 돌격을 감행하도록 한다.”

“……!”

“알아들었나?”

설이전이 입술을 깨물었다.

“……네.”

이천상이 지도를 접었다.

“바로 시작합시다.”

“일군주.”

“말씀하시오.”

귀창이 한숨을 쉬었다.

“건투를 비네.”

“위험해지기 전에 오기를 바라오.”

“우리가 먼저 출발하고 반 시진 후에 출진하시게. 최대한 부담을 덜어야 하지 않겠나?”

“그럴 수 없소. 놈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또 한 번 첨병조를 보낼 거요. 우리도 지금 출발해야 하오. 놈들의 첨병조에게 진격하고 있다는 걸 보여 줘야 우회 기습조에게로 시선을 두지 않을 거요.”

이천상의 작전은 냉정하고도 합리적이었다.

“출발하시오. 야차들에게 작전 설명 후 곧장 출발하겠소.”

“알겠네.”

그렇게 이군과 삼군이 우회를 시작했다. 일군 역시 간략한 설명을 들은 후 진격했다.

일군 야차 중 겁을 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거나 두 번의 전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본인들의 지닌 힘에 자신을 갖기에 충분했으며, 결정적으로 상관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그러나 한 시진 후.

산마루를 지나 아래에 진을 치고 있는 부대를 본 야차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의 기색이 역력했다.

적의 숫자가 족히 삼백을 헤아리고 있었다. 게다가 후방에 도열해 있는 적들은 화살까지 메고 있었다.

저만한 부대를 정면으로 붙어서 물고 늘어진다고?

그때, 이천상이 말했다.

“숨은 다 돌렸으리라 믿겠다.”

그가 적야차번을 들었다.

“전군(全軍) 진군(進軍).”

우르르르릉!

이천상이 이끄는 야차일군이 산마루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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