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81화. 몰아치는 피바람 속에서 (6)
후두두둑!
흩어지는 화살들이 섬뜩한 소리를 냈다.
‘보통이 아니군.’
화살, 정확히는 화살촉에 강력한 내공이 깃들어 있었다.
같은 병기도 어떤 내공을 어떤 식으로 붙잡아 놓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위력을 낸다.
이군 궁수들은 화살대 자체에도 강한 마기를 실어 날리기에 쳐내거나 부러지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저들은 화살촉에 모든 내공을 집약시켰다. 해서 쳐 내기는 어렵지 않지만 막기가 힘들다. 관통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주르륵.
이천상의 우측 어깨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꽤 깊게 팬 상처였다. 다 튕겨 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 차로 날아온 화살 한 대를 놓친 것이다.
치이이익!
금강야차마공이 자연스레 발동되며 치료에 들어갔다. 상처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역시 그렇군.’
화살촉에 독이 묻어 있다.
즉사시키는 독은 아니었다. 그런 독을 화살 하나하나에 다 발라서 날리려면 엄청난 자금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들이 쓰는 독은 감각을 둔화시키는 독이었다. 치명적인 타격은 주지 못하지만, 전투 중에 기량을 확실하게 떨어트릴 수 있었다.
‘사교초(蛇交草).’
남부에서 흔하게 자라는 들풀로 상당한 독성을 지닌 풀이다.
유독 뱀들이 좋아하는 풀이기에 사교초라는 이름이 붙은 이 풀은 정제해서 약으로 쓰면 통증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즙을 짜내어 혈관으로 침투시키면 감각이 둔화되고, 심하면 신경이 영구적으로 손상되기도 한다.
사냥 생활을 하며 무수히 많은 맹수를 잡았던 이천상에게는 몹시 익숙한 독이었다. 그 역시 이 독을 써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야차들의 마기라면 당장에 큰 해를 입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된다. 어쨌거나 점점 내공 소모가 심해질 것이며, 상처로 침투하는 사교초의 독을 몰아낼 정신도 없을 테니까.
피피피피피핑!!
오십여 발의 화살이 하늘을 날았다.
이천상을 향해서가 아니었다. 좌측 군랑이진(群狼二陣)을 향해서였다.
허필이 외쳤다.
“막아라!”
퍼퍼퍼퍼펑! 픽!
제각기 병장기를 꺼내어 화살을 쳐 내는 야차들.
대열을 유지하고 돌진하는 그들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그런 와중에도 날아오는 화살을 너무나도 부드럽게 쳐 내고 있었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단순히 진법만 수련한 것이 아니라, 온갖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단련되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 이렇게까지 밀도 높은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야차들의 노력과 양백호를 위시한 부관들의 노력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것을 뜻한다.
‘좋아.’
순식간에 좌우 진의 움직임을 파악한 이천상이 다시 신법을 펼쳤다.
파아아앙!
북천마혜보는 확실히 대단한 경신술이었다. 기동성의 측면에서 보면 가히 신교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무공임이 틀림없었다.
오십여 장 떨어져 있던 이천상이 순식간에 삼십 장, 이십 장 거리를 돌파했다.
귀호대주가 외쳤다.
“상대는 하나다! 잡아 죽여라!”
“우와아아!!”
전방조의 검사들이 무서운 기세를 뿜으며 돌진했다.
좌우의 공격진을 상대해야 하니, 모든 병력을 쏟아붓진 않았다. 그러나 깃발을 든 놈이 대장임이 확실했기에 한 방에 사기를 꺾을 요량으로 서른 명의 검사들을 보냈다.
일 대 삼십.
하나하나의 실력을 따지자면 누구도 이천상의 발끝에도 따라올 수 없지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귀호대원들의 기세는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이천상과 검사들이 맞부딪치려는 순간이었다.
터어어엉!!
엄청난 탄력으로 날아오른 이천상이 순식간에 검사들을 뛰어넘었다.
검사들은 깜짝 놀랐다.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분명 정면승부를 벌일 요량인 듯했는데, 순식간에 하늘을 날더니 자신들을 지나쳐 버린 것이다.
그때였다.
이천상은 어느새 자신을 향해 화살을 겨누는 귀호대주를 보았다.
피이이이이이잉!!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시위를 당겼다 놓았을 뿐인데, 철봉끼리 부딪치는 것과 흡사한 소리가 났다.
눈 깜짝할 새에 가슴까지 짓쳐 드는 화살.
이천상이 당황하지 않고 상체를 틀었다.
찌이이익! 퍼억!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이천상의 가슴 의복을 찢고 지나간 화살이 검사 둘을 뚫고 멈추었다.
귀호대주는 대경했다.
‘이런?!’
허공에서 착지하는 순간을 노렸다. 절대 피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간단한 움직임으로 자신의 화살을 피한 것이다. 불가사의하다고 여겨질 만큼 엄청난 반응 속도였다.
애꿎은 부하만 제 손으로 죽인 모양새가 되었다. 귀호대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전후로 공격해라!”
질주하던 검사들이 몸을 돌려 이천상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파아아앙!
이천상은 빨랐다.
이 전장에 있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속도로 달린다.
북천마혜보의 성취가 그리 높진 않지만, 그에게는 사령단으로 녹인 마기와 강력한 욕망으로 끌어올린 질 높은 마기가 있었다.
순식간에 전권으로 들어온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좌우, 우상단, 좌하단.’
정확하게 네 방향에서 들어오는 공격들.
한눈에 적의 공격선을 파악한 그가 적야차번을 휘둘렀다.
까가가가강!!
회전하는 철번에 군용검 네 자루가 모조리 튕겨 나갔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천상은 어느새 적진의 전방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좌우에서 튼튼한 검날 대여섯 개가 쇄도했다.
퍼어어억!
마혜보를 밟으며 전진한 이천상이 전방으로 철번을 찔렀다.
태산압정으로 검을 휘두르던 검사가 피를 토했다. 철번이 흉골을 부수고 가슴에 박힌 것이다.
이천상이 힘차게 대지를 밟았다.
쾅!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전진했다.
쿠르릉!
“이, 이런!”
“이 개자식이!!”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적 하나의 가슴에 철번을 박고 그대로 돌진한다. 한데 그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뒤에 도열해 있던 검사들 십여 명까지 밀려 나가고 있었다. 괴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돌진력이었다.
‘저런 놈이 있나!’
우이곤이 침을 삼켰다.
‘혼자서 중앙을 돌파하려는 건가?!’
그때였다.
서걱! 서걱!
이천상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검날들.
화살처럼 독을 발라 두지는 않았지만, 잘못 걸리면 뼈까지 절단되는 공격이었다. 이천상의 냉정한 판단력과 상대의 공격선을 미리 읽을 줄 아는 능력, 무서운 반사 신경이 아니었다면 벌써 난도질당했을 것이다.
퍼억!
철번에 박힌 검사를 걷어찬 그가 깃발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무서운 마기였다.
마기로 인해 철판처럼 뻣뻣해진 붉은 깃발이 휘둘러지는 군용검을 모조리 튕겨 냈다.
무거운 중병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공방의 일체화를 이뤄 내기까지 했다. 짧은 순간 연마한 철번술로 이런 전투를 가능케 한 이천상의 재능은 분명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아직인가.’
이천상의 눈이 좌우를 훑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돌진하는 좌우 야차들. 끝까지 군랑진을 고수하며 돌진하는 그들의 기세는 탐욕스러운 늑대 그 자체였다.
‘좋아.’
귀호대의 좌우 진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부딪치는 순간, 진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셋.’
카아아앙!
가로로 든 철번에 군용검 세 자루가 떨어졌다.
압력이 상당했다. 개개인의 실력이 이천상에 비하진 못하더라도 한 몸이 되어 휘두르니 그 위력이 몇 배로 살았다.
휘이익! 퍼엉!
검을 쳐 내고 회전하며 야차혈장을 때려 넣었다. 장력을 안면으로 받아 낸 검사가 쓰러지며 그 뒤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둘.’
파바바박! 퍽!
철번을 휘둘러 적들의 진입을 막아 냈다. 와중에 귀호대주가 쏜 화살이 야차번의 깃발, 귀신 형상의 눈 부위를 뚫었다.
마기를 풀어 헤치는 중이었다고는 하나 돌판 정도의 경도는 되었을 것이다. 그걸 화살 하나로 뚫어 버린 걸 보면, 확실히 그냥 대주가 된 자는 아니었다.
‘하나.’
철번을 가로로 뉘어 전방 검사들에게 던졌다.
횡으로 뻗은 철번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며 검사들의 진격을 막았다.
이천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떨어지는 철번 앞까지 도달, 두 주먹을 벼락처럼 휘둘렀다.
이천상이 가장 오랫동안 수련한 금강야차마공의 백타술, 금강마권이었다.
퍼버버버버벅!
직선과 곡선을 그리며 휘둘러진 주먹에 검사 여섯이 쓰러졌다. 하나같이 이마를 맞았기에 죽거나 기절해 버리고야 말았다.
터어엉!
발로 차올린 철번이 하늘 높이 날았다.
파아아악! 퍼버벅!
이천상이 있는 곳에 여섯 자루의 검이 꽂혔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이천상이 양손이 바람처럼 품으로 들어갔다 빠져나왔다.
이천상을 겨누던 귀호대주의 눈이 흔들렸다.
‘구슬?!’
이천상의 양손에는 붉은 구슬이 두 개씩 잡혀 있었다.
귀호대주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모두 조심……!!”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
파아아아악!
좌우로 날아가는 붉은 구슬들.
삼색탄을 쓰지 않은 부하들에게서 받아 낸 네 개의 붉은 화탄들이, 좌우 두 개 조로 돌진하는 야차들이 적의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폭발했다.
콰콰쾅! 콰앙!!
“크아아악!”
“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만반의 준비를 하던 좌우 귀호대원 중 삼십여 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즉사한 이도 있었고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 이들도 있었으며, 단순한 화상만 입었지만 폭음에 청력을 상실한 이들도 있었다.
밀집해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과였다. 떨어져 있었다면 피해를 오분지 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귀호대의 지옥은 이제 시작이었다.
적색탄보다도 더 끔찍한 공격, 바로 무너진 대열로 파고든 야차일군의 공격이었다.
퍼버버벅! 서걱! 서걱!
섬뜩한 격타음, 절삭음이 연달아 터지며 허공으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송곳처럼 좌우를 뚫고 들어온 군랑진으로 인해 순식간에 오십여 명의 검사들이 땅을 뒹굴었다.
귀호대주가 외쳤다.
“후방으로 빠져라!”
피이이이잉!
명령과 함께 화살을 쏘아 낸 귀호대주.
허공에 떠 있는 이천상으로서는 그 화살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때 이천상이 몸을 회전했다.
좌측 어깨에 달린 붉은 견갑 주위로 은은한 황금빛 마기가 넘실거렸다.
카아아아앙!!
벼락처럼 날아간 화살이 이천상의 붉은 견갑을 찌그러트리고는 떨어졌다.
철번을 낚아챈 이천상이 뒤로 날아갔다. 그 정도로 귀호대주의 화살은 강력한 위력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천상에게 활로를 열어 주었다.
퍼버버버벅!
떨어지며 휘두른 철번에 검사 셋이 자리에서 쓰러졌다. 죽진 않았지만 당장은 싸울 수 없을 것이다.
퍼버벅! 서걱!
이천상의 몸에 순식간에 다섯 개의 검상이 새겨졌다.
기민한 몸놀림으로도 다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절묘한 움직임으로 받아 냈기에 근육이나 뼈까지 닿지는 않았다.
퍽! 퍼버벅! 쩌어엉!
귀신 같은 마기를 뿜어내며 검사들을 밀친 이천상이 돌진해 오던 길로 물러났다.
쿠르르릉!
한 번의 기습적인 돌진으로 적을 뒤흔든 야차일군 역시 재빠르게 이천상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 이 죽일 놈이!”
귀호대주의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게졌다.
이 한 번의 교전으로 무려 백여 명의 전력 손실을 입었다. 상상도 못 했던 피해였다.
이천상이 야차일군을 둘러보았다.
‘일곱…….’
흐트러진 대열로 파고들어 적에게 큰 피해를 줬지만,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일곱이나 되는 야차가 목숨을 잃었다.
이천상의 눈에 살벌한 마기가 번뜩였다.
양측 모두 피해를 본 상황이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