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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82화 (732/774)

외전 82화. 몰아치는 피바람 속에서 (7)

스르륵.

야차일군이 서서히 후방으로 이동했다.

귀호대주가 외쳤다.

“천천히 전진해라!”

쿠르르릉!

귀호대원들은 모두 경갑을 입고 있었다.

야차들 역시 각반을 차고 좌측 어깨에 견갑 하나를 달고 있었지만, 귀호대원들보다 훨씬 더 가벼워 보였다.

실제로 그들이 걸친 각반과 견갑은 신교 특제품으로, 강철처럼 단단하면서도 무게는 반으로 줄인 물건이었다.

반면 귀호대원들의 경갑은 그렇지 않았다. 좌우 견갑에 비갑, 각반을 찼는데 단단함과 별개로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은 듯했다.

일개 대원에게 저 정도 무장을 시킨 것만으로도 호검단이 상당한 조직이라는 건 분명했다.

다만 전체적인 움직임에 있어서 귀호대는 야차일군보다 느리고 묵직했다. 정면 대결이 벌어지면 그 무거움이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움직임이 많은 장기전으로 돌입하면 악재가 될 것이다.

이천상은 순식간에 적과 아군의 장단점을 파악해 냈다.

‘저리는군.’

좌측 어깨가 뻐근했다. 적장의 화살에 맞은 곳이었다.

그 단단한 견갑이 찌그러질 정도로 막강한 궁술이었다. 몸으로 받아 냈다면 십 할 확률로 관통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는군.’

적은 확실하게 이쪽을 따라 진격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

자신 같았다면 한 번 더 대열을 정비하고 신중하게 적의 동태를 살피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적장의 표정만 봐도 분노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싸움은 감정이다.’

적의 감정을 내 뜻대로 좌우할 수 있는가에 따라 어려운 싸움도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은 많지만, 이렇게 크게 당한 적은 없는 듯하군.’

이천상의 돌격과 맞물린 두 개 조의 좌우 합공. 그것은 야차들이 이천상의 실력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술수가 또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이라면 한 번의 기습적인 타격으로 적의 전력을 크게 줄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정면 대결은 안 되겠지.’

기습 공격을 받은 와중에도 물러나는 적을 따라잡아 피해를 입혔다.

그만큼 잘 단련이 된 것이다. 그전에도 딱히 방심은 하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요만큼의 방심도 하지 않을 터.

그때였다.

“속도를 올려라.”

귀호대가 진군 속도를 올렸다.

의도가 명백했다. 정면 대결을 걸어 오는 것이다.

‘그 외에.’

이천상의 눈이 귀호대의 후방을 향했다.

겹겹이 겹쳐 있지만, 적들 틈새로 보이는 궁수들의 눈빛이 매처럼 날카로웠다. 이미 활에 화살을 걸어 두고 있는 걸 보니,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벼락처럼 사격을 가해 올 것이다.

이천상이 말했다.

“속도를 올려라.”

스르르륵.

야차일군의 움직임은 부드러움 그 자체였다. 앞을 보며 후방으로 이동하는데도 발걸음이 착착 맞았다.

누구 하나 보행과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한 달도 채 수련하지 않았지만, 마치 일 년을 넘게 수련한 것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집단전에서 개인이 튀어 봤자 목숨만 위험하다는 것을. 어떤 일이 터져도 당황하지 않고 대열을 맞춰야 최소의 피해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을.

기묘한 상황이었다.

호전적이고 쉽게 흥분하는 마인들의 얼굴에 냉철함이 가득하다. 반면 전진하는 귀호대원들의 얼굴에는 강렬한 분노와 살기, 그리고 강한 경각심이 깃들어 있었다.

스르륵. 스르륵.

후퇴하는 야차일군의 움직임은 뱀과 같았다.

직선으로만 후퇴하지 않는다. 좌우를 갈대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며 물러나는데, 땅에 배를 끌고 움직이는 뱀처럼 사이하고 은밀했다.

궁수 부대의 화살 공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물론 잘 막을 수야 있겠지만, 아예 피해 버리는 것이 훨씬 매혹적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귀호대주가 번쩍 창을 들었다.

피피피피피핑!

오십여 발의 화살이 하늘을 날았다.

피피피피핑!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위를 당기자마자 벼락처럼 또 한 발의 화살을 걸고 쏘아 내는데, 그 위치가 좌우로 나뉘어져 있었다.

섣불리 피하려 들다가는 피해가 막심해질 것이다.

이천상의 입이 열렸다.

“군랑방진(群狼防陣).”

치리리링! 쩌저저저정!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살 모두가 부러져 땅을 굴렀다.

그때였다.

쿠르르릉!!

귀호대의 진격 속도가 일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화살 공격은 야차일군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것, 진짜는 귀호대의 접근이었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이방(二方) 돌격.”

촤르르르륵!

마냥 물러날 것만 같았던 야차일군의 공격이었다.

끝까지 따라잡을 각오로 진격 명령을 내린 귀호대주는 기가 막혔다.

‘도대체 뭐야, 이놈들?’

콰르르릉!

두 부대가 충돌하며 무서운 충격파를 일으켰다.

치리리링! 퍼억! 서걱!

“으아악!”

“아아아악!”

“죽여!”

살벌한 비명과 욕설,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과 악다구니가 평야를 붉게 물들였다.

‘이럴 수가.’

귀호대주는 아연실색했다.

어쨌거나 덤벼들었으니, 박살을 내 주겠다는 심산으로 몰아붙였다. 한데 전방 부대원들의 싸움은 호각이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귀호대의 패배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귀호대원들은 다쳐도 움직일 수 있도록 질 좋은 경갑으로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에게는 고작 견갑과 각반뿐이었다. 오로지 진법과 개개인의 기량만으로 호각을 이룬다는 건, 실제 실력은 저쪽 부대가 더 높다는 것이었다.

‘이익!’

귀호대주가 얼굴을 와락 구기며 외쳤다.

“중로 개방!”

쿠르릉!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부대 가운데에 한 줄기 길이 열렸다.

히히힝!

명마의 화려한 울음소리와 함께 귀호대주가 말을 몰았다.

빠르다.

절정고수의 신법은 준마의 달음박질에 준하는 속도를 낼 수 있다. 신법에 능한 고수라면, 그 이상의 속도도 낸다.

하지만 귀호대주의 애마는 어지간한 준마를 한참 상회하는 속도를 냈다. 정지 상태에서 최고 속도까지 순식간에 도달해 낸다. 보통 명마가 아니었다.

단숨에 전방 부대로 짓쳐 든 귀호대주가 야차들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어엉!

무서운 공명음과 함께 창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의 창을 쳐 낸 것은 이천상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최전방에 서서 귀호대원들을 유린했으며, 가장 강력한 공격인 귀호대주의 창술까지 받아 냈다.

타다닥!

이천상이 삼 보를 물러나며 충격을 상쇄했다.

기마의 장점은 그 무게감에 있었다. 말의 중량을 받아 내친 공격은 일반 보병의 공격력과 비교를 불허한다.

이천상을 튕겨 낸 귀호대주가 대단한 게 아니라, 귀호대주의 무공을 받아 낸 이천상이 대단하다고 봐야 했다.

귀호대주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파라라라락!

야차번이 흔들렸다.

전방에서 검사들과 접전을 벌이던 야차일군이 무서운 속도로 후퇴했다.

“이놈들!”

그냥 보내 줄 리가 없다. 귀호대주의 명령에 귀호대원들이 더 강한 기세로 돌진하며 따라붙었다.

그때였다.

번쩍!

이천상의 왼손에서 세 자루 비수가 날아갔다. 출정 전에 구비해 두었던 비수였다.

표적은 귀호대주의 말이었다.

쩌저저정!

귀호대주의 창검이 비수를 튕겨 냈다.

섬세함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어 보이는 육중한 몸으로 어느새 뽑아 든 검과 창을 휘둘러 날카로운 비수를 막아 냈다.

귀호대는 호검단 소속이다. 호검단 소속 무인들은 모두 검에 능했다. 그것은 귀호대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상 전투에서는 장창으로, 백병전에서는 검으로 싸운다. 하지만 마상이라고 하여 검을 다루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귀호대주의 전투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

콰앙!

강력한 힘으로 대지를 찍은 적야차번.

히히히힝!

느닷없이 터진 충격파에 귀호대주의 말이 앞발을 높이 들었다.

귀호대주와 대원들이 어어 하는 사이.

훅!

바닥에 야차번을 꽂은 이천상이 북천마혜보를 시전, 순식간에 귀호대주의 측방으로 들어갔다.

‘이놈!’

귀호대주가 좌수에 든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이천상의 주먹이 말의 옆구리를 때렸다.

서걱! 퍼어어엉!

이천상의 어깨에 깊은 검상이 새겨졌다. 동시에 귀호대주가 탄 말이 피를 뿜으며 비틀거렸다.

창졸간의 기습이라 제대로 힘을 싣지 못했다. 그러나 금강야차마기가 섞인 주먹은 말의 갈비뼈를 부러트리고 복부까지 충격을 전달했다.

파아아악!

빠르게 뒤로 물러난 이천상이 야차번을 쥐고 속도를 올렸다. 후퇴하는 사이 귀호대원들의 검이 이천상을 노렸지만, 기가 막힌 몸놀림으로 그 모든 공격을 피해 낸 후 부대가 있는 곳까지 물러나 버렸다.

분노에 차 있던 귀호대원들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떠올랐다.

이천상의 몸놀림은 그들이 구경조차 해 본 적 없는 신묘함으로 가득했다. 언제, 어디서, 몇 자루의 검이 날아오는지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것은 물론 어떤 방위로 나아가야 더 안전한 후퇴가 가능한지를 훤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귀호대주가 말을 진정시키며 외쳤다.

“붙어라! 힘 싸움으로 가면 무조건 우리가 이긴다!”

“우아아아아!”

귀호대의 돌진 속도가 빨라졌다.

그만큼 야차일군의 후퇴 속도도 빨라졌다.

부대의 크기도 그렇지만, 개개인의 몸놀림에서 야차일군이 한 수 위였다. 귀호대는 어떻게든 따라붙으려 했지만, 야차일군은 얄미울 정도로 손쉽게 거리를 벌렸다.

거리가 벌어지자 귀호대주가 궁수들에게 명을 내렸다.

쏘아진 화살 대부분은 야차들의 병장기술 앞에 흩어졌다. 하지만 야차들 역시 서서히 지쳐 가고 있었고, 다시 대여섯 명이 화살에 맞아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들의 전투는 그런 식이었다.

야차일군이 물러가면 귀호대가 쫓아갔고, 귀호대가 진격을 멈추면 빈틈을 노린 야차일군이 엄청난 속도로 치고 들어가 전방을 흩트려 놓았다.

피해량만 따지면 귀호대가 더 많았다. 하지만 수적 열세에 처한 야차일군의 전사자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졌다.

엎치락뒤치락, 서로를 향해 치명적인 공격은 주고받지 못하는 와중에도 사상자는 착실히 늘어 갔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귀호대주는 할 말을 잃었다.

물러나는 것 같으면 돌격하고, 돌격하는 것 같으면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기습을 감행한다.

어딜 어떻게 노리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경험 많은 귀호대주에게 있어 이천상과 그가 이끄는 야차일군과의 전투는 그야말로 귀신을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고 마냥 물러나 대기할 수도 없었다. 이미 큰 손실을 보기도 했거니와, 결정적으로 적의 숫자 역시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전사자가 나온 이상, 끝까지 물고 늘어져 소모전으로 가야 했다. 끝까지 싸우다 보면 결국 귀호대의 승리로 이어질 것이 빤히 보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귀호대주!”

홀린 듯 싸우던 귀호대주의 귀에 궁수 부대와 함께 있던 우이곤의 외침이 파고들었다.

“너무 많이 진격했소! 평야를 절반 이상 가로질렀단 말이오!!”

귀호대주가 아차, 했을 때였다.

쿠르릉!

저 멀리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귀호대 입장에서는 후방이요, 야차일군 입장에서는 거리가 먼 전방이었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쿵! 쿵!

적야차번이 땅을 두 번 때렸다.

물러나던 야차일군이 거짓말처럼 산개하여 정지했다.

“……!!”

순식간에 침묵으로 가득해진 전장.

귀호대주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킬 때.

“우아아아아!!”

그들의 후방에서 백색 깃발을 휘날리는 백오십 마리의 마귀들이 달려들었다.

깃발을 든 여인, 설이전이 버럭 외쳤다.

“쏴라!!”

피피피핑!!

오십 발의 화살이 수십 장 거리를 격하고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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