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 외전-83화 (733/774)

외전 83화. 마(魔)와 정(正) (1)

와아아아!!

저 멀리 후방에서 사나운 함성이 들려왔다.

귀창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광기(狂氣)와 군기(軍氣)가 마구 얽혀 들어가고 있었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만 가득한 전장이었다.

집단전 경험이 많은 귀창은 기세만으로도 싸움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절정에 달했다가, 서서히 종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버텨 준 것만으로도 일군은 제 할 일을 다했다. 아니, 그 이상을 했다.

안타까운 것은 야차들의 죽음이다.

‘대체 얼마나 희생되었을지.’

적의 군기가 워낙 거세서 모호했지만, 족히 절반에 가까운 사상자가 난 것 같았다. 뾰족하게 날 선 마기의 밀도가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가 버럭 외쳤다.

“일군이 목숨을 걸고 벌어 준 시간이다! 죽을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

“존명!”

펄럭!!

푸른 야차의 깃발이 무섭게 흔들렸다.

귀창이 이끄는 삼군은 순식간에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얕은 강물을 뛰어넘었다.

아무리 진법으로 단련된 이들이라도 무려 두 시진에 가까운 시간을 달리고 있다. 그것도 체력 분배를 하며 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야차들의 숨소리가 점점 격해졌다.

정공이든 마공이든, 모든 내공심법은 호흡을 근간으로 한다. 호흡이 저리 망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공과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뜻했다.

그걸 다 알고 있음에도, 귀창은 쉬지 않았다.

야차들도 마찬가지였다. 호흡은 격해졌지만, 그들의 눈빛은 귀신 같은 마기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교에서 살아가며 제대로 된 전우애나 동료애를 느껴 본 마인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야차사령부는 달랐다.

성격도 제각각이고 살아온 인생도 제각각이지만, 드디어 제대로 된 조직에 들어왔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진법 훈련에서부터 지금, 이 임무까지.

같은 군(軍)은 아니지만, 크게 보면 같은 부대의 전우들이었다. 그 전우들이 적과의 전투로 죽어 나가고 있었다. 단순히 적을 섬멸키 위함이 아닌,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그 목숨을 건 진한 마음은 같은 공간에 없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귀창 때문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마음의 짐을 얹고 있었다. 힘들다고 쉴 때가 아니었다. 심장과 폐가 터져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전우들이 만들어 준 이 기회를 그냥 내다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후우우웅!

진군하는 야차삼군에게서 시퍼런 마기가 넘실거렸다.

호흡은 격해지고 체력은 떨어졌지만, 그들의 기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렬해졌다.

마공은 감정의 폭발과 몰입으로 그 힘을 올리게 마련이다.

전염되는 슬픔, 흘러넘치는 광기, 하나 되어 솟구치는 군기.

신(神)을 위해서가 아닌 부대를 위해서, 전우들을 위해서 하나가 된 삼군의 진격은 놀랍게도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쿠르르릉!!

흙먼지가 자욱이 일었다. 초목과 대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진군하는 삼군을 노려보았다.

중천에 이르렀던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찬연하게 불타오르던 태양을 마주하며 달렸던 삼군은, 어느새 밝은 어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진격했을까.

‘……!!’

귀창의 눈이 흔들렸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한 줄기 마기.

은밀하면서도 진한, 야차삼군의 모든 마인을 통틀어도 찾아볼 수 없는 밀도를 자랑하는 마기였다.

파아아앙!

그 마기의 주인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는 마인도 하나 있었지만, 전방에서 달려오는 마인의 기세가 워낙 막강해서 존재감이 희미했다.

잠시 후.

“전군 서행!”

쿠르릉! 쿠르르릉!

속도를 줄이는 야차들의 발밑에서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발이 무거워진 것이다. 속도를 줄이고 나서야 그들은 내공과 체력을 한계까지 뽑아 썼음을 인식했다.

“허억! 허억!”

“후욱!”

달릴 때보다 훨씬 더 호흡이 거칠었다. 조금이라도 공기를 빨아들이려는 본능이었다.

어느 정도 호흡이 돌아오자, 그들의 눈빛이 떨리기 시작했다.

팍!

청야차번을 땅에 박은 귀창이 무릎을 꿇었다.

“령주님을 뵙습니다!”

야차들이 일제히 따라서 무릎을 꿇었다.

“령주님을 뵙습니다!!”

산천초목을 떨게 하는 목소리였다.

온갖 감정이 묻어나는 그 목소리는, 아직 그들이 부대로서 완성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상관의 명령이 아니면 행동할 줄 모르는 얼치기들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상관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다.

“……!”

삼군을 보는 양백호의 눈이 흔들렸다.

누구 하나 다친 사람은 없지만, 뿜어져 나오는 기세만으로도 사령부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어들 나라.”

스르륵.

삼군이 여전히 헐떡이며, 그러나 절도 있게 기상했다.

양백호가 서둘러 물었다.

“다른 두 부대는 어디에 있나? 아니, 그간 어떤 일이 있었지?”

귀창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신속하고 분명하게 전달했다.

양백호가 이를 악물었다.

‘우려하던 일이 결국…….’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의 선택에 잘못은 없었다. 그리고 군주들의 판단에도 틀린 점은 없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더 신중했어야 했지만, 적에게 무연향을 없애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천재지변이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

“한데 령주님. 피가……?”

양백호와 율적산의 몸에는 갈변한 핏자국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양백호가 고개를 저었다.

“소림이 끼어들었네.”

“예?!”

귀창의 눈이 커졌다.

소림은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이자 천마신교 입장에서는 가장 껄끄러운 상대이기도 했다.

천마신교를 제외한 단일 문파의 힘으로 봤을 때 소림은 압도적이다. 특히 정파 무림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향력만 놓고 보면 신교와 소림의 차이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소림에서 고수를 보내왔다니.

귀창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전쟁을 하자는 거 아닙니까?”

복건은 천마신교 본산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히 천마신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곳이었다. 마도무림의 힘은 영향력에 비해 한 곳에 집중된 성향이 강했지만, 그렇다고 앞마당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신교의 마인이 하남과 인접한 호북이나 섬서, 안휘에서 나타난 격이었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당연히 소림도 초긴장 상태에 들어갈 것이며, 전쟁의 가능성을 떠올릴 것이다.

“섣부른 예견은 금물일세.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고 말고는 우리 소관이 아니야. 우리는 싸우는 사람들이지 정국을 보는 사람들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일단 부대 정비일세.”

양백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먼저 일군과 이군이 있는 쪽으로 가겠네. 삼군은 휴식 후 따라붙도록 하게. 이군주도 같이 이곳에 있게나.”

“아닙니다. 달릴 수 있습니다.”

귀창이 뒤를 돌아보았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기세로 대답이 되었다. 아직 호흡을 다 고르지 못했지만, 삼군 야차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형형했다.

“좋네. 같이 가세.”

* * *

이군의 참전으로 싸움은 순식간에 막바지를 향해 치달았다.

“쏴라! 같이 쏴!”

우이곤의 외침에 귀호대주가 버럭 소리쳤다.

“견제 사격만 해라! 우회하여 들어간다!”

집단을 이끌고 전면전을 해 본 적 없는 우이곤은 당황해서 아무 소리나 남발했지만, 와중에도 귀호대주는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귀호대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 부대와도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거기에 또 다른 적 부대가 들이닥쳤으니 승부가 될 리 만무했다.

쿠르릉!

귀호대가 우측으로 돌아갔다. 산을 타 넘고 후퇴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귀호대주의 패착이었다.

싸움을 피하는 것은 정답이었지만, 앞뒤 안 가리고 퇴각해선 안 된다. 퇴각하는 부대가 공격받는 것은, 끝까지 항거하는 것보다 더 빠른 전력 손실을 유발한다.

귀호대주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그는 집단전에서 많은 경험이 있었지만, 적을 앞에 두고 단 한 번도 후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후퇴하면 적에게 사냥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이 첨예한 전쟁터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에는 무리였다.

옆으로 꺾어 널찍한 평야를 달리는 귀호대.

설이전이 외쳤다.

“후미를 공격해라! 어떻게든 따라잡아서 다 죽여 버려!”

이군과 삼군은 죽을힘을 다해 속도를 냈다. 죽기 살기로 추격하는 와중에 죽고 죽이는 싸움까지 행하려니 체력 소모가 대단했다.

그래도 일군보다는 아니다.

이군의 마인들에게, 선임 조장인 설이전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일군은 벌써 반절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다. 그들에 비하면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낼 수가 없는 것이다.

퍼버버버벅! 까가강!

미친 듯이 돌진하며 시위를 튕기는 이군의 마인들은 숨도 고르지 않고 공격을 감행했다.

살아남은 귀호대 중 삼 할에 가까운 병력이 쓰러졌다. 죽지 않은 이들도 많았지만, 퇴각하는 동료의 발에 밟혀 끔찍하게 압사당하거나 또다시 날아온 화살에 목숨이 날아갔다.

후미만 딱 떼어서 죽어 나간다면 모를까, 예측 사격으로 선두 쪽에서도 군데군데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당연히 대열은 흐트러졌다.

대열이 흐트러지니 귀호대원들은 더더욱 당황했고, 그 당황은 점차 차가운 공포가 되어 이성을 마비시켰다.

“으아아아아!!”

귀호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산개했다.

귀호대주의 눈이 흔들렸다.

“멍청한 놈들! 대열을 유지해라!”

또 한 번의 실수였다.

귀호대는 더 이상 부대로서의 형태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부하들에게 대열을 유지하라며 호통을 치기 전에, 대장인 그라도 몸을 피신해야 했다.

그의 잘못된 선택은 곧 죽음으로 이어졌다.

파아아아앙!

귀호대주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

어느새 너덜거리는 붉은 깃발을 든 마귀 대장 놈이 십여 장 옆 측방까지 따라붙고 있었다.

놀라움으로 물들었던 귀호대주의 눈이 점차 충혈되었다.

“이 개새끼!!”

피이이이이잉!

벼락처럼 쏘아진 화살이 이천상의 목덜미를 스치고 나아갔다.

파파팡!

다시 시위에 화살을 걸고 당길 때, 이미 이천상은 이 장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파아악! 쩌어어엉!

재차 날린 화살이 철번에 맞고 튕겨 나갔다.

이천상의 눈에서 광기에 가까운 마기가 뿜어졌다.

빠각!

묵직한 철번에 맞은 말이 다리를 꺾고 쓰러졌다. 머리통이 날아간 것이다.

“이놈!”

내상을 입은 말이 이제까지 달린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다.

덕분에 귀호대주의 체력은 넉넉했다. 단숨에 허공으로 튀어 오른 그가 창을 버리고 검을 뽑아 들었다.

그때였다.

퍼억!

화살 하나가 그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어느새 후미까지 따라붙은 설이전이 날린 화살이었다.

허공에서 치명적인 공격을 당한 귀호대주가 당황하여 거칠게 사지를 놀렸다.

쩌어엉!

붉은 야차의 장력이 그가 쥔 검을 날려 버렸다.

콰드득!

“컥!”

무자비하게 휘둘러진 철번이 귀호대주의 좌측 갈빗대를 모조리 부숴 버렸다.

쾅!

땅을 구르는 귀호대주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즉사는 면했지만, 사실상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익!”

콰득!

단숨에 거리를 좁힌 이천상이 귀호대주의 머리통을 밟아 깨트렸다.

적의 수장을 죽였는데도 이천상의 표정은 무심했다. 그가 설이전을 돌아보며 명했다.

“첨병조 옷을 입은 놈들은 모조리 사로잡아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예!”

귀호대를 완전히 무력화시킨 이군이 검붉은 옷을 입은 이들을 공격했다. 살아남은 혈호대였다.

쿵!

땅에 야차번을 꽂은 이천상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침내 싸움이 끝난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