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84화. 마(魔)와 정(正) (2)
최소한의 부대 정비만 하고 진군한 일군과 이군이 양백호와 삼군을 만난 것은 전투가 끝나고 반 시진이 지난 후였다.
“오셨습니까.”
“칠십……인가…….”
일군을 보는 양백호의 눈이 흔들렸다.
이천상이 고개를 숙였다.
짧은 묵례, 그것으로 끝이었다. 굳이 말이 필요치 않다는 것은 이천상도 알고 있었다.
가만히 일군을 보던 양백호가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겠네. 전원 산개하여 휴식을 취하고, 부상자들을 관리해야겠네.”
일군의 피해는 보이는 것보다 더 심했다.
살아남은 야차들의 숫자는 칠십이었지만, 그중 중상자가 정확하게 이십이었다.
그 이십 명 중에서도 긴장이 풀리자마자 목숨을 잃은 자가 일곱이었다. 남은 열셋도 예후가 좋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임무가 끝날 때까지 생존할 확률이 일 할도 되지 않을 것이다.
“아플 것이다.”
잘린 팔의 상처가 너무 흉했다. 지혈은 했지만 적의 칼과 독, 흙먼지가 잔뜩 들어갔다.
우둑!
야차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잘린 상처 바로 위를 엄청나게 조여매니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상처가 너무 너덜거려서 일부러 괴사시켜 잘라야겠다. 마기를 최대한 이쪽으로 모아 정도 이상의 괴사를 방지해라.”
“알겠습니다.”
내공을 일정 경지 이상 익히지 않은 사람에겐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이미 온갖 잡스러운 기운이 혈관을 타고 흘러 육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포기하지 마라.”
이천상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무심했다.
“이러다가 죽게 되어도 마지막까지 저항해야 한다. 삶은 그런 것이다.”
야차들의 눈이 흔들렸다.
이천상의 말은 마치, 이래도 죽음을 피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말로 들렸다.
“나 같은 놈도 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다음에 뱉은 말은, 야차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나는 마음이 없는 놈이다. 그래도 산다. 죽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 아니야. 살아 있는 이상,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천상이 야차를 보았다.
창백한 얼굴, 눈 밑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죽을 이유가 없다면 살아라. 죽을 이유가 있다면, 너답게 죽으면 된다.”
“…….”
“조금만 기다려라. 괴사가 시작되면 잘라 내겠다.”
감정 변화가 극히 적은, 아니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의 말이기에 듣는 이를 더욱 숙연하게 한다.
“비켜 보게.”
이천상의 뒤에서 나타난 양백호가 중상자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그가 봐도 이들이 가망이 없는 탓이었다.
오히려 저만한 상처를 입고 여기까지 진군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치명상을 입고도 예까지 움직이게 하였을까.
“모두 가부좌를 틀게.”
양백호는 중상자들의 명문에 제 마기를 흘려 보낸 후 운공을 도왔다.
그것은 단순한 내력의 인도가 아니었다. 초절정에 이른 그의 마기가 직접 체내로 침투하여 독기와 탁기 등, 잡스러운 기운을 불사르거나 체외로 배출해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생존률이 어느 정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양백호가 땀이 난 이마를 훔쳤다.
‘그렇다 해도 이 중 절반은…….’
절반은 죽어 나갈 것이다. 그것도 최소가 절반이다.
양백호가 몸을 돌렸다.
“군주들은 모이게.”
잠시 후.
병력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 모인 네 사람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 잘못이 크네.”
차마 부하들 앞에서 말하기 어려웠던 고백을 하는 양백호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부하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는 사기가 죽을 것이다. 평시라면 모를까, 지금은 전시다. 충분히 잘 달아오른 분위기에 초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아닌 임무를 위해서.
“차라리 계속 대기를 시켰다면 좋았을 것을.”
“무연향이 사라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각자가 맡은 바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는지요.”
귀창과 율적산의 말은 단순히 양백호를 위로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어차피 모든 임무는 죽음을 동반한다. 타인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려거든 내 목숨도 걸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양백호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새삼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니, 두 사람이 당황할 만도 했다.
“그렇지.”
가만히 땅을 내려다보던 양백호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어쩌겠나.”
동료를, 전우를, 부하를 잃은 경험이 너무나도 많다.
누군가는 슬픈 경험이 쌓일수록 마음이 단단해진다고들 한다.
틀렸다. 그것은 마음이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그저 흘려 넘기는 것에 가깝다.
신교에 들어온 후, 그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방황했다. 전우라 할 만한 이들도 몇 없었으며, 부대를 이끈 적은 있었지만 애초에 주위를 돌아볼 만한 상태도 아니었다.
실로 오랜만에 ‘내 부하’들을 수십 명이나 잃었으니 기분이 착잡할 만도 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오만과 오판으로 잃었다고도 볼 수 있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일군주는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이천상의 목소리는 평소와 아예 차이가 없었다.
그 목소리가 양백호를 평소의 그로 되돌리게 했다. 감정이고 마음이고를 떠나, 부하도 이렇게 담담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상관인 자신이 우울에 젖어선 안 되는 것이다.
“첫 판단부터가 실책이었지. 그러나 일군주 자네의 판단은 옳았어. 힘들었을 텐데, 저들을 맞이하여 잘 싸워 주었네.”
“합리적인 판단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랬겠지.”
가만히 대기만 하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일군의 손실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정만큼 의미 없는 것은 없다. 그 상황에서 이천상은 최선의 판단을 내렸고 동시에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그쪽은 어떠셨습니까?”
이천상의 물음에 양백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생각을 정리한 그가 자신과 율적산이 겪었던 일, 보았던 것들을 전부 말해 주었다.
“소림…….”
이미 얘기를 들었던 귀창을 제외하면, 이천상은 가장 늦게 소림의 존재를 들었다.
“소림은 하남 숭산에 자리 잡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네.”
“그 영향력이 무림 전역에 이르러 있다고는 했지만, 복건까지 손을 뻗칠 수 있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지. 공식적으로는.”
공식적으로는.
중요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본교 역시 암암리에 북부로 많은 교도들을 침투시켰네. 마공을 익힌 자도 있지만, 익히지 않은 자도 있어. 저쪽도 마찬가지겠지. 우리는 서로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반응을 보고 있다네.”
“하지만 이것은 반응을 보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수하를 시켜 이쪽을 찔러볼 수는 있습니다만, 소림 본사의 고수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자라 살수까지 펼쳤다는 건 직접적인 도발이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일군주의 말에 동의합니다. 철천지원수 사이라고는 하지만, 애매한 지역도 아니고 상대 진영에 깊숙이 들어와 살수를 가했다는 건 명백한 도발입니다.”
율적산이 한숨을 쉬었다.
“보통 놈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천상과 귀창이 율적산을 바라보았다.
율적산이 깍지를 끼며 말했다.
“소림은 바보가 아닙니다. 현재 본교가 아무리 어지럽다지만, 이렇게까지 깊숙이 치고 들어와 보란 듯이 마인을 상대한다는 건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도발이라는 것 아닌가?”
“그래도 이상해. 소림 방장급 인사, 혹은 전대 고수가 직접 백팔나한이라도 끌고 왔다면 모를까, 이 정도로 도발이라기엔 좀 약소하지 않나?”
“으음.”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맞닥뜨린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가 놀라움인지라 여러 생각을 하기 힘들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 정도 전력으로 도발 운운하는 것은 어폐가 있었다.
직접 부딪쳤음에도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 율적산의 냉철함이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그쪽에 소림의 다른 대단한 고수가 더 있을 수는 있네. 하지만 내 생각에,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왜 그리 생각하나?”
율적산이 양백호를 보았다.
양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많은 고수, 더 강한 고수가 있었다면 내 마기가 그들을 잡아내지 못했을 리가 없네.”
“……!”
“물론, 이 나조차 속일 정도의 고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하지만 말 그대로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야. 그 정도 인사가 이곳까지 왔는데 본교의 정보원들이 포착하지 못했을 리가 없잖은가.”
“그, 그렇군요.”
그때,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똑같습니다.”
“무엇이?”
“소림의 전대 고수든 최고수든, 당대 적자 배 고수가 왔든 본교 정보원들이라면 알아챘어야 정상입니다. 배분과 강함을 떠나, 소림이라는 이름 자체의 무게가 그 정도는 되니까요.”
“……!”
“본교 정보원들 실력이 어느 정도입니까?”
대답은 귀창에게서 나왔다.
“남부 무림에서 제일이라 할 만하지.”
“그렇군요.”
“아무리 본교가 어지럽다 해도 정보원들의 실력은 떨어지지 않아. 적어도 그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이런 추리가 가능합니다.”
이천상이 땅에 나뭇가지를 찍곤 산 하나와 지붕 하나를 대충 그렸다.
산이 천마신교, 지붕이 호마상단이다.
“본교의 정보력은 남부 제일, 그렇다면 소림승들이 복건까지 왔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타났지.”
“그렇습니다.”
이천상이 산과 지붕 사이를 잇는 점선을 그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음?”
“지금 우리가 몰랐다고, 신교 본산이 몰랐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
세 사람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것을 신교가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토록 중요한 문제라면, 신교가 자신들에게 정보를 안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다른 어디도 아닌 소림이었으니만큼, 이는 당연한 생각의 흐름이었다.
“본교가 우리에게 정보를 주지 않은 겁니다. 이전처럼 똑같이.”
“하, 하지만 상대는……!”
“그리고 무연향이 끊겼지요.”
“……!!”
이천상이 산에 작은 원을 그렸다. 그리고 지붕에도 작은 원을 그렸다.
그리고 점선 아래, 원과 원을 잇는 직선을 그렸다.
점선은 야차사령부의 이동로, 그리고 직선은…….
“호마상단, 혹은 소림과 내통하는 자가 있습니다.”
“뭣이!!”
“소림과의 내통은 쉽지 않겠지요. 호마상단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
“즉.”
이천상이 나뭇가지를 툭 부러트리며 말했다.
“신교가 우리에게 정보를 주지 않았다가 첫 번째, 신교와 호마상단에 내통하는 자들이 있다가 두 번째입니다.”
“그럼……?!”
“신교의 정보를 주무를 수 있는 자, 그리고 야차사령부가 몰살당하는 것을 원하는 자.”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사후 처리까지 완벽하게 행할 수 있는 권력자. 바로 그자가 이번 임무의 배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