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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85화 (735/774)

외전 85화. 마(魔)와 정(正) (3)

“흐아암!”

나른한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켜는 초로 사내의 자태는 꽤 볼만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반신은 비쩍 말랐다. 갈비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몸통에 아슬아슬하게 붙은 길쭉한 양팔이 마치 사마귀의 앞다리처럼 보였다.

“그래서.”

소지로 귀를 후비는 모습이 방만함 그 자체였다.

“더 해 줄 건 없나?”

“충분하오.”

거지꼴을 한 사내와 달리 의복을 갖춰 입은 노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차를 마셨다.

노인의 이름은 연등.

신교 최고의 권력자 중 하나라는 자소대마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그런 자소대마에게 당당하게 하대하는 초로 사내의 정체는 바로 같은 십대마왕의 하나인 광혈신마(狂血神魔) 백헌이었다.

십대마왕 사이에는 딱히 서열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공식적으로는 그러했다.

그러나 부패의 온상이 된 지금의 신교에서, 법도나 규칙 따위는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바뀐 지 오래였다.

광혈신마 백헌은 십대마왕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고수였고, 무력만큼이나 대단한 권력의 소유자였다. 앞으로 나서기를 즐기진 않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많은 뇌물과 접대를 받는 인간이 그였다.

“그나저나 참, 자네에게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은 몰랐네.”

“무슨 말씀이신지?”

“죽은 사생아를 그렇게나 마음에 두고 있었나? 솔직히 그 개망나니를 다시 본교로 들인 것도 의외였네.”

연등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럴 리가 있겠소?”

“음?”

“천한 계집년 가랑이에서 나온 얼치기에게 혈육의 정 따위 나눠 줄 만큼 온화한 사람이 못 되오, 나는.”

백헌이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았지. 그럼 왜 그리 신경을 써 줬나? 듣기로 자네의 그 폭혈마공도 전수했다고 들었는데.”

“실험체였지.”

“실험체?”

“쓰레기답게 놈의 재능은 그리 좋지 못했소. 하지만 몸뚱이 하나만큼은 놀랍도록 튼튼하더군.”

연등이 다시 차를 마셨다.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몹시 세련되었다. 평생 예법을 공부한 사람 같았다.

“나도 아직 폭혈마공의 극의를 깨우치지 못했소. 해서 그놈 몸에 이런저런 실험을 많이 했지. 혈맥부터 혈도까지 기가 찰 정도로 튼튼한 놈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잃을 줄은 몰랐소.”

“그러니까.”

백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하자면 이것은, 혈육을 죽인 놈들에게 하는 복수가 아니라 자네 물건을 망가트린 놈들에 대한 응징이었구만?”

“그렇소. 그리고 좀…… 그렇잖소?”

“뭐가?”

연등이 환하게 웃었다.

“쓰레기라고는 하나, 그래도 요만큼은 내 피가 섞인 놈이오. 그런 녀석을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합심해 죽였다고 하는데, 그냥 넘어가서야 쓰겠소?”

“…….”

“개도 주인을 보고 건드리라 하였거늘, 놈들은 선을 넘었소이다.”

백헌이 피식 웃었다.

“자네답구먼.”

사람들이 자소대마를 무서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자소대마는 항상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했다. 아군을 대할 때도, 적군을 대할 때도,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을 대할 때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을 죽일 때도 그는 웃었다.

웃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상상도 못 할 잔혹함과 광기를 지닌 자. 권력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비인간적인 방법도 불사하는 마귀.

“한데.”

연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습은 되겠소?”

“무슨 수습 말인가?”

“무연향을 없애는 법을 알려 주고 정보까지 차단했잖소. 이거 자칫 잘못하면 감당키 힘든 후폭풍이 되어 돌아올 수 있소.”

백헌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 손으로 감당 안 되는 일을 벌일 만큼 무모한 사람으로 보았나?”

“음.”

“사람들이 권력을 좇는 이유를 아시는가?”

“우월감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물론 그것도 있지. 그렇다면 그 우월감은 단순히 남을 부리는 데에서 오는 감정인가?”

“모르겠소.”

백헌의 눈이 깊어졌다.

“권력이 좋은 이유는 규율에서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이라네.”

“흐음?”

“권력이 크면 클수록 자유도 커지지. 그리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되면, 규칙과 법도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네. 나한테 불리한 건 없애 버리고,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들을 창조해 내기도 하지.”

“…….”

“나는 본교 제일의 권력자가 아니라네. 그럴 수도 없지. 그러나 멋대로 통제한 정보부의 불만을 잠재울 정도의 권력은 갖고 있네.”

백헌이 손가락으로 찻잔을 때렸다.

푸스스.

찻잔이 가루가 되고, 이내 안에 든 차가 진한 향을 내며 기화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자네가 날 찾아온 거 아닌가.”

연등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하나 물어도 되겠소?”

“그러시게.”

“정보 통제야 그렇다 쳐도, 적에게 무연향을 없애는 방법을 알려 준 것은…….”

“…….”

“누구와 손을 잡고 있었던 거요?”

백헌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그려졌다.

연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헌의 거처는 그야말로 일국의 황제가 사는 방이라 해도 믿을 만큼 대단한 화려함을 자랑했다.

곳곳에 예술품이 그득하고 벽 한쪽은 아예 통째로 황금으로 발라져 있었다.

거대한 침상의 틀 역시 황금으로 도금되어 있었으며 곳곳에 크고 작은 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탁자와 의자도 최고급 목재를 쓴 명품이었고, 방금 가루가 된 찻잔 역시 천하의 명인이 만든 자기(磁器)였다.

‘아무리 뇌물을 많이 받아먹어도 이렇게까지 꾸며 놓기는 힘들 텐데.’

이 방 안에 있는 물건들만 처분해도 어지간한 문파의 오 년 공금은 나올 것이다. 그야말로 사치의 끝이었다.

“호마상단이오?”

“…….”

“그렇겠지. 야차사령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놈들에게 칼을 쥐여 줄 수밖에 없으니까.”

연등의 눈이 깊어졌다.

“위험하지 않소?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자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 않나?”

나른한 목소리에 절로 음험함이 느껴졌다.

연등이 고개를 저었다.

“상관할 바는 아니지. 다만 도움을 주신 입장이니, 충고가 아니라 조언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여 주셨으면 하오.”

“…….”

“출처도 모르는 검은돈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오. 그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이 나오는 그 구멍이 문제를 일으키지.”

연등이 미소를 지었다.

“늦게 태운 시체는 전염병을 일으키기 마련 아니겠소? 이왕이면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을 것이오.”

백헌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자네가 나에게 조언씩이나 할 정도로 세상 물정에 밝은 줄 몰랐군.”

“권력은 몰라도 사람이 어떻게 추락하는지는 많이 봐 와서.”

연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고마우신 분이 또 있겠소? 은혜를 주신 분이 오래 가야, 또 부탁도 드리고 나도 도와줄 게 생기고 그러는 거지. 아닌 말로, 광혈께서도 득이 되는 게 아니면 내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았을 것 아니오?”

백헌의 눈매가 부드럽게 풀렸다.

“부탁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시게.”

연등이 웃으며 말했다.

“칼질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오. 내 힘이 닿는 선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볼 테니까.”

“상부상조. 좋지, 나도.”

“이만 가 보겠소.”

“가기 전에 궁(宮)에 한번 들르는 게 어떤가?”

“궁이라면……?”

“교주전 말이네.”

“……!”

연등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백헌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아리따운 시비가 그의 앙상한 어깨에 장포를 걸쳐 주었다.

“가끔 찾아뵙기라도 하지, 너무 무신경했네. 오죽하면 교주님께서 섭섭해하시겠는가.”

“…….”

“한번 들러서 술 한잔하고 오게. 그게 자네에게도 좋을 게야.”

“……명심하겠소.”

백헌이 껄껄껄 웃으며 시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자, 우리는 또 연못에 가서 놀자꾸나. 애들 싹 불러 보거라.”

“네, 주인님.”

그야말로 주지육림 속에서 사는 그였다.

돈과 여색을 밝히고 음주가무에 미쳐서 사는 사람.

하지만 연등은 백헌의 무공이, 불과 몇 달 전보다 한층 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명확했던 그의 무공 경지가 지금은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여우인 척하는 호랑이라.’

연등이 몸을 돌렸다.

‘천금을 줘도 저렇게는 안 살고 싶군.’

* * *

간밤에 중상자들 열 명이 죽었다.

달리 더 조처할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양백호가 하루의 휴식을 명한 덕분에 남은 세 명은 살 수 있었다.

천만다행히도 그들의 증세는 빠르게 호전되고 있었다. 더 이상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문제없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돌려보내야겠군.’

휴식과 함께 불타오르던 전의도 많이 가라앉았다.

이제는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여야 할 때였다. 그런 순간에 부상자를 달고 다니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남은 일군의 전력을 가늠한 이천상은 이내 가부좌를 틀었다.

그 역시 상처가 상당했다. 다만 금강야차마공의 엄청난 회복력 덕분에 남들보다 훨씬 살 만할 뿐이었다.

‘굳이 회복에 전념할 필요는 없겠군.’

마기가 탄력을 받아서 스스로 몸을 고쳐 나가고 있었다.

회복에 힘쓰는 대신, 이천상은 자신의 무공을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잘되지는 않았어.’

금강야차마공을 기반으로 한 금강마권, 야차혈장 그리고 북천마혜보.

분명 세 가지 무공은 마치 하나였던 것처럼 실전에서 매끄럽게 어우러졌다.

하지만 이천상은 그 이상을 원했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단순히 수련만으로 강해질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전 속에서 성장하는 것. 명백한 적의를 가진 상대에게 내 무공을 시험하는 것처럼 확실한 수련이 또 없을 것이다.

‘폭혈(爆血)…….’

그는 자소대마의 절기, 폭혈마공의 구결을 다 외우고 있었다.

그냥 잊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무공이었다. 구결과 법문을 볼 때, 폭혈마공은 금강야차마공에 뒤지지 않는 심도 높은 무학이었다.

다만 서로 간의 특성이 워낙 달라서, 금강야차마공을 기반으로 한 이천상이 폭혈마공의 무공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위력을 살릴 수는 있을 줄 알았는데.’

폭혈마공은 격렬하고 파괴력이 넘치는 마공이었다.

지구력에 문제가 있지만, 그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했다. 말하자면 단시간에 적을 몰아치기에 적합한 마공이었으며, 그것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내가 당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이천상은 바로 그 점을 파고들었다.

폭혈마공의 위력을 금강야차마공에 둘러씌울 수 있다면?

지구력 문제를 떼어 내고, 빼어난 위력만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가능은 해.’

이천상은 확신했다. 폭혈마공의 구결을 거의 다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폭혈마공은 신체의 엄청난 내구도가 필요한 마공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작부터 연성한 마공이라면 모를까, 지금 그 격렬하고 폭발적인 기운을 담아 내치면 혈맥과 혈도가 온통 파괴되어 불구가 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반개한 이천상의 눈에, 땅에 꽂힌 적야차번이 보였다.

‘병장기에 그 격한 흐름을 맡겨 둘 수는 없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애초에 내공을 뽑아내 기운을 흘리려면 내 몸에서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장기에도 인체의 혈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수 있는가.’

누구도 해 본 적 없는 파격적인 생각, 깊어지는 고민.

어느새 동녘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저 멀리서 양백호가 군주들을 불렀다.

가부좌를 풀고 일어난 이천상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옅은 기대감이 어렸다.

“……불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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